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쾅!
단양 군수 권운정은 책상을 내리쳤다. 서류가 쏟아지며 바닥이 어지러워졌지만 조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피어났다.
분노를 다스리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았다.
“최준호! 아무리 초인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날 무시하다니!”
고작 사진 하나 찍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마저도 뿌리치고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안하무인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였다니. 넘어가려고 해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녀석이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기세등등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해진 모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단양군의 유지로 태어나 제왕처럼 군림하며 호시탐탐 국회 의원 출마를 노리던 그로서는 단양군이 자기 세상이었고, 이곳을 발판으로 삼아 더 넓은 세상에 진출하려고 계획 중에 있었다.
감히 자신에게 그런 짓을 벌이다니. 최준호에게 받은 멸시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복수심을 불태울 무렵이었다.
밖에서 노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구, 군수님.”
“뭐야?”
“그, 최준호 초인이 사냥을 끝냈다고 합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끝났으면 녀석이 알아서 사라질 일이잖아!”
“군수님이 보고하라고 하셔서…….”
“됐어! 알아서 돌아가라고 해! 가면 소금이나 뿌려!”
최준호와의 만남은 두 번 다시 상종하기 싫은 최악의 만남이었다.
말을 전했음에도 나가지 않는 비서를 보며 권운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로 눈치 없는 녀석이었나? 공천을 받으면 눈치 좋은 녀석으로 바꿔 버려야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맞겠지.
“뭐 또 있어?”
“그, 당 대표님이 군수님과 연락이 안 되신다고 합니다.”
“대표님이?”
권운정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야당 대표는 얼마 후에 있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실권자. 자신이 온갖 끈을 가져다 대야 연결할 수 있는 황금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갖은 노력 끝에 얼마 전 중앙에 끈을 대는데 성공하여 공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중앙에서 자신이 당한 모욕을 알아주는 건가.
“당장 연결해! 아니, 내가 연락드리지. 나가 봐.”
안도한 비서가 밖으로 나가고, 권운정은 즉시 당 대표와 연락을 시도했다. 거만하던 자세가 공손하게 바뀌고, 목소리도 몇 번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자 권운정이 머리를 조아리듯 행동하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찾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노호성이었다.
-권 군수! 야 이 새끼야! 지금 제정신이야?
“예, 예?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최준호와 충돌했다며? 지금 제정신이야? 기를 쓰고 피해 다녀도 모자를 폭탄 같은 녀석과 만나서 사건을 일으켜? 너 미쳤어? 우릴 다 죽일 셈이야? 어? 여당에서 보낸 첩자지?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놈 때문에 우리가 다 죽을 수도 있는데!
권운정은 머리가 하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는 떠오르는 대로 지껄였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단양군에 온다고 해서 사진이나 한 장 남길 요량이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초인하고 사진 하나 찍으면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건네주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그딴 이유로 우리 목숨이 걸린 일을 벌였단 말이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뭐, 뭔가 오해가 있는 듯싶습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대표님을 뵙고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시끄러!
“예?”
-그깟 핑계로 일이 수습될 거 같아? 여태껏 그 좁은 동네에서 떵떵거리며 해먹은 것들을 다 헤집어 놓을 거니까 살고 싶으면 닥치고 협조해. 끊어!
권운정이 변명하기도 전에 통화가 종료되었다.
조금 전 나눈 대화 내용을 떠올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최준호와의 만남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이 정도 위세라고?
“…….”
자기 앞날이 더럽게 꼬였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 * *
뭘까, 뭘까.
사냥을 마치고 복귀하는 중이지만 마지막 순간 느꼈던 눈길이 찜찜함을 느끼게 했다.
대체 뭐지? 나나 용용이가 동시에 감지할 정도면 실체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잡아냈어야 했는데 은밀하게 기세를 감추니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넌 아냐?”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뭔데?”
용용이는 모르겠다는 내 반응에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물어보지도 못하나. 이상한 녀석이다.
[어디서 원한 살 짓 한 적 없어?]“있지.”
[그럼 그중에서 생각해 보면 되잖아.]“너무 많아서 어떤 게 정답인지 모르겠어.”
[…….]용용이 녀석, 발칙하게도 황당한 표정을 짓는군. 누가 보면 사고를 엄청 치고 다닌 줄 알겠다.
음, 정확하게 말하면 사고를 쳤더라도 뒷수습은 깔끔하게 했다. 내가 왜 당당하게 쳐들어가 놓고 암살하러 갔다고 하겠는가. 증인을 말끔하게 지워 버려서 암살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적을 어설프게 살려 두면 후환이 남는 터라 없앨 수 있을 때 없애는 게 맞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나한테 원한을 가질 사람을 생각해 보면 많아도 너무 많다.
마물이 그런 게 이상할 뿐이지. 애초에 마물이 그걸 계산할 지능이 있었나?
