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장난 같았던 만담 후, 나와 신수가 마주했다. 용용이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내가 신수를 용용이만 봐서일까, 눈앞에 있는 녀석은 용용이와 다르게 굉장히 차분한 느낌이었다. 자기 할 말만 앞서는 용용이랑 다른 느낌이다.
[내가 뭐가 어때서 그래!]기어이 속내를 읽고 빽 소리 지르는 거 봐라. 신수로서의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신수 맞나? 사실 말하는 덩치 큰 마물인 거 아닐까.
[너, 나중에 봐.]나중에 보자면 누가 무서워할 줄 아나 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용용이는 신수 중에서 가장 하찮은 신수였다.
눈앞에 있는 신수 때문인지 극도로 조심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으니까.
아무튼, 나는 새로 등장한 신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 진동하던 비린내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람으로 생각하기 딱 좋아 보였다.
“인간 모습이 편해서 그렇게 있는 거냐.”
“지상에서는 이게 편해. 본체는 너무 크거든.”
“바닷속에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아깝게 되었군.”
“바다 안에서는 왜?”
어딘가 멍하게 느껴지는 반문이다.
용용이가 내 속내를 전달하지 않은 건가. 녀석에게 그런 의리가 있었다고?
“한판 붙어 보려고 했지.”
“왜?”
“나에 대해 벼르고 있다지 않았냐?”
“내가 왜?”
이거, 왠지 중간에 장난질이 있었을 거 같은 향기가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용용이 녀석이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눈알을 데룩데룩 굴렸다.
“애완동물을 죽여서 열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로 일희일비하지 않아.”
“나한테 벼르고 있던 것도 없었고?”
“응, 없어.”
장난질 확정이다.
나와 신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용용이한테 향했다.
그 사이 변명거리를 생각했는지 도리어 뻔뻔하게 나왔다.
[내가 말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너희가 서로 안 좋은 의미로 충돌할 수 있어서 경각심을 가지라는 의미로…….]“됐다.”
용용이 녀석은 나중에 응징하기로 하자.
난 신수에게 집중하기로 하고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부르면 되지?”
“딱히 이름은 존재하지 않아. 너희식으로 편하게 현아라고 불러.”
“그래, 현아. 내가 들어 보니 중간에 있는 녀석이 장난을 친 거 같은데 우선 오해부터 풀어 볼까? 네 애완동물 죽인 게 별거 아니라고?”
“오히려 신기했어. 꽤 강한 아이였거든. 인간이 상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용이한테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어.”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응.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대상이니까. 너 같은 인간을 적으로 돌리면 좋을 게 없고.”
말하는 걸 들어 보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말이 잘 통하는 기분이군.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미간을 모은 현아가 용용이를 뻔히 바라보자,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저쪽에서도 한번 참교육이 들어가겠군.
“전부 용이의 계략이야.”
[계략이 아니고 난 너희가 만나면 충돌할까 봐 걱정했던 거라고!]“넌 나중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 진짜라니까. 믿어 줘. 인간, 너도 말 좀 보태 봐.]지금 내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 한마디를 기대하는 거 같으니 보태 줘야겠지.
“교육 시킬 때 다시 덤빌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엄하게 하는 걸 추천하지.”
“조언 고마워.”
사색이 된 용용이와 달리 나와 현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신수라는 것이 이렇게 얘기가 잘 통하는 존재일 줄 몰랐군. 역시 용용이 녀석이 교활함의 극치였던 거다.
“날 적대하지 않는다면 나도 행동에 옮길 생각은 없다.”
“다행이네. 나도 강한 인간하고 적대하고 싶지 않았어. 이야기만 통하면 우린 서로 줄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줄 게 있다고?”
“응, 대신 내 의뢰를 들어주면.”
신수가 하는 의뢰라? 뭔지 궁금해졌다.
“신수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지만 전지전능하진 않아. 나도 그렇고 용이도 처음 형태를 갖출 때 마물의 방해를 받았고,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어.”
“그건 나도 들었다.”
용용이 녀석의 호들갑이 보통이 아니었지.
“그 과정에서 몇몇 신수는 제 형태를 갖추는 데 실패했어. 그 힘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고. 나와 용이는 그걸 신수의 정수라고 불러.”
용용이한테 들은 적 있던 거다.
아르고스가 이걸 얻고 초월적인 힘을 얻었다고 했지? 나도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탐이 났다.
힘이라는 건 넘치고 넘쳐도 필요한 법이니까.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현아의 투명한 눈이 날 향했다.
“넌 힘들 거야.”
“왜?”
