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음, 숲 하나를 날려 버리고 구한 마물은 아주 작고 여린 녀석이었다.
이 녀석을 언제 키워서 제 구실하게 만들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싶었다. 키우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좀 더 강하고 맷집 좋으면서 삶에 대한 의지가 절박한 녀석이 없나?
그러거나 말거나 용용이는 새끼 늑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품평을 내놓았다.
[잘 구한 거 같은데? 삶에 대한 의지도 있고, 위기 상황에서 구해 준 주인에 대한 감사함도 있는 거 같고. 잘 조련하면 쓸모가 있을 거 같아.]“오래 걸리겠지?”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너 진짜 욕심 많네.]“기왕이면 빠른 게 좋으니까 한 말이다.”
그거 가지고 노발대발하기는.
말하는 태도가 별로 마음에 안드는 녀석이지만 용용이가 보는 눈 하나는 좋았기에 믿고 데려가기로 했다.
마물은 마물을 잘 아는 법이니까. 아니, 신수니까 종이 다른가. 어쨌든 내 눈에 비슷하게 보이니까 그런 걸로 하자.
그 전에.
“좀 화려하게 저질렀나.”
숲 하나가 완전히 날아가 있었다. 유해 7단계 마물 셋과 유해 6단계 마물 열 마리를 처리하긴 했지만 다른 마물들이 미쳐 날뛸 것이다.
자기들끼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텐데 몇 마리는 튀어나올 거라서.
그런 녀석들은 등급이 낮으니 막는데 문제가 되지 않겠지. 나는 천명국에게 전화로 사냥 팀을 동원해 달라고 말한 뒤, 눈에 띄는 몇 마리를 더 처리하고 서울로 복귀했다.
“먹고 빨리 크자.”
새끼 늑대는 역시 마물은 마물이었다. 죽을 것처럼 낑낑거리더니 내가 건넨 마물 고기와 심장 하나를 먹어 치우더니 초롱초롱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초재생과 육체 강화가 탑재된 거 같아 마물이 부럽긴 했다.
용용이 말대로 회복력이나 체력은 타고난 거 같다. 육체가 좀 더 성장하면 마물의 심장을 갈아 치워야겠다. 시행착오 반복 안 하게 살아남으면 좋겠다.
아니, 이거 실패하면 여러 마리를 동시에 키워 볼까?
[그 귀찮은 걸 버틸 수는 있고?]그건 또 그렇군. 여러 마리 마물이 앵앵거리는 걸 보면 먼저 사냥해 버릴 수도 있겠다.
“이게 뭐야? 귀여워!”
집으로 돌아오니 소파에 앉아 있던 윤희가 새끼 늑대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마물이다.”
“뭐? 진짜?”
“어.”
윤희는 마물이란 말에 기겁하며 물러났다가 새끼 늑대 눈동자를 보더니 다시 다가왔다. 마물이라도 귀여우면 다 용서가 되나 보다.
난 질색하면서 쫓아내자고 할 줄 알았다.
“갑자기 마물을 왜 데려왔어?”
“테이밍 해 보려고.”
“테이밍 된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얌전한 건가? 보통 인간을 보면 적의부터 드러낼 텐데.”
완전히 경계가 풀렸다.
쪼그리고 앉은 윤희가 머리를 쓰다듬자 새끼 늑대가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새끼 늑대인데 왜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강아지 같지?
“테이밍 안 했다. 그러니 떨어져.”
“아니, 이 귀여움을 오빠 혼자 독식하겠다고? 안 돼!”
그 전에 마물이 위험한 걸 생각해야 되지 않냐.
내가 말해도 윤희는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새끼 늑대가 꾀죄죄하다며 화장실로 데려가더니 샤워를 시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물인데 안일하다 싶었다.
조만간 날 잡아서 정신 재무장을 시켜 줘야겠다.
[걱정이 과한 거 아냐?]“마물은 언제든지 이를 드러낼 수 있는 녀석이니까.”
[내가 볼 때 마물보다 네 동생이 더 위험하거든?]음, 그건 인정.
용용이 녀석이 보는 눈이 좋군.
“어차피 같이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테니까.”
잠깐 친하게 지내는 것 정도야 웃으면서 지켜보면 되겠지. 어차피 마물의 심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몸이 터져 죽을 테니까.
꾀죄죄한 녀석이 달라붙어서 껄끄러웠는데 샤워도 시켜 주니 좋군.
다음에는 스스로 씻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겠다.
* * *
가끔 현재 내 위치를 돌아보면 현실감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세계를 멸망시킬 빌런이라 불리던 내가 국가와 시민을 수호하는 초인이 되어 있다니.
늘 나를 적대하던 이들이 지금은 믿고 환호하는 것이 가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좋지.”
조금만 보는 방향을 틀어도 가치관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데.
저번 생에 그게 미숙해서 해내지 못한 게 아쉽다.
