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다. 그리고 나한테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인물이고. 그런데 지금 날 보는 눈에는 적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여태까지 봐 왔던 사람들하고 다른 이미지인데? 들리는 소문으로 볼 때면 당장 날 씹어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나였다면? 바로 손이 나갔겠지.
크르르!
그때, 멍멍이가 위하오를 보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주제를 모르고 나서기는. 죽기 딱 좋은 행동이다.
아니, 이건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건가. 자기 힘이 받쳐 주지 않음에도 주인을 위해서 나선 거잖아.
언제 한번 멍멍이 녀석에게 특식을 챙겨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
하지만 지금은 나설 자리가 아니니까 진정시켰다. 멍멍이가 몇 차례 사납게 그르렁거리다가 진정한 뒤 내 옆에 섰다.
난 위하오를 바라봤다.
“넌 왜 여기에 있지?”
“임무. 그리고 네가 여기에 올 걸 알고 있었다.”
한국에 첩자가 있는 건가?
날 찾아온 이유로 가장 유력한 건 하나밖에 없는데.
“복수냐?”
“무슨 복수?”
“다른 녀석 복수하러 온 게 아닌가.”
“그런 쓸모없는 녀석들 죽음에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지?”
아닌가 보군.
아니, 그걸 뛰어넘어 경멸하는 감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뭐, 초인들끼리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보다… 한국말이 상당히 유창한데?”
위하오와 나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러 공부했다고 하기에는 현지인처럼 능숙했다. 한국에 살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겠지.
본론으로 돌아와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녀석은 어디에 갔지?”
“리그로 갔을 거다. 오래 전부터 리그와 접촉하고 있었지.”
사이비 녀석이 리그에? 저번 생에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전개였다. 그때는 제 잘난 맛에 취해서 자기만의 왕국을 건국할 기세였는데.
나로 인해 바뀐 역사가 녀석을 리그로 보낸 건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군.
사이비 녀석은 골치 아픈 놈이라 시야에 있을 때 처리해 둬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다.
물론 위하오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맞을걸? 거짓말하는 거 같지 않아.]이렇게 말하면 용용이 거짓말 탐지기가 출동하지.
사실 내 직감으로도 위하오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리그는 왜 갔지?”
“녀석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 낌새를 감지했던 거 같다.”
“쓸데없는 짓을 했어.”
가만히 있었어도 내가 알아서 처리했을 텐데. 이 사이비 녀석은 상당히 귀찮은 녀석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는 대로 찾아내서 죽이는 게 최선인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왕민과 접촉하는 걸 보고 찾은 거였는데.”
근데, 위하오 이 녀석은 날 원수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순순히 수긍하는 거지?
그 이유는 다음 말에 밝혀졌다.
“그런 녀석은 상관없다. 애초에 그놈을 잡으려던 것도 네게 건네주기 위해서였으니까. 사실 널 찾았다.”
“난 왜?”
십대초인에서 탈락하게 된 것에 불만이 있나.
그런 것치고는 적대감이 없다. 나였다면 평소 유감이던 녀석을 발견하는 즉시 손을 썼을 것이다. 착한 것은 참지 못하는 법이지.
그 말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먼저 말하자면 난 너한테 유감이 없다.”
“평생 자랑스러워할 타이틀을 잃어 놓고 유감이 없다고?”
지나가던 개가 똥을 끊지. 아, 멍멍이는 늑대라서 습성이 좀 다르다.
“십대초인은 내게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내게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뭔 소리야.”
“증거를 보여 주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하지만 녀석의 다음 행동은 날 놀라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온 녀석이 내게 머리를 내민 것이다.
전투 의지는 없는데?
“만져 봐라.”
[어? 저건.]용용이 녀석이 반응했고, 나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녀석에 대한 경계심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내 손이 녀석의 머리에 얹어졌다. 이대로 힘을 주면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다.
처음 보는 나한테 무턱대고 목숨을 맡긴 것이다. 이러면 기대에 부응해서 머리를 터뜨려 주고 싶은데.
이런 내 충동을 억누르게 만든 건 감각 너머로 전해지는 익숙한 생명체의 반응 때문이었다. 위하오의 머릿속에 있는 이건 나도 본 적 있는 생명체다.
“고독?”
