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저지하려던 선봉 부대가 전멸했습니다! 마물이 도시에 진입했습니다. 마물을 가로막을 남부 전력 전체가 소멸했습니다!”
“…….”
“서부 전력이 전선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동부 전력도 후퇴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명령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전열이 붕괴될 것입니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보고에 북군 수뇌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베이징에 나타난 9A 마물, 세계 공식 명칭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북군이 준비한 모든 경계망이 무력화 되었다. 아니, 가는 길을 조금도 지체시키지 못했다고 해야 함이 옳았다. 남군을 상대로 압도하던 북군의 각성자들은 9A 마물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야 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 그 자체였다.
“…….”
위하오는 그 마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걸 느꼈다.
“물러나야 합니다.”
“어디로?”
“어디든!”
“이곳을 버리는 순간 우리의 미래는 사라져.”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겁니까?”
“…….”
리전후오의 재촉에 위하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북군은 9A 마물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남군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상 전력을 보전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이징에 남은 1500만 시민들은?
이곳을 버린다면 그 사람들 전부를 마물의 먹이로 던져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소수민족 출신이지만 위하오는 중국의 영광을 위해 모든 걸 바쳐왔다. 당의 수뇌부를 혐오할 뿐,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9A 마물을 앞에 둔 자신은 겁에 질린 초라한 각성자일 뿐이었다.
“위하오!”
“내, 내가 가서 시간을 벌…….”
“저 괴물을 상대로 시간을 벌어? 그건 개죽음일 뿐입니다! 위하오! 우리는 보다 큰일을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당신의 알량한 정의감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에는 우리가 건 게 너무 많다고!”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것처럼 소리치는 리전후오에게 위하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죽으면 북군 수뇌부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될 것이다. 당에서는 그걸 의도하고 마물을 이곳에 보냈을 것이다.
1500만 시민들을 인질로 두고 자신의 선택을 지켜보기 위해. 시민을 지키려고 하면 개죽음을 당할 것이고, 버리고 도망치면 평생 조롱과 비난 멸시가 뒤따를 것이다.
베이징을 비웠다고 해서 신나게 들어온 순간 당에서 준비한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
일개 초인일 때 목숨 하나 버리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많아지자 자신의 목숨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또한 변명에 불과할지도.”
권력이란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괴물이다. 초개처럼 자기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었던 자신은 대의라는 미명 아래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급급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장 혐오하던 당의 고위직 인물들과 다를 바가 뭐란 말인가.
밀려드는 구역질을 참아내며 위하오는 눈을 감았다. 현실과 타협한 것이다.
“…가지.”
“모두 물러난다.”
리전후오의 외침과 함께 북군 수뇌부는 빠르게 중난하이를 빠져나가 북쪽으로 철수했다.
시내는 아비규환이었다. 북군이 마물을 저지하지 못한 걸 눈치 챈 시점에서 시민들은 저마다 짐을 싸들고 각자도생하고 있었다.
모두 정신이 없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는 거 같았다.
“…….”
베이징을 막 빠져나올 무렵, 위하오의 초인적인 시력에 마물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천산갑(穿山甲) 형태를 한 마물의 크기는 약 30m를 넘는 크기로, 주변에 보랏빛 뿌연 운무가 마물을 감싸고 있었다.
마물이 도시를 멸망시킨다는 건 도시 내 모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아니다. 도시 방어 기능을 무력화 시키고 더 이상 마물을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이 경우 도시는 파괴되지만 시민 상당수는 무사하다.
하지만 지금 등장한 9A 마물은 그 상식을 초월했다.
────!
하울링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주변을 뻗어나가는 순간, 공간 자체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축이 어긋나버린 느낌과 함께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 마물 주변을 맴돌던 보랏빛 운무가 맹렬한 속도로 도시를 뒤덮었다.
파사사사!
눈에 보이는 공간 전체가 보랏빛 운무에 뒤덮였다. 그리고 버텨내지 못하고 부식되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저 속에서 사람이 버텨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속에서 죽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가야 합니다.”
위하오는 리전후오의 손길에 간신히 시선을 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렸음에도 마물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저 ‘재앙’을 누가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득한 절망이 위하오를 뒤덮었다.
*
* *
난 여전히 멍멍이가 못마땅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물인 녀석이 모질지 못하다니.
모름지기 마물이라면 있는 대로 흉악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던가. 그 점에서 볼 때 멍멍이는 웬만한 각성자보다 덜 호전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멍멍이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이 녀석은 생존에 특화되어 있다.
최근 자신을 향한 눈이 곱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멍멍이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내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자발적이라기보다 철저하게 내 의사에 맞춘 행동이었다.
“생존 본능이 성향을 이기는 건가.”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무서운 주인 만나서 느는 건 눈치밖에 없네.]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개선이 된다면 나야 상관없는 일이다.
이게 원래 바뀔 일인가? 살기 위해서 성향조차도 바꿀 수 있는 거였군.
“굳이 흉성을 개방시킬 필요는 없다는 건데.”
[말만 잘 들으면 되잖아? 그게 본능, 이성 가릴 것 없이.]“그건 그렇지.”
난 땅에 코를 박고 다른 마물을 탐색하는 멍멍이를 향해 외쳤다.
“가자!”
멍!
사냥 성과가 제법 괜찮았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진세정과 마주했다.
진세정과 대화하다 보면 늘 감탄하게 된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어 그걸 훌륭한 기회로 만들어내고는 했다.
