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이세희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다.
가끔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할 때가 있다.
사람에게는 뭐든 에너지 총량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 총량에 따라 어떤 일에 있어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중요도에 따라 열정을 기울인다.
그런 점에서 이세희는 모든 면에서 정력적인 존재였다. 패션이면 패션, 외모 관리면 관리, 그렇다고 그룹 일에 소홀한 것도 아니고 신성길드를 키우기 위한 방안에 골몰한다.
그러면서 자기 실력이 뒤처지지 않도록 부족한 시간을 쪼개 기어이 시간을 만들어 날 찾아와 지도를 받았다.
옆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게을러지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하게 된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더 많은 빌런들을 죽여야겠다. 기왕이면 완전 박멸이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겠지?
내가 왜 이세희의 노력을 말하느냐.
그동안 해 온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서다.
“하아! 하아!”
쓰러져 있는 이세희의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왔다.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두 눈에 서린 기세는 여전히 강렬했다.
“준호 씨. 평소보다 너무 거친 거 아니에요?”
“아닌데?”
“맞잖아요. 평소보다 훨씬 더 아팠어요.”
“눈치챘어?”
“짓궂어.”
목소리에 원망이 섞여 있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이세희는 강하게 몰아붙일수록 희열을 느끼는 성향. 그것을 자신이 성장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도 아무 이유 없이 이세희를 강하게 몰아붙인 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
“네? 왜요?”
“네가 레벨 7이 되었으니까.”
“…….”
“눈치 못 챘어?”
늘 막힘이 없던 이세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녀의 두 눈꺼풀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저, 정말요? 제가 레벨 7이라고요?”
“응.”
“말도 안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빈말을 하지 않는 걸 알 테니 사실임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이세희는 꼼꼼하게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원활한 포스 흐름, 확장된 감각 등 모든 것이 바뀐 자신의 모습을 느낄 것이다.
사람의 성장이란 건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아닌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앞이 가로막혀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다가 계기를 만나게 되면 그전까지의 장애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단숨에 그 단계를 뛰어넘게 된다.
그것이 그동안의 노력을 무용지물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만 전부 그 노력이 쌓이고 쌓여 결실을 맺는 것이다.
이세희도 어떤 계기를 통해 마침내 레벨 7이 된 것이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커피나 한 잔 사.”
“네! 물론이죠! 아예 커피 프랜차이즈를 하나 사 드릴까요?”
이세희 기세를 봐서는 진짜로 사 줄 기세였다. 오히려 내가 거절해야 했다.
“아냐, 됐어.”
“저도 농담이었어요.”
“농담할 힘은 있나 봐?”
“갑자기 힘이 나네요.”
방금 전까지 죽어 가더니, 레벨 7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히 부활했다.
이세희는 간단하게 씻고 오고, 그사이 나는 커피를 준비했다.
“맛있어요. 이제 보니 준호 씨 커피도 잘 타시네요?”
“손맛이야. 정확한 양을 완벽한 온도로 로스팅하면 돼.”
이것이 생각보다 많은 집중을 요했다. 특히 손끝의 감각을 단련하기 좋았는데, 정확한 양을 정확한 온도에서 볶아야 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상대를 죽일 때 손이 파고들면 손끝의 감각으로 기뢰를 퍼부어 모조리 파괴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부활하는 성가신 녀석들도 종종 있어서.
늘 기성 제품을 먹다가 한번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대접할 때마다 맛있게 먹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더더욱.
“마음 같아서는 준호 씨 데리고 커피 프랜차이즈 세우고 싶은데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한 트럭일 텐데?”
“농담이었어요. 그런데 물어볼 게 있다고요?”
“있지.”
“마음의 준비됐어요. 말씀하세요.”
별로 심각한 거 아닌데 괜히 긴장하고 있다.
“신성그룹은 다음 대선을 어떻게 보고 있어?”
내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대통령의 생각을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다음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내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내가 휘둘릴 일은 없겠지만 귀찮아질 일은 사전에 차단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 말이죠? 음, 솔직히 준호 씨나 제게는 여당이 계속 정권을 잡는 게 편하죠. 근데 냉정하게 말해서 여당에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어요.”
이세희는 그 이유가 나와 관련된 연이은 사건에서 여당 대선 후보들이 치명상을 입어서 그렇단다.
가장 유력하던 서울시장 한정문이나 전 당 대표 지창용이나 모두 말이다.
그러니까 내 탓이라는 건가?
내 생각을 눈치챈 이세희가 바로 수습했다.
