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일본 순시선을 침몰시킨 것까지는 예상대로였지만 그 후 움직임은 예상 밖이었다.
이성규가 경비정을 돌려 순시선에 탄 일본인들을 구조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 대립하던 ‘적’을 구해주다니.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네가 너무 메마른 거야.]그럴 리가. 적이라고 생각했으면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내가 책임자는 아니라서 난 그냥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일본인들을 구조한 뒤, 경비정은 울릉도로 돌아왔다.
“분명 마물의 습격은 습격 같지만…….”
이성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일본 순시선을 침몰시킨 것은 일반적인 해양 마물이 아니라 멍멍이였다.
내 멍멍이는 물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슈퍼 멍멍이거든.
[현아가 준 축복을 그렇게 사용하기야?]옆에서 용용이가 시끄럽게 굴었다. 멍멍이가 물속에서 잠수하고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현아의 축복 덕분이었다.
기왕 준 능력인데 당연히 유용하게 사용해야지. 용용이 녀석은 신수면서 그런 능력 부여도 못한다.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권능 분야가 다른 거야! 내 권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모르지?]알려주지도 않는데 무시무시한지 어떻게 아냐.
그것과 별개로 멍멍이 능력은 처음 써먹어봤지만 만족도는 별 다섯 개였다.
다음에 현아를 보면 감사를 표해야겠군.
“그럼 이제 나 혼자 가볼까.”
아마 이성규는 윗선에 보고할 거다. 일본에서도 순시선이 침몰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나설 거고.
그 전에 내가 회수하는 게 맞다.
“멍멍아.”
내 부름에 멍멍이가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몸을 털자 바닷물이 사방으로 튀며 비산했다. 저걸로 공격 수단을 만들어도 괜찮아 보이겠는데?
위력은 별 볼 일 없겠지만.
“가자.”
멍!
나와 멍멍이가 요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곧장 독도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용용이와 대화했다.
“신수의 잔해가 원래 구하기 쉽냐?”
[아니, 어려워. 형태를 갖추지 못한 신수는 그대로 자연에 돌아가거든.]용용이는 일본이 신수의 잔해를 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구한 거지?
[가장 유력한 가설은 소멸 속도가 극도로 늦어지는 환경에서 간직된 잔해를 찾아냈을 경우야.]그중 하나를 극도로 추운 지방을 꼽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뭐, 일본의 피와 땀이 들어간 걸 내가 취한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지만.
“아마 마물의 심장 한두 개로 만들 수 없었을 걸.”
인공 신수의 정수를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자금이 소모되었을 테지.
그것이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영해에 떨어졌으니 줍는 사람이 임자다.
그 사이, 내가 모는 요트는 독도 근처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아무도 없었다. 한국의 경비정도, 일본의 순시선도 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용용아, 안내해라.”
[응.]난 용용이의 안내를 받아 인공 신수의 정수가 가라앉은 걸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제 회수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잠깐!]“왜?”
[다른 마물 반응이 느껴지고 있어. 그리고… 움직이고 있어!]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어떤 마물이 인공 신수의 정수를 먹어치운 것이다.
보통 마물은 이걸 먹고 버텨내지 못한다. 힘이 폭주해서 터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화해낸다면 몇 단계 더 강해지겠지. 가장 귀찮아지는 상황은 인공 신수의 정수를 뱃속에 품은 채로 터져 죽을 때까지 이동한다는 점이다.
굳이 귀찮게 멀리 이동할 이유가 없겠지.
“멍멍아.”
멍!
“가서 마물 잡아와라.”
멍멍!
내 말에 멍멍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금방 마물을 잡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왜지?
자세히 살펴보니 오히려 멍멍이가 밀리는 감이 있었다. 쉽게 가는 법이 없군.
“밑에 있는 마물 수준이 어느 정도냐?”
[너희 인간 기준으로 말하는 걸 적용해보면 8단계?]애초에 멍멍이보다 강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보면 멍멍이가 오히려 분투하고 있는 셈. 당장 전장이 육지도 아니니 전력을 다 발휘하기에도 역부족으로 보였고.
역시 모든 일을 해결함에 있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군.
“내가 잡아야겠네.”
[넌 축복도 없잖아?]“없어도 상관 없어. 좀 더 번거로워질 뿐이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좋잖아? 기프트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이니까.
물론 그 능력을 얻는다고 물속에서 100%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속에서 싸울 수 없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난 그대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직감을 활용하여 공간을 파악해나갔다.
멀리서 두 마물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는 멍멍이였고, 그를 상대하는 마물은 새우 형태를 한 마물이었다.
