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
내 연락을 받은 천명국은 직접 각성자안보실 각성자들을 이끌고 사이비교단 본단으로 왔다.
그는 함께 대동한 경찰에게 시민을 분류하도록 지시한 뒤 굳은 표정으로 시체가 널린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내게 다가와 변명하듯 말했다.
“이번 사건은 정부와 연관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예.”
“교주는 정재계 인사와 관련 있다고 신나게 떠들던데요.”
“내부에 비밀 조직 혹은 결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각보다 큰 건수겠네요.”
내 말에 더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도 몰랐을 만큼 은밀히 일이 진행되었다면, 상대 규모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당연히 난 덮을 생각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걸리는 건 대통령과 천명국의 의사겠지.
권력자는 기본적으로 일이 터지면 확대 재생산이 되지 않도록 덮으려는 특징을 보인다. 여기에서 더 영악한 자는 그 사건을 활용하여 자기의 이득을 취한다.
대통령이나 천명국이 전자나 후자의 유형이더라도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어서 생각하기 편하도록 언론에 먼저 터뜨렸다. 이러면 사태를 묻으려고 해도 묻을 수 없겠지. 물론 눈치 챈 적들이 숨을 수도 있지만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는 청와대 몫이다.
난 천명국이 생각하기 편하도록 힌트를 주었다.
“이 프로젝트, 중국에서 흘러온 것일 겁니다.”
“그건 어떻게?”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음, 이해했습니다.”
내가 위하오와 인연이 있으니 이해하기 나름이겠지.
초인이 되고 좋은 점은 내가 이렇다고 하면 크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역시 사람이 뭔 말을 하려면 성공하고 말하는 게 좋다.
“초인님.”
“예.”
“이번 일, 제게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단 저는 조용히 수습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난 천명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전까지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은 단호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대선출마가 생각을 바뀌게 만든 건가. 아무튼 긍정적인 변화라서 난 좋게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솜방망이 처벌같은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실 거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럼 관련자들은 실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잔챙이들이나 처리해야겠네요.”
“잔챙이라고 하면?”
“이곳으로 사람을 공급하던 녀석들이 있더군요. 인신매매는 빌런 짓 중에서 약팔이와 함께 가장 죄질이 나쁜 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뒷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난 사이비교주가 정보 제공에 적합한 상태라고 말해줬다. 천명국은 전과 달리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일은 미연에 방지했어야 했는데 초인님 손에 걸려들게 만들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별말씀을. 이런 일 처리하는 게 제 할 일인데요.”
아직 우리 사회에 정상의 탈을 쓴 빌런이 많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
* *
“실장님. 현장 정리가 모두 다 끝났습니다.”
양주혁은 천명국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외곽에 위치한 사이비교단이라 생각했지만 내부는 충격적이었다. 인신매매로 사람들이 팔려온 것은 물론이고, 각성자들을 통한 각종 생체실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막연하게 빌런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양주혁은 종교인의 탈을 쓴 자들이 더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맥없이 스러진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빌런에 대한 혐오감이 솟아났다.
이럴 때일수록 최준호의 대단함을 실감했다. 자신이었다면 저들을 보고 단호하게 징벌을 내릴 수 있었을까.
“수고했다. 체포한 자들은 모두 경찰에 넘기고 우리는 청와대로 복귀한다.”
“예.”
천명국은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정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주혁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저들은 이제 어떻게 처리되는 겁니까?”
“그동안 저지른 죄를 조사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
“합당한 처벌.”
인신매매와 재물 강탈, 생체 실험 등을 한 저들에게 처벌은 뭘까. 실질적으로 집행되지 않는 사형을 제외하면 평생 감옥에 갇히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건 처벌이 너무 약한 게 아닐까.
천명국이 그 생각을 눈치 챈 듯 말을 보탰다.
“최준호 초인과 연관된 이상 약한 처벌로 지나가지 않을 테지.”
“그렇습니까?”
“처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최준호 초인이 가만 두고 보지 않을 테니까.”
“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체포된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는 걸로 만족했을 것이다. 성에 차지 않는 처벌이 내려지면 불만을 갖더라도 수긍했겠지.
그게 옳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사회에 적용된 룰이기에 티를 내지 않을 뿐.
최준호는 이 사회의 약속을 역행한다.
때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압도적인 폭력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법과 질서는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양주혁의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천명국이 말했다.
“모두가 최준호 초인처럼 할 수 없어. 그랬다가는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최준호 초인님이 갖는 긍정적인 점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과정이 생략되길 바라는 건가?”
“…….”
“양 사무관.”
“예.”
“최준호 초인을 동경하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최준호 초인의 방식을 정당화 시키지 마. 그 방식에 기대다간 모든 질서가 무너질 테니. 그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에 잠시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 편할 거야.”
“노력하겠습니다.”
양주혁이 그리 말했지만 쉽지 않을 것임을 천명국은 알고 있었다.
최준호는 치명적인 독이다. 할수록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의 방식은 가까이 하면 할수록 중독될 수밖에 없다.
그걸 잡아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양주혁에게 말했지만 사실 천명국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천명국은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냥 넘어갈 수 없겠어.”
“예.”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나?”
“발본색원해야 합니다. 여야, 재계, 길드를 가리지 않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래도 해야 합니다. 저희가 못하면 더 많은 피가 흐를 것입니다.”
