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이찬택은 갑자기 방문한 사신길드 마스터 류광호를 맞이했다.
종종 왕래를 했기에 그를 맞이하는 데 어색함은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무 말도 없이 큰 사건을 벌여 놓고 내색하지 않는 건 여전해.”
그 이야기였군. 이찬택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길드 일 아닙니까.”
“내게도 영향을 끼치는 일이면 내 일이야.”
“앉으시죠.”
이찬택은 부하를 시켜 차를 주문한 뒤 류광호와 마주 앉았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
그가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건지 잘 안다. 대기업을 뒷배로 둔 신성길드와 달리 아방가르드와 사신은 초인의 존재로 지금의 위상을 달성했다. 그러다 보니 이찬택과 류광호 개인의 존재감으로 길드가 유지되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길드가 최준호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신길드 내부에서도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다.
묵묵히 생각에 잠긴 그를 향해 류광호가 물었다.
“한계를 느꼈나?”
“오래전부터 느꼈습니다.”
“아니, 나처럼 나이도 많지 않으면서 벌써 느낀다고?”
“저마다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넨 나와 달리 아직 젊으니까.”
저 이야기를 15년 전부터 들었다. 그사이 류광호는 은퇴를 바라볼 나이가 되었고, 자신은 전성기에서 이제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해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이젠 젊은 나이도 아닙니다.”
“하긴,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어.”
“제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가 철심이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어. 행동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여우인데. 살길을 찾아 잽싸게 움직인 거 아닌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틀린 선택이 아니었군. 류광호의 말을 극찬으로 들은 이찬택의 표정이 환해졌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적 감각에 있어 류광호는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한 출신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음에도 사신길드를 키워 낸 것이 그 증거였다. 온갖 모략과 음해에 시달렸음에도 류광호는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 냈다.
“남들이 원하면 뭐 하나. 최준호는 거절한 걸로 아는데.”
“예. 면전에서 대놓고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오히려 더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권할 생각입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
이찬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이 생생했다. 최준호의 손이 가슴을 파고들어 휘젓다가 심장을 움켜쥐던 순간을. 그때 죽음을 직감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되어 찾아왔다.
“최준호의 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입니다.”
잠재된 기프트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 만약 이걸 기프트가 없는 각성자들에게 모두 사용한다면? 길드 소속 각성자 전원을 기프트 보유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기프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 능력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고, 유력자들의 협조도 가능해진다.
최준호가 그럴 생각이 없다면 주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세계 최강의 길드를 꾸릴 수 있고.
“지금 보여 주는 것에서 더 대단할 게 있나?”
“예, 있습니다.”
“그러니 레벨 9를 자신이 평가하겠다고 했겠지.”
“한번 도전해 봤지만 처참하게 깨졌습니다.”
“그걸 또 도전해 봤다고?”
“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보고 싶었습니다.”
류광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찬택도 자신이 철없게 행동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결국 최준호 설득이 관건이겠어.”
“예.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했으니 사냥이 끝난 후, 다시 찾아갈 생각입니다.”
“음.”
“마스터께서도 집안 단속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하지.”
류광호의 나이가 벌써 65세. 은퇴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물러나지 못하는 건 사신길드가 그의 존재로 위상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뚜렷한 후계자도 존재하지 않았고.
요즘 들어 사신길드 내부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건 이찬택도 알고 있었다.
스스로 한계를 느끼는 자신과 처지가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류광호가 이찬택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차라리 나도 최준호에게 넘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아무리 그래도 양보할 생각은 없습니다.”
“둘 다 넘겨도 되지 않나?”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둘이 이런 생각이라니.
둘의 얼굴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더 황당한 건 당사자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거죠.”
“이 나이에 남자한테 매달리게 될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 * *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정다현은 여러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표정이 좀 더 자신감 넘쳤고, 눈빛에 생동감이 넘쳤다. 머리를 뒤로 묶고 캐주얼한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음에도 미모에 빛이 났다.
마물 사냥이 그녀에게 본격적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나 보다.
“잘 지냈어?”
“네, 재밌게 보냈죠.”
“꽤 시끌시끌하던데.”
“그거요. 네, 여러 곳에서 말이 들려오더라고요.”
빌런 체포에 집중하던 정다현이 마물 사냥에 나서자 꽤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거두는 성과가 종종 기사화되었는데, 이번에 새끼 마물을 이용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여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정다현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눈치챈 언론은 내 영향을 받아 눈부신 재능이 타락했다고 하는데, 그럼 난 이미 타락했다는 건가. 일단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기억해 뒀다.
