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일본을 향한 도발이 참신했어.”
청와대에 들어간 나는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들은 말이다.
난 어리둥절함을 느꼈다.
“도발이라뇨?”
[넌 그걸 보고 열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야? 정말 대단해.]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군. 나카야마를 잡고 싶다면 도움을 주겠다고 한 건데 어딜 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최근 일본과 잡음이 생기면서 보란 듯이 도발한 게 아니었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거죠. 책임은 각자 지는 거고. 제가 앞장 서서 불만을 가질 사안은 아닙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군. 총리를 진심으로 걱정해준 건데 내가 비비 꼬아서 생각했어.”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그래도, 이거 살짝 샘이 나려고 하는데?”
“예?”
대통령이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그가 말했다.
“내가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도 우리 최준호 초인의 그만한 걱정을 받을 수 있나 싶어서 말이지.”
“당연히 걱정합니다. 어마어마한 보약도 가져다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제가 구할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구해드리겠습니다.”
어떤 게 몸에 좋더라? 마물 중에서도 특수부위가 그렇게 기력회복에 좋다고 하던데.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신수의 심장 아닐까?
[너 지금 장난해?]어, 장난. 농담 가지고 정색하기는.
내 대답에 마음에 풀렸는지 대통령의 표정이 편해졌다. 그리고는 더는 나카야마와 관련된 내용을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대통령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는데 도가 텄다.
그에 반해 천명국은 좀 더 깐깐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불편하게 여길 건 아니지만 이런 대통령의 위장 말랑말랑함은 좀 배울 필요가 있었다.
“천 실장에겐 비밀이지만 이번 일은 상당히 놀랐어.”
“어떤 부분 말씀입니까?”
“권력을 가지려면 당사자의 권력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 천 실장에게 부족한 게 그거라 생각했는데 마음먹은 즉시 바뀔 줄 몰랐지.”
“권력은 좋은 거니까요.”
“그렇지. 청와대에 오고 은퇴를 준비하면서 내가 물렁해진 걸지도 모르겠어.”
씁쓸하게 미소 짓는 모습에 난 의아함을 느꼈다.
“그게 잘못된 겁니까?”
그동안 열심히 했으면 좀 쉬어도 좋지 않은가?
[그럼 너도 쉬지 그래?]난 이야기가 다르다. 세상은 넓고 죽일 놈은 많거든. 그리고 눈에 밟히는 녀석을 없애놓지 않으면 두드러기가 나니 귀찮더라도 처리하는 게 낫다.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용용이 녀석, 새삼스러운 말을 하기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도 상징성이 크고 그 자체만으로 권력자니까. 끝까지 철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게 아쉬운 거지.”
“전 생각이 다릅니다.”
“응?”
“이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같은 상황, 같은 조건에서 대통령님은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은퇴 후 좀 편히 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
대통령은 날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저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상당히 의외의 말을 많이 들었어. 아직도 얼떨떨하군.”
“그렇습니까.”
“누구도 내게 편히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 가장 의외의 사람에게 가장 의외의 말을 듣는군.”
“누구에게나 불태우는 시기가 있는 법이니까요. 대통령님에게 이 이상 불태우라는 건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츠 영감도 펄펄한데 나이 먹었답시고 은퇴해서 유유자적 지내는데 대통령이 그걸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각성자와 달리 정치 분야는 대체할 사람이 충분히 많고.
대통령은 천명국이라는 훌륭한 대체재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그를 무럭무럭 성장시키고 있다. 그럼 쉴 자격이 있는 거지.
대통령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고맙네. 이런 위로를 받게 될 줄이야.”
“별 거 아닙니다.”
“이렇게 들어보니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게 있군.”
“어떤 겁니까?”
“자네가 가장 불태운 시기가 언제인가?”
“저요? 아직 불태운 적 없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내 말을 들은 대통령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주치의를 부를까요?”
“아니, 잠깐 몸 상태가 안 좋아진 거야. 금방 사라질 오한이니 걱정 말게.”
“저런.”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컨디션이 안 좋은가보다. 내가 괜히 붙잡아서 힘들게 만들고 있었군.
[넌 대통령 인간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진짜 모르는 거야?]알면 네가 답해보던가.
