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
정신을 차린 양주혁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온 건 버서커였다.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불공평한 것이다. 힘 없는 자는 부조리하게 짓밟혀도 어디 하소연 할 곳 하나 없지.”
“버서커 님.”
“최준호 말이 옳다. 힘이 없는 정의는 허공에 짖는 개소리지. 너처럼 과격한 사상을 가진 녀석이라면 더더욱 설 곳이 없고.”
“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져야 하는 겁니까.”
억울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서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겠지.”
“제게 그 기준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최준호 옆에서 오래 붙어 다녔던 버서커라면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폭력 앞에 굴복했지만 적어도 명확한 기준 정도는 알고 싶었다.
“글쎄.”
오히려 버서커도 모호한 표정이었다. 설마 버서커도 모른단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나 정도는 되어야겠지.”
“예?”
“난 지금도 내 정의에 대해 세상에 말을 못하고 있다. 그게 왜라고 생각하나? 다 저 녀석 때문이지. 최준호만 아니었다면 나도 초인 대접 받고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물론 재미없어서 금방 때려쳤겠지만.”
“…….”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버서커의 무위에 대해서는 말이 분분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12궁에 버금가는 초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리그의 12궁이다. 십대초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나 버서커의 실력이라면 최준호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최강으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그런 초인조차도 자기주장을 할 수 없다고?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한단 말인가.
“겉으로 보이기에 멋지다 해도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은 되어야 한다.”
최소 십대초인 이상.
동년배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나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아득한 차이가 존재했다.
자신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초인에 도달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아득한 목표에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단계에서 포기했겠으나.
“해보겠습니다.”
양주혁은 의지를 불태웠다. 각성자라면 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만큼 더더욱 열심히 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만만치 않은 또라이구나. 네가 버서커 하지 않을래?”
“사양하겠습니다. 하더라도 헤드 브레이커가 더 낫습니다.”
“진짜 또라이네.”
버서커가 혀를 찼다.
*
* *
목적을 이뤘(?)음에도 천명국은 어두운 표정으로 양주혁을 데리고 돌아갔다. 애초에 양주혁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 한 게 아니었던가? 그런 것치고 표정이 어두운 것이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는 내게 버서커가 다가왔다.
“재밌는 녀석을 거뒀어.”
“내가 거뒀냐, 자기가 혼자서 큰 거지.”
“누군가의 우상이 되었고 널 보고 닮고자 했으니 네 영향도 있는 걸 테지.”
그러면서 버서커 녀석이 날 보며 낮게 웃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난 누군가의 우상이 될 마음도, 되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영어로 우상인 아이돌 전문가를 데려와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니 모순된 말이긴 하다. 근데 사람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가 아닌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그나저나 양주혁이라, 정상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청와대에 왔을 때 녀석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거에 빌런이던 녀석은 그 기질마저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언뜻 보인 과격함은 저번 생에 봤던 빌런 이너클로운의 모습이 보였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과격한 성향이라니, 나대다가 죽기 딱 좋았다. 그래도 녀석에게는 재능이란 것이 있어서 억눌러줬다. 이 세상이란 게 마음대로 나대기에게는 꽤 험난해서 말이다. 녀석에게 필요한 건 자중이었다.
조언을 해줬는데도 지키지 못하면 외지 어디에서 객사하기 딱 좋겠지. 그것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나 정도 되니까 정상으로 되돌아온 거지, 원래 빌런이 사회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고 있으니 버서커 녀석이 묘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다.
“뭘 보냐?”
“그냥 봤다.”
마음에 안 드는데. 몸이 덜 풀린 느낌인데 한 수 지도 해줘?
“…난 약속이 생겨서 가봐야겠군.”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버서커는 약속이 생겼다면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붙잡기도 전에 도망쳐서 졸지에 혼자 남게 되었다.
“요즘 눈치들이 빨라진단 말이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양주혁 문제로 천명국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이번 특검은 천명국을 위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정계와 재계, 여러 길드가 얽혀 있는 각성자 세뇌 사태는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가리지 않고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자그마한 증거만 발견해도 엮는 게 가능해진 이 사건에서 혐의가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한 번에 골로 보낼 수 있는 전가의 보도였다.
