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누리에서 뻗어 나간 칼날 폭풍은 사정없이 뻗어 나가 리그의 군함을 타격했다. 처음에는 포스 방어막으로 몇 차례 버텨내다가 이내 방어막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칼날 폭풍이 선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꽈릉! 꽈과광!
보호막이 없는 군함은 그대로 균열이 일어나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탑승하고 있던 빌런들이 바다에 빠져드는 걸 보다 나는 저 멀리 벌어지고 있는 격전의 현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리드와 애로우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치열했다.
애로우는 스키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제임스 리드를 상대하고 있었다.
근접 거리에서 대결을 벌인다면 분명 제임스 리드가 우위에 설 것이다. 하지만 애로우의 실력도 맹탕은 아니라서 여러 차례 충돌을 막아내면 그 다음은 어김없이 거리를 벌리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포스를 퍼부어 해수면 위에 떠 있는 제임스 리드는 물 쓰듯 포스가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대결이 장기화 되었다면 상황은 애로우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대결 장소, 전체적인 전력, 상성 등이 받쳐줬으니까.
하지만 내가 나타난 이상 전부 의미가 없다.
“졸라맨. 물러나라.”
“준호! 나한테 맡겨줘!”
제임스 리드는 자존심이 작용한 듯 내게 외쳤지만 그 푸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네가 데려온 녀석들 안 챙길 거냐?”
“…….”
“녀석은 내가 처리할 테니 뒷정리를 해.”
“알았어.”
제임스 리드는 미련이 뚝뚝 묻어나오는 눈을 하다가 내 권유에 몸을 돌렸다. 그 사이 애로우가 몇 차례 공격을 했지만 내가 막아줬다.
이제 내 앞에 남은 건 애로우뿐이었다. 난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동서양의 외모가 반반 섞여 있고 얼굴과 몸에 상처로 가득했다. 전형적인 실전 끝에 경지에 올라선 초인이다. 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날 응시했다.
“네가 헤드 브레이커로군.”
“도망 안 치냐?”
“내가 칠 이유가 있나?”
“오! 아주 좋은데? 마음에 들었어.”
초인 중에 이런 녀석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악명을 꽤 크게 떨쳐서 마주한 녀석들은 도망가기 급급했는데 맞서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 초인들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더라도 이런 기개를 보였어야지. 요즘 녀석들은 너무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경우가 잦았다.
죽음에 맞서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앞으로 만나는 녀석들이 다 이랬으면 좋겠다. 절대 일일이 쫓아다니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내가 손을 뻗자 녀석은 반사적으로 시위를 당겼다. 반투명한 활 위로 푸른 포스가 휘몰아치더니 화살이 생성되었다. 그걸 망설임 없이 내게 쏘았다.
콰드득!
면전에 도달한 포스 화살을 잡아 비틀어버린 뒤 성큼 다가갔다. 녀석은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나며 나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래, 일반적이라면 여기에서 거리가 벌어졌겠지.
하지만 나와 졸라맨의 차이점이 있다면 포스량이다. 졸라맨은 무작정 포스를 소모할 수 없어 조절해야 했지만 난 마르지 않는 포스의 샘을 가지고 있다.
그걸 감수할 수 있다면 스키를 신고 움직이는 것보다 맨몸이 더 자유롭다.
난 열심히 몸을 비트는 녀석의 목을 노리다가 대신 반투명한 활을 부숴버렸다.
어떤 원리인지 다시 재구성되었는데 구성 성분이 포스인 걸로 보아 녀석의 기프트와 관련이 없는 듯했다.
이게 전부라면 실망스러운데.
“원거리 저격질하는 게 끝이냐?”
기개를 보였으면 좀 더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지.
“음!”
내게서 간신히 떨어진 녀석은 이번에는 속사로 날 공격하려 들었다.
연이어 빠르게 날아드는 포스 화살은 한 발에 모든 영혼을 담은 것보다 약했지만 충분히 성가신 수준은 되었다.
핏! 피빗! 핏! 핏!
몇 발은 귀찮아서 아예 맞아주면서 접근했다. 포스 방어막을 두드리는 충격이 제법 컸지만 그게 다다.
내게 거리를 허용한 녀석은 다시 한 번 내 손길을 가까스로 피했다.
저 활에 잔여 기뢰가 남아있는 게 느껴졌다.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면 순간적으로 무기로 바꿔 공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 능력, 탐나는데?”
“…괴물이라더니 괴물이 맞군. 왜 내 출전을 말렸는지 알겠어.”
“너 같은 녀석은 꼭 상대해봐야 정신을 차리더라.”
“하지만 늦은 건 아니다. 결정을 빨리 내리면 다음 기회는 오는 법이지.”
표정을 굳힌 애로우에게서 전의가 사라지더니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설마 그걸로 나한테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난 해수면을 박차며 녀석의 뒤를 쫓았다. 녀석과 내 거리가 빠르게 좁아졌다.
하지만 녀석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머리가 돌아갔다. 잠시지만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하더니, 전신이 빛에 휩싸이며 자취를 감추었다.
