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난 맞은편에 앉아서 맛있게 밥을 먹는 혈종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얼굴을 한 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치우는 모습은 무척 신기했다. 하지만 녀석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대놓고 살기를 발산하니 수저를 내려놓은 녀석이 날 보며 히죽 웃었다.
“너, 나 죽이고 싶다고 했지?”
“방금 일어난 현상은 뭐지?”
“바로 본론인가. 그래도 수십 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해 온 사이잖냐. 간단한 신변잡기적 대화도 하고 우리 둘만 아는 잡담도 나눌 수 있는 거 아냐?”
개소리가 아주 유창하군. 난 상대할 생각도 없는데 녀석은 저러는 걸 보면.
하긴, 가해자는 원래 자기 잘못을 모르는 법이지.
“잡소리는 그만하고.”
“야박하네. 난 오늘의 만남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는데.”
혈종이 두 손바닥을 마주치자, 상 위에 차려져 있던 음식이 사라지고 주스가 두 개 나타났다.
빨대로 쪽쪽 빨아먹던 녀석은 가만히 지켜보는 내게 말했다.
“궁금한 듯하니 말해줄게. 날 죽이면 너도 죽어.”
“뭐?”
“밖에 있던 신수들이 용하던데? 너랑 내가 어떤 상태인지 귀신같이 파악하는 걸 보면 말이야.”
“헛소리 말고.”
왜 놈을 죽이는데 내가 죽는단 말인가.
“내 인격은 널 베이스로 해서 탄생한 거야. 거울의 뒷면 같은 존재지. 둘이면서 하나같은 그런 존재인 거야.”
그제야 현아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혈종은 나와 운명을 같이 할 존재라는 거였군. 그래서 만득이나 광심이가 나서지 못했던 건가. 녀석을 제거하면 내가 죽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허탈했다. 놈을 죽여 과거의 악연을 완전히 매듭지을 생각이었는데 그게 불가능한 일이었다니.
“넌 어떻게 나타난 거지?”
“그게 궁금해?”
“이미 짐작하고 있어. 너, 혈중섭식의 자아지?”
“오! 정답. 꽤 똑똑한데?”
짐작이 맞았군. 만독불침이나 혜광심어도 자아가 존재하는데 타인의 기프트를 복사해올 수 있는 혈중섭식이 그보다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혈중섭식에 자아가 있었을 텐데 여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보다 혈중섭식의 자아가 혈종이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난 원래 굉장히 미약한 존재였지. 근데 네가 닥치는 대로 기프트를 늘려주면서 힘을 키울 수 있게 됐어. 덕분에 재미를 많이 봤지.”
“내가 널 키웠다는 거로군.”
“맞아. 그래서 네게 고마워하고 있고.”
결국 저번 생에 무분별한 혈중섭식 남발이 혈종으로 하여금 내 육체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거였다.
과거로 돌아온 뒤 내가 기프트 숫자를 제한하니 녀석이 나올 수 없는 거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걸로 해석하면 되나?”
“안 그래도 저번에 재미 좀 봤지. 귀찮은 일을 내가 처리해줬으니 좋지 않았어?”
“좋겠냐?”
“어? 아니야? 넌 귀찮은 일 처리해서 좋고 난 오랜만에 손맛 봐서 서로 윈윈이라 생각했는데.”
“만득이, 광심이.”
내 부름에 좌우에 두 개의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녀석 제거할 수 있어?”
빛의 구 두 개가 고개를 젓는다. 혈종의 말이 맞다는 거로군.
“난 진실만 말하고 있다고? 이 정도는 믿어줄 수 있잖아, 파트너.”
“개소리 그만하고.”
난 혈종을 제거하고 싶지만 목숨을 버리면서는 아니었다.
재수가 옴 붙었군. 저런 미친놈하고 평생 같이 해야 된다고?
내 중얼거림에 혈종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꾸 나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면서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냐?”
“뭐가?”
“맞잖아. 내가 미친놈이면 너도 미친 게 맞지. 난 네 인격을 베이스로 탄생한 건데.”
“그래서 넌 미치지 않았다?”
