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아무래도 신수여서 인간의 미친 기준에 대해서 잘 모르나보다.
용용이도 그렇고.
하긴, 신수에게 인간의 기준을 적용시키는 건 무리일지도.
그냥 잘 몰라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기로 결정내렸다.
[그게 아니야. 진짜 네가 제일 미쳐있어!]굳이 관철시키려는 용용이 네 의도가 더 사특하게 느껴지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아, 답답해!]내가 할 말을 자기가 하기는.
난 난리법석 떠는 용용이를 제쳐두고 현아를 보고 말했다.
“아무튼 여기까지 하지.”
“알았어.”
현아는 더 이상 미쳐있는 것과 정상의 기준에 대해 논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질척거리는 용용이와 달리 깔끔하군.
“이건 선물이야.”
현아가 손을 내밀자 손바닥 위로 푸른 물결이 휘몰아치더니 작은 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받아.”
“이게 뭐지?”
“네가 원한 거.”
난 일단 보석을 받아들었다. 미약한 포스 흐름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었다.
“포스로 활성시킨 뒤 머리 앞에 두고 안에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면 돼.”
“이게 들어간다고?”
“응. 내가 임시로 형태를 만들었지만 환수의 작은 파편이거든.”
환수는 또 처음 듣는 이야기다. 현아는 바닷속에 마물 말고 환수도 존재한다고 하는데, 정신체로 이루어진 환수의 파편으로 내 심상의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능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크기가 작아 일회용이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혈종은 찾을 수 있을 거란다.
대단한 보물이로군. 손에 쥔 보석을 굴리고 있으니 현아가 멀뚱한 눈으로 날 보았다.
“나 용건 끝났어.”
“여기서 사용하란 게 아니었냐?”
“스스로 관조할 수 있는 장소에서 사용하는 게 좋아. 내 앞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너도 원하지 않잖아.”
그건 당연한 소리.
기왕이면 용용이도 데리고 가면 좋겠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현아가 용용이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용이는 나랑 할 얘기가 있는데 나중에 보내줘도 돼?”
“나야 좋지. 그럼 오늘 바로 사용해도 되겠어.”
[내가 무슨 방해꾼인 것처럼 얘기하네.]“방해꾼인 걸 이제 알았냐.”
[이씨.]뭔가 집중해야 할 일 있을 때 용용이 녀석이 있으면 은근히 정신이 사나웠다.
[말이 심하네.]“내가 틀린 말 했냐?”
[섭섭하네, 그동안 내가 도와준 게 얼마나 많은데.]그건 금시초문이라. 아무튼 나는 현아에게 용용이를 떠넘기듯 맡기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
* *
빠르게 멀어지는 최준호의 신형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갔네.”
[갔어.]“용아.”
[으, 으응.]무심하지만 서늘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용용이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같이 다니는 건 좋지만 저 인간을 다룰 수 없다면 불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말았어야지.”
[미, 미안해! 잘못했어!]용용이는 저항을 포기하고 싹싹 빌었다. 그럼에도 현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용용이를 바라보았다.
이 침묵이 용용이는 미치도록 싫었다. 차라리 최준호처럼 시큰둥한 반응이라도 나오면 대응을 할 텐데 무심한 현아는 언제 어떤 반응이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
“다음에는 같은 실수하면 용서 안 해.”
[응, 그럴게!]“그리고. 정수를 신수화 시킨다는 발상은 너무 위험했어.”
[하지만 네게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크잖아. 차라리 아군을 늘리는 게…….]“그게 실패하면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알잖아.”
[…….]주장을 내세우던 용용이의 말문이 닫혔다. 여기에서 현아가 말하는 건 ‘최악의 상황’을 의미했고, 최준호에게는 성공을 자신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신수는 누구의 뜻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보고 겪은 걸 바탕으로 판단하여 오롯이 존재하는 신수는 용용이 바람처럼 천둥새를 타도해달라고 해도 타도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형태를 갖지 못한 정수가 신수로 성장할 경우 어딘가 뒤틀린 극단적인 사고를 가질 확률이 높았다.
“자신감을 갖는 건 좋지만 그게 지나치면 안 돼. 우리는 스스로 자부심을 가진 존재니까. 반쪽짜리를 이용만 하려는 거 아니지?”
