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최준호의 말에 인청호, 김유백, 전기철 모두 입을 떼지 못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박규원보다 더 처참한 꼴이 될 것이다.
공무원 헌터로서 고위직을 차지한 그들은 사회에서 언제나 대접받는 위치에 속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고자 했고, 대접하고 추켜세우며 친분을 다지려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 중 하나인 대외협력관리국이라는 단체가 더이상 그들을 지켜줄 수 없게 되자 무력한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한상민은 강렬한 카타르시스에 휩싸였다.
‘와씨, 미쳤다, 미쳤어.’
박규원은 오래 전부터 앙숙이지만 처세술이 워낙 좋아 일찌감치 염기철 아래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자신 또한 블랙요원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중요한 임무를 처리했지만 음지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양지에서 일하는 것보다 인정받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출세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고, 그 부하 3인방의 괄시를 받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음지에서 임무를 처리했으니까. 블랙요원의 숙명이며, 나라를 위해 이바지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행동이었다.
한상민은 자신의 공을 인정받고 싶었다. 누구나 처럼 칭송받고, 자신이 목숨 걸고 이뤄온 것들을 정당하게 평가받고자 했다.
‘정작 그걸 해주는 사람이 같은 조직에 있는 게 아니라 날 세 번이나 조질 뻔한 사람이라니…….’
최준호로 인해 부러진 팔은 붙였지만 여전히 욱신거리는 기분이다. 최준호만 봐도 뼈마디가 시큰거리고는 했는데, 지금은 시원함 그 자체였다.
묵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누가 대외협력관리국의 핵심 중 핵심을 저 꼴로 만들 수 있겠는가.
그 점에서 한상민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당했을 때는 기분이 뭐 같았지만 꼴보기 싫은 놈이 당할 때는 이보다 더 통쾌한 게 없다는 것을.
“한상민.”
“아, 응. 예.”
최준호가 자기를 부르자 깜짝 놀라 대답했다. 의아한 표정이 향하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차마 쫄아서 반사적으로 존대가 튀어나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준비해둔 자료가 있다면서?”
“있지.”
블랙요원으로 오랫동안 음지에서 활동했지만 한상민은 대외협력관리국과 외부에 자기만의 정보통을 만들어두었다. 염기철이 승진한 후, 이상한 모양새로 돌아가는 대외협력관리국의 정보를 정리해두었다.
염기철에게 이걸 가져갔다면 별일 없이 조용히 처리되었겠지만, 최준호 손에 들어간다면 폭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염기철은 자신이 키워온 대외협력관리국을 끔직이 생각하지만 최준호는 달랐으니까. 그런데 애정이 있다고 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줘봐.”
한상민은 그 폭탄을 최준호 손에 쥐어줬다.
“…….”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안에는 대외협력관리국 내부 알력과 편의 봐주기 등이 적혀 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적인 방치와 최준호를 끌어들이기 위한 교란에 있었다.
“날 이용하려고 했네.”
그 한 마디가 무섭게 울려 퍼졌다.
“그것도 오랫동안 블랙요원으로 헌신해온 공무원 헌터를 제거할 생각으로.”
최준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지만 세 번이나 만나 살아남은 한상민은 알고 있다.
저 상태가 가장 무섭다.
최준호의 시선이 이번에는 박규원에게 옮겨 간다.
“나라는 칼을 사용할 거면 자기도 당할 생각은 했겠지?”
콰드득!
“끄아악!”
어깨가 부서진 그가 꿈틀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최준호는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다른 세 팀장을 바라보았다.
“남길 변명은?”
“…….”
잠시 침묵하던 셋 중, 협상팀의 인청호가 앞으로 나섰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혐의를 모두 인정하니 수사기관에 진술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사이에 잔머리를 굴렸다. 저 녀석들은 자기 혐의를 인정한 게 아니다. 당장 최준호 손에 벗어나고 수사기관에서 피해를 최소화 할 생각임이 분명했다.
분명 다른 경우라면 이 말이 먹혀들었겠으나.
“그렇다면야.”
