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
누군가가 죽을 때 잠깐 찾아오는 적막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재빨리 움직여서 대처를 하는 게 우선 아닌가. 그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누군가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수많은 길드들이 위급 상황에서 각성자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도록 교육하는 것이 괜한 게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내가 손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촤악!
손끝으로 시전한 칼날폭풍에 휩쓸린 친위대가 핏물이 되어 흩어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승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지만 도망칠 곳이 없는 곳이라서. 이래서 비행기가 좋다.
“네, 네놈…….”
“처음부터 이럴 거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
날 향한 저우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래도 자기가 통치하는 곳에서는 손가락 하나로 절대 권력을 휘두를 텐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참 연약해진다 싶었다.
이것이 본래 모습이겠지. 나도 내가 가진 힘이 사라진다면 저런 약한 모습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음, 연약한 최준호라. 내 안에 연약함이 깨어난다면 그것도 재미 포인트가 되겠다.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왜 그러나, 나도 은근히 섬세한 인간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네.]시비조인 용용이 녀석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고 나는 저우콴에게 다가갔다.
살벌한 살기를 풍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은 칼을 뽑아 들어 내게 달려들었다.
좋지 못한 선택이다.
전용기 내부가 아무리 넓다 해도 칼을 휘두르며 자유자재로 움직일 만큼 넓지 못하거든. 그래서 나도 누리를 뽑지 않고 맨손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하긴, 어디 자기 전용기에서 싸워 본 적이 있겠나.
그 경험 부족이 저우콴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전력을 동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전용기 내부 장식물이 부서졌다. 난 저우콴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어렵지 않게 피해 내다가 동작이 커진 틈을 이용해서 손목을 낚아챘다.
콰드득!
“크윽!”
손목이 덜렁거리면서 손에 쥔 검을 놓쳤다. 눈을 치뜬 저우콴이 그제야 내 의도에 말렸다는 걸 눈치 챈 듯하지만 이미 늦었다.
퍽!
내 발길질에 넘어지면서 자리를 어지럽혔다. 신음을 흘린 저우콴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망가진 기계처럼 덜그럭거리며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역시,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해도 초인이 혼자인 곳의 한계가 드러났다. 막연한 마물의 침공에 대비하여 홀로 갈고닦는 초인보다 내부에서 여러 초인이 은연중에 경쟁을 해야 경쟁력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이었나.”
“어. 근데 약삭빠르게 잘 빠져나가더라. 딸을 잘 뒀어.”
“이, 이럴 줄 알았으면 저우싱샤의 말을 들었을 것을!”
“그러게 말 좀 잘 듣지 그랬어.”
“…….”
저우콴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아마 운이 좋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겠지.
만약 용용이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무리수를 동원했을 거다. 하지만 용용이가 있어서 받을 건 다 받고 잡음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 왜! 내가 네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을 텐데!”
“네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데?”
진심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왜 자기 멋대로 움직여 놓고 나한테 절규를 하는 거지?
별로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죽어.”
“내, 내가 이렇게 허망하게.”
콰직!
내 발에 밟힌 저우콴의 목이 부러졌다. 눈에 빛이 사라진 녀석이 버둥거림을 멈추더니 경련과 함께 축 늘어졌다.
이렇게 또 하나의 빌런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군.
물론 저우콴이 죽은 걸로 다 끝난 게 아니다. 죽일 놈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도 처리해 볼까.”
난 전용기를 돌아다니면서 친위대를 비롯한 승무원을 모조리 죽였다. 내부의 변고를 파악하기 위해 나온 부기장도 처리하고, 기장까지 처리했다.
조종사를 잃은 비행기가 들썩였다. 난 블랙박스가 있는 곳을 찾았다.
“용용아.”
[왜?]“이거 좀 부숴라.”
[내가 왜?]“기분 좋게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되냐? 꼭 그렇게 토를 달아야겠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말해. 쳇, 알았어,]용용이가 꼬리를 휘두르자 비행기 블랙박스가 산산이 부서졌다.
완전 범죄가 되었군.
[왜 나한테 부수라고 한 거야?]“만에 하나 발견될 수도 있잖아. 사람들이 보면 마물이 부쉈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마물이냐!]“평범한 사람들이 신수와 마물을 구분할 눈이 없다는 거지. 그럼 갈까?”
