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집으로 돌아와 윤희에게 며칠 집을 비울 거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던 녀석이 이번에는 의아한 표정을 띠며 날 바라봤다.
“비밀 임무를 이렇게 갑자기?”
“어, 며칠 다녀올 거다.”
“북한 쪽에 무슨 문제 있어? 이제 별문제 없다고 들었는데.”
설마 날 걱정해서 그런 건가? 다 컸군. 이제 날 걱정할 정도도 되고.
“표정 왜 그래? 재수 없어.”
“…….”
그럼 그렇지. 잠깐이지만 감격받은 게 잘못된 일이로군.
“빨리 이유나 알려 줘.”
“별건 아니고.”
윤희의 말마따나 북한 쪽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필요한 요충지를 모두 확보했고, 중견 길드와 소규모 길드가 대거 북쪽으로 향하면서 마물 소탕에 주력하는 중이다.
그 결과 북쪽 거점인 개성이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개성을 주력으로 키우려 했음에도 되지 않던 게 기회를 잡아 폭발적으로 성장하니 허탈해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문제가 될 만한 녀석들이 여러 곳에 숨어 있다고 해서.”
“그래? 귀찮아지긴 하겠다.”
애초에 윤희도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나 보다. 그러더니 내 옆에 대기하고 있는 멍멍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건 상관없고. 우리 예삐는 왜 데려가려고 하는 건데?”
여기서 예삐는 내가 멍멍이라 지어 준 마물의 윤희식 작명이었다.
내가 멍멍이라는 입에 착 붙는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지만 센스가 없다고 욕만 먹었지.
진짜 이상한가. 내가 볼 때는 기억에 잘 남고 입에도 착착 감기는 걸로 느껴지는데.
그건 그렇고, 예삐라는 이름도 들어 보니 윤희 녀석 작명 센스도 나한테 뭐라 할 건 아닌 듯싶은데.
오히려 멍멍이가 더 낫지 않나?
[너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일걸.]그럼 예삐는?
[너희가 남매라는 증거지.]용용이 이 자식… 제대로 알아봤군.
사실 나는 아직도 멍멍이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윤희에게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테니 그냥 넘어가야겠군.
“왜 데려가냐니깐?”
“주인이 나니까 데리고 다녀야지.”
“이 작은 아이를 그 먼 길까지 데리고 간다고? 난 이거 반댈세!”
언제부터 마물을 그리 아꼈다고.
멍멍이를 데려가려는 건 내가 주인인 것도 있지만 장거리 원정을 나가면서 제대로 쫓아올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도 있다. 주인이 가려는 길도 제대로 쫓아오지 못하면 일찌감치 처리하는 게 낫지.
몇 차례 우기긴 했지만 내 뜻을 꺾을 수 없는 걸 아는지 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와야 돼! 예삐야, 주인이 손대려고 하면 도망쳐서 나한테 와!”
뭐, 처리하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럴 시간에 오빠나 걱정해라.”
“다칠 인간이긴 하고?”
“그럼 내가 안 다치겠냐.”
“다칠 수 있던 거였어?”
“내가 무슨 마물이냐?”
생각해 보니 멍멍이는 마물인데 걱정을 잔뜩 받고 난 인간인데 걱정 하나 받지 못하고 있군. 어째 마물보다 더한 취급을 받고 있는 기분인데.
“요즘 보면 마물이 더 불쌍할 정도야.”
나도 가끔은 걱정받고 싶은 사람인데.
[말이 되는 소릴 해.]“…….”
친동생에게도, 신수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서글픈 신세로군.
아무래도 이번 생은 걱정받는 걸 포기해야겠다.
* * *
곧장 북쪽으로 향한 나는 개성을 지나 평양으로 향했다.
류광철의 흔적이 남아 있는 평양은 여전히 마물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정부에서 대형 길드의 조력을 받아 평양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치울 거란 얘기를 들었는데, 가는 김에 유해 8단계 마물 하나를 처리하고 평양으로 입성했다.
오랜만에 도착한 도시는 이전과 달리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만큼 정주호가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믿고 쓰는 정주호답다.
툴툴거리면서도 자기가 맡은 역할 그 이상을 해내고 있으니까. 소수의 인원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200%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주석궁에서 정주호와 만난 나는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내용은 모른다. 뭐, 고생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수고해 달라, 이런 식의 내용이겠지.
전부 다 읽은 정주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날 쏘아보았다.
“무슨 낯짝으로 왔냐?”
갑자기 왜 저런데?
[저 인간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 모근이 더 약해져 있어.]“…….”
갑자기 다 이해가 되는군.
용용이 녀석의 말에 정주호가 무슨 이유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알 수 있었다. 평양에서 잘하고 있는 만큼 모근이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었나 보다.