최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인청호의 어깨에 기뢰를 시전했다. 뒤이어 김유백과 전기철의 어깨도 최준호의 의해 내려앉았다.
“끄으윽! 왜, 왜?”
최준호를 정상적인 범주에서 생각한 그들은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억울함이 잔뜩 담긴 시선이 최준호에게 향했다.
“빌런들이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어놔야지.”
“우리가 왜 빌런…….”
인청호가 울분을 담아 외치자 최준호가 태연히 대답했다.
“혐의가 있으면 빌런이지.”
“…….”
언제부터 혐의가 확신이 된 거지?
* * *
“후아! 흐, 흐흐흐!”
박규원을 시작으로 줄줄이 감사원에 불려간 것을 본 한상민은 탄식을 터뜨리다 이내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끈질긴 싸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 몰랐다.
모든 건 최준호 덕분이다. 만약 자신 혼자 왔다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박규원의 모략에 빠지거나 염기철의 중재로 인해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뒤이어 밖으로 나온 최준호가 이곳으로 다가온다. 그냥 다가오는 것뿐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은인은 은인이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글쎄다.”
만들어놓았던 빌런 조직은 소탕되었고, 블랙요원이던 한상민이 블링크 나경욱인 게 드러났으니 쓸모가 다한 상황이다.
한바탕 저질러서 꼴보기 싫은 녀석들을 치워버렸지만 자신 또한 밥상을 엎지른 셈.
“이렇게 보니 나도 뭐 되긴 했군.”
그동안 해온 것들을 생각한 한상민이 쓰게 웃었다.
“왜 할 게 없다는 식인데?”
“정체가 밝혀진 블랙요원은 더 이상 활동할 수가 없어.”
“그럼 평범한 공무원 헌터가 되면 되겠네.”
“내가 뒤집어놓은 곳으로 다시 가라고? 딴 곳에 가도 이미 다 알려져서 어려워.”
최준호는 원래 그런 녀석이니 그렇다 쳐도 자신은 아니었다.
이럴 거라 생각은 했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저질렀지만 사람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니 입맛이 썼다.
“수장이 되어도?”
“갑자기 무슨 수장…….”
“대외협력관리국장이 되면 되잖아?”
“…내가?”
대답하고도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대외협력관리국장? 비록 박규원과 동기지만 출세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외협력관리국장은커녕 다른 갈 곳도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국장이 돼서 체질 개선을 하면 되지.”
“…….”
“국가전선방위청이 생기면서 삼국은 좀 더 현장을 누벼야 하는 상황이 됐지. 현장에 있어서는 널 따라올 공무원 헌터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그, 그렇지.”
“그럼 해봐도 나빠 보이지 않는데. 내가 봐도 너 정도로 현장에 능통한 사람은 없었고.”
“…….”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그 최준호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서.
“그래도 내가 된다고 하면 여러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
“그야 내부에서 지지해줄 사람도 없고, 날 제대로 인정해줄지도 모르겠고.”
말하다 보니 횡설수설하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준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러냐. 아무튼 힘들 거야.”
“아니.”
최준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세운 공을 보면 너보다 더 공이 많은 사람이 없던데.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우대하지 않으면 누굴 우대해야 하지?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최준호의 시선이 한상민에게 향했다.
“네가 할 생각이 있느냐야.”
“시켜준다면야 할 생각은 있지.”
하지만 박규원의 남은 세력이나, 염기철의 의중 등등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 말을 듣고 최준호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대통령에게 말해둘게.”
“어?”
“대통령이 인사권 행사하면 되는 끝이잖아.”
“…….”
그 말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과연 자신이 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렵다 싶으면 말해. 염 청정하고 정주호 이사를 붙여줄 테니까.”
…1초 만에 걱정이 사라졌다.
“시켜만 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상민은 반사적으로 충성을 맹세했다.
* * *
대외협력관리국이 발칵 뒤집힌 이야기는 대통령 귀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공무원 헌터 조직 중 가장 큰 곳의 수장이 처참하게 당하고 핵심 간부가 잡혀간 사건이지만 대통령의 표정은 담담했다.
“최준호가 최준호 했군.”