“남궁기를 처리한 게 네가 맞나 보군.”
갑자기 다 지난 과거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거야. 내가 남궁기를 처리한 건 밝히고 싶지 않아서 대답을 하진 않았다.
“나한테 이걸 보여 주는 이유는?”
“난 중국 소속이지만 중국인이 아니다.”
중국인이 아닌데 중국을 대표하는 초인인 게 말이 되나?
“내 아버지는 몽골인이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다. 어머니는 경기도 남양주 출신이시지.”
중국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중국 초인이라, 이건 예상외의 이야기긴 하다.
근데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라서. 중국 초인에게 중국 피가 섞였든 아니든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중국은 다민족 국가기도 하고.
“어쩌라고?”
“네게 유감이 많은 중국 유력자들과 내 입장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지.”
녀석의 말로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우선 자의적으로 중국을 수호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위하오는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며, 고독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내부에서 믿을 사람이 없으니 날 찾았을 확률이 높고.
여기에서 가장 높은 가능성은…….
“여러 개의 기프트를 가진 너라면 이 고독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자신을 정상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서였다.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군.
하긴, 내가 숨길 의도 없이 행동했으니 알려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데.
저 녀석은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해 줘야 되는데?”
“…내게 자유를 되찾아 준다면 널 위해 일하겠다.”
위하오는 여러 논란이 있더라도 십대초인에 든 초인이다. 저 말이 분명 내게 매력적으로 들릴 거라 생각해서 한 말 같은데 정작 듣는 나는 왜 매력적이게 들리지 않는 걸까.
그랬으면 이찬택의 제안도 받아들였겠지.
“필요 없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
“중국 출신 아니라고 나한테 입 터는 거나 다른 행동 모두 믿을 수가 없거든. 내 힘을 빌리고 싶거든 네 진심이 드러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찾아오라고.”
굳이 내가 뭘 하라고 정해 줄 이유도 없다.
녀석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믿음을 살 수 있는 행동이라. 그걸 증명하면 되는 거로군. 알겠다.”
“용건 끝났으면 가라.”
“다시 연락하지.”
내 손짓에 위하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홀로 기도회실에 남은 나는 사이비 녀석의 흔적을 쫓아 보았다. 몇 가지 흔적이 뒤를 쫓게 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어렵나.”
워낙 시간이 오래 지나서 남아 있는 흔적이 미미했다. 장소를 옮겨 몇 군데 장소를 더 탐색해 보던 나는 흔적 쫓는 걸 포기했다.
사이비 녀석이 리그의 힘을 빌리게 되다니. 여러 사람이 골치 아파지겠다 싶겠다.
[응? 네가 골치 아픈 게 아니라?]“내가 왜 골치 아프냐.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와! 넌 다른 사람이 입을 피해는 생각도 안 하는 거야?]“어.”
[…….]용용이 녀석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보면 내가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건 줄 알겠다.
흔적 쫓는 걸 실패한 나는 신의주를 벗어나 평양쪽으로 향했다.
사이비 녀석을 잡는 건 실패했지만 위하오와의 만남은 꽤 의미가 있었다.
녀석이 한 말 중 상당 부분은 진실인 거 같았고. 안 그러면 다른 중국 초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고독이 위하오 머리에 심어졌을 리 없다.
“그런 건 무협 소설에서나 나오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떤 수법인지 몰라도 고독으로 행동을 강제할 수 있다면 쓸모가 많겠다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긴 했다. 내가 마물에 사용했을 때는 결국 반발심을 버텨 내지 못하고 폭발했는데 인간에게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니.
차라리 나도 놈을 잡아 머리를 쪼개 볼 걸 그랬나. 아니, 하나밖에 없는 대상이니 다짜고짜 살피려 했다면 제대로 된 성과는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포기할 기색이 아니었으니 조만간 다시 볼 기회가 생기겠지.
떠난 지 이틀 만에 평양으로 복귀하자 정주호가 하나도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맞아 주었다.
“볼일 다 봤냐.”
“예, 아무것도 없네요.”
“헛걸음했네.”
헛웃음을 흘린 정주호는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날 상대할 최소한의 의지도 없어 보였다.
실망이 컸나 보군.
“안 가냐?”
“며칠 머물려고요.”
“왜?”
