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경악한 시선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신입들도 있는 자리라서 그런가 보다.
기존 인원들은 내가 이런 짓을 벌여도 그러려니 하는 기색인데. 하긴, 내가 아무 의미 없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을 테니까.
믿음을 쌓는 게 중요한 이유다.
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자칭하던 녀석들을 쓸어버리던 걸 보면 더 놀랐을 수도 있겠다.
“끄아아악!”
그사이에도 김효준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끄러웠지만 입을 부수지 않고 조용히 발로 눌러 줬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더 이상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아, 참고로 주둥이를 부수지 않은 건 이 입으로 실토를 해야 해서다. 이가 부러지거나 턱관절이 어긋나면 올바른 정보를 얻기 힘들다. 듣기 힘들어지면 자칫 오판할 수 있거든.
이 또한 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초인님!”
그사이 소란을 감지한 천명국이 뛰쳐나왔다. 그는 내게 밟혀 있는 김효준을 보고 표정을 굳히더니 체념의 빛을 띠곤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말해도 됩니까?”
난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오늘 이 자리는 이제 갓 각성자 안보실에 들어온 신입도 있었다. 신입에게 보안을 기대할 수 없지. 아마 지금 벌어진 소란도 곧 밖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기자들이 또 귀찮게 굴겠군.
“민감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천명국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미련이 덕지덕지 남은 눈길이 느껴졌지만 천명국이 재차 지시하자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둘만 남게 되자 천명국은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첩자입니다.”
“첩자, 말입니까?”
“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왜죠?”
“이 사람만큼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 없습니다.”
천명국은 믿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김효준은 4선인 김광성 의원의 막내아들입니다. 김광성 의원은 대통령님의 오래된 측근입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어째서요? 친분 있고 가까운 사람이라고 배신 안 한다는 법 있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는 사이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믿음을 주는 건지 모르겠다.
심복이라고, 부하라고 그게 믿음의 증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천명국도 아직 순진하군.
“그게 중요하지 않은 걸 실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도 충분히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뭐든 욕심이 그르치는 법입니다. 절 믿으시죠.”
“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은 제게 정신 계열 기프트를 사용했습니다.”
“으!”
난 김효준을 발로 툭 차며 말했다. 들리는 소리는 퍽퍽이었지만 용서할 이유가 없으니까.
천명국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김효준은 아직 기프트 개방을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프트를 사용한 겁니까?”
“원격 조종입니다.”
난 김효준이 수작 부린 걸 사이비 녀석의 소행이라 확신했다. 그게 본인일지 아니면 꼭두각시일지는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는 일이고. 다른 사람 얼굴로 위장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꼭두각시일 확률이 높다.
“머릿속을 뒤져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내가 녀석의 머리 위로 손을 얹자 천명국이 황급히 말리고 나섰다.
“자, 잠시만.”
“뭡니까?”
“이 사안은 대통령님도 판단하셔야 할 듯싶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유가 있습니까?”
“김광성 의원은 오랫동안 대통령님을 모셔 왔습니다. 혐의가 뚜렷하다고 해도 그 관계까지 바로 부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음, 마음에 안 드는군. 하지만 대통령까지 언급되니 바로 손을 쓰기 뭐해졌다.
잠깐이라도 기다려 주는 시늉은 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잠깐 기다리죠.”
“감사합니다.”
“그 전에 우선.”
퍽!
난 김효준을 걷어찼다. 붕 떠서 저만치 날아간 녀석이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대통령님이 오시기 전에 김광성 의원에 대해 알려 주시죠.”
* * *
천명국의 이야기는 제법 길었다. 김광성은 대통령의 측근 중 핵심이라 불리는 인물로, 3선을 거쳐 주중 대사를 1년 동안 하다가 청와대에 들어와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내가 초인으로 임명될 무렵 총선 준비를 위해 사임하고 선거를 준비했단다.
주중 대사에서 좀 걸리는 점이 있었는데, 천명국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처음과 달리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김광성은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며 친 대통령 계열로 이번 총선에서도 압승하여 유력한 원내 대표 후보로 올라섰다고 한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여 절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행동은 하지 않을 거란다.
모두가 당하는 배신은 그런 믿음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법이지.
“그래서 배신 가능성이 없단 겁니까?”
