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응? 이게 아닌 건가?
아무리 봐도 정다현이 잘한 거 같은데.
대통령의 반응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다현 팀장이 잘 적응하고 있으니 다행 아닙니까?”
“마물을 사냥하는 방식이 좀 그렇지 않나?”
“오히려 효율이 좋아 보이는데요.”
“…그렇군.”
아무래도 예상한 반응과 내 대답이 달랐나 보다. 이거 뭐 스무고개도 아니고, 이러나저러나 결국 마물을 잘 사냥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마물의 빈틈을 잘 파고들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인데.
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행하지만 정다현은 철저하게 습성을 분석한 뒤 행동에 옮겼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마물 사냥에 나선 지 3개월도 안 됐는데 이만한 성장세라니,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대통령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입을 닫았다. 내 말을 듣고 보니 옳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니면 말고.
“그리고 아방가르드 길드 이야기 말인데.”
“예.”
“이찬택 초인이 인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맞습니다.”
정보 하나는 빠르다. 보나 마나 천명국의 작품이겠지?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외면하는 걸 보면 맞나 보다.
난 별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오히려 더 신경 쓰는 거 같다.
“그럼 결과는…….”
“거절했습니다.”
확 밝아지는 두 사람의 표정.
이 결과를 바라고 있었군.
그러다 대통령이 오히려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거절한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귀찮아서요.”
“만약 상대가 귀찮게 굴지 않는다면?”
“제 생각도 바뀌겠죠?”
사실 어디에 신경 쓰고 책임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하게 해내야지. 조직을 관리하고 그런 건 내 적성이 아니다.
최준호팀도 사실상 진세정이 전부 관리하는 형태고.
이마저도 이세희의 권유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내 에너지를 불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도 싫고.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전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지금 이대로 쭉 가고 싶을 만큼. 마음 같아서는 대통령님도 10년 정도 더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허허, 말이라도 고맙네.”
“고맙긴요, 진심인데.”
“허허허허!”
내 말에 대통령은 웃기만 할 뿐이다. 진심인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군.
대통령은 나와 이찬택 사이에 있던 일을 더 캐묻지 않았다.
이런 게 믿음이란 거겠지. 이런 관계가 구축되기 쉽지 않은데, 역시 5년만 하고 물러나는 게 아쉽다.
왜 하필 이 나라는 중임제가 아닌 걸까. 중임제였으면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마음에 안 들면 더 빨리 치워 버릴 수 있고.
“개헌해도 한 번 더 못 하시죠?”
“가능하면?”
“개헌해야죠.”
“어떻게?”
“국회 의원 찾아가서 협조를 구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 과정에서 무력을 동반한 사건 사고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신성한 개헌 작업인데. 정중한 대화로 협조를 구해야지.
“못 한다네.”
“아쉽네요.”
반대하는 국회 의원의 생각을 바꿀 수십 가지 생각이 떠오르던 참이었는데.
역시, 아쉬웠다.
* * *
“…….”
최준호가 돌아가고 집무실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천명국 또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방금 들었나?”
“들었습니다.”
“…한 번 더 하라고? 내가 정치하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야.”
“…….”
“더 무서운 건 뭔지 아나? 그놈의 권력이 뭐라고 혹했단 거야. 내가 하자고 하면 최준호는 진짜 하자고 움직일 건데 말이지.”
“최준호 초인의 실행력을 정확히 보셨습니다.”
빈말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최준호였다.
그걸 뼈저리게 겪은 것이 대통령과 천명국이었다.
아군일 땐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지만 적일 때는 일찌감치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속 편할 수 있다.
“국회 의원 찾아가서 협조를 구한다는 말은 어떻게 들었나?”
“…대통령님이 국회 의원 300명을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나랑 생각이 같군.”
최준호가 대화로 협상에 임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똥을 끊을 소리였다.
“아무튼 이제 2년 남았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 그 기간을 무사히 보내는 게 내 소망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대통령님과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두고 홀가분하게 물러나고 싶… 왜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동조하던 천명국이 대통령의 묘한 눈길에 몸을 떨었다.
“최준호랑 가장 가까운 게 우리 둘인데 청와대에 한 명쯤 남는 게 좋지 않나?”