“곧 총선이 있어서요.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선거 끝나고 돌아가게요.”
“권력에 눈 뒤집힌 녀석들 행동하고는. 하긴, 평양에 있는 나한테도 귀찮게 굴 정돈데 넌 오죽하겠냐. 네 마음대로 해라.”
그걸로 신경 써 주는 것은 끝.
나는 정주호가 정치적으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궁금했다. 본인은 중립이라고 하는데 이번 정권에서 중하게 쓰였으니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따로 지지하는 쪽은 없고요?”
“있겠냐.”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요.”
“몰라, 둘 다 망해라.”
모발에 대한 희망을 잃어서일까. 정주호는 염세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음, 괜히 더 삐뚤어지는 건 아니겠지?
살짝 그런 걱정이 들었다.
* * *
신의주에서 본인만의 교단을 설립하여 왕처럼 군림하던 사이비 교주.
장인성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한족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리그의 초청으로 자신의 기반을 모두 버리고 온 그는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리그의 지배자를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볼 법한 잘생긴 남자가 앞장섰고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살벌한 기세를 발산하는, 2m가 넘는 흑인이 뒤를 따랐다.
이들이 리그를 지배하는 삼악의 일원, 아르고스와 블랙하운드다.
헬 마스터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건 나중의 묘미로 삼으면 될 일.
장인성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위대한 리그의 지배자를 뵙습니다. 저는 장인성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장이라 불러 주시길.”
“반갑습니다, 장.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그의 부름에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 선 블랙하운드의 날카로운 시선이 피부를 찔렀지만 장인성은 웃었다.
하지만 몸의 반응은 정직해서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아르고스가 미소 지었다.
“오시니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놀랐고, 사기 충전한 모습에 다시 놀랐습니다. 리그의 위엄이 어떻게 세계에 떨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웃고 있던 아르고스의 시선이 장인성의 눈을 응시했다. 둘은 잠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한 신경전을 이어 나갔다.
“지금 기프트를 사용하는 건 날 시험하기 위함입니까?”
“눈치채셨습니까? 하하하! 모르실 줄 알았습니다.”
“그게 유언인가?”
블랙하운드도 눈치채고 있었던 듯, 싸늘한 살기를 뿜어냈다.
장인성은 아르고스를 본 뒤 줄곧 브레인워싱을 사용하고 있었다.
찬사 속에 감춰져 있는 가스라이팅을 통한 브레인워싱은 상대를 자신의 통제하에 둘 수 있는 기프트였다.
통한다면 리그를 집어삼킬 수 있지만 역시 경계하고 있는 초인을 상대로는 쉽지 않았다.
“하인즈, 그만.”
아르고스의 제지에 블랙하운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기프트를 사용해 보니 어떻습니까?”
“왜 리그라 불리는지 알겠습니다. 제가 넘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습니다.”
장인성이 히죽 웃었다. 그럴수록 블랙하운드의 기세가 살벌해졌다.
“제가 리그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그만한 성과가 필요하겠죠?”
“실력만큼 대우받고 세운 공만큼 권한을 부여받는 건 리그의 이념입니다.”
“예. 그래서 저는 리그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적을 처리해서 12궁의 자리를 노려보려고 합니다.”
“어떤 겁니까?”
아르고스가 흥미를 드러내자 잠깐 뜸을 들인 장인성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최준호를 세뇌하겠습니다.”
“…….”
아르고스와 블랙하운드가 잠시 시선을 교환하게 만드는 제안이었다.
제대로 적중했군.
장인성은 최준호의 위명에 대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왔다.
리그가 가장 꺼려 하는 적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오죽하면 동아시아에 리그 세력이 자리를 잡지 못하겠는가.
이게 다 최준호의 존재감 때문이다.
“최준호는 리그의 오래된 적. 그 존재로 동아시아에 세력을 투사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준호는 제 얼굴을 모릅니다. 그러니 녀석에게 접근해 제 기프트로 세뇌하여 휘하에 두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해 보입니까?”
장인성의 말은 요사스러웠으나 세뇌 기프트 보유에 최준호가 그 얼굴을 모른다는 점을 보면 그 계획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해도 리그가 손해 볼 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르고스가 수락했다.
“한번 믿어 보죠.”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장인성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