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
녀석은 입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 침묵을 지켰다. 이상하군, 일본에서 내가 봤던 놈은 주둥이가 뭉개지지 않고 사지가 잘려 있었는데? 그 사이 말을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보통 이런 경우 침묵하는 건 둘 중 하나다.
진짜 벙어리거나 켕기는 것이 있거나.
초인이라는 녀석이 전자일 리 없을 테고, 입을 열기 싫다면 강제로 열어줘야겠지.
“마지막으로 말한다. 여기까지 왜 온 거냐? 대답이 없으면 죽일 거다.”
“…….”
굳이 벌주를 선택한다는데 어쩔 수 없겠지.
녀석을 처리하기 위해 손을 들 때, 생각의 정리를 마친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한국말 할 줄 모르냐?”
“…조금 할 줄 안다.”
“그럼 한국말로 해.”
어딜 감히 수작을 부리려고. 입을 닫은 놈은 날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비교적 멀쩡한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일본에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임무를 받았다.”
“무슨 임무?”
“기밀이다.”
“왜 기밀인데?”
“그걸 왜 말해야 하지?”
태도가 불손하군.
“그래도 내가 널 살려줬는데 태도가 너무 삐딱한 거 아니냐?”
“사지를 잘라놓고 죽기 직전까지 방치해놓은 걸 살려줬다고 하던가?”
[너 그랬었어?]어떤 점에서 놀라는 거냐, 용용아.
[네가 누군가를 살려준 게 놀라워서.]당시에 베푼 작은 호의였다.
[얘 수준에선 살려준 게 맞는데?]녀석에게 용용이 대답을 들려줄 수 없어서 아쉽군.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바로 이런 점이다.
호의를 베풀면 그걸 호의로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감사함을 잊고 살고 있거든.
“살면 된 거 아니냐? 내 덕분에 리그로 가고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데.”
“…….”
나카야마는 대놓고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지었다. 내 팩트에 할 말이 없나보군.
난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그래서 네 임무는 뭐였지?”
“…정신계열 기프트를 방어하는 비기가 있다고 해서 왔다.”
“그런 비기가 있다고?”
“총리에게 그런 게 있다고 해서 온 거다.”
“그렇단 말이지.”
나카야마 얼굴을 봐서는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 않다. 그럼 둘 중 하나가 된다. 하나는 내가 모르는 정신계열 기프트 방어 비기가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일본 총리가 나카야마를 속였을 경우다.
동화 육성 체계는 각성자를 세뇌하고 집단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나카야마가 일본을 배신하고 리그로 떠났던 것, 반골 성향인 것 등을 조합해볼 때 어떤 상황인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왜냐면 각성자에게 목줄을 걸어놓고 싶어 하는 게 권력자의 속성이거든.
내가 숱하게 당해봐서 잘 안다.
“너 속아서 왔나보다.”
“뭐?”
“총리한테 속은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차라리 비기를 내줄 수 없다고 해라. 날 어디까지 모욕할 생각이냐!”
“내가 널 모욕할 게 뭐가 있다고?”
[지금 충분히 모욕하는 중인데?]대체 내 어느 부분이 모욕인지 금시초문이로군. 오히려 일본의 재능이라 불리는 녀석이 더 멍청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거다.
난 불쌍한 이 불나방 녀석에게 진실을 알려줬다.
“여기 있는 건 정신계 기프트를 방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각성자를 세뇌하는 방법이다. 방금 내가 보고 온 거야. 믿기 싫으면 며칠 뒤 한국 뉴스를 보던가.”
“…….”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이 일품이었다. 종래에는 녀석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이로군. 하긴, 일본 정부에서는 언제 배신하고 튈지 모르는 나카야마의 목에 줄을 걸고 싶었을 것이다. 근데 어쩌나, 원하던 건 얻지 못했고 나카야마는 진실을 알아버렸다.
[진짜 사악해.]사악하다니, 이건 이웃 국가간 경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조언이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초인인데 정부에 세뇌되어 개 노릇을 하도록 두고 볼 수 없잖아?
동업자 정신이 빛나는 걸로 하자.
“이제 어쩔 거냐.”
“돌아가겠다.”