도망칠 수단을 준비해뒀었나? 그제야 녀석의 여유가 이해가 되었다.
딱 봐도 공간 이동 계열이다. 녀석이 착각한 게 있다면 남아있는 잔여 기뢰를 내가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고.
“용용아.”
[왜?]나한테 용용이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뭘 부탁할지 알아차린 용용이가 대놓고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동 하자.”
[…알았어.]웬일로 더 틱틱대지 않는군.
용용이는 내 감각과 동기화 한 뒤, 애로우가 도망친 곳으로 이동했다.
주변 풍경이 바뀌더니 내가 도착한 곳은 광활하게 펼쳐진 해안가였다. 그곳에는 리그가 거점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 군용 막사와 물자들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애로우가 경악한 눈으로 날 보는 중이었다.
“네가 어떻게… 끄악!”
난 녀석의 오른팔을 비틀어버린 뒤, 물러나는 걸 쫓아 왼팔도 비틀어버렸다. 녀석의 양팔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그리고 누리를 휘둘러 칼날 폭풍으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경계태세를 갖추지 못했던 리그의 빌런들이 그대로 휩쓸렸다.
도망치는 녀석들을 보니 멍멍이의 부재가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메인 디쉬가 내 앞에 있으니까.
“이제 활은 못 쏘겠지?”
“자, 잠깐. 협상하자.”
처음 기개 넘치는 모습에서 많이 내려왔다.
역시 자기 목숨이 간당거리는 상황에서 본 모습이 나온다.
좀 실망스러운 걸?
“뭔 협상.”
“내 뒤에는 리그도 있지만 국제용병단도 연결이 가능하다. 그곳과 연결하면 네가 쓸 수 있는 패가 훨씬 많아질 거다.”
“관심 없는데.”
난 또 뭐라고. 용병이니 뭐니 해봤자 관심 밖이다.
오히려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녀석이 가진 기프트였다.
내가 더 들어줄 기미가 아니었나본지 녀석은 부러진 팔을 억지로 맞춘 뒤 품속에서 군용 나이프를 꺼내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런 오른 손목을 낚아채서 가루로 만들어버린 뒤 왼손으로 가슴을 꿰뚫었다.
“컥! 내가 이렇게…….”
“사람은 원래 쉽게 죽어.”
고개가 꺾여버린 녀석의 가슴에 꽂힌 손을 잠시 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녀석들 사이에 의리라고는 없는 건가. 몇몇은 그래도 남아서 날 경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가슴에 박힌 손을 빼내 입으로 가져갔다.
펄떡거리는 물고기를 연상케 하는 신선한 피가 흘러들어왔다.
애로우의 기프트가 해석되기 시작했다. 녀석이 지닌 기프트는 다름 아닌 저격(Snipe). 활과는 관련이 없었다.
“일종의 징크스였나?”
스나이프는 굳이 활이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였다. 총기 형태로 발포할 수도 있고, 투척도 가능하다. 정확도를 급격하게 높여주는 타깃팅으로 상대에게 암습을 가할 수 있었다.
좋은 기프트다. 내 정체를 들키지 않고 여럿 죽일 수 있겠는 걸?
기뢰를 발출까지 발전시켰어도 사정거리가 짧고, 칼날 폭풍은 하나보다 다수를 죽이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한 명 딱 죽이기 좋았다.
내가 밝히지 않는다면 누가 죽였는지 감출 수도 있겠는 걸?
[딱 봐도 전부 너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에이, 설마.
용용이 녀석, 쓸데없이 겁을 주기는.
이럴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된다.
“문제는 이 다음인데.”
난 내가 보유한 기프트 종류를 떠올리며 고민에 빠졌다.
현재 내가 보유한 기프트는 정확히 열 개다.
[혈중섭식], [기뢰], [칼날 폭풍], [직감], [브레인워싱], [전이], [완전회복], [만독불침], [혜광심어], [천리안]이 바로 그것이다.열 개의 기프트 보유는 내가 정해놓은 룰이다. 저번 생에 나는 지나치게 많은 기프트를 보유했고, 그것은 내가 미쳐버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내게 가장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을 열 개라 생각했고 과거로 돌아온 뒤 이 룰은 비교적 잘 지켜왔다.
아니, 표면적으로만 그랬다.
“진즉에 무너져 있었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류광철의 기프트를 복사할 때, 나는 기프트가 11개가 될 것을 각오했다. 당시에 운이 따라 혈중섭식이 마물언어를 집어삼키면서 10개로 고정되었지만.
상위호환으로 볼 수 있는 기프트가 존재하면 하나로 합쳐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원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저격은 합쳐질 게 없으니 따로 자리하게 되겠지.
“예전하고 달라.”
난 확신을 가졌다. 혈종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 또한 저번 삶보다 성장했다. 그러니 보유 기프트를 10개에서 11개로 늘려도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가 상대하는 적들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그들은 내가 어떤 수법을 사용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대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 또한 수단의 다양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자칫 적에게 위험을 겪을 수도 있다.