[쳇!]용용이는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을 보였지만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용용이가 공간 이동을 시전하자, 내가 도착한 곳은 지면이었다. 처음 비행기를 목격했던 그 자리 그대로다.
부려 먹기 딱 좋은 한 수로군.
[자꾸 이런 일로 나 부려 먹으려 하지 마.]“수고했어.”
[말이라도 못 하면.]쳇쳇거린 용용이는 순순히 수긍했다.
자기도 좋으면서 튕기기는.
* * *
싱가포르 독재자의 최대 정적인 알렉스 왕은 오랫동안 민주 운동을 해 온 인물로, 각성자들을 문민통제 아래 두고, 이웃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자는 자강론자였다.
싱가포르 내부와 외부에서 명망이 높다 보니 체포하고서도 저우콴이 쉽게 건드리지 못한 거물 중 거물이다.
알렉스 왕 체포 당시 “평생 감옥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저우콴이 선언한 것은 유명한 말이었다.
그 정도로 싱가포르 내에서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그였다.
저우콴도, 알렉스 왕도 생각이 일치한 부분이 있다면 평생 감옥을 나오지 못할 거란 점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감옥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온 건 싱가포르 소속의 각성자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낯선 얼굴의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는 건가? 알렉스 왕은 의연함을 가장한 채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온 이우민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그곳의 각성자가 무슨 일로?”
“마침 근처에 볼일을 보다가 본국의 명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 무슨 일로 날 감옥에서 꺼낸 거요? 저우콴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둘이 손잡고 날 처리하기라도 하려는 건가.”
이우민이 고개를 저었다.
“저우콴은 사망했습니다.”
“그 저우콴이?”
믿기지 않는 소식에 알렉스 왕은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숙적이자 그 악랄한 저우콴이 죽었다고? 평생 떵떵거리며 살다가 자연사로 죽을 거라 생각되던 인물이었다.
“예, 비행기 추락 사고였습니다. 안에 저우싱샤와 친위대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
알렉스 왕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저우콴과 실질적 두뇌였던 저우싱샤, 그리고 싱가포르 최고 정예인 친위대가 사라졌다.
그 말은 저우콴의 독재에 벗어날 절호의 기회란 이야기였다.
“본국은 알렉스 씨를 도울 의향이 있습니다.”
“날 꺼내 준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베푼 건데 도와줄 의향이 있다고?”
“예.”
“어째서?”
“본국은 저우콴에게 선금을 받았습니다.”
“그 선금을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이우민이 씩 웃었다.
“저우콴이 본국에 방문하면서 빅뱅 시리즈 납품을 계약했습니다. 저는 이걸 알렉스 씨를 따르는 각성자에게 건네주고 싶습니다.”
“이걸?”
“싱가포르 정권을 차지하실 수 있으니까요.”
“이건 내정 간섭이네.”
“내정 간섭이라니요. 계약 이행을 조금 빠르게 한 것뿐입니다. 차기 정권을 이어받을 분에게요.”
이우민이 유들유들한 얼굴로 말했다.
“이 무기로 무장해야 한 사람이라도 덜 희생될 것입니다.”
“…….”
“원하지 않으시면 도로 회수하겠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빅뱅 시리즈는 현재 웃돈이 붙을 만큼 성능이 뛰어난 무기입니다. 알렉스 씨가 받지 않는다면 저는 이것을 친위대에 건네줄 수밖에 없습니다.”
알렉스 왕은 정신이 퍼뜩 드는 기분이었다. 그래, 지금은 고고한 척 고개를 들 때가 아니었다.
“내가 실언했네. 받도록 하지.”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날짜와 시간, 장소를 알려 주시면 그곳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이걸 받으시고. 그럼 전 이만.”
알렉스 왕에게 스마트폰 하나를 내민 이우민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알렉스 왕은 동지들을 이우민에게 받은 빅뱅 시리즈로 무장시켜 저우콴 세력을 축출하고 정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 무렵, 저우콴이 탄 비행기 추락 소식이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우민이 자신을 찾아온 것과 비행기 추락 시간이 왜 불과 5분밖에 차이 나지 않는 걸까.
“…….”
알렉스 왕은 자신의 의문을 평생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저우콴이 탄 비행기 추락 소식은 다음 날,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오랫동안 싱가포르를 지배해 온 독재자의 허망한 최후였다.