내가 앞을 가로막는 이상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졌다. 진실이라도 알게 됐으니 무의미하게 이용당하는 일은 사라지겠지.
대신 예방주사는 하나 놔야겠다.
“아참. 리그로 가지 마라. 그땐 친절하게 사지만 자르지 않고 머리부터 부숴버릴 거니까.”
“…….”
“머리 부서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칙쇼!”
욕을 내뱉은 나카야마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대답이나 할 것이지.
[머리가 부서지고 어떻게 살아남아.]그런 꼴을 당해도 살아날 수 있는 기프트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걸로 리그로 가지 않고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해보겠지.
내가 멀쩡한 초인의 리그 전향을 막았다. 굳이 알려지지 않아도 되는 내 개인적인 만족으로 삼기로 했다. 이런 게 언성 히어로라는 거겠지.
[그냥 빌런 아닌가?]용용아, 네가 말하는 빌런과 언성히어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단다.
[아무리 봐도 빌런 같은데…….]난 용용이 말을 상콤하게 무시한 뒤 대외협력관리국 각성자를 불러 뒷정리를 지시했다.
*
* *
진용호가 쏘아 올리고 고예진이 판을 키운 사이비종교 인신매매 사태는 엄청난 속도로 대한민국을 뒤덮기 시작했다.
특히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각성자 세뇌는 각성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과 포스라는 새로운 힘의 활용,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기프트라는 초능력으로 무장한 각성자들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탄압을 받아왔으며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피가 흘렀다.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은 봉합했으나 일시적인 수준이었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측과 제한하려는 측의 신경전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그러던 중 사이비 종교에서 촉발된 각성자 세뇌는 그들의 분노가 터지도록 만들었다.
당장 정치권을 향한 규탄 시위가 벌어졌고, 진상규명을 하라는 특검 요청이 빗발쳤다.
그런 와중에 정계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정치인의 숫자가 상당했을 뿐만 아니라, 뒤에서 후원하던 기업의 로비가 동반되었다.
갖가지 언론플레이로 어떻게든 깔아뭉개려는 시도가 이어질 때, 이 모든 걸 무위로 돌린 일이 벌어졌다.
바로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다.
“각성자는 국가 안보의 선봉입니다. 그분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특검을 추진하겠습니다.”
여당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의 의중은 곧 여당의 의중이었다. 내부에서 반대가 격렬했지만 특검이 통과되고 곧장 팀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관련이 적었던 야당에서 적극 협조하여 모처럼 여야가 협력하는 구도가 그려졌다.
그 칼끝은 재계는 물론 여당을 겨누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정계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 상태. 지금 추세만 지켜가도 다음 대선을 무난하게 가져갈 수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여당을 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또한 민주주의 순기능이겠지.
누군가는 적아를 가리지 않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같은 진영의 걸림돌을 처리하려는 걸로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옳다는 게 아니라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천명국은 이 일을 처리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양주혁을 대동했다.
“양 사무관.”
“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어땠나?”
천명국은 양주혁이 민주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과격함을 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물어본 것이었으나.
“답답했습니다.”
“답답해?”
“예.”
“뭐가 답답하지?”
“특검이 통과되고 구성하는 과정부터 너무나 복잡한 수가 난무했습니다. 저들 중 분명 범인이 있는데 범인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다니, 그것이 굉장히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준호 초인님 손에 맡겼다면 하루 안에 모든 상황이 끝났을 것입니다. …실장님?”
양주혁은 천명국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천명국은 나름대로 심각했다.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있던 건데.
그럼에도 양주혁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걸 보고 천명국은 결심을 굳혔다. 이대로 두게 되면 장래가 유망한 재능이 안 좋은 길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제야 양주혁에게 최준호를 맡기고 그만두려 하던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결정을 내리려 했는지 깨달았다. 그만두는 것에 집중해서 그대로 떠나버렸다면?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최준호에게 물들었다. 점점 더 물들어서 완전히 같은 사상이 되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뭐든지 어설픈 게 더 위험한 법이다.
‘아니지.’
최준호는 어설프지 않아서 위험하다 못해 존재 자체가 재앙이었다. 그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떠밀리듯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선을 넘은 최준호도 위험하고 어설픈 양주혁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이번 일을 보고하기 위해 최준호 초인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양 사무관도 같이 가는 게 어떤가?”