“아니, 나 제정신 아닌데? 미친 거 맞아. 근데 너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나? 그냥 너도 미쳤어.”
물귀신 작전을 펼치는군.
더 이상 개소리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녀석의 배를 걷어찼다.
퍽!
요란하게 넘어지는 녀석과 동일하게 배에서 욱씬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짜증나게…….”
몸에서 통증이 느껴지거나 말거나 놈을 쫓아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러자 몸 곳곳이 갈라지고 터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혈종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놈을 짓밟으니 나도 똑같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구타를 멈추고 바라보니 늘어져 있던 녀석이 말했다.
“화 좀 풀렸냐?”
“넌 원하는 게 뭐냐.”
“오! 그래도 처음보다 차분해졌네. 나도 이런 분위기를 원하긴 했지.”
엉망이 된 몰골로 몸을 일으킨 녀석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 그냥 이대로 지내고 싶은데.”
“그 말을 믿으라고?”
“못 믿겠으면 가끔 재미 보게 통제권을 넘겨주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놈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지만 어떤 속내로 그렇게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라고, 파트너. 나라고 늘 살육을 즐기는 게 아니야.”
“내가 들은 개소리 중 가장 신박한 개소리네.”
“맞다니까? 나라고 쫓고 쫓기고 죽이는 게 좋겠어? 현대사회 문명인이니 문명을 즐겨야지.”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지. 사실 내가 너보다 사회생활을 더 잘할 자신이 있는데.
개소리가 점점 더 진화한다.
혈종의 슬기로운 사회생활이라도 한편 찍고 싶다는 건가.
솔직히 아직도 녀석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내 인격을 베이스로 탄생했는데 저런 미친놈이 나왔다고?
갑자기 피곤해졌다.
“생각날 때면 찾아와. 오면 반겨줄 테니.”
“…….”
혈종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주변 풍경이 바뀌고 내 옆에 만득이와 광심이만 남았다.
“저놈 제거할 방법 생각해와.”
우웅! 웅웅!
두 기프트는 그런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찾다 보면 묘안은 나오는 법이다.
“다음에 올 때까지 생각해 놔라.”
그렇게 기프트에게 짬을 떄린 뒤 심상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
* *
정신을 차리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10시간 넘게 침대에 누워 있었군.
[성공했어?]언제 도착했는지 용용이가 옆에서 맴돌고 있었다.
“놈과 내가 운명 공동체던데.”
[같은 인격에서 파생된 존재란 거야?]“상처를 입히면 나도 상처가 생기더군.”
[아아, 골치 아프겠네. 너랑 완전히 분리를 시켜야 할 텐데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혈종의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란 의미였다. 더럽게 얽혀버렸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니 용용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네가 걔한테 넘겨주지 않게 신경 쓰면 되잖아.]“후환이 될 거면 바로 제거하는 게 낫지.”
[그게 어려운 상황이니까.]자칭 위대한 존재인 신수조차 방법이 없다고 하니 정말 방법이 없나 싶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찾다 보면 묘수는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인격에서 파생되었다는 것도, 녀석이 상처를 입으면 나도 상처를 입는 걸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 볼 수 있으니까.
시간은 내 편이다.
물론 좋은 결과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만약.”
[응?]난 끊임없이 혈종을 죽이기 위한 방법을 찾을 거다. 녀석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법이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겠지.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놈에게 다시 한번 먹혀버리는 경우다.
버서커에게 일러두긴 했지만 사실 녀석이 날 죽일 가능성보다 신수가 날 죽일 가능성이 좀 더 높겠지.
“내가 놈에게 먹혀서 미쳐버리게 되면 날 죽여.”
[알았어.]“…….”
[왜?]“받아줘서 고맙긴 한데, 표정이 왜 그렇게 해맑냐?”
[내가 언제? 나 안 그랬어?]내 집요한 추궁에도 용용이는 끝까지 아닌 척했다.
*
* *
내가 현아와 만나고 돌아오던 중, 빌런의 흔적을 발견했다. 당시 혈종을 제거할 생각에 국가수호국으로 조사를 부탁했는데 용용이와 대화를 마치고 나니 연락이 와 있었다.