나중에 마주칠 일이 있겠지.
정다현을 둘러싼 논란은 며칠 뒤에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애초에 문제 될 게 뭐가 있나? 정다현은 마물에 대해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접목시킨 것이다.
보고서만으로도 감탄이 나왔는데 현장에서 봤다면 극찬을 했겠지.
“마물 사냥은 적성에 맞고?”
“네, 사냥할 때마다 보람이 느껴져요.”
이 또한 저번 생과 다른 흐름이었다.
저번 생에서 정다현은 내 손에 죽기 전까지 줄곧 빌런을 상대했다.
끝까지 꺾이지 않고 올곧음을 유지하던 신념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지. 그래서 이번 생에 만나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마물을 사냥하는 정다현이 탄생했다.
“빌런 체포는 이제 안 하려고?”
“한다고 해도 더 이상 제 손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어서요.”
한때 대한민국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빌런 중 버서커는 명예 회복을 했고, 두문불출하는 검은사신만 남아 있었다. 검은사신은 자신의 종적을 드러내지 않는 빌런이라서 그를 쫓아 체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다현은 내 존재로 인해 대한민국은 빌런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국가수호국에서 꾸준히 빌런 체포 작전을 실행에 옮기고 있어 이제는 피라미 수준의 빌런들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오빠의 공이죠.”
“네가 다 했지.”
“전 살짝 거든 수준이고요. 이제 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거 같다고 판단했어요.”
그것이 정다현이 내린 결론이다. 하긴, 그동안 내가 빌런들을 많이 처리하긴 했다. 이로써 빌런 자연 발생설에 종지부를 찍게 되겠군.
계속 처리하다 보니 그 숫자가 현격하게 줄어드는 걸 보면.
“그래서 마물로 선회했구나.”
“전 제가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생각했어요. 이제 빌런으로부터 안전해졌으니 마물 소탕에 좀 더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봤고요.”
“주변에서 걱정은 안 하고?”
“많이 하죠. 특히 청장님이 좀…….”
“정 청장님이 왜?”
“자꾸 오빠가 절 안 좋게 물들여서 마물 사냥에 나선다고 그래서요.”
음, 정주호는 귀신인가?
어째 머리가 빠질수록 판단력은 날카로워지는 거 같다.
모발이 날카로운 판단을 가로막고 있었던 건가.
“사실 뉴스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꾸 기사가 나가다 보니, 이번처럼 제 사냥 방식에 걱정을 드러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 대단한 사냥 방법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난 정다현에게 응원을 보내 주기로 했다.
마물의 습성을 이용하여 효율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사냥 방식은 권장해야 한다.
“내가 볼 때 넌 잘하고 있어. 네가 볼 땐 어때?”
“저요? 이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실전 경험 없이 이상에 물들어서 하는 헛소리죠. 한때 저도 그 이상론에 휘둘리기도 했고요.”
마물 사냥 앞에서 감상에 젖은 소리는 모두 헛소리라고 정다현은 말했다.
빌런에서 마물로 바뀌었다.
확실한 가치관이 형성되었군. 내가 보기에도 나쁜 방향이 아니었다.
마물과 빌런은 죽이고 또 죽여도 괜찮다. 완전히 씨를 말려 버리면 더 좋고.
“계속 헛소리하면 한마디 해 주면 되거든요. 너희가 한번 마물 사냥에 나서 보라고. 오빠가 이 말로 국회 의원들을 침묵시켰잖아요.”
“침묵은 아니고, 현장의 어려움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야.”
“근데 진짜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질 예정이었던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적당한 현장감만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어.”
“음, 그게 그 말로 들리는데.”
어허, 사람을 어떻게 보고.
누가 보면 의도적으로 죽이려고 한 것처럼 보겠다.
난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다현은 쓰게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제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빠 이야기도 많던 걸요. 특히 아방가르드 이야기요. 아방가르드 길드를 휘하에 두는 건가요?”
“아니, 거절했어.”
“왜요?”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봐?”
“세력을 거느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빠를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때 저 세력이 있으면 아무 말도 못 할 거 같아서요.”
정다현은 내게 세력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해 줬다.
세력의 위세를 등에 업게 되면 귀찮은 일에 일일이 나서지 않게 되어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행동 반경이 넓어질 거라 했다.
전부 맞는 말이다.
다만 나는 그에 따른 단점도 잘 알고 있다.
“대신 내 이름을 믿고 이리저리 날뛰는 녀석들이 생기겠지.”
