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이세희는 여전히 최준호라는 남자에 대해 알 수 없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고에 한참 궤를 벗어난 인물.
그러면서 스스로 제정신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기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 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공무원 헌터가 아니었다면 어디 빌런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강한 실력,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술은 시선을 끌었다. 그와 친해지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조사해서 필요한 걸 내놓았고, 성공적이었다.
최준호에게 당할 빌런이 불쌍하게 생각되었지만.
모든 게 술술 풀려 가던 터라 상쾌한 기분이었다.
수련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최준호가 최윤희에게 어떤 수련을 해 줄지 궁금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요량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가 돌아온 건 큰 충격이었다.
“여기까지다.”
“······.”
“괜찮나?”
“네, 괜찮아요. 괜찮아야죠.”
후들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좀 전의 충격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저는 여기에 좀 더 있을게요.”
“그럼 먼저 가 보지.”
밖으로 나가는 최준호의 뒷모습을 쫓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쌀 뻔했어.”
내숭을 싹 걷어 낸 솔직한 감정이었다.
최준호가 보여 준 것은 모방해 낸 마물의 기세였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향한 끝없는 살의, 적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세희는 몇 년 전, 처음 마물을 사냥할 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정신을 차리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음에도 압도되었던 기억이다.
헌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준호가 보여 준 마물의 기세는 사냥하다 볼 수 있던 진짜배기였다.
만약 이걸 첫 사냥에 나서는 헌터들이 경험하게 한다면 어이없이 죽거나 다치는 사태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너무 놀라 물어보는 것도 까먹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최준호라는 남자는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인물이라는 것. 마치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보물상자였다. 그러다 실수하면 자신조차 잡아먹어 버릴 마물 같은 존재였지만.
“갖고 싶다.”
그리 말하다 피식 웃고 말았다.
미치기라도 했나 보다. 첫 만남 때 수작을 부렸다고 해도 자기를 죽이려던 남자를 탐내다니.
이래서 여자들이 위험한 남자에게 끌리는 거였나? 이게 이렇게 분류되는 게 맞나? 진짜 목숨이 위험한 그런 종류 위험함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한 가지는 분명했다.
최준호는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 * *
이세희의 조언은 꽤 시기적절해서 윤희가 마물의 기세에 적응하는 걸 도와줄 수 있었다.
왜 굳이 개 같은 포즈를 취하느냐고 하던데 그래야 좀 더 리얼하게 보이지 않나? 마물 대부분 사족보행인데. 아무튼 윤희는 전혀 다른 생소한 기세를 접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와! 진짜 잘못하면 죽었겠다.”
이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다음은 내가 마물처럼 움직여서 전투 경험을 쌓아 주는 건데 제대로 하려면 팀원 전체가 모여야 해서 넘어가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과보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방치보다 과보호가 낫지 않을까? 나는 이세희에게 부탁해서 받은 팔찌를 건네줬다.
“와, 예쁘다. 이거 뭐야?”
“위치 추적기. 사냥 할 때마다 차고 다녀.”
“미쳤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사냥 갈 때는 차고 다니기로 합의를 봤다.
윤희 문제를 마무리하고 남은 것은 내 문제였다.
저번 말소자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는 버서커로, 15년 후까지 나와 접점이 없어야 할 녀석이 말소자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 미친 녀석이 연관된 이상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알 수 없었다. 자고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 제일 귀찮은 법. 나도 버서커에게 시야를 열어 둬야 한다.
둘째는 기뢰의 활용도다.
본래 기뢰는 일대일에 특화된 기프트로, 다수를 상대할 때 어려움이 존재했다.
내게 가장 편한 기프트라 사용하다가 상황에 따라 검을 쓸 생각이었는데 말소자 명명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
버서커 녀석이 말소자를 쫓고 있다고 말한 게 거슬렸다. 이러다 검을 쓰면 말소자라고 밝혀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다 한 가지에 생각이 미친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평화에 찌들어 있었군.”
