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그래서 정수는 어디 있냐.”
[자세한 건 네가 찾아봐야지!]“설마 못 찾는 거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말끝을 흐리는 녀석의 모습은 굉장히 수상해 보였다. 쉽게 가려고 했는데 또 딴 곳으로 새려고 하네.
난 똥이 마려운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용용이를 지켜보다가 재촉했다.
“할 말 있으면 바로 해라.”
[알았어. 현아는 정수를 회수하려고 생각 중인 건 알지? 근데 내 생각은 달라.]이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용용이는 현아랑 뜻을 같이하는 게 아니었나?
“어떻게 다른데?”
[정수는 조건에 따라 신수로 탄생시킬 수 있어.]“그래?”
[하긴, 인간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지.]“자세히 얘기해 봐.”
정수를 회수해서 현아한테 가져다주고 혈종을 찾아낼 생각밖에 없던 차에 허를 찔린 셈이었다.
신수의 정수는 육체를 갖추지 못한 힘이 떠도는 게 아니었나? 그런데 그 힘이 신수로 자라날 수 있다니.
달걀을 사서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거 같은 건가.
[그런 거 아냐!]“아니면 말고.”
[아무튼! 현아는 매사에 칼같이 자르지만 난 달라. 신수가 육신을 갖추지 못한 건 자신의 의지도 있지만 주변 여건이 따르지 않은 경우도 많아. 계기를 만들어 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지!]“신수로 탄생시키려는 이유가 뭔데?”
[천둥새를 견제해야 돼.]용용이 목소리가 드물게 단호했다. 천둥새라, 현아에게 듣기는 했지만 다른 신수와 다르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다.
[나와 현아가 천둥새를 견제하지만 다른 신수는 관망하고 있어. 이 균형을 더 무너뜨리려면 아군이 필요해.]“새로 등장한 신수가 너희 편이 된다는 확신은 있고?”
[있어.]용용이는 그 확신에 대해 설명했다.
[현아와 천둥새가 주도권 다툼을 하면서 정수는 천둥새가 가진 의지를 접했을 거야. 걔가 가진 욕심은 신수와 상극이야.]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가정으로 이루어진 말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신수가 천둥새에 동조하면 어쩌려고.
[안 그럴 거거든.]“네가 어떤 생각인지 알겠는데, 이건 기각.”
[아, 왜!]“처음부터 자세한 내막을 설명했으면 모르겠지만 속내를 꽁꽁 감추다가 이제 와서 설명하면 내가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일 줄 알았냐?”
그리고 기브 앤 테이크는 현아 측이 훨씬 더 깔끔했다. 계산이 모호한 용용이 녀석의 손을 잡느니 차라리 현아와 약속을 지켜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것이 깔끔하다 싶겠다.
이런 걸 자업자득이라고 한단다, 용용아.
[내가 말했으면 현아한테 바로 알렸을 거잖아.]“정답!”
[봐 봐!]“그래도 안 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자기 속내를 감추고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녀석이다. 용용이는 딱 거기에 부합하는 짓을 했다. 넌 괘씸죄도 추가다.
[쳇!]혀를 차면서 용용이는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더 숨기는 건 없냐?”
[없어! 대체 날 어떻게 보는 거야!]“넌 음흉한 녀석이라서 다른 생각도 더 갖고 있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용용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평소에 띨빵한 것도 그렇고 진짜 얘는 신수가 맞는 건가? 아무리 봐도 럭키 마물이 신수 행세하는 거 같은데.
[쳇.]혀를 찬 녀석이 더 말을 하지 않으니 나도 갈구는 걸 멈췄다.
“정수나 찾으러 가자.”
[알았어.]용용이는 힘의 흐름을 따라가지 말고 여러 갈래 흐름 속 중심에 정수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감각을 교란하는 현란한 움직임이 감지되었지만 용용이 말대로 정수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정수에 접근하려는 마물의 목을 하나씩 비틀었다.
정수가 얼마 남지 않았군. 용용이 조언을 제외하더라도 마물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면 정수를 찾을 수 있을 듯했다.
그때 경악한 용용이 외침이 들려왔다.
[어?]“왜?”
[마물 반응이야.]“마물이야 여기에도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수준 높은 녀석이야! 너희가 플러스 단계라고 말하는 녀석이라고! 어떻게 여기까지 기척을 숨긴 거지? 내 감각을 속이고 있었어!]용용이가 말하길, 그 마물은 곧장 정수가 있는 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단다.
그 말은 목표가 정수란 의미겠지. 플러스 단계 마물이 정수를 취한다? 그럼 투뿔 마물로 진화한다는 의미였다.