“준호 씨 탓은 아니고요. 오히려 준호 씨에게 맞서려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 줘서 민심을 잃은 거죠.”
“야당은?”
“뚜렷하게 강한 후보가 없어요.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한 현영미 의원도 인기가 그다지 없고, 각성자를 법 테두리 안에 넣어야 한다는 강경파라서 준호 씨에게 좋지도 않고요.”
“확실히 귀찮아지겠어.”
“네. 여당에서 정권을 잡으려면 좋은 후보를 내놓아야 할 텐데 의외로 박빙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어디 국정을 잘 파악하면서 참신하고 준호 씨랑 잘 지낼 후보 없나.”
있다. 대통령은 이미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천명국을 준비해 뒀다.
지금 이세희가 말한 걸 전부 염두에 두고 천명국을 픽한 걸지도.
정작 당사자는 대선 후보로 찍힌 줄도 모르고 1년 뒤 그만둘 수 있다며 희희낙락 중이란다.
그렇게 나랑 마주하는 게 싫었나? 그럼 대선 후보가 되는 건 쌤통이군.
“대통령의 힘이 그만큼 강해서 그렇겠지?”
“네, 제왕적 권력이라고 비판하는데 진짜 권한이 강력하거든요.”
마물이 등장하기 전, 대통령의 강력한 힘은 임명권에 있었다. 마물의 등장 이후, 대통령의 강력한 힘은 정부 소속 각성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는 것이 이세희의 설명이었다.
“대통령 잘 뽑아야겠네.”
“네, 대통령은 저희 신성그룹도 중요하게 보고 있는 사안이니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공유해 드릴게요.”
“그래, 고마워.”
이세희의 말을 듣고 고민해 본 결과.
아무래도 천명국이 대통령 되는 게 가장 좋겠다.
* * *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사이, 정주호의 출근 첫날이 되었다.
부담이 가중되던 자리를 벗어던져서인지 정주호의 표정은 밝았다.
정주호의 후임으로는 대외협력관리국의 염기철이 임명되었다. 정주호가 뜨거운 열정으로 조직을 이끈다면 염기철은 차가운 이성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부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성과를 만들어 낸다. 그 덕에 차가운 피를 가졌다고 불린다.
초대 청장인 정주호가 자리매김을 했으니 조직을 관리할 적임자로 꼽혔다.
그를 추천한 건 정주호였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아니던가.
물론 표면적인 이유가 그거였다.
“염기철 그 녀석, 아마 죽어라 구르고 흙빛이 되어 후회할 거다.”
절친을 골탕 먹인 것처럼 정주호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무거운 감투를 벗어던진 그의 발걸음은 깃털 달린 것처럼 가벼웠다.
사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건네던 그는 같은 소속이 될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던 인물을 만났다. 바로 버서커다.
“정 청장. 아니, 정 이사. 온다고 들었는데 반갑군.”
“오, 버서커 님. 운명이란 게 묘해서 이렇게 한식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주호가 버서커보다 몇 살 더 많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존대하고 어린 사람이 반말하는 기이한 구도가 그려졌다.
하지만 둘 다 그걸 문제로 삼지 않았다.
“표정이 많이 좋은데?”
“부담스러운 짐을 던지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왔는데 당연하지요. 하하!”
“편하게? 여기가?”
금시초문이라는 버서커의 표정.
불안 기류를 감지한 정주호가 싱글벙글하던 표정을 지웠다.
“그야 우리 대표가 여기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했고…….”
“그 말을 믿었나?”
“정부 관계자와 이해관계 조율만 하면 되는데 힘든 일이 있겠습니까.”
정주호는 그걸 보고 함께 일하기로 했지만 가만히 듣던 버서커는 혀를 찼다.
“쯧! 완전히 속았군.”
“뭐, 뭘 속았단 겁니까?”
“최준호가 어디 남 편하게 있는 걸 보는 사람이던가?”
“…….”
꽃밭이던 머릿속에 백만 볼트 전류가 찌릿하게 작렬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정주호는 버서커의 말이 10,000% 옳다는 걸 깨달았다.
최준호와 연관된 사람은 피골이 상접한 게 기본 옵션이었다.
“같은 최준호 노예끼리 잘 지내 보자고.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 테니까.”
“…….”
버서커의 위로 아닌 위로에 정주호는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위를 잘 둘러보면 빠져나갈 길은 있을 것이라. 힘들다고 툴툴대도 막상 일이 주어지면 잘 해내는 것이 정주호의 진면목이기도 했다.