진심으로 반성했다. 다시 과거의 미친 짓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 물렁하게 굴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예전의 나라면 이런 고민이 무의미했을 거다.
“제거하면 그만인데.”
* * *
도시 내 암약하던 십여 명의 빌런이 무더기로 체포되었지만 이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잉 진압이 없었던 것이다. 최준호가 출동한 건임에도 사지가 멀쩡한 것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놀라 물어보니 최준호는 웃으면서 “천재의 발상이 체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단지 돈이 들 뿐.”이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남겼다.
그와 별개로 일상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정다현은 그것이 폭풍 전 고요라 생각했다. 리그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실체로 떠오르고 악명 높은 고레벨 빌런들의 목격담이 들려오고 있었다.
조만간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임무에서 중책을 맡으리라 다짐했다.
“정다현, 최준호, 국장실로.”
“예!”
정주호의 부름에 정다현은 최준호와 함께 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최준호를 이끄느라 고생했다. 이제 국가수호국 임무수행에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정다현 사무관님 덕분입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최준호의 말에 빌미라도 잡은 것처럼 정주호가 물고 늘어졌다.
“부족하지. 빌런을 체포하는 스킬이! 한 번 출동하면 중상자가 최소 열은 발생하니. 이번엔 멀쩡해서 얘가 개과천선했나 싶더니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왜 겉은 멀쩡한데 속은 박살이 나 있어?”
“과찬이십니다.”
“칭찬한 거 아냐!”
정주호가 속 터지는 얼굴로 소리쳤다.
저 표정은 자신도 본 적 있다. 신성 길드에서 국가수호국으로 옮기고 싶다고 할 때 봤다. 마치 구제불능 사고뭉치를 보는 눈.
언제고 정주호가 부하가 아닌 조카로 대할 때 “넌 순한 맛이었어! 하필 그 다음이 핵불닭 맛일 줄이야.”하면서 하소연을 했다.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힌 정주호가 가늘게 숨을 내뱉었다.
“다현이 너도 알겠지만 최준호는 이대로 잡범들만 상대하기 아까운 실력을 가졌다.”
“···네.”
“그래서 나는 최준호에게 단독 임무 몇 개를 맡기려고 한다.”
“네? 하지만 국장님! 준호 씨는 아직 9급이고 경력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실력을 신봉하던 네가 직급을 얘기하니 내가 어색하구나.”
“······.”
정곡을 찔린 정다현은 입을 닫았다.
“최준호, 할 수 있겠지.”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냐, 넌 최선을 다하면 안 돼. 그럼 다 죽일 거잖아.”
“살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봐봐, 노력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는 의미잖아.”
무의미한 말꼬리를 잡으며 스트레스를 풀던 정주호가 한결 편해진 얼굴로 이쪽을 향해 말했다.
“아무튼, 최준호에게 단독 임무를 맡기려는 건 간단하다. 정다현, 넌 너무 약해.”
“······!”
마치 심장에 날카로운 화살이 꽂힌 기분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였지만 정주호의 표정은 냉정했다.
“네 부사수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면 더 강해져라. 그럼 같이 맡기도록 할 테니.”
“······.”
“나가봐. 난 최준호에게 더 할 얘기가 있으니.”
“···네.”
더 할 말이 없었던 정다현은 비틀거리며 국장실을 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자리에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멍한 얼굴로 조금 전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진실은 명료하다고 하던가.
결국 자신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다. 좀 더 강했더라면, 레벨 7에 도달했다면 이렇게 배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 정주호 국장의 말이 맞다. 자신은 약하다. 어린 시절 이름보다 천재로 불리는 게 더 익숙했고, 신성 길드 소속으로, 국가수호국 소속으로 유명세를 몰고 다녔지만 그것뿐이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자들은 레벨 6은 물론 레벨 7, 그 이상의 적들도 있을 것이다.
