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6
16화
“······.”
오종엽은 눈앞에 벌어진 참혹한 환경이 입을 열지 못했다. 늘 유쾌해서 벌써부터 국가수호부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매김한 그였지만 도저히 입을 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정주호가 수습 중인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나.”
“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다. 빌런, 마물과 싸우는 건 그런 의미니까.”
“그보다 준호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친구인데 몰랐다고?”
“그, 대단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샤벨 타이거를 사냥해 왔던 것이 떠오른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보다 더 대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녀석일까.
공표된 레벨은 5였으나 레벨 5의 각성자가 단독으로 샤벨 타이거를 사냥할 리 없다. 그 말은 최소 레벨 6이라는 말이 된다. 조금 전 정주호 국장의 일격마저 대등하게 맞섰고.
정주호는 현존하는 최강이라 불리는 레벨 8 초인의 뒤를 바짝 쫓는 레벨 7 각성자다. 다음 레벨 8에 오를 가장 유력한 후보가 그인 만큼 최준호의 레벨은 7에 도달했을 확률이 높았다.
‘25살에 레벨 7이라고? 진짜 내가 자살하려고 발악했구나.’
오히려 순수하게 형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는 종수 녀석이 자기보다 한 수 위였다.
그때였다. 정주호가 오른손에 쥔 검집을 놓쳤다가 다시 잡아챘다.
“국장님?”
“아무것도 아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그는 왼손으로 검집을 잡고 걸어갔다.
* * *
“······.”
정주호는 아직도 저릿함이 가시지 않은 오른손을 빤히 바라봤다.
이유는 분명했다. 최준호의 공격을 정면에 막아서면서 남은 여파가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고작 한 번의 충돌이었다. 하지만 최준호의 일격은 마치 첫사랑의 여운처럼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녀석은 레벨 7이다.”
분명 레벨 측정에서 나온 수치는 레벨 7이었다.
정주호는 최준호와 자충돌을 떠올렸다.
녀석의 기프트는 기뢰. 독일의 그랜드 마이스터 프란츠와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프란츠를 본 적 있던 정주호는 기뢰가 이렇게 집요하면서 강력한지 몰랐다.
조금 전 죽은 빌런 보스도 마찬가지다. 살짝 손이 닿은 여파만으로 머리가 터져 버리지 않았던가. 누가 보면 머리에 폭탄을 심어 놨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레벨 8일 수도 있다는 건가.”
최준호의 레벨 측정 당시 정다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레벨 측정기의 한계가 7이라 레벨 7로 판명되었을 수 있다고.
“스물다섯. 레벨 8. 이게 말이 되나?”
각성자가 등장한 이후, 최연소 레벨 8에 도달한 초인의 나이가 29세였다. 그마저도 국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줘서 나온 것이다.
그에 반해 최준호는 올해 초까지 백수 생활을 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누구처럼 매일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스쿼트 100개에 런닝 10km라도 했나?
아무튼 최준호가 정말 레벨 8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레벨 8은 ‘초인’으로 분류되며 모든 각성자들의 동경의 대상.
그들은 국가의 주요 전력이자 국력의 척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세계 국가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각성자 강국이다.
하지만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느냐면 그건 아니다.
네 명 중 국가 소속이 한 명, 대형 길드 소속이 셋이다. 여차할 때 그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큰 출혈을 감당해야 했다.
당장 대형 길드와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중이고.
그런 상황에서 최준호가 국가수호국 소속으로 레벨 8 초인이 된다면 구도가 바뀐다.
정부 소속으로 오랫동안 대형 길드를 견제해 왔던 정주호는 새로운 레벨 8 초인의 등장에 구미가 당겼다.
결코 섭섭하지 않을 대우는 가능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존재했다.
최준호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는 점. 과거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녀석이 제어가 가능할까?
솔직히 정다현이 데려오지 않았으면 경쟁 부서에서 승진 방해하러 파견된 스파이로 오해했을 것이다.
“먼저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봐야겠지.”
국가수호국으로 복귀한 정주호는 최준호를 호출했다.
* * *
“공장 밖에서 체포된 빌런에게 빠짐없이 정보를 캐낼 예정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말소자와 리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다.”
“예.”
이미 필요한 정보를 다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함정이었던 곳에 출동시켜 미안하다.”
“아닙니다. 위험은 없었습니다.”
“다행이야.”
그리 말한 정주호가 입을 닫고 조용히 날 바라보기만 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조용히 용건을 꺼내길 기다렸다.
“레벨 측정을 받아 볼 생각이 있나?”
“이미 받지 않았습니까?”