천명국은 합법적으로 방해가 될 수 있는 이들을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도 흥미롭단 말이지.”
본래 TV 보는 걸 즐기지 않던 나는 내막을 알고 뉴스에서 유도하는 걸 재밌게 보았다.
특히 채널마다 성향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논조에 차이가 존재했는데,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해석하는 과정을 보는 게 꽤 재밌었다.
이걸 하나만 보면 다른 걸 못 보니까 나는 TV를 여러 대 설치하는 선택을 했다. 당일 주문으로 TV를 네 대 설치했다. 그리고 네 개의 채널로 뉴스를 시청하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선동하려는지 훤히 보였다.
대통령의 수완인 건가, 아니면 천명국이 각성한 건가.
그 부분을 놓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역시 TV를 설치한 의미가 있다.
“나 왔어.”
내가 한창 뉴스를 보고 있을 때, 집에 들어온 윤희는 거실에 설치된 TV들을 보더니 경악하며 내게 소리쳤다.
“미쳤어? 무슨 TV를 네 대나 설치했어!”
“뭐가 문젠데?”
“아니, 이렇게 무식하게 설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TV는 클수록 좋고, 모니터는 많을수록 좋지. 이건 너한테도 좋지 않냐?”
내 말에 윤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 좋은데?”
“TV가 4대고.”
“응.”
“4대로 드라마 네 개를 동시에 시청할 수 있지.”
난 뉴스를 4개 채널로 즐긴다면 윤희는 드라마를 4종류로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
윤희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보다 TV를 더 오래 차지하는 게 자기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군.
[완전히 넘어왔네.]원래 윤희를 꼬드기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자본주의에 충실한 녀석이라서 그 맛을 충실히 보여주면 되거든.
난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 이래도 이득이 아니냐?”
“처, 천잰데? 드라마 네 개라니. 이거 완전 개이득이잖아.”
알면 됐고. 난 뉴스가 나오는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드라마 할 때 비켜줄 테니, 방해하지 마라.”
“알았어. 드라마 1시간 뒤에 하니까 그땐 내 차지다?”
“그래.”
“응응!”
윤희가 신이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해꾼이 사라져서 다시 뉴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야당의 공세에 관련된 내용이다. 여당이 어수선할 때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저기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내 눈에는 청와대와 야당이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렇게 보니 정치도 말이야.”
[갑자기 정치는 왜 관심을 가져?]“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지.”
[네가 언제 그런 거에 관심을 가졌다고?]하긴, 이렇게 말한다고 믿을 용용이가 아니긴 하지.
난 내 심정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무작정 머리를 터뜨려서 죽이는 건 확실해서 좋긴 한데.”
[좋긴 한데?]“저렇게 상황을 움직여서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것도 매력적이네.”
그동안 잔머리 굴리는 걸 보면 힘이 부족한 녀석들의 수작이라 생각했지만 요즘 저걸 보니 왜들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무력과 다른 맛이 있었다.
내가 초코 맛을 좋아한다고 해서 바닐라 맛을 싫어하는 게 아니듯, 하나만 먹다보면 질릴 수 있으니 새로운 맛을 발굴하는 거라 보면 된다.
“어차피 수 틀리면 머리 부숴버리면 되잖아.”
[…와!]감탄하는 걸 보면 용용이도 동감하나보다.
*
* *
“오빠,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정다현과 만남을 가졌다. 사냥 원정을 떠났던 정다현은 무수히 많은 마물을 사냥했는데, 그 성과가 대단해서 국가과학마물연구소에서 극찬을 거듭했다고 한다.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몸 곳곳에서 회복제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동안 있던 사냥의 훈장이다.
“뭘 해서 그렇게 다치고 왔어?”
“마물 사냥하다가요.”
“멀리 나갔다며?”
“네, 독도 근처까지 갔었어요.”
