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꽤 정신 사나운 녀석이었다.
“…….”
난 어스 드래곤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죽인 녀석이지만 언제 어느 순간 귀찮은 일이 발생할지 모를 일.
녀석의 머리로 기뢰를 퍼부어 뇌를 부숴버렸다.
쾅!
마물의 뇌도 비싼 부위지만 상식 밖의 전개가 많이 벌어지는 세상이라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 미리미리 처리해두는 게 낫다.
설마 뇌가 부서지고도 되살아나는 짓은 하지 않겠지.
어스 드래곤을 처리한 나는 용용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수 내놔.”
[…….]“안 내놓냐?”
[알았어.]용용이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내게 정수를 넘겨주었다.
환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정수는 손을 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강렬한 반발력을 동반하고 있었다.
딱 봐도 수상한 반응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야.]고작 에너지 형태 주제에 앙칼지기는. 몇 번 반발을 일으켰지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니 더 튕겨내지 못하고 내 손에 들어왔다.
안에 서려있는 힘은 치명적이고 요사스러웠다.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힘은 누구나 탐욕스러운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다.
힘이란 건 그런 법이다.
아무리 넘쳐나도 모자람을 느끼는 것.
힘으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세계에서 그것을 향한 탐욕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예전부터 인간은 힘에 취해 금기를 범하고 노예로 전락했어. 조심해야 돼.]“내가 그럴 거 같냐?”
[아니, 전혀. 그냥 해본 말이야.]“이대로 가져가면 되는 건가?”
[응, 자체 수복 능력도 있으니 관리에 공들일 필요는 없어.]그렇게 대답하는 용용이는 여전히 미련이 묻은 눈으로 정수를 쫓고 있었다.
“신수로 만들고 싶으면 네가 설득하던가.”
[내가 미쳤어? 뭣하러 매를 벌어! 아마 쓸데없는 짓 한다고 엄청 뭐라고 할 걸?]잘 알긴 하는군.
관리에 그렇게 공들일 필요가 없다니 난 정수를 대충 챙겨 들고는 아까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 걸 처리하기로 하고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지?”
파직! 파지직!
손을 뻗어 기뢰를 발출하자,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균열이 일어나며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일전에 접한 적 있던 아르고스의 눈동자였다.
난 저 눈동자의 힘을 추적하려고 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힘의 여파에 미간을 모았다.
전이를 통해 쫓는데 실패했다는 건 생각보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용용이가 있지.
“저거 못 쫓냐?”
신수의 능력이라면 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이 근처에 없어. 불가능해.]“얼마나 멀리 있는데?”
[이 근방 국가는 아니야.]“정찰만 보낸 거였나.”
지켜보던 녀석을 쫓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녀석이 원하던 걸 손에 넣은 건 나니까. 난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고 어스 드래곤 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 *
콰직!
손에 들린 눈동자가 부서져 붉은 피가 흘러내리다가 이내 연기로 화하는 걸 보며 헬 마스터는 호들갑을 떨었다.
“와! 진짜 알의 말대로였네? 이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기프트를 완성하기 위해 신수의 잔해를 쫓던 헬 마스터는 제주도에 등장한 잔해를 찾기 위해 바로 제주도로 가려고 했다.
그런 그를 막은 것은 아르고스였다. 한국은 최준호의 영역인 만큼 그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걸 들어 기어이 헬 마스터의 뜻을 꺾었다.
평소의 아르고스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기에 헬 마스터는 미심쩍어하면서 받아들였다.
그래도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아르고스의 능력을 빌려 상황을 엿보았다.
틈이 생긴다 싶으면 신수의 잔해를 탈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핏 본 최준호의 무위는 충격적이었다.
탈취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알처럼 잔해를 얻은 건가, 아니 그렇게 해도 저 힘은 상식 밖 아냐?”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무위였다. 자신의 ‘절대적인 죽음’조차도 죽음으로 이끌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상대였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헬 마스터는 자신이 오만했음을 인정했다.
기프트 쿨타임이 도래하지 않은 지금은 더더욱 상대하기 어렵다.
“설마 잔해가 등장할 때마다 찾아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럼 곤란한데.”
이번에는 거리상 한계가 존재해서 쉽게 포기했지만 다음에 등장할 신수의 잔해를 차지하기 위해 또 등장한다면 곤란해지는 건 자신이다.
“알하고 논의해봐야겠네.”