“그 위의 측정을 말하는 거다.”
“위의 측정?”
“최준호, 난 네가 레벨 8이 아닐까 생각한다.”
“······.”
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정주호는 이런 내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겼나 보다.
“레벨 8은 우리가 초인이라 칭할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다. 넌 대한민국에 몇 없는 특별한 존재란 의미다. 아무 감흥도 없나?”
“레벨에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레벨 높이려고 목숨을 거는데 다르군.”
“공무원 헌터가 될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레벨은 곧 혈종의 수준. 그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가. 그 힘을 내가 손에 넣었지만 그럴수록 과거의 그림자는 짙어질 뿐이다.
“국장님은 제가 레벨 측정을 받길 바라십니까?”
“그래.”
“레벨 8이 되면 좋은 겁니까?”
“좋지. 부와 명예, 관심,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자세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정주호는 레벨 8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국가 전력의 정점이라 불리는 레벨 8은 초인으로 분류되며 최강의 각성자로 추앙받는다.
실제로 레벨 8 각성자 보유 숫자에 따라 국력을 평가하는 곳도 있으며, 나날이 강해지는 마물로부터 국가의 존립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안전도 랭크가 상승하게 된다. 이것은 외국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요건이다.
따라서 각국은 레벨 8 초인을 보유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부와 명예, 권력까지 모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다.
나는 레벨 8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귀찮아진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내 한 줄 요약이 적절했는지 정주호가 허탈하게 웃었다.
“국가수호국 홍보도 되고요.”
“네가 원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로 인해 호가호위하는 건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반대급부로 내가 받는 것도 있고 나로 인해 귀찮은 일이 생겨도 정주호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정주호는 솔직하게 말해 국가수호국에서 다른 대형 길드만큼 금전적인 보장을 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 소속은 국가의 보호 아래 자유로운 사냥, 세금 감면 등이 있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 부분은 대형 길드가 더 나은 것 같긴 하다. 설마 갈 거냐?”
내가 측정 받지 않겠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나 보다.
하긴, 모든 각성자들의 최종 목표가 레벨 8이라고 했으니 그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 거라 생각할까.
나 같은 사람을 제외하곤.
솔직히 돈에 큰 욕심이 없고 명성을 날리는 것에 관심이 없다. 저번 생을 거쳐 정신이 마모된 내게 최우선 목표는 가족의 행복이다.
근데 내가 레벨 8이 되어 지금보다 유명해지면 가족은 행복해질까? 자식이 제 갈 길 가고 고향에서 과수원하시는 부모님이? 이제 막 신성 길드에 들어가 제 능력을 펼치고 있는 윤희가?
최준호의 부모님, 최준호의 동생이 되어 주변의 등쌀에 불행해질 거라 확신했다.
“레벨 8이 되면 권한이 대폭 늘어난다고 하셨죠. 저는 공무원 헌터니 자체 집행할 공권력이 주어지고.”
“···그랬지.”
“제게 권한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걸 남용할 것 같진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아냐 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야. 그것도 핵폭탄.”
나는 진짜 핵폭탄맛을 몰라서 저런 말을 하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저번 마약 조직 소탕 때 얻은 장부가 생각났습니다.”
장부에 적혀 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름.
그중 몇몇은 대가를 치렀으나 더 많은 사람들은 변함없이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레벨 8이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사람들을 잡아들여도 됩니까?”
“···잠깐.”
안 되나?
나를 보는 정주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을 다 체포하지 않은 건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허위로 기재된 이름도 있어서야. 그리고 몇몇은 호기심에 몇 번 사용해 본 경범죄자기도 하고. 참작의 여지가 있어 가벼운 처벌로 끝났지.”
“그렇군요.”
“아무튼, 당시 크게 확장하지 않고 수습하려던 노력이 있었어. 그래서 상대적으로 죄가 가벼운 자들은 약한 처벌만 받고 끝났지.”
“국장님이 고생하셨네요.”
“알아주니 고맙군. 아무튼 레벨 8이 되면 가능하다. 하지만 주변에 얽혀 있는 자들이 온갖 난리를 칠 테지.”
그놈들도 다 잡으면 되지 않나?
더 묻고 싶었지만 상대가 많이 지쳐 보였다.
“측정은 받지 않겠습니다.”
“···왜?”
“부와 명예, 권력도 좋지만 관심은 싫습니다.”
“······.”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장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뭔데?”
“국가수호국, 대외협력관리국, 대마물방위전선국의 국장은 블랙요원을 임명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블랙요원이 되고 싶습니다.”