“저는 좋습니다.”
“그럼 같이 가도록 하지.”
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더 강한 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
* *
양주혁은 최준호를 동경한다. 그가 지닌 강함과 그가 추구하는 해결방식은 힘을 가진 각성자가 대우받는 이 세계에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자신도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지켜보고자 아버지의 제안을 뿌리치고 청와대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거침없는 손속과 자신의 힘으로 질서를 재구축하는 모습은 강자가 가진 특권이자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엿본 기분이다.
강해지고 싶다. 그리고 그처럼 멋져지고 싶었다. 몇 살 차이나지 않지만 최준호는 양주혁이 그리는 이상향이자 롤모델이었다.
이런 자신을 천명국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양주혁은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한 최준호를 보면서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천명국을 따라온 건 특검에 대한 최준호의 생각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잠시 자신을 떼어놓고 최준호와 천명국이 대화를 나누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바뀌는 것을 감지했다.
가까이 다가온 최준호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위아래를 훑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의 생각을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거로군요.”
“부탁드릴 곳이 최준호 초인님밖에 없었습니다.”
“…….”
그제야 양주혁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보고 대놓고 우려하던 천명국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최준호에게 말한 것이다. 처음부터 특검에 대한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최준호의 반응이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걸 매우 싫어하거든요.”
설마 동족혐오인가.
그럴 수도 있다. 누군가가 자신과 같다면 그 자체로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최준호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달랐다.
“약한 주제에 어딜 강자의 사고관을 가지려고 하는지.”
“예?”
“주제 파악이 안 된다고.”
그러고는 턱짓으로 불렀다.
“따라 와. 오늘 네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지.”
“가봐.”
결국 양주혁은 떠밀리듯 훈련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안에 있던 버서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흥미로운 눈으로 이쪽을 주시했다.
“무기 들어.”
최준호가 연습용 목검을 들며 말했다. 날이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로 바뀐다.
“…….”
급격하게 바뀐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최준호는 개의치 않고 목검을 휘둘렀다.
따악!
“끄아아악!”
어깨가 몸에서 분리되는 듯한 충격에 양주혁이 비명을 터뜨렸다.
바닥을 구르는 그를 향해 최준호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반사적으로 데굴데굴 굴러 가까스로 피했지만 발끝에 살짝 닿으면서 무시무시한 기뢰 여파가 전신을 휩쓸었다.
뼈와 근육이 제멋대로 날뛰는 섬뜩한 고통이 퍼져 나갔다.
“으으으!”
뒤늦게 검을 뽑아든 양주혁은 자신이 진검을 들고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최준호의 목검에 휩쓸려 엉망이 되도록 두들겨 맞아야 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반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피하기 급급했음에도 전심전력을 다해도 최준호의 영역에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멀리 도망쳐도 되돌아오는 샌드백처럼 최준호에게 처참하게 두들겨졌다.
퍽!
“컥!”
명치를 찔리자 숨이 턱 막히며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균형을 잡는 양주혁에게 최준호가 말했다.
“내가 왜 네 생각을 뜯어고치겠다고 한 줄 아냐?”
양주혁은 최준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히, 힘 없는 주제에 위험한 사상을 가져서입니까?”
“아니.”
“그럼…….”
“답은 네가 찾아야지. 내가 줘야 하는 거냐?”
약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주제를 파악하는 것.
그제야 양주혁은 깨달았다. 자신은 최준호를 동경하고 그의 생각을 닮고자 했지만 그럴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걸. 최준호는 어떤 강자를 상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 세상에 자신보다 강자는 무수히 많고, 그들이 마음먹는 즉시 자신을 개미 짓밟듯 목숨을 앗아갈 수 있어서다.
“…답을 찾았습니다.”
“말해.”
“힘이 생길 때까지 자중하겠습니다.”
“정답이다.”
그 말을 들은 양주혁은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전신이 멀쩡한 곳이 하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
최준호는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다 회복제를 꺼내 뿌려주고는 천명국에게 고개를 돌렸다.
“교육 끝났습니다.”
“…….”
위험한 생각을 바로잡아주길 바랐는데 힘이 생길 때까지 자중하라고?
천명국은 엄습하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