[아니야.]“힘에 취해서 신을 자처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응. 난 그런 거 관심 없어.]“그럼 됐어.”
[난 그래도 넌 어떤데?]“잘 모르겠어.”
신수들만 존재하던 시절, 세상에 이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은 인간대로, 신수는 신수대로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면 됐으니까.
하지만 마물이 등장하면서 균형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신수들은 저마다 방향을 선택하고 있었다.
직접 인간으로 의태하여 인간 세상에 들어간 신수가 존재하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간과 협력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아예 세상의 시선을 피해 숨어든 신수도 존재한다.
용용이와 현아는 그 중간에서 어중간하게 걸쳐져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의외네.]“뭐가?”
[원래 너라면 고민도 하지 않고 관심 없다고 했을걸.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응. 막상 세상과 접해보니 재밌었어.”
특히 최준호를 따라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무작정 거리를 두는 것보다 직접 겪어보는 게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그럼 천천히 고민해봐. 어차피 다른 애들이 나댄다고 하루아침에 무너질 세상도 아니고 즐기면서 머리 좀 식히고 결정내리면 되지.]“…용이 답지 않은 현명한 조언인데?”
[대체 내 이미지가 평소에 어떻게 된 건데!]“귀엽다는 이야기였어.”
[그 말 때문에 봐 준다.]용용이는 눈을 흘기면서 용서를 해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아는 상념에 빠져들어 있었다.
긴 세월을 살아가는 신수에게 있어 인간의 수명은 찰나의 순간. 용용이의 말이 옳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릴 필요 없이 흐르는 대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마음이 기우는 곳에 서면 된다.
[역시 내가 있어야 된다니까.]거슬리는 용용이 태도만 빠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
* *
현아와 용용이와 헤어진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하필 가는 날이면 장날이라고 했던가.
오는 길에 빌런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라면 흔적의 끝을 쫓았겠지만 그보다 혈종을 처리하는 게 먼저여서 집으로 향했다.
대신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가수호국에 연락, 빌런의 흔적을 쫓도록 지시했다.
멍!
집안으로 들어오니 가장 먼저 멍멍이가 반겨주었다. 며칠 안 본 사이 덩치가 더 커진 녀석은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내게 다가와 복종을 표한다.
저번에 달보드레를 상대한 이후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그래도 좀 더 빨리 성장해서 한라산에 왔던 어스 드래곤 정도만 되어줘도 좋겠는데. 하지만 녀석은 플러스 단계 마물 중에서도 특별한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쉽지는 않겠다 싶었다.
멍멍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나는 본 척도 하지 않는 윤희를 봤다.
“넌 오빠가 와도 반겨주지도 않냐?”
“왔어? 나 지금 바빠. 드라마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야.”
엎드려 절 받기로군.
대체 뭐가 중요한가 싶어서 봤더니 두 주인공이 정열적으로 키스 중이다.
남이 저러는 게 뭐가 좋다고 집중해서 보는 건지 모르겠다.
“저런 거 볼 거면 너도 남자 만나던가.”
“아놔! 알콩달콩 썸 타던 걸 다 날려버린 게 누군데 그러냐!”
“의지박약인 녀석을 탓해야지 내 탓을 한다고?”
“걔가 의지박약이 아니라 그냥 짓밟은 거거든? 오빠가 그러는데 누가 버텨내냐!”
정다현이랑 이세희는 잘 버텨내던데. 그래서 레벨 7에 도달하는 성과를 이뤄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성을 갖고 차분하게 설명해도 윤희가 들어먹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얘도 눈이 뒤집히면 대책 없는 애라서.
누구 닮아서 저런 건지.
아, 이러면 부모님 욕이 되는구나. 그냥 윤희가 이상한 걸로 하자.
“난 들어가서 쉴 거니까 찾지 마라.”
“일만 하느라 지친 오빠의 개인 휴식 시간을 존중해줄 생각이니 얼른 들어가서 쉬셔.”
딱 봐도 나 보낸 뒤 드라마에 집중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괜히 시비 걸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는 걸 억누른 뒤 멍멍이를 툭 건드리고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간단하게 씻은 뒤 편한 옷차림을 갈아입고는 현아가 건네준 보물을 꺼내 들었다.