내 요구에 심사숙고하던 정주호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얗게 불태운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이거, 숨은 칼이 생기긴 했는데 왠지 내 목부터 날아갈 거 같은데······.”
“절 믿으시지요.”
“못 믿어서 하는 말이야.”
여태까지 임무수행으로 믿음을 못 준 건가?
정주호가 믿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
* * *
협상을 마친 내 관심사는 리그라는 곳으로 옮겨 갔다.
대체 뭐기에 정주호와 국가수호국 사람들 경계를 보였던 걸까.
이런 내 의문에 정다현이 답했다.
“리그는 전 세계에 암약하고 있는 빌런 조직이에요.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뿌리 뽑기 힘들고 민감한 사안에 간섭해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해요.”
“그래봤자 빌런 조직 아닙니까?”
정다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 세계 최악의 빌런들이 리그 소속이니까요.”
이상한 일이다.
저번 생에 나는 사상 최악의 빌런이라 불렸던 혈종이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나중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혈겁을 일으켰다.
그런 나는 정작 리그에 대해 몰랐다. 정다현이 말하는 것과 알고 있는 정보의 차이가 극심해서 어떤 게 맞는지 헷갈렸다.
내 등장이 뭔가 변수를 일으킨 건가?
불과 반년밖에 안 지났고 사고도 치지 않고 얌전히 지냈다. 나로 인해 전 세계적인 빌런 조직이 등장하기에는 시기가 안 맞았다.
정다현이 말하길 리그가 위험한 이유는 에스퍼 퍼스트(Esper First)라 부르는 구호에 있다고 했다.
각성자들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우월한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문제는 이를 옳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국가 권력에 통제된 각성자들은 물론이고 각국 요직에 있는 각성자 출신 정치인마저 비밀리에 지지를 보냈다.
그로 인해 제3세계 몇몇 국가가 무너지고 각성자가 정권을 장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리그를 세계의 적으로 규정하고 소탕하기 위해 협력 작전을 펼치는 중이다.
예비 각성자들은 아예 리그의 존재를 접할 수 없도록 전 세계 인터넷에 리그 정보를 차단했단다.
놀라웠다. 리그가 그 정도로 큰 조직이었다니. 근데 내가 몰랐다는 건 금방 사라진다는 의미 아닐까?
설명을 마친 정다현은 요 며칠 윤희를 만나 가르친 결과에 대해 알려 줬다.
“윤희 재능이 상당히 뛰어나요.”
“맞습니다.”
굴릴수록 새로운 느낌? 어쩌면 윤희는 구르는데 최고의 재능을 가졌을지 모른다. 궁지로 몰아세울수록 재능이 개화하는 것이 윤희의 특징이다.
“많이 배웠다고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는데요. 그래서 말인데 저도 한번 대접해도 될까요?”
“당연히 됩니다. 기대되네요.”
“아, 아뇨. 기대는 하면 안 돼요. 요리 실력이 별로거든요. 준호 씨에게 대접 받았으니까 저도 한번 대접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정다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열심히 연습할게요.”
* * *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 머릿속에 ‘리그’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큰 조직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리그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의 존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번 생은 내 존재로 상당 부분 뒤틀렸다. 하지만 그 범위는 내 주변에 한정될 뿐, 그 외 분야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랬기에 리그를 놓칠 수 없었다. 일부지만 각성자들이 열광하며 전 세계 최악의 빌런들이 소속된 조직.
전직 최악의 빌런이던 내가 몰라서 안 되는 곳이다.
대체 내가 왜 그 녀석들을 모르는 거지?
정말 나한테 가입 제안이 없었다고?
“잠깐.”
그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기억났다.”
마침내 풍화되었던 옛 기억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내가 미쳐 있던 시절이다.
당시 내게 접근했던 자들은 꽤 많았다. 내게 호승심을 가졌던 녀석도 있고 내 힘을 이용하려던 녀석도 있었다. 모두 내 손에 죽었다.
그중에는 나를 동료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던 세력도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곳을 리그라고 밝혔다.
녀석들은 세상의 불협화음이 열등분자들이 지배하는 데에서 온다고 했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이 한 번쯤 뒤집어져야 한다고 내게 역설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녀석을 죽였다.
그 후, 리그에서 날 설득하겠다고 몇 번 더 찾아왔다.
난 그때마다 찾아온 녀석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다가 계속 귀찮게 굴어서 녀석들의 본거지로 가서 남아 있던 놈들도 죽였다.
그 후 더 이상 리그라는 이름은 들리지 않았고, 내 기억 속에 리그는 잊혀졌다.
저번 생의 대한민국은 나로 인해 리그 청정국이 되었던 것이다.
“아, 걔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