[너 빼고 다 알 걸?]인간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애송이 신수가 아는 척 하기는.
용용이는 끝내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
* *
일본을 향한 내 권유는 거절당했다.
얼마 전에 갔을 때만 해도 날 붙잡기 위해 노력해놓고는 태도가 바뀌기는.
그러면서 언론에서는 여전히 나와 나카야마의 관계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초인님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거예요.”
진세정은 장담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런 걸로 흠집이 납니까?”
“믿을 사람은 저들의 말을 신뢰할 거예요.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담아두는 거죠.”
“그 사람들 생각까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머리를 부숴버리는 게 더 속 편하지.
“그걸 의도하고 움직이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요?”
“네, 초인님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편이기도 하고, 본질을 꿰뚫는 인터뷰를 종종 하시거든요. 어떻게는 복잡하게 꼬아서 상상력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거기에서 좌초돼요.”
딱히 그런 걸 생각하고 말한 적은 없다.
뭐, 그거야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나도 그런 의도가 있다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앞으로 초인님을 향한 이런 음해는 더 심해질 거예요.”
“그 사람들은 머리가 여러 개랍니까?”
“한 개죠. 하지만 사람들은 망각을 잘하고 자기 일이 아니라면 무시하거든요. 계속 초인님 앞에서 헛짓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그거에요.”
자기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것과 나는 특별할 것이란 생각이 비슷한 부류가 나타나는 이유라고 한다.
똑똑한 거 같으면서도 멍청한 느낌이란 말이지.
“계속 처리하다 보면 언젠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걱정되는 부분이라도 있는지?”
“이번 특검으로 여당이 큰 타격을 입을 거예요.”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야당이 기가 살겠죠. 그리고 이곳은 초인님의 무서움을 옆에서만 지켜봤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로군요.”
“네, 그래서 실수할 수도 있어요.”
생각해보니 그 말도 틀리지 않다. 그동안 내가 죽인 녀석들을 떠올려볼 때, 멍청하게 나대다가 죽은 녀석들은 배운 것 없는 빌런들보다 고학력자에 부와 명예를 가진 녀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기들만의 특권의식이 존재해서 그걸 믿고 나대다가 훅 가는 구조였다.
야당이 그러지 말란 법 없다.
“그때가 되면 처리하면 됩니다.”
“네.”
내가 요즘 정치적 술수에 감명 받긴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건 정치적 술수를 믿으면서 상대가 직접 무력행사를 하지 않을 거란 잘못된 믿음이었다.
*
* *
청와대 방문 이후,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것도 전부 나카야마 녀석이 벌인 일 때문이다.
심지어 집에 들렀을 때는 드라마를 보던 윤희가 날 보더니 이젠 일본에도 마수를 뻗쳤냐며 혀를 차더라.
“내가 했겠냐?”
“하고도 남지.”
“이젠 친오빠보다 일본 기자를 더 믿네.”
“적어도 누군가 부상 입고 죽는 이야기는 오빠가 가장 신뢰가 낮아.”
윤희 녀석, 내가 관련 없을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억울하긴 하지만 사실이기도 해서 반박할 말이 마땅하지 않군.
녀석이 의외로 보는 눈이 있을지도?
나와 대화 나눈 와중에도 75인치 TV 네 대에 전부 다른 드라마를 틀어놓는 실력을 발휘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대단하긴 했다.
[아까 혼잣말로 저걸로 동체시력을 단련한다고 하던데?]그게 되겠냐.
[난 몰라, 된다고 하니 말한 거야. 듣기 싫으면 귀를 막던가.]점점 깐족거림이 느는 용용이 녀석도 아주아주 거슬리는군.
가볍게 혀를 찬 나는 아파트단지 놀이터로 나와 아까 전부터 따라다니다 집 앞에서 대기하던 불쌍한 녀석을 호출했다.
“사과라도 하러 온 거냐?”
내 앞으로 나카야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놈 딱 봐도 남의 말 안 듣게 생겼다. 녀석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사과를 해야 하지?”
“날 귀찮게 만들어놓고 그럼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냐?”
“그게 내 잘못이었던 거로군. 전혀 생각해본 적 없어서.”
…한대 치고 일본에 넘겨버릴까?