“아무래도 대통령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분이니…….”
“장담할 수 있습니까?”
“…….”
천명국의 입이 닫혔다. 내가 거듭 확인하는 의도를 그도 모르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김광성의 이력을 언급할 때 주중 대사가 언급된 게 거슬렸다.
난 사이비 녀석의 꼭두각시라 생각했는데 중국은 여기에서 왜 나오는 거지? 그 녀석이 리그가 아니라 중국에 포섭되었던 것인가? 그럼 위하오는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고?
[그때 말한 내용은 진심이었어.]용용이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위하오의 말에 거짓이라 볼 수 있는 구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이비가 리그로 간 게 분명한데 여기에 중국이 엮일 여지가 있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중국과 리그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혼종이로군.
내 의문은 녀석의 머릿속을 탈탈 털어 보면 되는 일이겠지.
잠시 후, 대통령이 다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첩자입니다.”
난 쓰러진 김효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
대통령은 처참하게 당한 녀석을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효준이는 어린 시절부터 몇 번 보아 온 아이지. 조카처럼 귀여워해 줬던 기억이 나고. 이 아이가 첩자란 말인가?”
“리그 첩자일 확률 70%, 중국 첩자일 확률 30%입니다.”
“허.”
첩자 확률 100%란 뜻이었다.
대통령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원래 아는 사람이 배신하면 더욱 충격인 법이지.
대통령 정도 되면 좀 더 냉정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아니면 김광성 의원이란 자를 생각보다 더 믿고 있는 걸지도.
“자세한 건 머릿속을 뒤져 보면 됩니다.”
“자네 기프트로 말인가?”
“예. 바로 실행하려 했지만 천 실장이 말려서 대통령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문제라도 있는지?”
“…효준이는 내게 조카 같은 녀석이지. 심문할 시간을 주면 안 되겠나?”
브레인워싱이 되면 백치가 되어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게 되긴 한다. 내 실력이 사이비 녀석과 차이가 있어서 섬세한 컨트롤이 안 되거든. 대통령은 김효준이 조카 같은 녀석이라 그걸 걱정했나 보다.
그런데 나도 봐줄 생각이 없어서.
“시간이 지체되면 놈과 관련된 세력이 철수할 겁니다. 그걸 바라십니까?”
“그게 안 된다면 지금 당장 최면술사들을 데려오겠네.”
그것도 후유증이 남으니 한발 양보하긴 한 거로군.
하지만 사이비 녀석이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나 역시 양보할 수 없다.
브레인워싱은 브레인워싱으로 밀어 버려야 하거든.
최면으로는 심층의 정보를 끄집어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효준은 자기가 세뇌되었는지도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안 됩니다.”
“왜 안 되나?”
“최면으로는 정보를 끄집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절 믿어 주시죠. 만약 이 녀석 아버지가 난리 치면 절 찾아오라고 하십쇼.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물론, 자식 잃은 아비가 어떻게 난리 칠지 대충 예상은 되는데.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알겠네.”
짧은 시간 대통령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기절한 녀석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곧장 브레인워싱을 활성화시켰다.
눈을 부릅뜬 김효준이 저항하더니 머릿속을 거칠게 헤집는 브레인워싱에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머릿속에 느껴지는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평소라면 브레인워싱에 꼼짝없이 무력화되었어야 할 정신이 내게 반항하고 있었다. 같은 파장이지만 성질은 달랐다.
그 말은 즉, 사이비 녀석의 브레인워싱이 작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제대로 찾았군.
이 정도는 예상 범주 안에 있다.
놈의 브레인워싱이 세심하다면 나는 우격다짐이다.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들을 밀어내고 내 것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뇌가 엉망으로 뒤엉키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잠시 후, 사이비 녀석의 브레인워싱을 전부 밀어내 내 것으로 채워 넣었다.
“자, 네가 아는 거 다 털어놔라.”
김효준의 입이 열렸다.
* * *
대통령은 최준호의 손속에 대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라 여겼지만 자신의 선에서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려고 노력했다. 최준호를 제어할 수 없다면 차라리 폭발 범위를 줄이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때가 최대한 나중이길 바랐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폭발 내용은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광성의 아들이라니.
“…….”
김광성은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동지이며 부하였다.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사람이 바로 그였다.
