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
최준호와 헤어진 위하오는 걸음을 바삐 옮겼다. 두 번의 만남이지만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녀석이다.
당에서는 오래 전부터 최준호를 주시해 왔다. 공무원 헌터임에도 빌런에 버금가는 손속을 가진 인물. 다듬어지지 않은 인재라 생각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초인이 되더니, 미처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로 인해 중국은 큰 손해를 봤다. 일찌감치 손을 쓰려던 장쯔둥이 죽었다. 장우위안과 남궁기는 물론, 왕민도 최준호 손에 죽었을 거라 추정되고 있다.
초인이지만 최흉의 빌런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을 인물이 바로 그였다.
“장우위안이 아쉽군.”
그의 기프트인 혜광심어라면 고독을 제거할 수 있었을 터.
오래 전부터 이를 노리고 장우위안과 친해지고자 했지만 태평문이라는 조직을 대파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접점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멍청한 녀석.”
그놈의 이상주의자 기질을 버렸다면 좋은 파트너가 되었을 텐데.
위하오는 그가 죽기 전에 고독을 제거하지 못한 걸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도 최준호의 존재로 달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완전히 제거한 것이 아닌 잠깐 잠재운 것에 불과했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실마리라도 발견한 게 어딘가. 위하오는 고독을 제거하는 그날, 자신에게 수작을 부린 녀석들을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대가가 미사일 발사라는 건 황당한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중국과 리그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테니.
당에서 자신을 온전히 신경 쓸 수 없다면 그것대로 이익이다.
신의주를 벗어난 위하오가 임시로 마련한 거처에 도착했을 무렵이다.
뱀상의 남자가 불쑥 등장하여 위하오를 감시하듯 위아래로 훑었다.
숱하게 모멸감을 주었던 그 눈이다.
“위 대인.”
“무슨 일이지?”
“어딜 다녀오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산책을 다녀왔다.”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지금 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
“아닙니다. 하지만…….”
한마디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주장을 한다. 그럼에도 위하오는 부관의 이러한 태도를 오래전부터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위하오를 보좌하는 부관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당에서 보낸 감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중국 출신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순간, 당에서는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가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폭탄이었다.
자신을 제멋대로 휘두르려 하는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위하오는 살심이 치미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이것에 반응하여 고독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정도가 지나치면 머릿속을 헤집어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선사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최준호가 고독을 잠재웠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말은 평소에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해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여전히 고독이 멀쩡한 줄 알고 자기 위세인 양 날뛰는 녀석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였다.
위하오는 손을 뻗어 부관의 목을 틀어쥐었다.
“지금 무슨… 컥!”
“처음부터 네놈의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고, 고독이 무섭지 않습니까!”
“안 무서운데.”
“끅! 끄륵, 후, 후회하게 될…….”
“해 봐.”
“……!”
부관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뜨였다. 고독을 움직이게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하군. 최준호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게 맞았어.”
콰드득!
위하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부관의 목을 꺾어 버렸다.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던 부관의 몸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상상 속에서 수백 번도 넘게 죽였던 녀석을 완전히 처리하니 홀가분했다.
“마음에 드는군.”
짐짝 취급하듯 바닥에 시체를 던져 버린 위하오가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상부에 연락하여 파견된 부관이 마물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고 알렸다.
고독의 간섭이 없는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자유로웠다.
“탄도 미사일이라고 했나? 내 자유를 되찾기 위한 대가로는 한없이 저렴해.”
* * *
위하오 녀석이 내게 진실을 이야기하며 내 신뢰를 얻으려고 하지만 난 녀석을 믿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서로 신뢰를 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서.
그저 내가 채워 둔 목줄을 믿을 뿐이다.
“안 그러냐, 멍멍아?”
멍!
멍멍이 녀석은 자기가 진짜 멍멍이라 생각하는지 강아지처럼 반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마물 사체와 심장을 먹였더니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조금 더 지나면 윤희가 징그럽다고 멀리하는 거 아닐까?
볼일을 마친 뒤 평양에 들른 김에 정주호를 찾아갔다.
생각해 보니 북한에도 미사일이 많았던 거 같거든.
“청장님, 확보해 둔 미사일 좀 있나요?”
“왜? 너 건든 놈한테 쏘고 싶냐?”
“어떻게 알았어요?”
정주호, 그는 귀신인가.
놀란 내 반응에도 정주호는 코웃음을 쳤다.
“네 생각은 대충 알겠는데 여기 있는 미사일로는 네가 원하는 곳까지 날릴 수 없을 거다. 엄청 낡은 것밖에 없고, 전부 구닥다리야.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폭발해 버릴걸.”