떠날 때만 해도 당당하게 나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헬 마스터는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 * *
“이번 소란은 이 어스 드래곤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까?”
내 연락을 받고 어스 드래곤의 사체를 수습하자, 제주도에서 벌어진 소란이 졸지에 플러스 단계 마물의 등장으로 인한 것으로 바뀌었다.
정수가 나타나서 생태계에 혼란이 온 거니 비슷하긴 했다. 신수의 정수 존재를 밝히기 그러니 어스 드래곤에 다 뒤집어씌우자.
죽어서도 다 퍼주는 어스 드래곤이다.
“예. 갑작스럽게 자리를 잡으면서 생태계에 혼란이 온 거 같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일이…….”
제주도지사는 마음에 안 드는 기색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내가 더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고 하니 적잖이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그것도 잠시, 내가 한라산을 올라가면서 전달했던 사실을 떠올린 제주도지사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그리고 민간인을 학살한 범인은 중국 측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마물이 등장하기 전, 한라산을 등반하던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마을이었다. 산에 오르기 위한 요충지에 위치해 있던 것이 증인을 제거하기 위해 학살을 저지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몇몇 밀입국한 자들도 있지만, 돌아갈지언정 민간인 학살은 지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자들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입니다!”
제주도지사는 내가 죽인 중국인들의 시체를 내밀어도 중국 정부가 인정할 리 없다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마을 주민들의 죽음은 말 그대로 무의미한 것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변화를 끌어낼 수 있겠지.
도민의 죽음에 이토록 분노하는 걸 보면서 제주도지사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가 변방 취급이라 부각되지 않는 건가? 대통령에게 한번 말을 잘해봐야겠다.
“정부에 이야기를 해보시지요. 저도 한 번 언급하겠습니다.”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물의 사체 말인데.”
어스 드래곤이 제법 성가시게 덤벼들어서 시체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되살아날 걸 방지하기 위해 머리도 부숴버렸고. 그로 인해 가치가 크게 떨어졌지만 남은 것만 해도 값어치가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이걸 모처럼 깊은 인상을 준 제주도지사에게 주기로 했다.
“제주도에 기증할 테니 장비를 만들어 쓰면 좋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배로 실어 가져가기 번거롭네요.”
“감사합니다! 투명하게 사용하겠습니다. 제주도를 위해 베푼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요.”
그래도 제주도지사는 거듭 감사를 표했다. 투명하게 사용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내역서를 첨부해서 보내겠다고 말했다.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군.
이제 할 것도 다 했고 슬슬 돌아갈까 싶었는데 제주도지사가 날 붙잡았다.
“그러지 마시고 한 끼 대접할 기회를 주십시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은인 아니십니까. 이대로 보내드리면 인심 없다고 욕먹기 좋습니다.”
“정말 괜찮은데요.”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된장찌개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제주도에 오분자기라는 특산물이 있는데 이걸 된장찌개에 넣으면 그렇게 별미가 또 없습니다.”
다른 거라면 미련 없이 지나쳤을 텐데 된장찌개라고?
“…오분자기 된장찌개요?”
“예, 한 번 드셔보시지요. 맛이 아주 죽입니다.”
“성의를 외면하는 건 잘못된 일이니 한 끼 먹고 올라가겠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제주도지사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음, 결과적으로 오분자기 된장찌개 픽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걸 먹고 제주도에 온 보람을 느꼈다면 말을 다 한 거지.
제주도지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분자기를 선물해주고 맛있게 먹는 레시피까지 공유해줬다.
아주 옳게 된 생각을 가진 양반이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온 나는 대외적으로 제주도에 나타난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한 걸로 알려졌지만 내부에서는 제주도에 등장한 보물을 노리던 여러 국적의 각성자들을 모조리 죽인 것 까지 보고됐다.
그런 와중 제주도지사와 내게서 민간인 학살 보고를 들은 대통령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중국 쪽에 항의를 넣어보도록 하지.”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한데?
내 옆으로 다가온 천명국이 속삭이듯 말했다.
“과거의 그들이라면 적반하장으로 나왔을 테지만 현재 내전 중이니 만큼 사과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쉬운 건 그쪽이라서 그렇단다.
예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나.
다시 생각해도 위하오를 풀어준 일은 잘한 선택이었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받아내겠습니다.”
천명국도 상당히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타국의 각성자가 자국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음, 대통령을 해도 잘할 것 같은데?
