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호언장담을 하던 장인성이 밖으로 나가고, 블랙하운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르고스에게 말했다.
“알, 저 녀석은 믿을 수 없다.”
“어떤 게 우리 하인즈의 마음을 어지럽힌 걸까?”
“제 욕심만 앞선 녀석이다. 우리의 대의에 동참할 생각도 없고 이용할 생각만 가득해. 이용 가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우리를 미련 없이 떠날 거다.”
“그러겠지.”
“그걸 알면서도 지켜볼 건가?”
아르고스가 미소 지었다.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구김살 없는 미소였다.
저럴 때마다 그에게 넘어가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세뇌 계열 기프트는 귀해. 장은 그걸로 성과를 냈던 사람이고. 무엇보다.”
아르고스가 블랙하운드를 보며 말했다.
“최준호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야.”
“내가 제거할 수 있다.”
“난 널 잃고 싶지 않아, 하인즈.”
“…….”
“자존심이 상했다면 미안. 그래도 말해야겠어. 최준호는 위험한 녀석이야. 그런 녀석과 정면으로 충돌하면 둘 중 하나는 분명히 죽어. 난 최준호를 죽이기 위한 모험에 하인즈 널 포함시키고 싶지 않아.”
말은 그랬지만 블랙하운드는 알고 있었다.
아르고스는, 자신과 최준호가 붙는다면 죽는 건 자신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아니라 할 수 없어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 정도로 최준호가 보여 준 강함은 비상식적이었다. 오직 기프트를 활용한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준호는 강했다.
아르고스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힘이 되기로 했음에도 그걸 따라 주지 못하다니. 자신의 부족함에 무력감을 느꼈다.
“알았다. 네 말에 따르지.”
“이해해 줄 줄 알았어. 고마워.”
“내가 무력한 걸로 감사 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다.”
“왜 그러시나.”
“좀 더 노력해야겠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르고스는 환기를 위해 다음에 방문하기로 한 손님을 언급했다.
“다음 손님을 맞이해 볼까.”
잠시 후, 안으로 들어온 건 12궁의 일원인 컬렉터(Collector) 로베르토와 천칭(Balance)의 하인리히였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묘한 기류를 자아냈다.
이탈리아 출신인 로베르토와 독일 출신인 하인리히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라이벌이었고, 친구였으며, 동지였다.
“불렀나, 아르고스? 그런데 이 녀석을 부를 줄 몰랐군.”
“나도 마찬가지다. 천박한 바람둥이 자식.”
“고지식한 너보다 내가 더 재밌게 살고 있는 거 같지 않냐.”
“그러다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겠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선을 넘지 않았다.
저 관계는 마치 자신과 블랙하운드, 헬 마스터를 떠올리게 했다.
아르고스가 미소 지으며 둘을 반겨 주었다.
“어서 와. 둘이 잘해 줘서 대계에 차질을 빚지 않게 되었어.”
“그 브레인워싱이 쓸모가 있나? 께름칙하던데, 지금이라도 말만 하면 머리를 날려 버릴 수 있다.”
장인성을 리그 본거지로 데려온 것이 로베르토였다. 그는 장우위안과의 접촉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보고를 위해 복귀한 후였다.
“아니, 다른 방법으로 써먹으려고 해.”
“부디 쓸모가 있으면 좋겠군.”
“이곳까지 데려와 줘서 고마워, 로베르토.”
“네 말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위하오와 접촉해 봤어?”
“그래, 중국 정부 측과 감정이 좋지 않은 건 확실하더군.”
“그럼?”
아르고스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렸다.
위하오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십대초인에 속했던 초인이다. 그가 합류한다면 비어 있는 12궁의 한 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물론, 취약한 동아시아의 영향력을 단숨에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초인이 부족한 중국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도 있고.
“아쉽지만 거절했다. 우리를 믿을 수 없고, 동아시아에 전력을 투사할 거란 계획을 믿지 못하더군.”
“왜?”
“최준호.”
“역시 그건가.”
“하지만 정부와 적대감이 쌓여 있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본다. 누구나 욕망이 있고, 그걸 실현하려면 결심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건 점괘 결과인가?”
컬렉터인 로베르토는 점성술 보물로 용한 점술가이기도 했다.
“대흉 아니면 대길. 조만간 결과가 나오겠지.”