“지금도 폭발적인 힘이 들끓고 있어. 여기에 더 큰 힘이 섞이게 되면 터져 버릴지도 몰라.”
그러면서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리는데 의아함을 느꼈다. 난 내 힘을 완벽하게 갈무리하고 있는데?
현아의 눈에 다른 게 보이는 건가.
혹시 혈종이 보이는 건가 싶었다.
“들끓는 힘을 다스릴 방법은 있고?”
“음, 힘들 거 같아. 그 힘이 의지가 있어서 내가 개입하면 바로 도망칠걸?”
아무래도 혈종 이 자식이 맞는 거 같다. 지적받으니 잽싸게 숨은 걸 테고. 역시 간교한 녀석이다.
하지만 녀석도 내가 신수와 만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겠지.
이 기회에 제거할 수 있으면 그것도 좋겠다.
일단 현아가 원하는 것부터 들어 보자.
“그래서 하고 싶은 부탁은?”
“세계에 흩어진 정수를 찾아 줬으면 해.”
“그걸 왜 나한테 맡기지?”
“거대한 힘을 앞에 두고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은 너밖에 없어.”
“그냥 두면 안 되나?”
현아는 고개를 저었다.
“사악한 인간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고, 마물이 그 힘을 손에 넣을 수도 있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건 마물의 손에 들어갈 때였다. 본능에 휩싸여 오로지 파괴밖에 모르는 신수급 마물이 등장할 수 있단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네가 가는 건?”
“내가 움직이면 사방에서 관측될 거야.”
“용용이는 움직이잖아?”
“저건 아바타야. 난 용이 같은 재주는 없어.”
신수라고 해서 같은 신수의 비기를 쓸 수는 없나 보다.
그럼 내가 맡아야 한다는 건데.
일종의 거래로군.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원하는 게 있어?”
“내 정신에 고약한 녀석 하나가 숨어 있는데, 이 녀석을 끄집어낼 수 있나?”
“네 정신과 단단하게 얽혀 있어. 하나라고 봐도 무방한데?”
이 녀석이 지금 선 넘네? 나랑 혈종이랑 하나라고 하는 건가?
나도 모르게 살기가 튀어나왔나 보다. 현아가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이 녀석이랑 같은 취급 받는 게 말도 안 돼.”
“그래도 둘이면서 하난데…….”
“분리할 방법은 없고?”
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대신.”
“대신?”
“그 정신을 네가 감지할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을 거 같아.”
그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내가 혈종을 간파할 수 있다면 녀석의 처리는 만득이와 광심이한테 맡기면 될 테니까.
자꾸 나랑 하나라고 하는 게 거슬렸지만 이건 만족스럽군.
귀찮음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
“의뢰를 받아들이지.”
“잘 생각했어. 정수를 찾게 되면 용이한테 말해서 알려 주도록 할게.”
“근데 이 맹한 녀석이 제대로 전달할 수 있나?”
“용이가 맹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현아와 내가 생각하는 게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다. 생각보다 마음이 잘 맞는 느낌인데?
[왜 너희가 친해져서 날 구박하는 건데!]졸지에 구박데기가 된 용용이가 절규했다.
누가 보면 드라마 비극의 주인공인 줄 알겠다.
그리고, 왜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냐?
현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날 본다.
“내가 용이 데려가도 돼?”
“얼마든지. 교육 좀 시켜 줘.”
“응.”
“그래도 겉모습은 멀쩡히 유지해 주고.”
“비결이 있어?”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난 어떻게 하면 겉바속촉(?)으로 두들길 수 있는지 알려 줬다.
이때만큼은 멍하던 현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나 지금 다 듣고 있거든?]그래서 어쩌라고?
* * *
다음 날, 나는 양주혁과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용용이 녀석은 합류하지 못했는데, 현아가 말하길 교육이 조금 길어질 예정이란다.
제대로 교육받고 녀석이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좋겠다.
“저는 세계정세가 급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대만을 지났을 무렵, 양주혁은 큰 결심을 굳힌 사람처럼 말했다.
“그래서 그게 왜?”
“예?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나로 인한 변화들?”
“예.”
글쎄다. 이번 일로 변화가 있긴 하겠지만 내가 체감하는 정도의 변화는 얼마 전 첫 충돌이 벌어진 중국의 내전은 되어야 느낌이 올 거 같다. 그 외에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나긴 하겠지만 솔직히 큰 감흥이 없다.
이건 내가 무신경한 건가?
아니다. 그동안 보아 온 것들이 날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넌 사람이란 동물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어.”
“그래도…….”