[또 거짓말 하고 있네.]“…….”
[네가 언제 위험을 겪었는데?]못본 거냐? 내가 얼마나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사선을 헤쳐나왔는데.
[와! 이건 진짜 주변에 얘기해야 돼!]대체 뭐가 불만인데?
[넌 그냥 보이는 대로 다 쳐 죽이고 다녔거든?]그럴 리가.
용용이가 중간에서 음해해봤자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다른 방법으로 처리해보고 싶은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안 들린다, 안 들려.
아무튼, 나는 강해지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더 다양한 기프트를 가져야 한다.
기존의 것을 버릴 수 없으니 새로 추가해야 한다. 모험이지만 해볼 가치가 있다.
“용용아.”
[왜?]녀석의 목소리가 굉장히 불손했다.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봐라.”
[진짜 하려고?]“어, 욕심이 나는데 가져야지.”
[진짜 대단하긴 하네. 알았어.]내가 ‘저격’을 복사하자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내 내면에 기프트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껏 보인 증상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더 강렬한 통증이 날 뒤덮었다. 기존 기프트 보유가 적절한 선을 지켰다면 이번에는 그 선을 한참 지나친 기분이다.
불로 지지는 것처럼 새겨 넣는 기분. 배가 가득 채워졌는데 억지로 꾸역꾸역 목으로 넘기는 불쾌한 포만감이 날 지배해나갔다.
불쾌한 느낌이었다. 고통도, 더부룩함도 잊고 있던 옛 감정을 불러왔다. 그래, 힘에 미쳐있던 나는 이것이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그 탐욕은 끝내 나를 파멸시켰다.
이번에 나는 어떻게 될까. 욕심에 한 발자국 내딛은 것이 날 파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까?
한참 동안 이어지던 복사 과정은 마침내 끝이 났다. 나는 차분하게 내가 보유한 기프트를 되짚어보았다. 기존 기프트에 추가된 저격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한 번 시험해보자.
내 손끝을 타고 포스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했다. 그것은 저격에 맞춰져 한 줄기 빛처럼 쏘아졌다.
콰과과과광!
군용 막사가 존재하던 공간이 초토화 되었다. 적이 누구더라도 막기 힘들 것 같은 압도적인 위력과 빠르기였다.
“쓸모는 있네.”
앞으로 적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요긴한 기프트를 얻게 되었다.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긴 뒤, 난 용용이에게 물었다.
“용용아, 살펴봤냐? 어때?”
“뭐 있냐?”
[네 안에 존재하는 붉은 게 커졌어. 그리고 그건 네 존재와 융합되어 있는 상태고.]“융합?”
[둘이면서 하나라고.]혈종을 말하는 건가? 그 존재가 내 안에서 커졌다는 건 녀석이 더 강해졌다는 걸 의미하겠군. 그 붉은 게 더 커져서 나를 집어삼키는 구조인가?
“내가 기프트를 추가해서 그런 거지?”
[맞아.]예상을 확신으로 얻은 상황이지만 혈종의 존재가 커졌다는 말에 심장이 거세게 뛰는 기분이다. 녀석은 내가 죽을 생각이 없는 한 자신도 죽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말은 혈중섭식이 나와 하나라는 것. 그리고 혈중섭식의 역할이 커질수록 녀석의 존재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동안 내가 기프트 숫자를 유지함으로써 혈종의 존재는 커지지 못했지만 이번에 기프트를 늘려 녀석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면?
저번 생에 무작정 기프트를 늘리다가 혈종에게 잡아먹힌 것이 설명된다.
이번 생에서도 같은 짓을 반복하면 같은 결과를 맞이하겠지.
“놈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
혈종에 대한 배신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은 원래 그런 존재였기에. 지금도 내가 틈을 드러내면 언제든 내 육체를 차지하려 들 것이다.
거기에 속는 놈이 멍청한 거겠지.
전혀 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건을 통해 확신을 얻었다.
[무슨 확신? 보통 조심해야겠다거나 신중해야겠다고 하지 않아?]“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그럼?]“혈종만 제어할 수 있으면 기프트를 더 늘려서 강해질 수 있다는 거잖아?”
[와…….]내가 얻은 확신에 용용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 용용이 너라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녀석의 표정이 구겨졌다.
[어이가 없어서 반응한 거거든? 어이가 없어서!]다들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
[아니라고!]소리 치는 걸 흘려버리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 어디지?
[그것도 생각하지 않았어?]“그럴 리가.”
내가 애로우의 기프트만 탐이 나서 이곳에 있던 빌런들을 보내준 게 아니다.
도망친 빌런 녀석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 흩어졌다. 그 말은 저마다 도망칠 수단이 있다는 뜻.
이곳이 섬이라면 배가 있을 것이고, 대륙이라면 자동차 같은 이동수단이 있을 것이다.
비행기도 좋지만 그건 내가 운전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다음에는 탈취할 수 있도록 운전도 배워둬야겠다.
[와.]용용이의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소 지었다.
“그럼 사냥을 시작할까.”
난 파밍을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