주중 대사로 파견한 것도, 돌아오자마자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던 것도 이러한 신뢰가 바탕 되어서다.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 격의 없이 옛일을 얘기할 수 있는 술친구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김광성의 아들이 리그 혹은 중국의 첩자라고?
그 말은 김광성도 연관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최준호의 말을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김효준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조카였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재능 넘치는 각성자로 성장했고, 커리어를 관리해 주기 위해 청와대로 데려왔다.
이제 대통령에게 욕심은 별거 없었다. 총선도 승리했고, 최준호의 존재로 무수히 많은 업적도 달성했다.
남은 욕심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는 것.
그 계획은 최준호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김효준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두 눈이 멍하게 풀린 김효준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는 중국에 있을 때 당의 고위 간부와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중국에서는 김광성을 포섭하기 위해 각종 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뇌물과 이권을 약속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던 김광성 의원은 천문학적인 지원 이야기에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고, 김효준 또한 만만치 않은 지원을 약속받으면서 협력하기로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주된 목표는 최준호를 죽일 방법을 찾는 것. 중국과 친선 도모입니다.”
내부에서 청와대의 동향을 파악해 알려 주고, 가능하다면 대통령과 최준호 사이를 이간질한다. 그리고 최준호의 비밀 작전을 알아내어 대한민국을 벗어날 때 중국에 알려 그를 제거할 기회를 포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광성과 김효준이 이렇게 배신할 줄이야.
대통령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중국의 집요함과 김광성, 김효준 부자를 향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다.
“대통령님, 대통령님.”
“…으음!”
천명국이 몇 번이고 불러서야 대통령은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허망했다. 젊은 시절 함께 동고동락해 온 동지가 이렇게 배신한 걸 알게 된 것도. 그걸 냉정하게 분간하지 못하고 끝까지 믿으려 했던 자신의 모습도.
갑자기 피로가 밀려들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배후가 예상외라서.”
“무슨 말인가?”
“리그가 뒤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리그가 얽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중국과 리그의 연결점이라고?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지역이다. 그 이유는 최준호의 존재로 인해 중국과 리그가 기를 펴지 못해서다. 하지만 두 세력이 얽혀 있다면 대한민국은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된다.
“…….”
최준호는 김효준의 머리를 주물럭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저 침묵이 끝난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까. 대통령은 상황이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느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불필요한 희생을 최대한 줄이는 것뿐.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그사이 최준호는 생각 정리를 마쳤는지 천명국을 보며 말했다.
“천 실장님, 정 청장님에게 연락해서 위하오와 연락 좀 해 달라고 전해 주시길.”
“십대초인 위하오 말입니까?”
천명국이 놀랐다. 대통령은 최준호의 북한행에서 위하오와의 접촉 가능성을 보고받았기에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만나려는 것인지 물어보기 무서웠다.
“예. 원하던 걸 이뤄 주겠다, 일전에 만난 곳으로 나오라고 하면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대체 무슨…….”
“중국에서 대놓고 첩자를 심으려던 녀석을 가만히 두고 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쪽에서도 한 방 먹여 줘야죠.”
“…알겠습니다.”
천명국은 순순히 수긍했다.
최준호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보다 정주호에게 들을 생각이겠지.
“그리고 국가수호국 인원을 좀 쓰겠습니다. 수색할 곳이 있습니다.”
“수색이라면?”
“이 녀석을 세뇌한 놈이 따로 있습니다. 교묘하게 자기 위치를 감추기는 했는데 국가수호국 인원을 빌려주시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습니다.”
천명국이 이쪽을 보았다.
대통령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발본색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하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최준호가 자리를 벗어났다. 자리에 남은 건 대통령 본인과 천명국, 완전히 백치가 되어 버린 김효준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아이가 한순간에 백치가 되다니. 이 얼마나 허망한가.
브레인워싱에 당한 사람을 몇 번이고 되돌리려 시도해 봤지만 불가능하다는 진단만 나왔다.
“대통령님.”
“뭔가?”
“김광성 의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각별히 아껴 오던 아들이 백치가 되었는데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소식을 접하면 청와대로 달려오겠지.
김효준이 중국 첩자인 게 밝혀져도 수그러들 것인가.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한바탕 뒤집어지겠군.”
“예.”
천명국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