저 정도 크기면 맛도 상당히 좋아 보이는데. 된장찌개에 넣으면 맛이 일품일 거 같다.
마물 사냥하기 전에 이 생각부터 나는군. 먹을 걸 생각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하고 나는 곧장 두 마물의 격전 장소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멍멍이의 전신이 상처로 가득했다. 객관적인 전력도 열세였고 불리한 환경에서 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제 몫은 한 셈이었다.
[뒤로 물러나 있어.]혜광심어로 지시를 내리자 멍멍이가 물러났다. 난 인공 신수의 정수를 삼킨 새우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수염을 채찍처럼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가까이 접근해서는 강력한 절삭력을 지닌 앞다리 집게를 휘둘렀다.
이렇게 보니 랍스터에 더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난 녀석에게 다가가 누리를 휘둘렀다. 칼날폭풍은 물속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발출되어 랍스터에게 쇄도했다.
촤아악!
랍스터 녀석은 칼날폭풍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는지 황급히 몸을 비틀며 피했다. 하지만 하늘하늘거리던 수염 몇가닥이 잘려나갔다.
괴로워하면서 날 향해 살기가 깃든 안광을 폭발시켰다. 저 눈깔, 마음에 안 든다. 어차피 눈알은 식감도 별로니 저건 뽑아야겠다.
녀석은 재차 접근했다.
확실히 물속에서는 해양 마물이 까다롭긴 했다. 정확히 말해서는 내게 가해지는 제약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육지에서 100이라면 바닷속에서는 30, 잘 해도 50 정도?
그러니까 이런 차이다.
육지에서는 1겹의 포장을 벗긴다면 바닷속에서는 3겹 포장을 벗기는 정도?
즉, 포장을 벗기는데 번거로움만 있을 뿐, 귀찮음만 감수하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퍽!
칼날폭풍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게 정답이라 여겼던 녀석은 내 손에 붙들린 집게 전체에 기뢰가 퍼져 나가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잘려나갔다.
난 멀어지려는 녀석에게 누리를 휘둘러 남은 집게까지 잘라냈다.
아, 아까워라. 저거 제일 맛있는 부위인데.
강력한 무기를 잃은 녀석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도망치려는 기색을 보여서 멍멍이를 시켜 퇴로를 가로막게 만든 뒤, 가까이 다가가 배를 향해 기뢰를 퍼부어줬다.
콰직!
견고하게 버텨내던 갑옷 같던 껍질이 갈라지고 연한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으로 나는 누리를 꼽아 넣고 포스를 흘려넣었다.
콰드드드!
랍스터가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것은 생명력을 불사른 마지막 발버둥. 어느 순간 움직임이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바닷속이라는 이점이 존재하지만 유해 8단계 수준에서 볼 땐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러니 앞뒤 가리지 않고 인공 신수의 정수를 집어삼켰겠지만.
이거, 바닷속에서 포스를 운용하니 호흡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다.
[죽었어.]용용이가 아니더라도 확인한 터였다. 나는 누리로 랍스터의 배를 갈라놓은 뒤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연한 속살을 누비던 내 손은 어느 순간 딱딱한 공과 비슷한 걸 잡아냈다.
크기는 농구공 정도로, 연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난 그걸 갈무리하고 멍멍이한테 랍스터 사체를 끌고 오라고 한 뒤 요트로 올라왔다. 온몸을 적신 바닷물을 털어내고 있을 때, 인공 신수의 정수를 본 용용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정수라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왜?”
[이건, 이건 정수가 아니야. 아니라고!]절규 비슷한 용용이 외침에 나는 인공 신수의 정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연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 인공 신수의 정수는 포장 용기가 투명에 가까운 하얀색이었고, 그 안에 포스가 일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용용이가 왜 그러는 줄 몰랐으나 신수의 정수를 직접 손에 넣어본 경험을 되살려보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힘의 흐름이 조잡한데?”
[내가 말하는 게 그거야. 우리 신수는 순수한 힘의 결정체라고. 대체 여기에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그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 지지고 볶고 했겠지.
[이런 건 신수의 잔해라 부르기에도 민망해! 쓰레기야! 감히 우리를 더럽히다니.]용용이가 드물게 분노를 터뜨렸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뚫는 녀석이니 인간이 얼토당토않은 짓을 저지른 것이 마음에 안들 수밖에 없다.
“…….”
난 그러거나 말거나 조용히 인공 신수의 정수를 살폈다. 나나 용용이가 느낄 정도로 힘의 파동이 정순하지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수의 기준.