“지금 절 버리시는 겁니까?”
“유능한 인재의 앞길을 확 트이게 해 주는 거지. 천 실장은 아직 젊지 않나. 앞길이 창창한데 이대로 그만두면 아깝지.”
“전혀 안 아깝습니다.”
“난 아까워.”
“전 안 아깝습니다.”
“허허.”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어서 대통령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천명국은 잔뜩 긴장한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천 실장은 내 계파거나 정치색이 짙은 것도 아니고. 최준호 전문가인 것만 해도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도 가능하지.”
“출세에 욕심 없습니다.”
청와대에 들어와 권력의 실체를 낱낱이 보았기에 오히려 초연해졌단다.
안타깝군.
잘 휘어잡았으면 더 눌러앉힐 수 있었을 텐데.
대통령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랬으면 지금쯤 다 엮어 놨을 텐데 말이야, 참 아쉬워.”
“…….”
“아무튼 2년 동안 잘해 보자고.”
저 말 거짓말이다. 대통령은 건수만 생기면 자신을 엮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천명국은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대통령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아침이라기에도 애매하고 새벽이라기에도 애매한 오전 6시에 일어나 청와대에 일찌감치 도착한 신문을 펼친 뒤 시급한 사안을 살펴본다.
개인적으로 가장 한가한 시간이다.
집무실에서 고요함을 즐기며 세상 돌아가는 걸 파악하는 게 대통령의 낙이다.
“쯧.”
그러다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진을 보고 혀를 찼다. 최준호와 이찬택이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 초능력자 연합의 날 행사 출국 당시 찍었던 투 샷이 게재되어 있다. 그리고 기사에서는 국가 권력이 대형 길드를 산하에 두는 걸 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터졌군.”
대통령은 이찬택이 아방가르드 길드의 거취를 놓고 고민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최준호 산하에 들어갈 것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찬택.”
철심이라 불리지만 누구보다 생존 본능이 발달한 초인이다.
신성길드에 충성하는 백군서와 몸을 사리는 류광호와 달리 비즈니스도 가능한 인물이고.
썩어도 준치라고, 이찬택은 초인이고 아방가르드 길드는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다.
그 거대한 길드가 세계 최강이라 칭해지는 최준호 손에 들어간다? 당연히 난리가 날 일이다.
신문에서도 거대한 세력이 사유화되는 걸 지적하고 있었다. 여기에 청와대의 무능함을 성토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코웃음 쳤다.
“말은 누구나 쉽게 하지. 막을 수 없어서 문제인데.”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난 대통령이 가장 무서운 유형의 사람을 꼽으라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최준호가 여기에 속했고. 그나마 요즘은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이게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지 세상은 모르고 있었다.
누구는 그거 받아 주느라 탈모가 오고 혈변을 보고 있는데.
이미 최준호에게 들어 해프닝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여파는 의외로 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계 최강 초인과 대한민국 3대 길드의 결합 소식이다.
정계와 재계 모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핵폭탄인 셈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불러서 경고를 했겠지?”
이 사실은 정치권에도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최준호의 존재는 정치권에서 금기어나 다름없었지만 이번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여당 대표와의 오찬 자리에서도 해당 건이 언급되었다.
“대통령님, 실례지만 아방가르드 길드가 최준호 초인의 산하에 들어간다는 게 사실인지…….”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여당 대표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정부 통제하에 있는 초인이 사조직을 거느린 예는 없었습니다.”
“김영환 때도 없었다고?”
“…그땐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지만 최준호는 다릅니다.”
뭐든 예외는 있다. 깐깐하게 법적으로 따지지 않는 경우도 좋게 좋게 가자는 의미가 컸고.
그 부분을 놓고 볼 때 최준호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팀도 불법이었다.
대통령은 이 부분을 터치할 생각이 없다. 최준호와 관련된 사안은 무척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
최준호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인 걸 감안할 때 절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자신이나 천명국은 그걸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대통령이 당대표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하겠다면 막을 방법은 있고?”
“없습니다.”
“대책은?”
“이대로 지켜보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의원들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최준호를 상대하려면 명심하게. 무슨 일이 있을 때 강제하거나 계산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안 돼. 그 행동들이 여태까지 모두 역효과를 일으켰지.”