“좋아. 미국 쪽 정황은 어때?”
조용히 듣고 있던 하인리히가 말했다.
“파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막심 게데스가 일선에서 세력을 규합 중에 있다.”
“더 라이언, 골치 아픈 적이지.”
블랙하운드가 나섰다.
“네가 원하면 당장 제거에 나서겠다.”
“아니, 손해가 너무 커.”
더 라이언, 막심 게데스. 사자화, 웨어 라이언으로 불리는 기프트를 지니고 있으며, 등가교환을 통해 어마어마한 무위를 발휘한다.
뒤늦게 십대초인에 들어왔음에도 방심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대체 무엇을 내줬기에 그 정도로 강한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질 거야. 대가 없는 힘은 없어. 지켜보도록 하자.”
“…알았다.”
블랙하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파티가 전면에 나서기 쉽지 않을 거야. 좀 더 주의해 줘, 하인리히.”
“알겠다.”
“그럼 이제 각자 시간을 가져볼까.”
축객령이었다. 로베르토와 하인리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밖으로 나갔다.
“…….”
아르고스는 밖으로 나가는 하인리히의 모습이 사라지고도 오랫동안 그의 뒤를 좇았다.
* * *
난 평양에서 정주호와 함께 총선 결과를 지켜보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에 비해 여당이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개헌선까지 차지할 거니 뭐니 했던 것에 비하면 작은 성과였다.
“저 정도도 큰 승리다.”
“그런 거예요?”
“아무리 잘해도 한쪽에 권력을 몰아주지는 않아. 몰아주더라도 책임은 확실하게 물고. 그게 권력의 건강한 분배기도 하지.”
내가 이상한 건가. 정주호가 선거 결과를 보고 안도하는 기색인 듯했다. 여당이 이겨서인가, 아니면 생각 이상으로 압도적이지 않아서인가.
“나 같은 공무원은 한쪽이 압도적이면 좋지 않아. 이것저것 휘말릴 게 많거든.”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네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가만 놔두냐?”
“그러네요.”
바로 이해가 됐다.
몇 명이 그러다 골로 갔는데 여전히 끈덕지게 달라붙는 걸 보면 권력을 향한 집착은 무서울 정도지.
그 점에서 보면 정주호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사코 권력을 거부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한다.
이런 사람이 정쟁에 휘말리는 걸 거절하니 그럴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야겠지. 아무래도 이번 생에 가장 큰 나비 효과로 생긴 탈모가 나 때문에 더 급격하게 진행된 거 같기도 하고.
“총선 결과 봤으니 됐지? 이제 가라.”
“바로 내보내게요?”
우리 사이에 너무한 거 아닌가.
하지만 정주호는 가차 없었다.
“너 있으면 일 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일 만드는 녀석더러 오래 있으라고 말하고 싶겠냐? 얼른 가. 훠이.”
어째 신수도 탈모를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더 싸늘해진 거 같은데.
“돌아가는 김에 마물 몇 마리 치울게요.”
“그래 주면 고맙고.”
음, 어째 내가 사냥해 주겠다고 매달리는 모양새가 된 거 같은데, 착각은 아니겠지?
* * *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물 여러 마리를 처리했다. 그중 하나는 유해 8단계였고, 유해 7단계 한 마리와 유해 6단계 세 마리가 있었다.
유해 8단계와 7단계의 심장은 내가 갖고 6단계 심장은 멍멍이가 먹어치웠다. 맛있는 걸 먹으니 입맛을 돋우는 듯해서 사체들도 먹이로 주었다.
그래 많이 먹고 잘 커서 도담의 심장을 잘 받아들여라. 적합 대상 물색하는 것도 귀찮아지고 있다.
[좋은 걸 먹어서 그런가? 토실토실 살이 많이 올랐는데?]“내구도도 좋으려나?”
[좋을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널 잘 따르잖아.]“그렇기는 한데.”
이번에 휴가를 떠나면서 멍멍이에게 적잖은 투자를 했다. 이 투자 결과가 배신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배은망덕한 녀석이 아니길 바라야지.”
내가 멍멍이를 보면서 중얼거리는데, 녀석이 그 기색을 감지했는지 마물을 먹다 말고 내게 몸을 비볐다.
끼잉끼잉.
[잘 봐 달라고 애교 부리는데?]“아니.”