그런데 아직 자신을 대통령이 후계자로 점 찍어 놓은 걸 모르는 눈치였다.
뭐, 굳이 산통을 깰 필요는 없으니까 나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일지 살짝 궁금해지기는 하는데.
“왜 그렇게 보시는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건 그때의 재미로 남겨두면 되겠지.
* * *
보고를 끝낸 뒤 나는 용용이를 통해 현아와 약속을 잡았다.
야심한 새벽,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파괴된 부둣가에 도착한 나는 브루나이에서 봤던 것처럼 등장하는 현아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신경을 썼는지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매번 말해도 개선이 잘 되지 않는 용용이랑 확실히 다르군.
[거기서 난 또 왜 나와.]그냥 너만 보면 시비가 걸고 싶더라. 불만이면 잘하던가.
[내가 무슨 동네북인 줄 알아?]본인을 저렇게 철저하게 객관화하기 힘든데 확실히 신수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군.
[알면 됐어!]그걸 또 으쓱하는 걸 보면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여기서 더 건들면 화낼 테니 참아야겠지.
난 어느새 다가온 현아를 보고 용용이한테 시비 거는 걸 멈추고 한라산에서 취한 정수를 내밀었다.
“받아.”
“고마워.”
정수를 받아든 현아는 잠시 그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았다.
뭘 하려는 거지?
[어! 너, 설마! 잠깐만!]놀란 용용이가 소리쳤지만 현아의 행동이 더 빨랐다.
손 위에 놓인 정수가 홀로 떠오르더니 빛의 발광이 더 심해지다가 여러 개로 나뉘어 사방에 흩어졌다.
나눠서 보관한 건가? 아니면 다른 쓰임새가 있는 건가?
지켜봐도 모를 현상이라 물어봤다.
“어떻게 한 거지?”
“자연으로 되돌렸어. 이걸로 죽음으로 물든 세계에 생기가 깃들게 될 거야.”
어렵게 손에 넣고 가져온 것에 비하면 참 간단한 처리였다.
뭘 하려고 찾아달란 거 아니었나? 이렇게 쉽게 처리를 해 버린다고?
슬쩍 옆을 보니 용용이가 망연자실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용용이는 저걸 신수로 만들자고 하던데?”
[아, 그걸 왜 말하는 건데!]설마 우리 사이에 나눈 대화를 비밀로 진득하게 지켜줄 줄 알았냐.
아니나 다를까 나른하던 현아의 눈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용이가 또 그런 쓸데없는 소릴 했어?”
“별론가?”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쉬자 용용이가 움찔 몸을 떤다. 이거 뭔가 있군.
“용이 넌 이따 나랑 얘기 좀 해.”
[내가 이상한 걸 얘기한 게 아니잖아.]“계속 우길 거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난 그냥 그것도 가능하다고 한 번 얘기한 건데 저 인간이 치사하게 고자질을…….]점점 죽어가던 용용이 목소리는 현아 눈초리에 진압되고 말았다. 역시 꼼짝 못하는군. 근데 뭐 때문에 그런 거지? 아쉽게도 현아는 그것까지 말해줄 생각은 없나보다.
“그럼 이제 정산을 할까.”
“응, 약속은 지켜야지.”
“아주 좋은 태도야.”
드디어 혈종을 만나게 되는 건가.
“네 안에 깃든 또 다른 인격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
“그래, 미친놈이지.”
“미쳤어?”
미친놈을 미친놈이라고 하는데 반응이 왜 저러지?
“그 녀석을 찾아내서 없애고 싶다.”
“쉽지 않아. 둘은 하나면서 둘이거든. 그리고.”
현아가 날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널 기준으로 하면 별로 미치지 않은 거 같은데…….”
[봐봐, 내 말 맞지? 오히려 네가 더 미쳤어!]용용이 녀석, 내가 고자질했다고 보복하는 건가? 절대 흘려버릴 수 없는 말을 한다.
“헛소리.”
[진짜라니까! 그치?]“인간의 미친 기준을 잘 모르겠어. 우선 넌 인간으로 보면 정상이지?”
“당연히.”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온 시점부터 각별히 노력 중이다.
그 노력을 고고하게 살아온 신수들이 알 리 없지.
“그럼 네 안에 있는 애도 정상인데…….”
“내가 미친 거면?”
“쟤는 살짝 미친 정도?”
“…….”
미치고 팔짝 뛰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