“음, 아쉽네요.”
“그게 차라리 다행이지. 네 녀석이 쏘겠다고 하면 그게 더 미친 짓이야.”
이거 참, 정주호는 내게 하는 말이 너무 거침이 없어 탈이다. 누가 보면 사심을 듬뿍 갖고 미사일을 쏘려는 건 줄 알겠다.
난 그저 세계 평화를 위해 탄도 미사일을 쏘려는 것이다. 그걸로 먼저 잔챙이들을 정리해 두고, 나머지 녀석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거지.
겸사겸사 중국이 날린 걸 언급해서 원수 관계도 만들어 주고.
이 얼마나 훌륭한 작전인가.
다만 사실대로 말하면 잔소리를 들을 거 같아서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작전으로 하기로 했다.
내 말에 정주호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또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거냐. 이걸 보고해야 되나…….”
“갑자기 또 무슨 보곱니까.”
“네놈이 이상한 짓 하면 당연히 보고해야지. 보나마나 천 실장님이 피똥 싸겠지만.”
세계 평화를 위한 내 대의가 이렇게 매도당하는군. 리그 본거지를 타격하려는 거라고 말할까 싶다가도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입을 닫기로 했다.
“알았어요, 그럼 저 갑니다.”
“미사일은 안 보고?”
“원하면 쏴 줄 겁니까?”
“내가 미쳤냐. 당연히 안 해 주지.”
“그럴 거 같아서 포기했어요.”
정주호가 해 줄 리 없지.
머리카락이 줄어들수록 인정도 줄어드는 거 같다.
“잠깐, 왜 그렇게 야박하게 돌아가냐.”
“해 주려고요?”
설마 마음을 바꿔 먹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정주호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거절했다.
“아니.”
“그럼 왜요.”
난 곧 위하오의 연락이 오면 리그의 본거지로 출발해야 돼서 바쁜 몸이었다.
“가기 전에 마물 하나만 해결 좀 해 줘라.”
“근처에 마물이 날뛰어요?”
“어, 최근에 한 놈이 영역에 들어와서 귀찮게 굴더라. 교활한 녀석이야.”
결국 이런 거였군.
멍멍이 먹이나 구하러 가 봐야겠다.
“알았어요.”
“이럴 땐 또 쓸모가 있단 말이지. 괜히 청와대 가서 미사일 쏴 달라고 하지 말고.”
음, 정주호의 말이 은근히 거슬리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 * *
김광성의 아들이 백치가 되어 파국을 맞이한 뒤, 대통령은 김광성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4선 의원이자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오랫동안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며, 지금도 핵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원한을 품었으니 사건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김광성의 움직임은 예의 주시하고 있나?”
“예, 다행히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고 합니다.”
“이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상황이 참 어이가 없군.”
“방심할 수 없습니다. 아마 물밑에서 따로 움직이고 있을 거라 봅니다.”
“그럴 테지. 김광성이는 원한 하나는 절대 잊지 않는 녀석이었으니.”
한숨을 푹 내쉰 대통령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주물렀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온 건지.
한 명은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동지고 다른 한 명은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존재다.
상황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암담함을 느꼈다.
“천 실장,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김광성 의원에게는 아들을 잃었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아직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 미리 제지하게 되면 역공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지금은 지켜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김광성 의원이 대상으로 잡은 것은 최준호 초인입니다. 최준호 초인이 당하는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순간 멈칫했던 대통령은 실소를 흘렸다.
“…무슨 수를 써도 안 그려지는 것 역시 문제 아닌가?”
“아주 큰 문제입니다.”
김광성이 설사 리그와 손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최준호를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그것은 김광성일 테지.
최준호가 당해도 문제고 김광성이 당해도 문제지만 국익이나 개인적인 선택은 최준호였다.
무슨 수를 써도 당할 것 같지 않으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최준호는?”
“금천구에서 빌런으로 보이는 한 명을 체포한 뒤 곧장 북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정체가 누군지 아나?”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정다현 팀장의 말로는 리그와 연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최준호가 오면 밝혀지겠군. 무슨 내막이 감춰져 있는 건지 아주 궁금해.”
“그 내용이 대통령님에게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준호 초인에게 한번 말을 하겠습니다.”
“아니.”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천명국의 충성심은 고마운 일이지만 자신이 나서야 할 일이다.
“내가 이야기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둘의 대화가 깊어질 무렵, 천명국에게 보고가 올라왔다. 보고서를 펼친 천명국은 안에 적힌 내용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누구에게 온 보곤가?”