“예.”
“지켜보기만 하게. 그럼 자연스럽게 모두 해결될 테니.”
“알겠습니다.”
당대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수용력이 있기에 소수계파여도 당 대표에 앉혀 놨다. 그 대가로 선견지명 있다는 말을 듣겠지.
차라리 이게 나았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제멋대로 굴다가 어김없이 작살이 났으니까.
부산 시장 유성수가 그렇게 백치가 되었고, 서울 시장 한정문이 민심을 잃었다.
답답하지만 사안을 직접 다루는 게 훨씬 나았다.
“이런데 한 번 더 하라고? 어림도 없지.”
최준호에 관한 일을 다루는 것만으로 몇 년이 늙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게 낫다.
피똥 싸고 탈모 오는 것보단.
* * *
물론 최준호와 관련된 모든 일이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니다.
피로가 있기에 편안함을 알고 안도감도 존재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을 꼽자면 최준호를 초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내가 잘했지, 그렇고 말고.”
최준호의 영입으로 파생된 결과물은 엄청났다.
더 이상 주변 국가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졌고, 대한민국의 사냥 능력은 최상위에 올라섰다.
그로 인해 각성자 파워 랭킹은 세계 최상위에 랭크. 국민들의 자부심까지 고취시킬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염원이던 북진을 성공시켰다.
이건 엄청난 성과다. 늘 어깃장을 놓던 중국이 개입하지도 못한 것이다.
아니, 개입했다가 실패했다는 게 옳겠지. 그 과정에서 중국의 전력을 엄청나게 깎아 낸 게 부수적인 성과라면 성과다.
장쯔둥부터 시작해서 장우위안, 남궁기, 왕민까지.
중국은 지금 유례가 없는 초인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웃 국가의 약화는 본국의 기회가 된다. 북한의 알짜배기 영토를 손에 넣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게 그 이유였다.
“무덤까지 갖고 가야겠지.”
중국 입장에서 더 복장 터지는 건 최준호 손에 죽은 중국 초인 중 단 한 명도 공식적으로 항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장점은 따로 있지.”
최준호의 가치는 마물을 상대로 하는 방위 작전이 펼쳐질 때 진가를 발휘한다.
2시간 전, 새로운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했다.
예정된 절차대로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마물의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 일대 주민들을 대피하게 한 뒤 저지선을 구축한다.
예전이라면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며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비상 회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모두들 아는 것이다. 플러스 단계 마물은 최준호 선에서 해결될 거라는 걸.
대통령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이래야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1차 저지선은 소백산의 서쪽인 단양군이 될 예정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해 8단계 마물 등장에 대형 길드한테 덜미를 잡혀 끌려가곤 했다. 붉은 뱀 김영환은 대형 길드보다 더 악랄하게 이권을 뜯어내려고 했고.
최준호는 이 부분에서 클린했다. 정해진 몫 외에 추가로 요구하는 것도 없고 마물 사냥 방식도 깔끔하다.
타국 정상들과 회의를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부럽다는 것이다. 각국 원수들도 초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대한민국은 최준호가 선제적으로 나서 줌으로써 큰 피해 없이 마물 사냥이 가능했다.
그 결과가 지지율 상승이고 시민들의 삶 개선이다.
대통령은 이 모든 게 스스로 잘해서 얻은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준호가 있기에 가능했고 그래서 더더욱 최준호의 편의를 봐주려고 했다. 그것이 국익이고 자신의 이익이며 모두의 이익이라 생각하기에.
비상 회의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브리핑이 끝났을 때, 최준호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대통령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이번에 사냥하면서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마물의 사체를 온전히 보전하기 힘들 것 같은데 괜찮을지.”
보라, 사냥 성공 여부가 아니라 사체 보전 여부를 물어보는 여유를.
초인 숫자가 부족해서 초인을 쉬지도 못하게 하고 전력에 투입시키는 곳이나, 하나로 불안해서 둘을 투입해야 하는 타국과 천지 차이였다.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인사하는 최준호의 모습이 더없이 든든했다.
그래도 대통령 두 번 하는 건 싫었지만.
근데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거지?
대통령은 최준호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