이러면 나에 대한 의심이 모두 불식될 거 같은데? 그냥 쳐?
잠깐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녀석은 내가 알려준 정보가 사실이었다면서 하나도 안 고마운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 나는 국제 용병단으로 갈 것이다.”
“리그로 안 가네?”
“갔다가 마주치면 살려줄 건가?”
“그럴 리가.”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입장에서 목숨 소중한 걸 안다. 너와 적대하기 싫어서 용병이 되려는 거다.”
생존에 관해서 냄새를 잘 맡는 녀석이로군. 국제 용병이라면 세계에서 인정받는 단체로, 각종 분쟁에 개입하거나 마물 사냥에 도움을 주는 등 공신력 있는 단체로 평가받는다.
초인 하나가 합류하니 국제 용병단의 위상이 조금이나마 높아지겠군.
“그래서 그 보고하러 여기까지 온 거냐?”
“아니. 내 목숨을 구하도록 도와줬으니 나도 유용한 정보를 주려고 왔다.”
“유용한 정보? 나한테?”
“그래.”
믿음이 1도 가지 않았지만 나카야마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이러니 살짝 기대가 생기려고 하는데?
“얼마 전에 일본과 한국 사이가 시끄러워졌던 거 아나?”
“알아.”
일본에서 느닷없이 독도를 놓고 시비를 걸어와서 뉴스가 시끄럽게 도배됐던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정다현도 독도에서 뭔가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고 했는데 거기에 뭐가 있는 건가?
나카야마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곳에 신수의 잔해가 있다.”
“……!”
[뭐라고?]솔직히 이건 놀랐다. 옆에 있던 용용이는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면서 경악했고.
독도에 신수의 잔해라니? 이건 신수의 정수를 의미한다.
내 반응에 나카야마는 흡족한 기색을 띠며 말을 이어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신수의 잔해이면서 신수의 잔해가 아니다.”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냐?”
“아니, 진짜라서 그런 거다. 신수의 잔해는 신수의 것을 말하지만 이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수의 잔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만들었다?”
나카야마는 인공 신수의 잔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일본 정부는 우연히 신수의 부산물을 획득하는데 성공했고, 이것과 플러스 단계 마물의 심장을 융합시키는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엄청난 힘을 응축시킨 신수의 잔해를 탄생시켰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말았다.
“무슨 부작용?”
“힘에 이끌려 마물들이 모여들었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데 당연하지!]당황한 정부 측에서는 인공 신수의 잔해를 봉인하고 연구소를 옮겨 연구를 지속하려고 했다.
문제는 운송 중 마물에 의해 분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물은 도망치던 도중 힘의 폭주를 버텨내지 못하고 폭사하고 신수의 잔해는 바다에 가라앉았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직접 보고 얘기한 게 아니라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나라면 이랬을 거 같은데.”
“무슨 말이지?”
“봉인했다고 해도 완전히 봉인했을 가능성은 낮을 테고, 계속 마물들이 꼬이니 일본 정부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요즘 강해져서 친하게 지내기는 하는데 더 강해지면 곤란하니 이번에 한국에 거대한 빅엿을 먹여보자.’하고 말이야.”
“억측이다!”
“나도 그냥 가설을 세워본 거다.”
[너 이제 소설도 쓰려고?]용용이도 전자보다 후자가 더 끌렸나보다. 사실 상대를 망치려는 악의가 있다면 내가 생각한 게 더 그럴 듯하거든.
“그 말을 한다는 건 내가 회수하길 바라는 거냐?”
“그래. 지금 배후에서 정부가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다.
한라산에서 신수의 정수를 봤던 만큼 어느 정도로 흉내 냈을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용용이 녀석이 가자고 엄청 보챌 거 같다.
[아니거든?]아닌 척 해봤자 안 먹히는 거 알면서 그러기는.
“흥미로운 정보야. 조만간 조사해보도록 하지.”
“그 정도면 만족스럽군.”
“이 정도 정보를 줬는데 나도 보답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선물 하나를 주지.”
“선물? 감사히 받지.”
그러고는 날 빤히 바라본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하냐, 안 가고?”
“무슨 소리지?”
내 선물이 뭔지 이해 못했나?
이런 눈치 없는 것들 같으니.
난 혀를 찼다.
“살려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