“마물이 똑똑해질 수도 있냐?”
[그럼 매번 너희들한테 당하는 멍청이만 있는 줄 알아?]“똑똑해진 녀석이 신수급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런 녀석이 등장하기도 해. 너한테 준 심장이 그거고. 하지만 모든 면을 고려할 때 신수보다 한참 부족해!]내 추측으로는 그 마물이 플러스 플러스 단계가 아닐까 싶다.
신수보다 약하지만 위협 정도는 되겠지.
신수가 사람이라면 플러스 플러스는 사냥개 정도?
이렇게 표현하니 별로 강한 것 같지 않네.
그런 녀석이 똑똑하기까지 하다고?
용용이는 말을 덧붙였는데, 마물이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되면 신수에 버금가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하나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단다. 그 단계에 도달하더라도 힘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터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고.
뭐 이것저것 조건이 많이 걸리는군.
[우리는 수행으로 세상의 삼라만상을 꿰뚫지만 마물들은 세상에 자극을 받아 본능적으로 터득해. 인간처럼 마물도 재능 차이가 존재하고 지능 차이가 있어.]당연하게도 지능이 높은 마물이 강해질 확률이 높단다.
자신의 힘을 활용하는 노하우도 터득하고.
그 무지막지한 육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니 적당히 원한을 샀어야지.]“난 잘 모르겠는데, 네가 원한 산 건 없냐?]
처음 본다.
용용이 녀석의 어이 상실한 표정은.
[나한테 그런 게 있겠어?]“없으면 말고.”
[어설프게 덮어씌우려고 하네.]음, 용용이한테 덮어씌우기 실패였다.
[와! 넌 진짜 사악한 인간이야!]“아닌데?”
[웃기네! 다 알거든?]눈치 챘군. 용용이 녀석이 속세에 나오더니 점점 눈치도 빨라지는 것 같다.
괜히 더 얘기해 봤자 궁지에 몰릴 게 뻔해서 화제를 돌렸다.
“나도 짐작 가는 곳이 없어서 그런 거다. 진짜 누구지?”
짐작 가는 대상이 없으니 그냥 마물일 가능성도 있겠다.
마물이 그렇게 기세를 세밀하게 다룬다고? 그리고 상대를 보고 앞뒤 가리는 지능도 있고?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다 싶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바람이고 내 업보가 어디에선가 터진 거겠지.
“내 탓이지.”
용용이의 깐족을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나는 진지하게 반성했다.
좀 더 확실하게 뒤처리를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추격을 받던 처지가 아니다 보니 경계심이 느슨해졌나 보다.
예전에는 마물을 죽여도 죽은 척한다고 생각해 세 번 정도 확인 사살을 했었는데.
요즘은 그러지도 않았지.
앞으로 더 확실하게 확인 사살을 해야겠다. 심장에 구멍을 뚫고 목을 가른 뒤 내부를 모조리 부숴 버리면 소생하지 못하겠지.
[으으, 너 뭐야. 지금 엄청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어!]조용히 다짐하는 내게 용용이의 칭얼거림이 들려왔다.
사람이 확실하게 하려는데 방해하고 있네.
* * *
마물 사냥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한 나는 청와대에서 간단한 기자 회견을 가졌다.
기자들은 언제나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냥했는지 외에도 단양 군수와 있었던 트러블이나 이찬택과의 만남이 추가로 있었는지, 신성길드와 다른 협업이 있는지, 버서커의 거취 등등 추가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다 단양 군수가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 사퇴했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거 같던 양반이 왜 저러지?
“네 행패에 야당이 놀라서 사퇴시켰나 보군.”
“…….”
버서커 이 녀석은 다짜고짜 날 나쁜 놈으로 만드는군. 단양 군수가 눈에 거슬리기는 했어도 그 자리에서 행동한 게 끝이었다.
“넌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야당은 아니겠지.”
[맞아, 유통 기한 살짝 지난 인간이 상황을 잘 파악하네.]옆에서 용용이까지 거드니 대환장 콜라보가 완성되는군.
차라리 만악의 근원을 나라고 하든가.
“후환이 안 무섭나 보다?”
“눈밖에 나 봤자 찢어지고 잘라지고 부서지는 게 전부 아닌가.”
…보통 그 정도면 기겁을 하던데?
버서커 녀석, 나와 대련이 익숙해졌다고 막 나가나 보다. 이런 게 면역이란 건가? 다른 녀석들은 그 전에 죽어 버리던데, 역시 살아남은 녀석은 스케일이 다르군.
그럼 나도 필살기를 써야지.
“근데 우리 조카는 언제 볼 수 있는 거냐?”
“…….”
“내 팬이라며? 나도 우리 조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우리 집안일이다.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런 녀석이 집안을 오랫동안 팽개치냐?”
“끙.”