하지만 상황은 대통령의 담담함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어디서 흘러나간 건지 최준호에 의해 대외협력관리국이 뒤집힌 이야기가 뉴스에 언급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정황을 모두 파악한 대통령으로서는 원인제공을 대외협력관리국에서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
대통령의 시선이 천명국에게 향했다.
“천 실장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겠나?”
“블랙요원 방치에 관련된 인원을 모두 갈아야 합니다.”
“파장이 클 텐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블랙요원입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수행에 나선 그들을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버리는 행위자들을 감싼다면 누구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무원 헌터는 대형 길드에 들어갈 능력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수의 공무원 헌터는 돈보다 명예, 애국심으로 무장되어 있다.
나라에서 그들을 감싸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라를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공무원 헌터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사안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무엇보다 최준호와 관련된 이상 상황을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게 가장 문제점이지.”
“예. 최준호가 직접 현장을 목격하고 문제점을 제기한 이상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그 논리를 깰 증거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하지만 명분은 최준호가 쥐고 있다.
공무원 헌터 출신인 그는 현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주 좋은 대답이야. 점점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성장하고 있군.”
“예?”
“아닐세.”
천명국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통령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화 방향을 바꿨다.
“그럼 수습을 해야겠군. 내가 직접 나서지.”
“예? 굳이 그러실 필요가…….”
“애국하는 공무원 헌터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안을 내가 직접 챙기는 게 맞는 일이지.”
“아.”
“명심하게. 책임자는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고 직접 나설 때는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예.”
왜 그걸 자신에게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천명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후 대통령의 행보는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대외협력관리국에 대대적으로 감사에 들어가고, 그 불똥은 국가수호국과 대마물방위전선국으로 튀었다. 그 사이 여당에 협력 요청을, 야당을 어르고 달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자 언론에서도 최준호와 대외협력관리국의 충돌 이야기가 아니라 경직된 대외협력관리국 구조에 대한 질타로 방향을 전환했다.
‘현장 중심’의 기조가 서면서 최준호가 추천한 대외협력관리국 블랙요원이자 무수히 많은 임무를 성공한 한상민이 새로운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옆에서 보좌하던 천명국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 수완이었다.
“대통령님의 수완은 눈이 부시단 말이지.”
정주호와 술자리에서 천명국은 감탄을 터뜨렸다.
“우리 대통령님이야 난 사람이지.”
“다음 대통령은 비교당할 수밖에 없겠어. 아마 괴로울 거야.”
그걸 옆에서 지켜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라며 천명국이 낮게 웃었다.
“…….”
정주호는 천명국의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회피하는 건지 궁금해서.”
“무슨 소릴하는 거지?”
“아무래도 진짜 모르는가 본데. 너무 끔찍한 사실이라서 도피를 하고 있는 건가.”
그럼에도 천명국은 정주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눈치 채지 못했다.
술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킨 정주호는 멀뚱한 천명국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형이 대통령한테 배우고 있는 일들 말이지.”
“그게 왜?”
“내가 볼 땐 후계자 수업 같거든?”
“뭐……?”
“인수인계 할 거면 그냥 형이 하던 일만 알려주고 물러나면 되지 왜 대통령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심지어 그 업무 일부를 파악하고 직접적인 조언까지 했다면서? 국정에 형 의견이 반영된 거 아냐?”
“어, 자, 잠깐!”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천명국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은 그만두겠다는 자신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남은 1년도 즐겁게 기다리며 협조할 생각이었다. 대통령에게 업무를 배운 것도 인수인계를 위한 일환이었다.
“난 그저 각 부처의 일을 파악해서 최대한 잡음 없이 물러나기 위해…….”
“그건 형 생각이고.”
“…….”
“왜 대통령이 형을 순순히 놓아줄 거라 생각해?”
“…….”
“각성자안보실장에 물러난다는 게 최준호한테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대통령 입장에서 청와대에 머물게 만들면 그만이야. 그리고 가장 확실한 건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5년 동안 눌러 앉히는 거고.”
“…….”
그제야 모든 게 들어맞는 퍼즐에 천명국의 얼굴이 핼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