내가 초인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를 다시 얻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실망을 끼치기 싫어 아들이 바르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초인에게는 제한적이지만 확실한 자유가 존재한다.
위상이 높아 주변에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게 컸고. 나라를 위해 일하고 여러 귀찮은 일에 불려 가지만 기꺼이 타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장 결정적인 건 마음에 안 드는 빌런을 죽여도 지탄이 아닌 찬사를 받을 수 있고.
변명은 아니지만 처음 혈종이 되었을 때 내 손에 죽은 헌터보다 빌런 숫자가 훨씬 많았다.
나중에 날 죽이겠다고 달려들어서 죽이는 숫자가 많아졌던 거지.
“변명이긴 하지.”
애초에 좀 더 경계했다면 혈종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난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요즘 주변의 반응을 보면 내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걸 실감한다.
그 이유가 뭐냐면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선거에서 내 이름이 여기저기 흘러나오기 시작했거든.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나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야당과 협력하다가 어느 날은 여당과 협력했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팩트 체크는 안 하나? 오늘 나온 기사만 보면 난 점심만 17번 먹었다.
이런 거짓이 횡행하는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다.
“초인님의 친분을 내세우면 당선은 확실하다는 여론 조사가 있거든요.”
오랜만에 만난 고예진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말했다. 총선 열기에 요즘처럼 어그로 끌기 어려운 분위기가 또 없다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런 게 물 만난 물고기라는 건가.
“진 팀장님 요청으로 여러 언론에 자제 요청을 드리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당선을 위해서라면 눈이 뒤집혀서 거짓도 일삼는 게 정치인이거든요!”
나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고예진도 동감한다며 내 옆에 얌전히 꼬리를 흔들고 앉아 있는 새끼 늑대를 보았다.
“근데 애완동물이 참 귀여워요!”
“아, 잠깐 맡아 둔 거라.”
“저는 초인님이 새로운 식구를 들인 줄 알았네요. 강아지 참 귀엽죠. 초인님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아쉽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근데, 이 녀석 새끼 늑대인데 다들 강아지로 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하나 싶다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고예진도 내 뜻을 읽고 화제를 돌렸다.
최근 정치권 화두는 단양 군수의 사퇴였다. 내 심기를 거스른 것만으로 사퇴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총선 열기에 내 이름이 더 오르내리게 되었다.
딱히 숨길 내용도 아니어서 나는 단양 군수가 보인 욕심에 대해 설명해 줬다.
어그로 끌 내용이라 봤는지 고예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주제 파악 못 한 군수가 설치자 초인님이 콧방귀 뀌고 야당 대표가 안절부절못하다 사퇴시킨 거네요!”
…제길, 졌다. 나였으면 저 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클릭하고 말았을 거다.
고예진은 각성자가 되었다면 분명 지나친 어그로로 오래 살지 못했을 거다.
그 결과가 어떤 의미로 대기자보다 더 유명한 기자가 되었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제가 잘 다듬어서 내보낼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새끼 늑대가 나한테 몸을 비벼 온다.
살기 위한 몸부림인가.
[아닌데? 자기를 살려 준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거 같은데?]그런가, 그래 봤자 난 봐줄 생각이 없는데 용도가 분명한 만큼 거기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건 새끼 늑대의 몫이다.
[자꾸 새끼 늑대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이라도 붙여 주는 게 어때?]죽을지도 모르는 녀석을 위해 이름을 붙여 줄 이유가 있나?
[진짜 인정머리 없네.]하도 용용이 녀석이 보채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지어 줬다.
“앞으로 넌 멍멍이다.”
[와, 네이밍 센스 진짜 구려.]그래 봤자 넌 용용이다.
용용이랑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잠시 후, 손님인 이찬택이 방문했다.
* * *
최준호 산하에 들어가기로 의사를 밝혔던 순간, 거절당했지만 능력의 일부를 엿보면서 그 의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앞으로 더 험난해질 세상에서 최준호란 끈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이찬택이 여태까지 살아온 감각이자 비결이다.
‘최준호와 협상을 타결한다.’
초인이 이끄는 길드가 다른 세력의 산하에 들어가는 건 제법 흔한 일이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느꼈던 이찬택은 최준호가 준 기회로 자신이 더 올라갈 길을 발견했지만 오히려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 결정에 자식들은 달갑지 않은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찬택은 밑바닥에서 기어 온 자신과 달리 부유하게 자란 자식들에게 아방가르드 길드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했다.
“아방가르드 길드를 받아 주게.”
“그 건은 저번에 거절했는데요.”
“그동안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장 가치만 해도 100조에 달하는 아방가르드 길드다. 이걸 받아 달라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다른 사람이 거절했다면 기분 나빴을 것이다. 아니, 모욕당했다고 생각해서 대결을 신청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준호라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욕망을 가진 존재. 주변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기에 그 모습이 신뢰를 갖게 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네. 자네 이름을 등에 업고 방만하게 행동할 게 우려되겠지.”
