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쏠쏠한데? 아주 좋아.”
투폭마 이천국은 암시장에서 구한 물건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프트 근력 강화를 가진 그는 이명에 걸맞게 폭탄을 제조, 원거리 투척으로 무수히 많은 인명을 살상한 빌런이다.
취미가 폭탄 제조였고, 자신이 만든 폭탄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게 삶의 낙이었다.
도시에 투척은 물론 헌터들의 사냥터에 폭탄을 다수 투척, 무려 1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를 잡기 위해 정부 조직은 물론 대형 길드에 현상금이 올라가 있다.
갈수록 집요해지는 추적을 눈치 챈 이천국은 반년 넘게 숨어 지냈고,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지자 암시장에서 폭탄 제조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할 수 있었다.
변장은 완벽했고 재료도 몇 번 나눠서 구매했기에 누구도 자신인 줄 모를 것이다.
“이번엔 아주 성대하게 저질러주지. 날 잡으려 한 걸 후회하게 말이야.”
투폭마의 이름이 사방에 울려 퍼질 그날을 기대하며 이천국이 웃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투폭마? 억짜리네.”
콰드득!
“끄아악!”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린 이천국은 뒤이어 두 다리가 부러져 바닥을 굴렀다. 높은 현상금이 매겨져 있지만 레벨도 높지 않고 원거리 투척만 해댔기에 근접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현상금 5억. 꽤 설치고 다녔어.”
“누, 누구십니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이천국은 필사적으로 눈알을 굴렸다. 상대는 감히 자신이 대적하기 힘든 대(大) 빌런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공무원.”
퍽!
이천국은 살려달라고 말도 못해보고 머리가 부서져 죽었다.
간단하게 투폭마를 처리한 최준호는 녀석이 암시장에 구매한 물건을 발로 밟았다. 기뢰에 휘말린 물건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걸로 다섯인가.”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빌런 하나 더 잡을 여유가 있었다.
*
빌런을 잡기로 결정한 뒤 사냥감을 선정하는 기준은 간단했다.
우선 다수면 넘어간다.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 건 물론 뒤처리도 쉽지 않아서다. 그리고 기업이나 길드 소속도 제외였다.
그러니 남는 건 홀로 다니는 빌런이다.
누가 빌런인지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암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며 홀로 움직이는 빌런을 사냥했다.
마지막 대상을 고르던 나는 마른 체구에 평범한 인상을 한 40대 남자를 보고 웃었다.
생각한 것보다 대어의 등장이었다.
나는 숨어서 녀석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뒤를 노출하면 기습을 가해 제거할 생각이었다.
기척을 죽이고 다가가 목을 붙잡으려는 순간, 녀석의 몸이 빛과 함께 흩어지더니 10m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놓친 것이다.
“암시장에서 기습은 몇 번 봤지만 지금은 진짜 죽을 뻔했어.”
“블링크 나경욱.”
레벨 6의 빌런으로 위험도는 하.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입힌 전과가 없는 특이한 이력의 빌런이다.
“날 알아? 그럼 그냥 보내줄 수 있나? 싸우고 싶지 않은데.”
“목만 두고 가라.”
“말이 안 통하는 양반이었군.”
위험도가 낮다고 해도 블링크를 자유자재로 다루다보니 잡기 어렵다고 한다.
공간 종류 기프트라, 탐이 나기도 하고.
뺏을까.
그 사이 공간을 넘어온 나경욱이 단검을 휘둘렀다.
콰드득!
두 자루 단검을 휘두르다가 거리를 두면 지체 없이 투척했다. 공간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아 까다롭게 느껴질 만했다.
하지만 내 기뢰의 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단검에 서린 포스가 산산조각 났다.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던 나경욱이 블링크를 사용했다.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나는 좀 전에 주워 담았던 총알을 꺼내 이동한 곳으로 던졌다.
“컥!”
공간 이동류 사용자의 가장 큰 단점은 사용 후 잠깐이지만 무방비가 되는 것이다. 내가 던진 총알에 팔과 옆구리가 뚫린 나경욱의 몸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공간을 가르고 녀석의 머리를 잡으려 했지만 다시 한 번 블링크를 썼다.
그래봤자 마지막 빌런의 발악이다.
“그만! 항복!”
“필요 없어.”
녀석의 저항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지만 상관없다. 이 자리에서 죽이고 블링크를 뺏을 것이다.
“대체 왜 그래! 젠장! 손에 번개 같은 거 썼지? 네가 헤드 브레이커냐(Head Breaker)!”
“헤드 브레이커?”
나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이명이 저따구인가.
“빌런보다 더 잔인한 손속을 가진 공무원 헌터! 네놈 맞지?”
“대답은 저승에서 들어.”
녀석이 다시 블링크를 썼지만 금방 따라잡았다. 머리로 향하는 손을 피하다가 어깨를 내주고 움푹 가라앉은 나경욱이 온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그, 그만! 그만하라고! 나도 공무원 헌터다!”