“그건 그렇겠죠?”
“그때마다 죽여야 하는데 이득은 없고 귀찮기만 해. 차라리 안 받아들이는 게 낫지.”
“그것도 맞아요.”
어디 그뿐인가. 조직간 이해 관계 조율부터 시작해서 알력이 생기는 걸 방지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주위 공기를 환기시켜 줘야 한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내게 세력을 가지라는 거다.
그만큼 세력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많은 거겠지. 내가 누군가를 장악할 카리스마와 조직 관리 능력이 있었다면 조언을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합리와 이성으로 무장된 길드 시스템은 폭력과 공포로 지배하는 빌런과 다르니까.
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오빠의 도움이 컸어요. 감사드려요.”
“감사는 무슨.”
“그럼 오빠는요?”
“나?”
“네, 오빠는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글쎄…….”
갑자기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과거로 돌아온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명확했다. 혈종이 정신을 좀먹는 걸 막아 제정신을 유지하고, 빌런이 되지 않아 부모님이 감시받는 삶을 살지 않게 만든다. 윤희는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도와 지금은 신성길드의 뛰어난 인재로 평가받고 있는 중이고.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생각해 본 적 없는 거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우선 걸리적거리는 리그를 치워 버리고 싶긴 했다. 신경에 거슬리게 만드는 녀석인 만큼 두고 봤자 귀찮게 굴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막심 게데스가 속한 파티. 여기는 신경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추후 얼마든지 귀찮게 굴 여지가 있다. 일단 여기는 지켜봐야겠지.
음, 이건 죽일 놈, 지켜볼 놈 분류하는 거 같은데.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이렇게 보니 날 위해 하고 싶은 건 없는 거 같다. 뭐가 있지? 톡톡 쏘는 용용이 녀석 때문에 순종적인 펫 하나 가지고 싶어지긴 했다.
그러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있어.”
그래,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서 잊고 있었다. 어쩌면 한동안 잠잠해서 방심한 걸지도 모른다.
혈종.
녀석을 죽여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녀석을 죽일 방법이 없다. 녀석도 내가 정신이 온전할 때 육체를 차지할 수 없으니 지켜보고만 있는 거겠지.
현재 녀석을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더 강해져야 한다. 그걸 위해서 방심하지 않고 정진해야겠지.
“죽이고 싶은 녀석이 하나 있어.”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녀석이다.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놓치지 않고 붙잡아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음, 나도 모르게 살기를 내뿜었다. 뒤늦게 자각하고 장소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에 정다현을 바라보았는데, 오히려 미소 짓고 있었다.
내 살기도 의연하게 받아넘길 줄 알고, 정다현도 참 많이 컸다.
“다행이네요.”
“뭐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가끔 오빠랑 대화를 나눠 보면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초탈한 사람 같거든요. 종교인 같은 느낌도 들고.”
내가 그랬었나?
“그래서 홀연히 사라질 거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이젠 아니네요. 다행이다.”
“안 떠날 거야.”
“네. 그런데 오빠한테 찍힌 사람은 불쌍하긴 하네요.”
음.
살다 살다 혈종이 동정받는 걸 다 보게 되는군.
* * *
정다현과 대화를 마친 뒤, 나는 플러스 단계 마물 사냥을 위해 나섰다.
새로 등장한 마물의 이름은 ‘도담’으로 멧돼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녀석의 몸통 박치기에 폐건물 하나가 가루가 되는 걸 보면 도시에 진입하기 전 처리해야 한다.
이렇게 위협적인 녀석들 이름은 왜 하나같이 귀여운 건지.
“용용아.”
[왜?]내 부름에 녀석이 삐뚜름한 자세로 꼬리를 뱅뱅 돌리며 대답했다.
정신 사나운 녀석 같으니라고.
“내 정신에 숨어든 녀석, 찾을 수 없겠지?”
[뭐가 있어?]“어, 미친놈 하나 숨어 있다.”
[너한테 미친놈이면 대체 얼마나 상한 거야? 으, 내가 무슨 청소부야?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내.]아니면 아니라고 할 것이지, 사람을 완전 더러운 오물 취급한다.
쓸모없는 자칭 신수 같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용용이 녀석은 제멋대로 허공을 누비며 정신 사납게 굴고 있었다.
“야.”
[왜?]“마물, 길들여 보고 싶은데 방법 없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네 친구는 했다며. 설마 넌 못하는 거냐?”
내 물음에 용용이의 고개가 돌아간다.
넘어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