투뿔 마물을 상대해 보고 싶긴 했는데 내 재미를 위해 허용해 줄 수 없지.
“바로 간다.”
[응!]난 정수가 있는 곳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
* *
한라산을 오른 어스 드래곤은 산 전역에 퍼져 있는 ‘위대한 존재’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모든 기척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위대한 존재의 감각은 남몰래 힘을 기른 어스 드래곤조차 피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산 전역을 커버하느라 감시가 삼엄하지 않았다. 어스 드래곤은 위대한 존재의 감각에 걸려들지 않게 조심조심, 천천히 접근했다.
목적지는 산 정상에 위치한 위대한 존재의 힘.
저곳에 위치한 힘을 취한다면 위대한 존재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을 손에 넣게 되면.
크르르르!
낮게 울며 살기를 발산하던 어스 드래곤은 위대한 존재를 상기하고 기세를 죽였다. 아직 발톱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죽어 가는 부인과 자식을 두고 자신은 한없이 무력했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들어 복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알아차린 어스 드래곤은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조차 잊을 정도로 참아 내며 발걸음을 돌렸다. 목숨에 미련은 없지만 가족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고 죽을 것이다.
그 고지가 마침내 눈앞에 들어왔다. 위대한 존재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원수와 대등하게, 아니 원수를 압도할 수 있게 된다.
파앗!
정수를 향해 접근하던 어스 드래곤은 자신과 원수의 거리가 상당히 나는 것을 파악하고는 그때부터 존재감을 감추지 않고 정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공음이 동반한 채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원수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자신보다 빨리 도착하지 못하리라.
뒤늦게 위대한 존재가 자신을 감지했지만 이미 선수를 잡은 건 자신이다.
좁힐 수 없는 거리 차이.
어스 드래곤은 위대한 존재의 힘을 자신이 취할 수 있을 거라 100% 확신했다.
복수의 순간이 다가온다. 저 힘을 취하고 죽은 듯이 숨어 지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 뒤, 원수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앗아 간 것처럼 자신 또한 원수의 소중한 걸 모조리 불태우리라.
저 멀리 목표가 눈에 들어왔다.
무한한 힘을 품은 저 빛은 자신의 미래를 환하게 밝히리라.
마침내 부인과 자식의 복수를…….
하지만 어스 드래곤 앞에 도달한 것은 정수가 아닌 날카로운 포스 칼날이었다.
콰앙! 쾅! 콰과과광!
가죽을 두드리는 날카로운 예기들. 포스를 운용한 어스 드래곤은 그것을 모조리 몸으로 받아 냈다. 여기에서 물러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가죽이 갈라지고 피가 튀는 와중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정수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거 찾고 있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원수가 정수를 든 채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
* *
간발의 차이였다.
용용이의 감시망이 느슨한 한계까지 파고든 뒤 전력을 다해 정수가 있는 곳으로 향하다니.
하마터면 엄한 놈에게 정수를 내어 줄 뻔했다.
마물 중에 이 정도 지능을 지닌 녀석이 있었나? 자칭 신수라는 용용이보다 더 머리가 좋은 거 같은데.
[말이 좀 심하잖아. 내 덕분에 안 뺏겼는데!]오냐. 용용이 네 덕에 얻은 거니 진정하렴.
[알면 됐어. 앞으로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징글징글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 너 잘났다.
용용이를 일별한 나는 무지막지한 살기를 흘리고 있는 어스 드래곤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시 생각해도 다된 밥에 코 빠뜨릴 뻔한 순간이었다.
“약삭빠른 놈이네.”
겉모습은 무식하게 생겼는데 잔머리 돌아가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응?”
저 모습은 어디서 본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안동에 갔을 때 어스 드래곤 성체와 새끼를 사냥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 가족이라면 한 마리 더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내 등장하지 않아서 포기했었지. 만약 정다현이었다면 모조리 끄집어냈을 텐데 내 부족함을 실감하던 순간이었지.
그런데 공교롭게 어스 드래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날 보더니 살기를 감추지 않고 있고.
“뭐야, 복수하러 힘을 길러 온 거냐?”
마물이면 지능이 별로 높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복수를 하기 위해 힘을 길러 기어이 날 찾아오다니.
“대단하다.”
짝짝짝!
난 진심을 담아 어스 드래곤에게 박수를 쳐 줬다. 그래, 한낱 마물도 복수를 위해 이렇게 심기일전하는데 자기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녀석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캬아아악!