“무서운 만큼이나 빨리 잊어버리는 게 사람이지. 이번 일로 경각심을 갖는다? 분명 좋은 소식이지만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갈까?”
“…….”
양주혁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젊다 못해 어리기에 사회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
내가 볼 때 이 현상도 잠깐일 것이다. 빅토르 카르발류의 죽음이 가까운 일처럼 느껴질 때 경계하겠지만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라 판단되면 본래대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내 두 번째 출장이 되겠지.
“오히려 그 망각에 기대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기대할 점이 있습니까?”
“초인들은 계속 날 찾아올 거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동물이다. 아마 빌런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자들도 방문할 것이다.
“초인급 빌런이 얼마나 성가신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예. 체포하고 싶어도 체포하지 못한다고.”
“정확히는 성가시지. 피해도 크고.”
“예.”
“하지만 그보다 더한 녀석들이 있어.”
“리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긴 드러난 위협이고.”
당장 리그 소속 빌런을 때려잡는다고 누가 지탄을 하겠는가.
오히려 찬사를 받았으면 받았겠지.
“그 말씀은?”
“초인의 탈을 쓴 빌런들.”
“…….”
입을 다문 양주혁은 깨달은 부분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악행이 드러난 초인이 많으니 숨겨진 건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 번의 기회밖에 없을 테니 대어를 잡아야겠지.”
“이미 계획하고 계셨던 겁니까?”
“어, 재밌을 거 같지 않냐?”
“재미까지는…….”
“그래? 난 재밌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양주혁을 보며 난 의아함을 느꼈다.
왜 저러지? 난 재밌을 거 같은데.
* * *
한국으로 복귀한 나와 양주혁은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양주혁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사무실로 이동했고, 나는 천명국과 따로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한다. 나이도 많으신데 몸조리 잘하셔야지.
그걸로 내 걱정은 끝. 그런데 천명국은 내가 대통령의 상태를 궁금해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미사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사일 성능 좋던데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성능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
“세 번은 생각하고 발사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대통령은 미사일을 발사할 때 신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 번 생각하고 발사 결정을 해 달라고 말했다. 난 당연히 여기에 동의했다.
근데 뭐가 문제란 거지?
“세 번 생각하고 발사했는데요.”
죽일 놈들이 앞에 득실거리는데 충분히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다. 오히려 대통령과 약속을 성실히 이행한 거 같아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천명국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듯합니다.”
“제가 잘못한 겁니까?”
“아닙니다. 각자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도 대통령님 뵙게 되면 말씀드리죠.”
미사일 성능이 좋아서 추가 구매도 얘기해야 되니까.
“…예,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양주혁 사무관은 데리고 다녀 보니 어땠습니까?”
단순히 보좌 역할로 물어본다고 하기에는 천명국의 눈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인재라는 의미인가? 그런 것치고는 거의 구세주를 생각하듯 행동하는 거 같은데.
그나저나 양주혁이라.
함께하는 동안 뭐가 있었나 싶었지만 딱히 나빴던 기억은 없어서 좋게 말해 주었다.
“똘똘하던데요.”
“다행입니다. 앞으로 양 사무관이 다방면으로 초인님을 보좌하도록 시키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요?”
“초인님을 존경하다 보니 아무래도 세심하게 챙길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면야.”
나도 빌런이던 녀석이 공무원 헌터가 된 게 신기해서 나쁘지 않게 받아들였다.
잘못해서 선 넘으면 언제든지 삐딱선을 탈 수 있는 시기기도 하고.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좋은 것만 보여 주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
“이번 초인님의 행보가 여러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말레이시아?”
거기 초인은 나도 본 적 있긴 하다. 적당히 세상에 물들고 적당히 눈치 보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알던 사람이다. 그다지 특색은 없지만 그런 류가 오래 살아남는 법이지.
“예. 말레이시아의 라시드 초인이 군부 장군을 숙청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에게 쿠데타를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까?”
“말레이시아에서 동티모르는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브루나이에 갔던 만큼 움직임을 포착했을 가능성도 있단다.
일리가 있군.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저야 나쁘지 않습니다.”
“라시드 초인 또한 다른 의도는 일절 없으며, 초인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효과 좋네요. 역시 누가 죽어야 말을 듣나 봅니다.”
“…….”
이 말에는 또 동조해 주지 않는다. 은근히 섭섭한데?
“그리고 초인님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게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궁금한데요.”
“혹시 대통령님이나 저, 여당이 초인님께 섭섭하게 행동한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갑자기?
“없습니다. 갑자기 그걸 왜 묻는 거죠?”
“그게 그러니까…….”
“말씀해 주세요.”
내 재촉에 망설이던 천명국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