여기에서 꺾이면 더는 돌이킬 수 없겠지.
아니, 이미 늦은 건가.
진짜 방법이 없는 거냐?
난 다시 한번 용용이에게 탈모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다.
[그건 불가능하다니까?]안타깝군. 이 정도면 진짜 방법이 없다고 볼 수밖에.
난 속으로 정주호의 모근에 애도를 보냈다.
“북쪽에 일을 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중국에서 일 방해하는 거 없는데? 누가 네 심기 거슬리게 만들었냐?”
“그건 아니고요.”
대통령도 그렇고 다들 내가 뭐 수틀리면 다 죽이려 드는 줄 아는군.
100%가 아닌 90% 정도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걸 전부라 생각하면 좀 슬퍼지는데.
[그게 무슨 차이야?]그래도 열 명 중 한 명은 살아남을 수 있잖아? 하나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데.
[궤변은 그만해!]이 엄청난 차이를 용용이 녀석은 이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께름칙한 일이라서 한번 살펴볼 겸 해서요.”
“언제부터 누구 죽이겠다는 게 나들이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해라. 상대 녀석만 안타깝게 됐네.”
정주호도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멍멍이에게 시선을 두었다.
“옆에 강아지는 뭐고? 귀엽게 생겼네. 이리 온, 쭈쭈!”
“마물입니다. 길들이는 중이고요.”
“…그래?”
멍멍이를 향해 손을 뻗던 정주호가 멈칫하더니 황급히 손을 거뒀다. 강아지로 볼 때랑 마물인 걸 알아챌 때 반응이 다들 극적으로 다르군.
“네 말 듣고 보니 갑자기 이 쪼끄마한 녀석이 위험해 보이는데.”
“별로 안 위험합니다. 약하고요.”
“그러냐?”
내 다리에 찰싹 붙어서 아양 떠는 게 대표적인 예였다. 멍멍이 이 녀석은 생존 본능이 기가 막히게 발달해 있었다.
정주호도 별 위협을 느끼지 못했는지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북쪽 정세는 어때요?”
“아지트가 완전히 털린 후에 조용해졌다. 중국 쪽은 당장 전력이 부족해진 상황이고. 발등에 불을 끄기 급급한 상황이지.”
“위하오 건으로 뭐라 하던데.”
“아마 위하오 의견이 반영된 건 아닐 거다.”
정주호가 옹호의 의미로 말하는 걸 보니 상당히 의외인데?
“위하오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어, 얼마 전에 북쪽에서 난리가 나서 수습하러 왔다는데 우리를 자극할 생각이 없다면서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더라? 나 중국인이 그러는 거 처음 봤어. 사람이 아주 정중해.”
그랬었군. 십대초인 건으로 유감이 아주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여기에서 중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고위 각성자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초인 수도 부족했는데, 한창 여섯 명의 초인을 보유할 때 숨어 있는 초인까지 도합 열 명이 존재한다고 소리쳤지만 지금은 세 명으로 줄어들면서 허세조차 부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셋을 내가 처리한 게 코미디로군. 장우위안과 그 동생까지 합치면 총 다섯 명이다.
결국 전력 부족으로 멀리 배치되어 있던 위하오가 오게 된 게 대표적인 예였다.
“그것과 별개로 지도부는 네가 레벨 9를 받아들이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고.”
중국의 자존심이라고 불렸던 위하오는 중국 정부 측의 선전물이었다. 하지만 반강제적으로 십대초인 위치에서 탈락하게 되니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고.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족속들이다 보니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나 뭐라나.
그래서 강경파는 여전히 백두산 남쪽으로 진군해야 한다고 주장한단다.
위하오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음을 밝혔고.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화전양면전술 그런 건가.
“아, 이건 의견만 나오는 거니 신경 쓰지 말고.”
“알겠습니다.”
누가 보면 하나하나 다 찾아서 죽이려는 것처럼 보이겠다.
결론은 지도부와 위하오의 생각이 다르다는 거다.
난 그렇게 입력해 두고 다른 질문을 했다.
“신의주 근처에 다른 소식은 없나요?”
“신의주? 신의주라, 얼마 전에 영향이 닿은 곳이기는 하지만 별거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온 게 그거랑 관련 있냐?”
“예.”
“으음. 그러고 보니 사이비 비슷한 게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찾던 정보였다. 정주호는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작은 사안이지만 몇 년 후에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게 된다.
“그거 맞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었어.”
응? 이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이야기인데.
오히려 활개 치고 다니는 게 아니고?
정주호가 평양으로 오면서 없어진 건가. 아니면 위하오가 오면서 내뺐나?