내 찬사에 돌아온 것은 포효였다. 살기를 띤 어스 드래곤 주변으로 포스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흔히 마물들이 보여 주는 폭주 방식이 아니다. 상당히 정제되어 있는 형태였다.
[무슨 마물이 힘 사용이 저렇게 능숙해?]용용이 감탄이 내가 느끼는 것과 같았다.
역시, 싹수가 있으면 그때그때 제거해야 한다. 가만히 놔두니 이렇게 성장해서 돌아오지 않나.
앞으로도 싹수 있는 적은 보이는 족족 밟아 짓이겨 주기로 다짐하면서 나는 신수의 정수를 용용이한테 던졌다.
[와악! 이 귀한 걸 왜 던져!]“딴짓하지 말고 잘 보관하고 있어. 딴생각하면 바로 현아한테 전달할 거니까.”
[칫, 알았어.]용용이는 불만이 역력한 기색이었지만 내가 거기까지 알 바는 아니고.
“그럼 시련을 거치고 돌아온 복수의 주인공과 부딪쳐 볼까.”
캬악!
어스 드래곤이 지면을 박차고 앞발로 할퀴어 왔다. 자욱하게 일어나는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살벌한 예기가 내 위를 덮쳐 왔다.
의도적인 건가? 마물 주제에 야비하면서 영리한 수법을 구사한다.
얇게 펼친 포스막으로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걸 방지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위를 쓸어 오는 발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기뢰를 퍼부어 줬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기뢰가 어스 드래곤 내부를 요란하게 울렸다. 약간의 타격을 줬지만 플러스 단계 마물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난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어스 드래곤에 따라붙었다.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앞발을 요란하게 휘둘렀다. 교묘하게 속임수까지 섞어 내 리듬을 흩뜨리려고 하는 것에서 감탄했다.
살려 두면 두고두고 골치 아파지겠는데?
녀석의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파가 스쳤음에도 제법 깊은 상처가 생겨나면서 피가 흘러내렸다. 만약 투뿔 단계에 도달했다면 더 성가셨겠다.
그래도 위험을 감수한 만큼 어스 드래곤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꽝!
녀석의 다리 하나가 부러지면서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여세를 몰아붙이려 했지만 녀석의 입에서 뿜어진 독가스 브레스에 더 접근하지 못했다.
캬아아아!
날 향해 살기를 뿜어내던 녀석이 부러진 다리를 억지로 받치더니 그대로 일어섰다.
콰드드득!
놀라울 정도로 터프한 녀석이었다. 휘어졌던 다리를 억지로 맞춰 버리다니.
오직 날 죽이겠다는 의지가 여기까지 전해졌다.
이게 주인공의 근성이라는 건가.
“이거, 내가 복수물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 역할인가.”
근데 그거 아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정의가 승리하지, 현실에서는 악이 더 많이 승리한다.
*
* *
전신이 온전한 곳이 없다.
흐르는 피가 많아질수록 어스 드래곤은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역부족이었다.
위대한 존재의 힘을 얻지 못한 자신의 힘은 원수에게 닿지 못했다.
어떻게든 원수의 팔다리라도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자신을 역이용하여 철저하게 힘을 빼놓았다.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몸이 뜻대로 따라 주지 않으면서 자연히 움직임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원수의 손에 닿을 때마다 가죽이 터지고 뼈가 부러졌지만 억지로 맞춰 버텨 내려고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닿을 것이다.
그 희망을 갖고 모든 힘을 쥐어 짜내 공격을 퍼부었다.
캬아아아!
하지만 단 한 번의 공격도 원수에게 닿지 않았다.
쿵!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원수의 손끝에서 쏟아진 폭풍이 덮쳐 왔다.
가죽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눈앞에 원수가 다가오는 걸 보고 어스 드래곤은 몸을 내던졌다. 이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갤 수만 있다면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그마저도 유령처럼 비켜서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법이야. 근성이 인상 깊을 정도로.”
바로 앞에 도달한 원수가 그리 말했다. 저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녀석의 손에 죽은 부인과 자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스 드래곤은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크르르르.
제대로 뿜어지지 않았지만 독가스 브레스였다. 마물의 가죽조차 녹여 버리는 거라면 저 원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스는 원수에게 도달하자마자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만독불침이 없었으면 꽤 골치 아팠을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한 수마저 실패였다.
모든 수단이 막혀 버린 어스 드래곤의 전의가 소멸되었다.
“원래 세상은 배드 엔딩이야.”
콰드득!
모두 미안…….
고개가 90도로 꺾인 어스 드래곤의 눈에 빛이 명멸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