“사신길드의 류광호 초인님입니다. 류광호 초인님이 암시장 물류 흐름에 이상한 점이 있어서 살펴보았는데, 대량의 헌터 킬러가 서울로 흘러 들어왔다고 합니다.”
“……!”
헌터 킬러(Hunter Killer)는 말 그대로 각성자를 죽이는 데 특화된 무기를 의미한다.
각성자 등장 이후, 마물의 사체에서 포스가 활성화되는 걸 막거나 흩어지게 하는 물질이 발견되었는데, 이 물질은 포스를 운용하는 각성자에게 치명적이다.
발견되는 양이 적고 가공하기 까다로워 총알 하나 가격이 억대에 이른다.
“구매자는 김광성 의원이라고 합니다.”
김광성은 진심이었다.
최준호가 헌터 킬러를 앞세워 습격하는 걸 막아 낼 수 있을까?
갑자기 불안함이 생겼다.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도 상관없다는 건가? 당장 김광성이를 체포해! 무슨 소리가 나와도 상관없어!”
대통령이 그리 외칠 때였다.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온 비서관이 외쳤다.
“최준호 초인이 서울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
대통령과 천명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서울로 진입한 나는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일정이 급하다 보니 서둘러 움직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해야겠지.
여기에서 정보 공유라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를 의미했다. 대통령과 천명국이 날 믿어 주는 만큼 나 또한 내가 어떻게 행동하려고 하는 건지 알려 줘야 신뢰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 나갈 수 있다.
내 멋대로 결정한 게 있어서 잔소리를 좀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청와대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한 나는 멀리서 어슬렁거리는 기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모습은 언제 봐도 감탄이 나왔다.
“완전히 맛 들렸네.”
몇 번 내가 입구에 붙잡혀서 특종을 만들어 내다 보니 이젠 아예 대기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돌아서 들어가야 되나? 그러려면 청와대의 경계망을 뚫고 가야 되는데.
잠시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어?”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직감이 발동되었다. 이게 뭐지? 이건 혈종일 때나 느꼈던 위기감이었다. 날 진짜 위협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
크르르!
멍멍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반응을 보였다.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핏!
저격이었다.
몸을 뒤틀어서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깨를 스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불에 지진 것처럼 진한 고통이 물감처럼 번져 나갔다.
이거, 각성자를 죽이기 위한 전용 병기였다.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감히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름이 헌터 킬러였던가.
“저격이다!”
저 멀리서 내게 쏟아진 저격을 본 기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날 향한 저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핏! 핏! 피빗!
헌터 킬러를 동원한 저격이 실시간으로 날 노려 왔다.
몇 차례 더 쏟아진 저격은 직감을 극도로 활성화시킨 날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스치고 지나간 상처는 포스 활성화를 가로막으며 고통을 가중시키려 들었다.
이거, 오랜만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곧장 저격이 이루어진 곳을 향해 달렸다. 청와대 근처는 확 트여 있는 공간이라 저격할 곳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도 저격으로 날 죽일 생각이었겠지.
“도망쳤네.”
방금 전까지 저격수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멍멍이와 도착하니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건 전문가였다.
보통 이 정도면 더 쫓지 못하겠지만 난 다르다. 흔적을 감지하고, 남아 있는 증거를 토대로 상상에 가까운 유추를 한다. 그리고 직감이 이것을 보조하여 미진한 상상을 완전한 것으로 보완한다.
여기에 확신을 가져다줄 수 있는 멍멍이가 존재한다.
멍!
나와 멍멍이가 동시에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찾았다.”
난 은신처 바닥을 발로 밟았다. 그러자 바닥이 무너지며 작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저격수가 숨소리까지 지운 채 숨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저격수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꽤 참신한 방법이었어.”
콰드득!
망설이지 않고 저격수의 목을 꺾어 버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암살 의뢰만 맡은 건가? 그건 잘 모르겠군.
난 혹시 몰라 버서커에게 연락해서 부모님의 보호를 부탁한 뒤, 윤희에게도 신성길드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멍멍이를 저격 장소에 남겨 둔 뒤 흔적을 더 찾고자 습격당했던 장소로 돌아왔을 때 처음 보는 얼굴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최준호.”
눈에 선 핏발, 풀풀 풍기고 있는 살기, 나한테 원한이 있는 얼굴이다. 노년의 남자는 왼손에는 검을, 오른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다.
“내 아들을 백치로 만들었으니 나도 널 죽인다.”
“아들? 누구지?”
음, 내가 백치로 만든 사람이 꽤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김효준의 아버지 김광성이다. 지옥에 가서도 내 이름을 잊지 마라.”
“그게 누군데?”
김효준이 누구더라?