마물 사냥에 감을 잡던 정다현은 돌연 경로를 틀어 해양 마물 사냥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황해와 동해를 오가며 여러 마물을 사냥했다.
처음에는 고전하다가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이후에는 무수히 많은 마물을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정다현은 그 비결로 직감의 활용을 언급했다.
“물속에서는 움직임도 어렵고 호흡에 신경도 써야 하고, 가장 중요한 시야 확보도 문제였어요.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려니 움직임이 더 굼떠지고. 그래서 장비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든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려던 정다현은 급기야 시야를 확보하는 장비마저 벗어던지고 직감을 활용,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끌어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직감 활용이 극에 이르면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기프트가 개방되는 효과를 낳았단다. 이 상태를 유지한 정다현은 종횡무진 해양 마물을 사냥, 사흘 전에 유해 7단계 마물까지 사냥했단다.
바닷속 마물은 사냥 난이도 때문에 7단계라면 육지에서 8단계에 육박하는 마물을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많은 걸 깨닫게 되었어요.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극한의 상황에 처할 것, 간절할수록 발전 속도는 빨라지는 것 등.”
“…놀라운데.”
그래서였을까. 정다현의 기도는 놀라울 정도로 갈무리 되어 있었다.
어설프게 강하면 그 기운을 외부로 발산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소모하는 것이다. 하지만 숙달의 경지에 접어들면 불필요한 힘의 발산을 줄이고 내부로 갈무리한다.
괴물이로군. 정다현이 어느 정도 강해질지 기대되었다.
“제가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있어.”
“진짜요?”
“조만간 한 번 같이 사냥가자. 정확하게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 필요도 있으니까.”
“전 좋죠!”
“사냥했던 얘기나 더 해줘.”
“네, 여러 곳에서 사냥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독도 근처였는데요…….”
정다현은 여러 해양 마물을 상대했던 것과 독도에서 발생했던 이상 현상으로 인해 표류할 뻔했다가 마물도 휘말려서 해수면 위에 떠올라 얼떨결에 쉽게 사냥한 걸 즐겁게 얘기했다.
이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초인이 될 수도 있겠다.
*
* *
국내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을 때 일본 내부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때 리그로 전향했다가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던 환월 나카야마가 비밀 임무 수행 후 총리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중상을 입힌 뒤 도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기겁하면서 이번 일이 벌어진 원인에 대해 분석하기 급급했다.
리그로 갔던 빌런 기질이 도졌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총리가 불화가 있었던 것, 주변인과 사이가 안 좋았던 걸 총리에게 화풀이 했다는 것 등등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그중에 맞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아니,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걸 수도.
양주혁도 그렇고 역시 빌런은 고쳐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실 이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좋게 넘어갈 수도,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도 당연히 존재하지.
난 그저 녀석에게 선택권을 줬을 뿐이다.
그런데.
일본발 언론에서 나카야마가 임무차 한국에 다녀왔으며, 그 후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총리를 습격했다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교롭게 날 엮어 내가 나카야마를 시켜 다케다 총리를 습격하라고 지시한 것처럼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지?
한국이나 일본 기자들 모두 기본적으로 소설가 재능을 겸비하고 있나보다.
이 여파는 한국에도 퍼져 나갔다.
다음 날, 출근길에 모여든 기자들은 한국 기자뿐만 아니라 일본 기자들도 많았다.
“최준호 초인이 나카야마 초인과 만난 게 사실입니까?”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습니까?”
“총리 습격 배후설에 대해 해명할 내용은 없습니까?”
그래도 긍정적인 점은 전부 한국어로 질문을 한다는 점이다.
일본어로 질문할 때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 이런 부분이 개선되기도 하는군.
“다케다 총리는 일본 방문 당시 만난 적 있고, 훌륭한 정치가이자 지도자였습니다. 다케다 총리의 쾌유를 빕니다. 화이또!”
“…….”
일단 쾌유는 빌어줬고.
“일본 정부가 요청해서 체포 권한을 준다면 직접 일본으로 가서 나카야마를 체포하겠습니다.”
“…….”
왜 아무 대답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