난 멍멍이가 몸을 비빈 다리를 보았다. 평소라면 털 몇 가닥이 묻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붉은 핏기가 묻어 나왔다. 마물의 사체다.
“피 닦은 거 같은데?”
[에이, 설마.]사실 확인을 위해 멍멍이에게 시선을 옮기자 먹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는 하는데, 추궁할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로군.
그렇게 멍멍이를 데리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총선 열기는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과반 의석을 달성한 여당은 절반의 성공이라며 자축하는 분위기였고, 야당에서는 최악의 결과는 막아 냈다며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정치적 수사는 지금 들어 봐도 참 배배 꼬였다 싶었다.
나야 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든 날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그런데 청와대로 들어갈 때 어떻게 알았는지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벌떼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최준호 초인님!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당에서는 성공이라 하고 야당에서는 실패라고 하는데요!”
“여당과 야당에서 최준호 초인님과 적극 협력을 시사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거, 한 마디도 안 하면 지나가지 못하게 할 분위기로군.
내가 오늘 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가끔 보면 기자들의 정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싶었다.
결국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싶어서 몇 개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총선 결과는 국민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이 낳은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제가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성공 혹은 실패는 각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당과 야당 가리지 않고 나와 협력하겠다는 내용은 무척 반가웠다.
사실 무생물 취급해 주는 게 더 좋지만 쓸데없이 견제하지 않고 필요한 걸 협력하는 게 더 낫긴 하다.
“좋은 법안 발의를 위해 협력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회 의원분들이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하셔서 현재 상황에 맞는 법안을 발의하셨으면 합니다. 현장 경험이 없다면 쌓으면 됩니다. 언제든 도와드릴 수 있으니 많은 요청 기다리겠습니다.”
“…….”
기자들 사이에 잠깐 침묵이 맴돌았다. 내가 뭐 말을 잘못했나?
“혹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는 걸 말씀하시는 건지…….”
“불의의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운명이란 건 묘해서 모든 변수를 통제한다 해도 가끔씩 사고가 벌어질 때가 있다.
그건 나도 막을 수 없지.
“그럼 지나가겠습니다.”
기자들을 지나친 나는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 * *
내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참 많은 게 바뀌었다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양주혁이었다. 이너클로운이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빌런이며, 빌런이 되기 전에는 중견 길드인 호월길드 마스터였던 아버지를 믿고 날뛰던 망나니였다.
그런 녀석이 이번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양주혁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물어보니 각성자 안보실에 채용되었단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들 중 능력이 독보적이며, 교류전에서 뛰어난 성과까지 거뒀던 녀석이 길드가 아닌 정부 소속으로 들어온 것에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고 한다.
듣기로는 아버지와도 대판 싸워 의절까지 할 뻔했다고.
저번 생에 빌런이던 녀석이 공무원이라니.
나랑 비슷한데?
“왜 공무원이 됐냐?”
“교수님 모습이 멋지셔서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그게 가능하려나.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그렇다고 열심히 하겠다는 녀석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겠지.
“앞으로 잘해 봐.”
“넵!”
양주혁과 대화를 마친 나는 옆에 선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남자 또한 양주혁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인물이다.
“김효준이라고 합니다.”
“최준호입니다.”
“위명을 누누이 전해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도 최준호 초인님을 존경해 왔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군가를 지도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지만 잘 지내 보죠.”
“초인님의 존재만으로 배울 부분이 많습니다.”
입안의 혀처럼 구는 말이었다. 평소라면 제법 입을 잘 턴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런데 이상 기류가 발생했다.
김효준이 말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만독불침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상태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 말은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건데.
그때 난 김효준의 눈과 마주쳤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속에 깃든 요사스러움이 저번 생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거, 겪어 본 거다. 날 세뇌하기 위해 여기저기 밑밥을 까는 거지. 교묘한 방법으로 세뇌하는 방식이 그 녀석의 것과 똑같았다.
내가 아는 얼굴이랑 다른데.
모르면 확인해 봐야겠지.
“잘 부탁합니다.”
“예.”
내가 내민 손을 김효준이 잡을 때였다.
난 망설이지 않고 힘을 줘서 녀석의 손을 우그러뜨렸다.
콰드득!
“끄아악!”
손을 산산조각 낸 나는 김효준의 다리를 걷어차서 부러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녀석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청와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보를 뽑아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