“강해져야 돼.”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며 정다현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 * *
의기소침한 정다현의 모습은 처음 봤다. 실력이 모자라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겠지. 하지만 내가 블랙요원이 되고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면 그녀는 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건데, 그동안 도움을 받았으니 수련을 도와줘야 하나?
생각해 보니 윤희를 잘 가르쳐서 신성 길드 수석 채용으로 만들었으니 가르치는데 꽤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내 구르면서 욕하다가 합격 후 감사하다고 했었으니까.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
“자, 감시꾼은 나갔고 이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볼까?”
“경청하겠습니다.”
“어디까지 깽판 칠 거냐?”
“어디까지 가능한 겁니까?”
“···야, 무섭게 왜 그러냐. 나 좀 봐주면 안 되냐? 나 요즘 너 때문에 머리 빠진다고.”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위로의 의미였는데 오해했는지 정주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늘 국장님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나 싶다. 나 진짜 착하게 살아왔는데. 후! 날뛰더라도 조건이 있다. 우리 국가수호국이 내세우는 정의에 어긋나지 않을 것,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가급적 내가 수습할 수 있는 사안일 것. 그리고 사전에 내게 말할 것. 이 정도면 좋겠다. 할 수 있겠냐?”
“노력해 보겠습니다.”
“곧 죽어도 하겠다고 안하네. 정다현이, 이게 문제다, 문제. 왜 이런 문제아를 데려와서는. 아니다, 잘 데려온 건가. 다른데 있었으면 더 깽판 쳤을 테니. 그래, 내 머리털 하나 희생하고 세상을 구한 셈 치자. 위에서 이런 내 노력을 알아줘야 하는데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어휴!”
원래 빠지던 걸 내 핑계 대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만 머리 빠지는 사람 공격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건 알고 있었다.
* * *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그리고 블랙요원으로서 의미 있는 첫 임무가 있다는 걸 생각해내고 작전안 초안을 짜서 정주호에게 가져갔다.
국가수호국이 큰 공을 세울 수 있음과 동시에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작전이다.
다만 일을 저지른 뒤 정주호가 수습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문서 제목을 본 정주호가 뒷목을 잡았다.
버서커 체포 작전
“야, 너 진짜 나 죽이러 온 암살자 아니지? 염기철 그놈이 보냈냐? 아니면 박범수냐? 차라리 대놓고 죽여! 내 속 좀 그만 뒤집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정주호가 물었다.
“왜 버서커냐.”
“예측하기 힘든 요소가 변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제거해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암시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니 암시장부터 둘러보겠다고? 암시장까지 건드릴 생각이냐?”
“안 됩니까?”
“일단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일단 버서커부터 얘기하자. 왜 버서커의 동향만 파악하고 섣불리 안 건드리는 것 같냐?”
“······.”
아마 대한민국의 빌런 중, 순수 무력으로 최강에 속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버서커라 불리기 전 고강한 검술로 위명이 높던 이광진은 미쳐 버린 상태에서도 섬세함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주호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달랐다.
“미친놈이라서 그래.”
“예?”
“미쳐서 그렇다고.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 특히 버서커 그놈의 정신이 얼마나 오락가락하는 줄 알아? 지 내킬 땐 사냥하던 헌터들을 도와줬다가 몇 시간 뒤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몰살시켜 버려. 같이 움직이던 빌런도 거슬린다고 죽여 버리고 살생금지 기간이라며 마물을 몰이해서 도시로 보내 버리기도 해. 이게 한두 건이 아냐.”
정주호가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잡겠다면 안 말리마.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 둬. 버서커 그놈은 내가 본, 아니, 세계에서 갖가지 악명을 날리는 빌런 중에서 미쳐도 가장 미친놈이란 게 내 생각이다.”
“······.”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누가 봐도 버서커는 미친놈이 맞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정상인이지만 나도 저번 생에 미쳤던 빌런이었다.
그것도 최악이라 불렸던.
근데 가장 미친 빌런이 버서커라고?
“후!”
진짜 미친 빌런이 뭔지 보여 줄 수도 없고.
묘하게 자존심이 상한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