“뭔 개소리냐.”
“대외협력관리국 소속이라고! 푸, 품속을 뒤져봐. 명찰이 있으니까.”
빌런이 공무원 헌터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다. 녀석의 코트를 풀어헤쳐 명찰을 찾았다. 이름은 한상민.
“거짓말이면 곱게 죽지 못할 거야. 있는 뼈란 뼈는 다 다져주지.”
내 위협에 나경욱이 몸을 떨었다. 나는 명찰을 찾아내고 그걸 들여다보았다.
···진품인지 위조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녀석의 말이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나는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정주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 국장님.”
-언제부터 새벽 3시반이 아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사고 쳤는지부터 말해봐.
아예 내가 사고 친 걸 전제로 말하고 있었다. 아, 이건 예기치 않은 사고인가.
“대외협력관리국에 한상민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기다려.
그 후에 정주호는 다른 전화로 연락을 취하는 걸 보였다. 그러다 나중에 대외협력관리국 국장과 통화를 하는지 서로 정겹게 욕을 주고받다가 내게 말했다.
-걔 대외협력관리국 블랙요원이란다. 네가 그 이름은 어떻게 알아?
“지금 저한테 잡혀 있습니다.”
-뭐?
“죄송하지만 한상민이 빌런 블링크 나경욱으로 위장해 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
정주호는 다시 대외협력관리국 국장과 통화했고, 최종 대답이 들려왔다.
-맞단다.
“알겠습니다.”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럼 반병신으로 만들었냐?
난 잠시 나경욱을 바라봤다. 팔과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피를 많이 흘렸는지 안색은 하얗게 질렸고 어깨는 박살이 났다.
“반병신까지는 아니고 반의 반병신은 됩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최대한 복원해보겠습니다.”
-제발, 부탁 좀 하자.
“예.”
통화가 종료되고 나는 비상용으로 갖고 있던 신성 그룹 프리미엄 회복제를 한상민의 어깨에 부었다.
주저앉은 어깨뼈가 복원되는지 점점 제 형태로 바뀌는 게 보였다.
“끄으으으!”
“가만히 있어. 평생 병신으로 살고 싶지 않으면.”
하나로 부족해서 녀석의 옆구리와 팔에도 뿌렸고 그래도 모자라서 먹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핏자국을 빼고 그럴싸하게 복원이 완료됐다.
블링크 기프트가 탐났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신성 그룹, 프리미엄 회복제, 강추였다.
*
대한민국은 초창기 대형 길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국가직 헌터에 대한 지원으로 균형을 이루는데 성공한 국가다.
최근 들어 점점 주도권이 대형 길드로 넘어가는 형국이지만 정부의 가장 큰 세 축인 국가수호국, 대외협력관리국, 대마물방위전선국은 웬만한 대형 길드보다 더 강한 전력과 권한을 갖고 있다.
이 세 조직은 서로 똘똘 뭉쳐 움직이다가 어느 한 곳이 치고 나가려 하면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각 국의 수장들은 서로를 협력자이자 경쟁자로 대했다.
대외협력관리국 국장 염기철은 정주호의 동기였다.
“염 국장, 실수였다니까? 사람이 다니다가 빌런 보면 어깨도 좀 부수고 실수할 수도 있지.”
“어이구, 그 실수라는 게 반년 넘게 치료해야 수저 들 수 있는 정도셔? 더했다가는 평생 숨만 쉬고 살게 만들겠어?”
“서로 다투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안 죽인 게 어디고. 그래도 뼈는 잘 붙여놨잖아?”
“지금 그거 감사하라는 거냐? 나도 네놈 뼈 다 분질러놓고 맞춰줘?”
“좋게좋게 가자는 거지. 야, 좀 봐줘. 나 요즘 걔 때문에 모발 얇아지고 있어.”
모발 굵기까지 언급하자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 염기철 국장은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었다.
“대체 헤드 브레이커는 어떻게 되먹은 놈이냐?”
“사고뭉치지. 큰 사고뭉치.”
“나도 소문만 듣다가 이번에 봤는데 기가 막히던데. 완전 미친개잖아.”
정주호는 실소를 흘렸다. 고작 최준호를 미친개? 그건 미친개를 향한 모욕이다.
그 맛을 염기철에게 맛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보물을 내어줄 수 없지.
보물을 가진 자의 숙명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염기철이 슬슬 그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 칼, 잘못하다 다 베일 거 같은데 같이 공유하는 건 어떠냐?”
“내 칼맛은 안 궁금하고?”
“욕심 많은 새끼. 새벽에 전화를 그리 해놓고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네 형수한테 내가 얼마나 잔소리 들었는지 알아?”
“나도 잔소리 들었다. 누가 결혼 하랬냐?”