-현재 그곳은 대외협력관리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빌런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외협력관리국의 답을 들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며칠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습니다.
부서간에 연계가 자유롭지 않군. 하긴, 정주호가 국가수호국에 있을 때부터 서로 견제하던 곳이니 경쟁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줄 리가 없겠지.
특히 대외협력관리국은 염기철을 배출한 곳이어서 기세가 등등한 상황일 것이다.
가뜩이나 협력이 잘 안 되던 곳인데 제대로 협조할지 알 수 없고.
차라리 대외협력관리국에 요청할까?
그러느니 그냥 움직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
-예? 그래도 며칠만 기다리시면 원하는 정보가 도착할 텐데.
“바로 확인하는 게 더 빠를 테니까요.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인님, 잠시만…….
뭐라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난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생각 난 김에 바로 찾아가야겠다. 전부 빌런들이면 쓸어버리면 되는 거고.
밖으로 나온 나는 빌런의 흔적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인천에서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이런 곳에 빌런들이 활동하나 싶은 곳이었다. 그러니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던 거겠지.
“부랴부랴 지우긴 했지만.”
흔적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난 빌런을 쫓았다. 한참 흔적을 뒤쫓은 결과 산등성이 사이로 숨어있는 컨테이너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런 곳에 암약하고 있었군.
난 곧장 컨테이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빌런 조직인 이곳은 가까이서 둘러보니 이상한 부분이 존재했다.
바로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전부 동남아시아 출신들로 보였는데, 내가 동남아시아 국가의 언어를 모르니 어느 국가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빌런 조직과 대외협력관리국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얼굴이나 한 번 볼까.”
난 가장 윗대가리가 있을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 마주친 빌런들의 목을 모조리 꺾어놓았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마련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니 조직의 보스로 보이는 녀석이 앉아 있었다.
은밀히 가까이 다가가 녀석에게 기뢰를 시전했다.
파앗!
그때, 놈의 몸이 흐려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공간 계열 기프트인가?
이런 거 흔하지 않은데.
놈을 죽이고 어떤 건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기를 드러냈다.
그런데 놈이 먼저 소리쳤다.
“자, 잠깐! 멈춰봐!”
“내가 왜?”
다시 다가가려고 하니 공간 이동을 시전한다. 이미 패턴을 파악하고 있어서 녀석이 도망갈 곳을 점유해서 공격을 가했다.
공간 계열 기프트 각성자를 상대할 때 100% 먹혀드는 방법이다.
빠각!
양팔을 교차한 녀석의 양팔이 부러졌다. 내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던 거다. 버텨내는 모습이 의외인데? 그래봤자 곧 죽겠지만.
덜렁거리는 양팔을 늘어뜨린 녀석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무리를 할 요량으로 다가가자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만 좀 하라고! 나야! 나라고! 나 몰라?”
“누군데?”
놈은 얼굴이 잘 보이도록 내게 내밀었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누군지 몰라.”
“야! 두 번이나 병실 신세 지게 만들어놓고 내 얼굴을 모른다고?”
“두 번?”
그 말에 멈칫했다.
내 손에 걸린 녀석은 전부 다 죽였는데 두 번이나 살아남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보스의 얼굴이 익숙했다.
“블링크 나경욱.”
레벨 6 네임드 빌런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외협력관리국의 공무원 헌터가 바로 그였다.
내 손에 걸려서 두 번이나 병원 신세를 진 장본인이기도 하고.
“그래, 바로 나라고. 안 죽일 거지?”
“빌런이면 죽여야지.”
“내가 잠입하는 거 알면서 그러냐!”
“빌런이 됐을 수도 있잖아.”
각성자가 빌런이 되는 경우는 꽤 흔하다.
빌런으로 위장해서 거기에서 얻는 것들로 빌런이 되지 말라는 법 없고.
안색이 하얗게 질린 녀석이 애원하듯 말했다.
“너한테 두 번이나 당해놓고 미쳤다고 빌런을 하겠냐? 제발 좀 앉아봐. 내 얘기를 듣고 손을 쓰던가 해. 응?”
간절한 놈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맞은편에 앉았다.
살기를 거두니 녀석이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세 번째로 뭐 될 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