분명 뉴스에는 비행기 추락에 의한 사고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거 100% 최준호 소행이다.
-최준호 만능설 ㄷㄷㄷ 이젠 비행기도 추락시키냐?
-근데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이 최준호밖에 없는 건 맞긴 함.
-저우콴이 자기 안위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데 비행기 관리를 소홀하겠냐? 분명 감춰진 뭔가가 있음.
-진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계 결함일 확률보다 최준호 소행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젠 비행기도 격추시키는 건가. 무섭다, 무서워.
-애초에 최준호가 빌런보다 더 악랄한 독재자를 가만히 놔두는 게 이상했던 일이지. 바로 처리하지 않아서 야합을 한다는 비난이 있길래 뭐가 있나 싶었는데 이런 빅픽쳐를 ㄷㄷㄷ
-아무리 생각해도 최준호가 연관되지 않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게 함정.
-직접 죽이면 말이 나오니 비행기 추락을 위장한 것인가. 최준호 수법이 날로 세련되게 바뀌네.
-실제로 비행기 추락 각도를 보면 직각으로 떨어지는데, 이건 조종사가 자살하려고 한 게 아니면 불가능함. 근데 상식적으로 조종사가 자살하겠냐? 충성심 검증된 사람만 뽑았을 텐데.
-그러니까 모종의 수를 쓴 최준호가 이미 이륙한 비행기 안에 들어가서 모조리 다 죽인 다음 추락시키고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거지?
-아주 그냥 최준호가 다 해 먹는다고 말하지 그러냐.
-솔직히 이걸 최준호가 했다고 하면 선 넘는 거지.
-크크, 여기 있는 녀석들은 최준호의 무서움을 모르는군. 최준호라면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다…!
여론은 대부분 최준호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 최준호 방송에 나왔다! 저우콴 사고에 대한 인터뷰 뜸!
비행기 사고에 대한 최준호의 인터뷰가 짤막하게 뉴스에 나왔다.
[저우콴은 이미 몇 차례 있었던 비행기 정비 제안을 거절하고 비행하기 적합하지 않은 시간에 공항을 떠났습니다. 제가 좀 더 비행기 정비를 강하게 권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비행기 사고가 일어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비행기 사고로 해 달란 거겠지?
-???:아무튼 비행기 사고라고!
-꼬우면 증거를 가지고 오든가!
-아아, 그렇게 이번 사건은 비행기 추락 사고가 되었습니다.
* * *
대통령과 천명국은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최준호의 인터뷰를 본 대통령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결국 저질렀군.”
“예.”
“일단 저지르도록 뒀는데 후폭풍이 있겠나?”
“사실 여러 면에서 둘러볼 때 최준호 초인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최준호는 상식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지.”
“…예.”
천명국은 그게 가장 문제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어떤 수를 써서 비행기에 잠입하고 처리를 하여 빠져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최준호가 일을 저지를 거라 예고하지 않았다면 저우콴이 지독할 정도로 재수가 없어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어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행동들만 보면 제어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사람이야. 이 생각은 앞으로도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겠지.”
“그런 생각이 파멸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나 정 청장은 유연하게 생각을 바꿨으니 잘 해결된 게 아닌가. 이해는 못 하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들 않으니, 쯧!”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참으시지요.”
“자네는 1년밖에 남지 않았으니 먼저 탈출해서 좋고?”
“…하하!”
천명국이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좋은 걸 어쩌겠는가. 요즘처럼 하늘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없었다.
“대화는 하더라도 집중해야지?”
“아, 죄송합니다.”
대통령의 지적에 천명국은 다시 집중했다.
“거기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예산 관련 문제를 파악해야 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예.”
“괜찮아. 실제로 업무 파악하는 속도는 아주 준수하니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예!”
대통령의 칭찬에 기분 좋게 대답하던 천명국은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은 인수인계를 하려고 하는데 왜 대통령의 업무를 파악하고 있는 거지? 이건 인수인계랑 관련 없는 거 아니었나? 대통령은 자신의 업무를 파악해야 최준호에 대한 인수인계가 순조로울 거라 말했지만 어딘가 미진함을 느꼈다.
하지만 옆에서 재촉하는 대통령의 행동으로 인해 천명국은 다시 업무에 집중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