마물의 심장을 기준으로 할 때 그보다 더 잘 갈무리 되어 있고, 힘의 폭주를 억제하고 있었다. 신수의 잔해가 만들어내는 효과인가?
힘을 안정화하고 정순하게 만드는 효과만 하더라도 상당하다.
“그럼.”
[응?]“넌 이거 필요 없겠네?”
[어? 갑자기 그 말을 왜 해?]“네 성에 안 차면 이거 내 마음대로 해결해도 된다는 거잖아.”
[그, 그건…….]용용이 말이 궁색해졌다.
인공적으로 만든 신수의 정수라고 해서 제법 기대를 했을 텐데 기대 이하였을 테니.
물론 이건 용용이만의 생각. 힘이 정순하지 않아도 내게는 쓸모가 있다.
“이건 내가 처리하지.”
[잠깐만, 뭘 그렇게 급하게…….]용용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날 말리려고 했지만, 난 손에 쥐고 있던 인공 신수의 정수를 멍멍이한테 던졌다.
“멍멍아.”
멍!
“특식이다.”
멍멍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농구공 크기의 인공 신수의 정수를 어렵지 않게 입으로 받아들더니, 그대로 깨물어 산산조각 내고는 꿀꺽 삼켜버렸다.
난 처음부터 인공 신수의 정수를 용용이한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쓸모가 있다 싶으면 차차 연구를 해보고, 마물의 심장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멍멍이 파워업 재료로 사용할 생각이었지.
[…….]용용이는 멍한 눈으로 멍멍이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좋아, 처리하기 애매한 걸 멍멍이는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고.
멍멍이 내부에서 강렬한 힘이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일본의 우수한 과학 기술이 망라되어 마물의 심장을 꾸역꾸역 압축해놓은 것이다.
말 그대로 영양이 듬뿍 담긴 특식이다.
“먹고 무럭무럭 크자.”
머리 컸다고 개길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
* *
멍멍이는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힘이 온몸 구석구석을 누볐다.
고통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참아내지 못하면 전신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멍멍이는 참았다. 참아낼 수 있었다. 아무리 힘의 폭발이 강렬하다고 해도 주인의 폭력보다 심하지 않았다. 그 어떤 고통도 주인의 체벌과 비교할 수 없었다.
멍멍이는 꾹 참고 견뎌냈다. 여태까지 무수히 느껴온 고통 중에서 주인의 체벌 말고는 모두 절정을 찍었다가 내려오곤 했다.
온몸을 구석구석 누비던 힘은 송곳처럼 찌르다가 둔기로 내려치는 충격을 동반했다. 그러다 전신을 얼려버릴 것 같은 한기가 엄습하기도 하고, 온몸을 불태워버릴 열기가 닥쳐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고통이 한순간에 가셨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상쾌함이 동반되며 거대한 힘이 내부에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그동안 쌓던 힘이 수백 수천 배 속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멍멍이의 의지 아래 놓여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멍멍이는 깨달았다. 주인이 준 특식은 자신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져다주었다고.
또한 자신을 향한 시험이었다고. 만약 자신이 버텨내지 못했다면 산산이 터져 나갔을 것이다.
콰콰콰콰!
어마어마한 힘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지금 상태라면 누가 앞을 가로막더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신 가득 채워진 충만함에 전율이 일었다.
“끝났냐?”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멍멍이가 고개를 돌렸다. 한때 하늘보다 더 두려워하던 주인이 보였다. 하지만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르다.
더 힘이 세지고 더 빨라졌다. 이 정도면 어쩌면 주인에게 좀 더 번듯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야.”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멍멍이 머릿속으로 그동안 이뤄졌던 주인의 온갖 교육이 떠올랐다.
자취를 감췄던 두려움이 멍멍이를 뒤덮었다.
“내 말 씹냐?”
잠깐이지만 미쳤구나. 멍멍이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을 뻔한 선택을 할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로 인해 주인의 심기가 뒤틀렸다는 것도.
멍!
재빨리 대답한 멍멍이는 그대로 몸을 뒤집어 배를 드러내 충성을 증명했다.
주인의 표정이 그제야 누그러졌다.
“난 또, 힘 좀 세져서 다시 서열을 각인시켜줘야 하는 줄 알았잖아.”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서열 각인이라니.
주인의 알 수 없는 기준 속에서 먼지가 나도록 맞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말 다행이다. 맞기 전에 정신을 되찾아서.
멍멍이는 안도감을 느꼈다.
“앞으로 잘하자?”
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