첫 회의에서 정주호는 최준호의 미사일 구매 타령에 곧바로 대안을 내놓았다.
“군수 회사를 인수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마물의 등장 이후, 군수 회사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눈치 빠른 회사는 재빨리 각성자 무구를 만드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했고, 영세한 곳은 망해서 사라졌다.
대체하기 힘든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는 살아남았지만 수요가 줄어들면서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정부에서 판매하지 않겠지만 이쪽 제스처를 보고 무기 판매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낼 확률이 높습니다.”
“정부가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군수 회사를 인수하면 됩니다. 대표님이 원하는 무기를 마음껏 만들 수 있죠.”
정부는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란 게 정주호의 생각이었다.
“그 부분은 정 이사님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예, 정부가 미사일을 판매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래, 이걸로 수월하다. 정주호는 버서커가 자신에게 말했던 걸 단순히 겁주고 있던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하면 된다.
“다음 안건이 있는데요.”
그리고 진세정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정주호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저우콴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저 불행한 비행기 추락 사고였고 최준호는 무관하다 생각했던 정주호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애써 신경 쓰던 존대마저 집어치우고 물었다.
“자, 잠깐!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저우콴이 죽은 게 비행기 추락 사고 때문이 아니라 네가 한 거라고?”
“아, 이사님은 모르고 계셨어요? 제가 다 죽이고 비행기 추락시켰습니다.”
“미, 미친!”
“증거는 걱정하지 마세요. 블랙박스까지 철저하게 파괴했으니까.”
“내가 지금 그거 때문에 놀라고 있겠냐고!”
“그럼요?”
“어? 그, 그러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반문하는 태도에 정주호는 말문이 막혔다. 자리에 있는 버서커나 진세정이 담담하게 있으니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정말 자신이 이상한 건가? 최준호가 이상한 게 아니라?
“독재자가 죽고 민주 정권이 들어섰으니 모두에게 좋은 전개죠. 아, 저우 가 집안에는 불행이려나?”
“…….”
그, 그런 건가?
정주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고개를 끄덕이다 자리에 앉고 말았다.
뒤이어 어떻게 하면 여론을 돌릴지 기상천외한 방법을 제시하는 진세정의 말을 들으면서 정주호는 여기 있는 녀석들 중 정상인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 만에 탈출이 마려웠다.
* * *
확실히 정주호를 데려온 건 훌륭한 선택이다. 미사일 구매에 훌륭한 대응 방안도 바로 뚝딱 내놓고.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의 존재는 언제나 든든함을 안겨 줬다.
정주호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인 거 같고.
[그 인간, 절규하던데?]“좋아하는 방식이 좀 독특한 양반이야.”
[그래? 내가 느낀 거랑 많이 다른데.]용용이 녀석, 나와 정주호 사이를 이간질하기는. 그래 봤자 나와 정주호 사이는 틀어지지 않는다.
[아니, 이게 무슨 이간질이야. 난 사실만 말한 건데.]용용이가 억울한 척해 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마치고 나올 무렵이었다.
[응?]용용이 반응도 그렇고 나도 공간 너머의 이질감을 느끼고 멈칫했다. 그때, 공간이 빵 반죽 갈라지듯이 틈을 보이며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 곳에 있어야 할 현아였다. 익숙한 얼굴에 난 경계를 풀었지만 날 마중 나왔던 멍멍이는 아니었다.
멍!
멍멍이가 앞으로 뛰쳐나가 경계를 취했다. 현아의 투명한 눈동자가 멍멍이에게 향했다. 힘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지자 멍멍이는 기세에 밀려 주춤했지만 끝까지 버텨 냈다.
“주인을 지키려는 거야? 무모하지만 귀엽네.”
현아가 멍멍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이건 선물.”
푸른 포스가 멍멍이 머리 위로 아른거리더니 사라졌다.
“무슨 선물이야?”
“물속에서도 지상처럼 움직일 수 있는 능력.”
…굉장히 좋은데? 나도 갖고 싶은 능력이다.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현아가 말했다.
“넌 너무 강해서 안 돼.”
“그거 아쉽군. 근데 무슨 일로 왔지?”
“정수에 대해 할 말 있어서.”
“그래? 그럼 올라가지.”
난 현아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용용이 녀석, 현아가 등장하니 평소의 깐족거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조용히 뒤따라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정수가 곧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럼 가서 찾아오면 되겠군. 하지만 편하게 찾을 수 있다면 굳이 여기까지 직접 오지 않았을 거다.
“근데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다른 신수도 개입했어.”
“누구?”
“천둥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