보면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잔잔함이 느껴지는 보석이었다.
“이거면 숨어있는 녀석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거지?”
신수의 세계는 참 신기한 것이 많은 것 같다. 마물을 애완동물로 삼기도 하고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환수라는 것도 존재하는 걸 보면.
손바닥 위에 놓고 보석을 굴리던 나는 포스를 주입해봤다.
우웅!
맑은 공명음과 함께 은은한 푸른 파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난 그것이 정신계 기프트와 비슷한 종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게 악영향을 끼치려는 게 아니어서 가만히 놔둔 채 보석에 포스를 주입하는 양을 차근차근 늘려나갔다.
우웅! 웅! 웅!
보석의 떨림이 강해지면서 파장이 강렬해졌다. 하지만 그것 뿐, 다른 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보석에 어떤 권능이 깃들어 있었을 텐데 현아가 그걸 제거하고 내 목적에 맞게 조치를 취한 듯했다.
그럼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겠지.
난 활성화 된 보석을 들어 이마 앞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딱딱하던 보석이 젤리처럼 말랑말랑해지더니 이내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렸다. 반쯤 액체가 된 보석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
아무런 이물감이 들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시야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 전 까지는 내 시야, 내 오감이 미치는 모든 곳을 감각 아래 둘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내 안의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게 바뀐 느낌이다.
“감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건가? 한 번 써먹어 볼 수 있겠어.”
그곳에는 여러 존재가 느껴졌다. 하나는 만득이고 다른 하나는 광심이.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하나가 느껴졌다.
혈종이다.
꽁꽁 숨어있더니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나 보군.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들으러 가볼까.”
날 앞에 둔 녀석은 무슨 말을 할까.
난 자리에 누워 심상 세계로 진입을 시도하자 긴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만득이와 광심이를 봤던 곳과 다른 장소였다. 구름 하나 존재하지 않는 새파란 하늘과 생명의 파릇함이 느껴지는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마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널찍하게 펼쳐진 테이블이 있었고 그 앞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같은 얼굴, 비슷한 기도를 풍겼지만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녀석이 혈종이다.
난 녀석에게 다가갔다. 내 존재를 느낀 녀석도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이 보인 반응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자신의 끝을 직감하면 여느 빌런처럼 비굴한 모습을 보이거나 두려움에 질릴 줄 알았다.
하긴, 그런 녀석한테 몸을 빼앗기고 휘둘렸으면 더 열 받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이 날 보고 히죽 웃는다. 내 얼굴이지만 한 대 치고 싶게 생겼다.
“오랜만이야, 파트너. 잘 지냈어?”
“그게 유언이냐.”
“그럴 리가. 난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이렇게 직접 얘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니 신기할 뿐.”
그러면서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앉아서 얘기할까?”
“싫은데.”
“어허, 오랜 질긴 인연을 끝내려는 건데 그렇게 야박하게 굴 필요 있어? 봐봐, 내가 솜씨도 부렸다고?”
혈종이 가리킨 곳에는 내 취향의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아울보어 머리를 푹 고아낸 육수를 베이스로 한 아울보어 오분자기 능이 된장찌개에 각종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끝낼 땐 끝내더라도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오랜 악연에 이 정도는 괜찮잖아?”
“…….”
그러거나 말거나 난 녀석에게 다가갔다. 위협적인 기세임에도 혈종은 아무 대비를 하지 않았다.
대체 뭘 믿는 거지?
“날 죽이려고? 근데 그게 쉽지 않을 걸?”
“헛소리하지 말고 죽어.”
놈을 죽여도 음식을 먹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난 곧장 손을 들었다. 그럼에도 놈은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쓸데없이 여유부리기는.
내 손이 놈의 가슴을 꿰뚫을 때였다.
섬뜩한 고통이 가슴에 느껴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가 쏟아졌다.
놈은 가슴이 뚫렸음에도 미소 짓고 날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회복제를 꺼내 자기 가슴에 부었다. 그리고 남은 걸 내게 내밀었다.
손을 뽑아 든 나도 녀석이 회복제를 사용했다.
“먹으면서 얘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