대통령은 천명국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 챘다.
“최준호를 말하는 건가. 하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예. 그리고 대선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
“이번 일에 더 크게 관여된 것은 여당입니다. 대통령님, 제가 떠밀리듯 대선에 출마하게 되었지만, 결심을 굳힌 이상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여당을 쇄신하여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유리한 구도를 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그 과정에서 여당이 치명상을 입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여당이 책임론에 휩싸이게 될 것이고, 대선후보들이 연관되어 있다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내부 후보들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게 될 때, 시선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하게 된다. 천명국이 등장할 적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모든 것이 천명국의 승리를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천명국이 조장한 흐름이겠지.
“권력 의지라는 건가.”
“예. 기왕 하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해 모든 걸 거머쥐고자 합니다. 대통령님의 업적을 계승하고 저 또한 국가를 위해 제 모든 걸 바쳐 이바지 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기프트를 가진 천명국은 최고의 대통령 감일 것이다.
정확한 정보를 대입해서 예지에 가까운 미래를 그려내는 능력이라면 시행착오가 극도로 줄어들 테니까.
오직 믿을 건 천명국의 양심뿐이다.
그가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라야 할 뿐.
사실 최준호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대통령도 마음에 안 들면 머리를 부숴버릴 인물이다.
“그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하지.”
대통령은 여당 대선후보들의 힘을 빼놓고 천명국이 그림처럼 나타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볼 것을 구상했다.
*
* *
경기도 안성시와 평택시에 자리하고 있는 최대 빌런 조직 ‘지존’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곳이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도권 빌런 조직들이 쓸려나갈 때 한발 비켜나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으며, 안성시와 평택시를 석권하는 규모로 클 수 있었다.
마약 밀매, 인신 매매, 밀무역, 고리대금 등 발을 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중 가장 재미를 보고 있는 사업 분야는 인신매매로, 마물들에 의해 터전을 잃고 밀려난 난민들이 그들의 주된 타깃이었다.
지존의 보스 인간백정 정연후는 건설회사를 운영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난민들을 노예로 쓰다 걸려 빌런으로 수배되어 추격에 쫓기게 된 인물이다.
레벨 5의 각성자면서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온 그는 개인의 무위도 무위지만 사업 수완과 정치권과 결탁 능력이 상당했다.
불법을 저질러도 불법으로 치부 받지 않으면 그건 불법이 아니다.
건설회사 운영 당시 타협이 되지 않는 국가수호국에 재수없게 걸려 모든 걸 잃었지만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다.
“닥치는 대로 다 잡아와! 없는 빚이라도 만들어서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만들어!”
정연후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빚을 만들어 매매 대상이 자발적으로 끌려가게 만드는 것이다.
“보스, 이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뭐가 위험해?”
“지금 기사가 떴는데 잘못하면 우리도 덤터기를 쓸 거 같습니다.”
“아아, 그거?”
부하가 보여준 기사를 보고 정연후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드러날 일은 없을 테니까.”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자료를 남긴 적이 없으니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포교 활동으로 사람을 끌어들인 거라 생각할 거다. 그래도 만약에, 아주 만약에 우리 꼬리를 잡았다면 이렇게 우기면 된다.”
정연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우리도 피해자라고.”
“…우리가 피해자였습니까?”
“그래, 갈 곳 잃고 떠도는 난민들을 취업 알선을 시켜줬는데 웬 사이비 종교에서 우리한테 사기를 친 거 아니냐. 나쁜 건 그 녀석들이지, 난민들을 일상으로 되돌려 보내주려던 우리는 잘못이 없다 이거야.”
실제로 빌런 조직 지존은 암암리에 통용되는 이름일 뿐, 평택시에 어엿한 본사까지 있는 합법적인 인력 사무소였다.
비록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관련 법규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중이지만.
어차피 자신들은 잔챙이다. 규모가 다른 곳보다 크지 않기에 건들려면 큰 곳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자신들로 인해 고용되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정부는 두려워한다.
마물의 등장 이후, 정부에서는 난민이 발생하는 걸 막고자 노력해왔고 이를 효율적으로 억제하는 방법 중 하나가 고용지표였다.
여기에 정연후는 믿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존재했다.
“그리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뒀으니 걱정하지 마라.”
“보험이라고 함은?”
“이거, 진실을 밝힐 때가 됐나.”
그리 말한 정연후는 숨겨진 패를 하나 밝혔다.
“대외협력관리국과 이야기가 오간 게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의 이름에 부하의 눈이 커졌다.
“대외협력관리국이라면 삼국 중 하나 아닙니까?”
“여러 공작을 활발하게 벌이는 곳이지. 필요하다면 우리같은 빌런과 손을 잡는 곳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걱정했냐?”
“이런 짭짤한 돈벌이를 찾는 게 어디 쉽습니까.”
“당연히 어렵지.”
시선이 마주친 둘은 낄낄 웃었다. 현 국가전선방위청장 염기철이 대외협력관리국장이었던 만큼 삼국 내에서 가장 입지가 높은 축에 속했다.
그곳이 뒤를 봐 준다? 자신들의 안전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책임은 다른 곳이 지고 단물은 자신들이 빨아먹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설사 최준호가 오더라도 우리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