난 진짜 기억나지 않아서 물어본 거지만 김광성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최준호!”
탕!
김광성의 총에서 발포된 총알은 날 맞추지 못했다. 딱 보니 저 총도 헌터 킬러였다. 저 총알 하나만 해도 억대인 걸로 아는데 김광성은 망설이지 않고 날 향해 총을 난사했다.
포스로 만든 장벽마저도 갈가리 찢어 버리는 탄환이라 나는 직감을 활성화해서 피했다.
철컥! 철컥!
모든 총알을 소진한 김광성은 총을 던지고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저것도 안티 포스 기운이 담긴 검이다. 각성자인 날 죽이려고 아주 작정을 했군.
근데 날 죽이고 싶으면 본인이 아니라 좀 더 괜찮은 각성자한테 검을 들려 보내지.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저걸로 나한테 타격을 줄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이 뒤집힌 김광성이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죽어! 죽으라고!”
제법 검술을 체득한 듯하지만 이 정도로 날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지. 난 어렵지 않게 김광성의 칼질을 피해 내며 김효준의 정체가 뭐였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에 백치가 된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 중국 첩자. 걔 아버지였군. 걘 죽을 짓해서 그 꼴이 된 건데.”
“으아아아! 죽어!”
“그러는 댁도 중국한테 꽤 받아먹지 않았나? 한탕 해 먹으려고 부정 저지른 주제에 무슨 피해자 코스프레야?”
그것도 청와대 바로 앞에서 칼질에 총기 난사까지 하고.
누가 보면 일방적인 피해자인 줄 알았다. 물론 사이비에게 세뇌되었지만 본질은 중국에 포섭된 상태였다. 들키지 않았다면 신나게 정보를 빼 냈겠지.
김광성 입장에서는 아들이 백치가 된 거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일단 칼질이 거슬리니 못 하게 만들어야겠다.
퍽!
“끄으으!”
배를 발로 차서 호흡이 흐트러지게 만들고.
콰드득!
“끄아악!”
팔을 부러뜨려 검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걸 살려야 하나 죽여야 하나.
그때 내 앞이 뿌옇게 변했다. 김광성이 독을 퍼뜨린 것이다.
날 죽이기 위해 아주 가지가지 준비했다.
“포스를 갉아먹는 독이다. 이걸로 네놈도…….”
파랗게 질린 채 광소를 터뜨리던 김광성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음, 미안하지만 내게는 만독불침이 있어서 말이지. 만득이가 가끔 오작동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설의 기프트다.
김광성이 퍼뜨린 독은 꽤 지독했지만 만득이가 부지런히 움직여서 해독하고 있었다.
“나한테 독은 안 통하거든. 아쉽게 됐네.”
그래도 아들의 복수를 하려는 집념은 인정해 줄 만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초인이었다면 큰 부상을 입었거나 죽었을 수도 있겠다.
그것뿐, 내 손에 잡혀서 죽는 건 같은 신세겠지만.
내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자 김광성의 눈이 뒤집혔다.
“크아아! 죽어! 제발 죽어!”
날 죽이고 싶은 건 알겠지만 죽어 줄 생각은 없거든.
허우적거리며 손을 뻗는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중독이 상당히 진행되었는지 녀석은 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내가 손수 죽이지 않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하겠다.
그러다 쓰러진 놈의 배가 볼록 튀어나온 걸 보고 멈칫했다.
양복 안에 폭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젠 얼굴이 까맣게 변한 김광성이 피범벅이 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크흐흐, 같이 죽자.”
콰아아아앙!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폭탄이 폭발을 일으켰다.
포스를 찢어발기는 섬뜩한 칼날 폭발이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공간 전체가 갈가리 찢겨 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것도 헌터 킬러 폭탄이다.
평범한 포스 방어막이었다면 방어 역할을 못 한 채 폭발을 그대로 뒤집어썼을 것이다.
근데 김광성에게 미안하지만 말이지.
이 폭발도 혈종 때 다 겪어 본 거다.
그래도 한때 세계를 멸망시킬지 모른다는 빌런 취급을 받았는데. 이 정도 공격도 당연히 받아 봤지.
딱 봐도 골치 아플 것 같아서 전이를 발동했다.
멍?
대기하고 있던 멍멍이가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가자.”
폭발이 일어났던 장소에 도착하니 김광성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조차 간직하지 못하고 갈가리 찢겨 나간 것이다.
난 김광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에게 짧게 말해 줬다.
“그러게 아들 간수를 잘하지 그랬어.”
그랬어도 김광성은 내 손에 죽었겠지만.
그거 참 유감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