“진짜 없는 거 맞아요?”
“나도 가 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현지 주민이 서로 짜고 입을 닫으면 우리가 더 찾을 게 없어서.”
아직 신의주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 정도가 전부란다. 중국 쪽과 치열한 눈치 싸움을 전개하는 중이고.
결국 내가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거로군.
정보가 부실했지만 실체를 확인했으니 이 정도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그쪽으로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응?”
“사고 치기 싫어서 온 건데요. 덕분에 정치권에서 제 이야기가 안 나오잖아요.”
“정치권은 배려해 주면서 왜 나는 배려하지 않냐고!”
“그거야 청장님이 편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전생에 나라를 두 번 정도 팔아먹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집에서는 마누라한테 시달리고 밖에서 네놈한테 시달릴 리 없어.”
그거 참 유감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들으면 더 괴롭혀 주고 싶은 게 사람으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
[에이, 그건 아닐걸?]용용이 넌 왜 갑자기 시비냐.
[왜냐면 나도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이거 참, 신수와 생각이 일치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정주호가 말끝을 흐려서 뭔가 싶어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주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신수도 탈모는 막을 수 없는 거지?”
“…….”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했건만. 내게 신수에게 방법을 물어봐 달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나 보다.
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졸지에 탈모도 고치지 못하게 된 신수는 정주호의 슬픈 미소를 접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게 저렇게 슬퍼할 일인 거야?]글쎄, 난 머리가 있어서 잘 모르겠다.
* * *
신의주로 향하면서 나는 저번 생에 브레인워싱을 얻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당시 사이비 교주였던 녀석을 만났던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천명국의 대타협 이후, 나는 줄곧 북쪽으로 밀려나길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 쪽 국경을 드나들다가 남쪽으로 복귀하고는 했다.
당시 혈종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 거라 내 의지가 작용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남쪽으로 향하게 된 건 내 의지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가족이 전부 한국에 있었고, 한 번쯤 보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야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류광철과 만나지 않았던 건 마물과 굳이 충돌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이비 교주 녀석은 중국 쪽 국경을 넘어갈 때 만났었다.
당시 신의주가 거대한 광신적 열기에 휩싸였고, 그건 북한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을 가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녀석은 살아 있는 신이었다.
“얄팍한 녀석이었지.”
혈종의 위명에 대해 들은 적 있는지 날 초대하던 녀석의 의도는 뻔했다. 브레인워싱으로 세뇌하여 휘하에 두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녀석의 머리가 부서지고 기프트를 빼앗기는 신세였다.
당시 브레인워싱이 먹히지 않는 혈종을 죽이기 위해 신도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했었지.
자신의 의지가 말살된 채 교주가 지시하는 대로 웃으면서 목숨을 내던지던 광경은 내게 있어서도 충격적이었다. 녀석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신도들의 인격을 말살하고 세뇌했다.
생각나서 왔으니 확실하게 제거해야겠다.
신의주에 도착하니 낙후된 도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정주호에게 듣기로는 중국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곳이라 중국이 미련을 두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그전에는 류광철의 영향이 미치던 곳이었고.
그래서 도시 안에 진입해서 둘러보니 중국인과 북한인이 반반 정도로 섞여 있는 거 같다.
상당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고 하니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기억이 나긴 하네.”
혈종이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시간 차이가 상당했지만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시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누볐는데 멍멍이 녀석이 헥헥거리면서도 곧잘 따라왔다.
눈에 익은 풍경을 좇다 어느 순간,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사이비 교주 녀석의 거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여기로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비 종교 본단이 위치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을 접하고 있는 으리으리한 별장같이 생긴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이한 열기와 요사스러움이 교차해야 할 곳에 사람의 인기척이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습격해서 전멸한 건 아니고, 가까이서 확인하니 제법 오래전에 사람들이 떠난 흔적이 발견되었다.
“없나?”
아니, 없는 게 확실했다. 녀석은 이곳에서 신의주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신처럼 군림했다. 원 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혼란이 벌어졌기에 지금이 녀석이 번성할 수 있는 적기였는데 이곳을 벗어났다고? 중국에서 먼저 손을 쓴 건가?
의아한 마음이 들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손길이 사라져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복도를 지났다.
예전에는 광신도들이 손톱으로 할퀴어서 핏자국으로 가득했었지.
“응?”
그리고 대기도회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 사람이 서 있는 걸 보았다.
50대 초반에 몽골 장사 체형 체구를 지닌 남자였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또한 고개를 들어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둘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예상치 못한 거물이로군.”
남자가 날 보며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인 중에 이 정도 실력을 지닌 자가 있었나?
“누구지?”
“나? 위하오.”
전(前) 십대초인 위하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