할 말 없겠지. 저번 생의 내가 같은 입장이었으니 잘 이해한다. 그러니 내 팬이라는 조카를 보려는 거다. 다 버서커를 위해서라고?
“아무튼 얼굴 한번 봐야 너도 편해질 거 아니냐. 다른 짓 안 할 테니 한번 소개나 시켜 줘. 네 이미지 좀 올려 둬야 앞으로 이것저것 할 때 편해지지.”
“진짜 다른 짓 안 할 거냐?”
“대체 날 어떻게 보는 거냐? 하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데? 너처럼 굴릴 거라 생각한 거냐?”
나도 사람은 구분할 줄 안다.
근데 녀석의 반응을 보면 내가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악당인 것처럼 느껴진다.
대악당 짓은 휴업 중인데 억울하네.
“그것도 그렇군.”
와, 무슨 조카 얼굴 하나 보는 게 이렇게 힘든 거지?
[이런 걸 자업자득이라고 하더라.]내가 언젠가는 테이밍한 펫한테 용용이 녀석 한번 물라고 할 거다.
* * *
나는 테이밍할 여러 마물들을 찾았지만 대상을 선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유해 단계가 높으면 거칠게 반항하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유해 단계가 낮은 녀석을 복종시키면 도담의 심장에서 발산되는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터져 죽었다.
“쯧쯧.”
요즘 마물이란 것들이 근성이 없다, 근성이 없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어떻게든 힘을 소화시키려고 해야 하는데 그런 기질이 없다.
그러니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용용이 녀석이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왜?”
“마물은 근성 없냐.”
[이, 있겠지?]“그럼 맞는 말 한 거잖아.”
[그렇기는 한데…….]그게 뭐 그렇게 특이한 일이라고 그러냐. 내가 개의치 않는 기색을 보이자, 용용이가 한숨을 내쉰다.
저것만 보면 내가 구제불능인 거 같군.
“단계가 더 낮더라도 좀 생존 본능이 발달하고 근성 있는 녀석을 데려와야겠어.”
[그런 마물이 있겠어?]“마물의 세계는 말이지, 인간 세계보다 훨씬 폭력적이지. 그 안을 살펴보면 재밌는 구경거리가 많고.”
오랜만에 혈종이던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추격을 당하던 나는 추격대를 따돌리기 위해 종종 마물들을 이용하고는 했다.
마물의 세계는 철저한 약육강식. 새끼일 때 부모의 보호를 받긴 하지만 그마저도 부모가 죽으면 새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녀석들은 생존 본능과 힘에 대한 갈망이 강력하다.
내가 원하는 녀석이 없다면 자질이 있는 걸 주워서 키워야겠다.
“외곽으로 가 보자.”
극한의 상황을 조성하면 흙 속에 숨어 있던 진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겠지.
* * *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의 경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곳은 마물의 세계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숲의 중심은 강력한 마물이 영역으로 삼았고, 그보다 약한 마물들이 중심지 주변을, 그보다 약한 마물들은 외곽으로, 더 약한 마물들은 숲 밖으로 밀려났다.
강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마물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쳤고, 그 속에서 확립된 질서를 구축하여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생태계에 벼락이 떨어졌다.
말 그대로 벼락이다.
그로 인해 숲의 생태계가 붕괴되었다. 절대적인 포식자였던 마물들이 죽임을 당했고, 각자 영역을 구축했던 마물들이 날뛰었다.
어느 마물은 빈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어느 마물은 새로운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면서 주변 일대가 지옥이 되었다.
그리고 숲이 끝나 가는 곳, 버려진 대지에서 한 마물이 죽어 가고 있었다.
몸길이가 약 80cm밖에 되지 않는 새끼 늑대였다.
배가 꿰뚫린 새끼 늑대는 피를 흘리면서 끼잉끼잉거리며 힘겹게 이동했다.
두 눈은 생존에 대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더, 포식자들이 없는 곳에 도달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안전한 보금자리로 향하기 위해 새끼 늑대는 힘겹게 이동했다.
하지만 점점 힘이 빠진다. 이대로 가면 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이 없었다. 여기에서 움직이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부모의 복수도 못 하고, 무력하게 죽는 것이 한스러웠다. 새끼 늑대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나?]새끼 늑대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든 새끼 늑대는 보았다. 숲에서 보았던 것과 전혀 다른 생명체였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품고 있지만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생명체는 새끼 늑대에게 선택지를 주었다.
[내게 복종해라. 그럼 네게 힘을 주겠다.]새끼 늑대는 고민했다.
현재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허망하게 죽기 싫었다. 살아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생명체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다.
최대한 몸을 기울여 뒤집었다. 복종을 의미하는 몸짓이었다.
그러자 별안간 전신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 속에서 차오르는 건 생명력이었다. 마치 어미의 품속에 안긴 느낌에 새끼 늑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번 주워서 써 볼까.”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하면 그때 처리해도 되니까.
새끼 늑대는 마지막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