“뒤치다꺼리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그건 내가 할 수 있네. 내 전문이기도 하고.”
평생에 걸쳐 해 온 것이다. 이찬택은 잡음 없이 해낼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최준호라는 그늘이 생기면 더 잘 해낼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하게 친분 관계를 유지했을 때와 같은 울타리에 속하게 되었을 때 최준호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플러스 마물 사냥도 쉽게 해내니.’
오죽하면 플러스 마물 사냥 소식보다 단양 군수 사퇴 소식이 더 크겠는가.
최준호에게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하는 건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어떤가?”
“방금 그 말은 꽤 끌렸네요.”
“그거 다행이군.”
“세력을 갖추는 건 좀 더 고민해 볼 문제니까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숙제 검사를 해 볼까요?”
“…뭔 검사?”
자신이 할 게 있었나? 이찬택은 의아함을 느꼈다.
“개방할 수 있는 기프트 종류를 알려 줬는데 거기에 맞춰 수련도 안 한 겁니까? 당연히 모든 힘을 쥐어짜 내서 훈련해야죠.”
“아, 당연히 최선을 다했지.”
오랜만에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했다. 분명한 방향성이 정해져서 효율도 나쁘지 않았고.
사람은 역시 희망이 있어야 분발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
“한번 살펴보죠.”
“잠깐…….”
최준호 산하에 들어가는 것만 논의하려던 이찬택은 얼떨결에 끌려가듯 자리를 이동했다. 그곳에는 멀찍이서 몇 차례 봤던 버서커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인 반열에 올라선 게 얼마 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 서는 순간, 버서커의 기세를 접하면서 평가가 몇 단계 높아졌다.
“…버서커.”
기프트가 뭔지도 몰랐던 때라면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자신도 최선을 다해 수련했다.
쉽지 않은 대결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찬택은 의욕을 불태웠다. 여기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최준호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버서커에게 다가간 최준호가 당부하는 게 파편화되어 들렸다.
“잔뜩… 굴려 놔… 잔머리… 굴리지 못하게.”
“알았다.”
방금 들은 게 사실인가?
이찬택은 최준호와 버서커의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교환되는 걸 확인했다.
“잠깐, 지금 무슨 말을…….”
이찬택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앞을 가로막고 선 버서커 때문에 입을 닫고 말았다.
그날, 사람이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죽음의 위기를 느끼며 구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 *
아주 귀찮음의 연속이다.
계속해서 산하에 넣어 달라고 하는 이찬택도 그렇고 총선 분위기에서 자꾸 내가 소환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론에 이야기하자니 확대 재생산이 될 테고. 이야기할 곳이라고는 결국 대통령밖에 없었다.
“그만큼 치열한 상태란 이야기지.”
정치인들이야 4년 백수냐 4년 보장이냐가 걸려 있으니 그럴 수 있긴 한데, 그 와중에 내 이름이 나오는 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응?”
“자꾸 내 이름 나오는데 시원하게 개입해 볼까요?”
“…음! 허허허.”
내 말에 대통령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난 농담으로 한 건데 진담으로 받아들여서 오히려 황당했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니, 삭막하군.
“농담입니다.”
“다행이군.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괜히 말했던 내가 무안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무슨 짓이든 벌일 녀석으로 생각되는 거 같았다.
아무튼, 내 생각은 분명했다. 마음에 드는 정치인도 있고 아닌 정치인도 있지만 내가 정치적 식견이 확립되지 않은 이상 개입하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다.
이상한 게 확인되면 그 후에 개입해도 되니까.
난 대통령에게 생각을 밝혔다.
“당분간 외부 임무를 핑계로 떠나려고 하는데 어떠신지.”
“휴가를 말하는 건가?”
“그건 아니고, 국경 부근에서 못된 짓을 벌이는 녀석이 있어서 이 기회에 잡으려고 합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급변했다.
“…혹시 중국의 초인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냥 사람 현혹하는 데 특화된 사이비 교주입니다.”
이 기회에 브레인 워싱을 사용하던 녀석을 찾아서 후환을 없앨 생각이었다.
아직 기지개를 켜기 전이지만 내가 과거로 돌아와 일으킨 나비효과가 꽤 크고, 혼란은 녀석의 맛있는 먹잇감이니 세력을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관심에서 멀어진 김에 확인을 해 볼 생각이다.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런 빌런이 있었나?”
“확실하진 않습니다. 정주호 청장님을 만나 보고 가 보려고 합니다.”
“자꾸 소환되니 멀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가는 길에 내 친서를 전해 줄 수 있나?”
“예.”
“그리 알려 둘 테니 편히 머리 식히다가 돌아오게.”
“감사합니다.”
쉽게 휴가 허락을 받았군.
[언제부터 누굴 죽이러 가는 게 휴가가 된 거야? 뭐야, 여기 다 이상해.]용용이 녀석이 근거 없는 모함을 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