“이 개자식아! 소개시켜준 거 너잖아!”
“진짜 결혼할 줄 몰랐지. 좋은 사람이잖아.”
“그, 그렇긴 하지.”
여기서 더 말해봤자 고달파지는 걸 느낀 염기철이 말을 아꼈다. 친구지만 앙숙이기도 한 저 녀석은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한테 고스란히 일러바치고도 남을 놈이다.
“아무튼 상민이가 움직이기 힘들어져서 하려던 임무도 실패하게 생겼다. 헤드 브레이커 넘겨.”
“무슨 임문데?”
“외국에서 마약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어. 이게 인형술사랑 연관이 있는데 난 이걸 리그랑 연관 있다고 본다.”
“······!”
“혼자 먹으려던 건데 네가 거들어줘야겠다.”
“반반.”
“야, 이쪽에서 밥상 다 차려놨는데 장난하냐?”
정주호가 얄밉게 웃으며 귀를 후볐다.
“밥 떠먹을 힘도 없으면 먹여주는 것도 감지덕지해야지.”
“그 팔 분지른 게 네놈이잖아!”
“그래서 싫다고?”
“아씨! 단독으로 앞서나갈 찬슨데. ···콜!”
활짝 웃은 정주호가 염기철 옆에 앉아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우리 제수씨가 선택한 남자답군!”
“결혼이 행복하다는 네놈의 마수에 넘어간 게 천추의 한이다.”
“그래도 행복하지?”
“네 덕에 졸라 행복하다. 이 개자식아.”
염기철이 이를 꽉 물었다.
*
“개자식, 고생 좀 해봐라.”
정주호가 돌아가기 전까지 죽는 척하던 염기철은 낄낄 웃었다.
선심 베풀 듯이 정주호에게 넘겼지만 이번 사안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통되는 마약의 가치만큼 리그에 소속된 빌런 숫자도 적지 않았다.
이를 소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력을 동원해야 했는데, 그걸 국가수호국으로 떠넘기고 공은 반을 챙기게 되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고, 친구.”
결코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선물해줘서가 아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부하가 사색이 된 채 국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구, 국장님! 작전이, 작전이!”
“왜, 국가수호국에서 도와달라고 하냐?”
“그게 아닙니다! 헤드 브레이커가 혼자 쳐들어가 마약을 전부 압수했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염기철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지키던 녀석들은 뭐하고?”
“반항하다 전부 불구가 됐답니다.”
“피해는? 헤드 브레이커 그 자식은 병신이 되거나 은퇴할 정도로 상처가 깊다거나.”
“그게··· 멀쩡하다고 합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성과에 염기철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미친놈.”
*
버서커 이광진은 안산에 위치한 폐공장에 걸터앉았다. 마치 명상하는 수도승처럼 그의 표정은 온화하게 풀려 있어 버서커라는 악명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왔으면 용건을 말해라. 꼭두각시.”
버서커 앞으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상을 방해할 의도는 아니었다.”
“시체 악취를 풍기면서 잘도 지껄이는군.”
“특수약품을 몇 번이나 칠한 건데 악취라니. 이 정도면 향기롭지 않나?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친구. 그나저나 이 공장은 질리지도 않나봐.”
“말소자의 흔적이 남은 유일한 공간이다. 넌 보이지 않나? 아름답다 못해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살육 현장이?”
이곳은 얼마 전 빅텐이 몰살당한 곳이다. 버서커는 공장 내부를 눈에 담으며 그날 있었던 학살의 현장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갔다.
“그래서 찾아온 용건은?”
“말소자를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시비를 걸 생각인가.”
“어이, 우리는 같은 ‘리그’ 가입 희망자라고.”
“난 너와 동료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고상한 척은 여전하시네. 아무튼, 수확 없는 말소자 추적은 그만하고 너와 내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때?”
“······.”
묵묵부답인 버서커에게 인형술사가 말했다.
“결국 너나 나나 리그에 들어갈 몸이고 각자 목적이 다르지. 이번에 리그를 공격한 헌터 중 흥미로운 녀석이 있다. 말소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여흥거리는 되겠지.”
“누구지?”
“헤드 브레이커. 상대가 빌런이라면 머리부터 부숴놓고 시작하는 녀석이다. 아직 20대인데 레벨 7이라는 말이 있더군.”
“20대. 헤드 브레이커.”
버서커의 눈이 번뜩였다. 흥미를 자극하는데 성공한 인형술사가 웃었다.
“난 리그에 가입하고 이 나라를 뜨기 전 최대한 재능 있는 인형들을 손에 넣고 싶다. 너와 내가 손을 잡았다고 알려지면 우르르 몰려올 테지. 말소자를 찾는 네게 준비 운동 정도는 되어줄 거다. 하겠나?”
“······.”
“날 도와주면 말소자 수색에 힘을 보태지.”
“헤드 브레이커에 대한 정보부터 넘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