이런 능력자가 왜 일을 그만뒀던 거지?
“그냥 좀 지쳤었거든요. 정치질 같은 게요.”
진세정도 떠나게 만드는 아이돌 세계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재밌어요. 분야가 달라도 이렇게 접목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고요.”
오늘은 멍멍이에 대한 일장연설을 듣게 되었다.
“멍멍이는 초인님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에요!”
이세희에게 듣기라도 했나? 내게 멍멍이가 가진 장점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멍멍이 덩치가 산만하긴 하지만 아직 어린 녀석이라서 겉모습은 순둥순둥했다. 사람으로 치면 덩치는 크지만 얼굴은 귀염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초인님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뻔하던 멍멍이를 구해주고, 멍멍이는 초인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어요. 초인님에게 기존에 없던 따뜻함이 부여된 거죠.”
“실제로 따뜻하지 않은데요.”
“그렇더라도 굳이 앞장 서서 그게 아니라고 말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건 또 틀린 말이 아니로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세정은 멍멍이로 이미지 메이킹할 수 있는 것들을 늘어놓았다.
난 몰랐는데 굿즈 판매까지 하고 있단다. 멍멍이가 사람들에게 어필할 정도로 귀여웠던 건가?
“실제 저 크기의 마물은 흔치 않죠. 귀여운 마물도 흔치 않고요. 길들여진 마물은 거의 없고. 흔치 않은 요소가 여러 개 겹치면 특별할 수밖에 없어요.”
전부 내가 개의치 않던 요소들이로군.
“알겠습니다. 멍멍이 교육에 최대한 신경 써보겠습니다.”
“네? 아, 네!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때 스마트폰에서 요란한 비상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진세정의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이런 경우 긴급 대피할 상황 같은 재난에 일어나는데 뭔가 싶었다.
나보다 먼저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한 진세정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베이징 소멸……?”
1500만 인구가 사는 중국의 수도가 소멸했다고? 마물의 등장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가면서도 옛 영광을 유지하던 곳이다.
얼마 전 북군이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예상 밖 이야기로군.
진세정은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마물의 습격이래요! 세계 최초로 플러스 플러스 마물이 베이징을 습격했고요!”
“투뿔 마물이라.”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등장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용용이도 믿기 힘든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어떻게 나타난 거야? 저건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없어.]최소한 신수의 무언가를 얻어야 나타날 수 있는 거란다.
용용이 녀석, 인간의 저력을 얕보고 있군. 일본이 인공 신수의 정수를 만들었다면 중국이 투뿔 마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이 그걸 한다고?]하자가 있을 수 있지만 흉내 내는 건 가능하겠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미래에서 보고 왔다는 걸 굳이 말할 이유는 없겠지.
나는 궁금증을 드러내는 용용이 말을 흘려버리며 진세정을 바라보았다.
“베이징이 소멸했다는 건 자체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 그렇죠.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건 초인님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거네요!”
“그럴 겁니다.”
아마 그 구애가 꽤 절절할 것이다.
베이징에서 우리 영토가 가까우니 조치를 취해야 할 테고.
이럴 때 북진한 게 도움이 안 될지도.
난 생각에 잠긴 진세정에게 말했다.
“팀장님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네, 말씀해주세요.”
“이번 투뿔 마물의 등장은 기존 마물을 상대하는 것과 다를 것입니다.”
왜 베이징이 파괴되었다고 하지 않고 소멸이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투뿔 마물이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을 단기간에 죽일 수 있어서다.
말 그대로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의 마물. 그걸 만들고 세상에 풀어놓은 녀석들이 뭐가 예쁘다고 잡아주겠는가.
북군 자기들은 다르다고 해도 어차피 그 나라 안에 그 나라 사람들이면 같은 상황일 때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비슷한 일을 벌일 게 분명했다.
극명하게 다를 수 있는 건 나와 혈종 정도일 것이다.
“이 마물을 처리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할 테죠.”
“네.”
“그 비용은 아주 비쌀 것입니다.”
“…….”
“팀장님은 가장 비싼 값에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진세정이 흠칫했다.
난 제대로 말한 거 같은데 제대로 못 알아들었나?
“비싼 값이요? 하지만 협상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
“그럼 값이 더 비싸지지 않겠습니까?”
[와!]“…….”
“이 부분 일, 팀장님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못하겠다고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난 침묵하는 진세정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상관없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건 변치 않으니까.
“결정이 어렵다면 포기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하게 되면요?”
“되도록 팀장님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죠.”
“아…….”
“해보겠습니까?”
“일단, 일단 생각부터 해볼게요.”
“언제든 포기해도 됩니다.”
“…네.”
대답하는 진세정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
* *
최준호가 밖으로 나가고, 혼자 남게 되자 진세정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헤드 브레이커, 세계 최고의 천재, 세계 최강의 각성자 등등 최준호를 수식하는 용어는 세계적이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그런 그를 보좌하여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여러 귀계가 난무하고 이합집산 속에서 주도권을 쥐는 일이 즐거웠다. 근무환경도, 연봉도,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권력자와 마주하는 것이 높은 만족도를 선사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
진세정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 등장이라는 소식과 베이징 소멸이라는 단어가 뇌리 깊숙이 박혀들었다.
마물이 도시에 난입할 때 무서운 것은 도시 방위 능력을 무력화 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제2차, 제3차 마물의 습격을 허용하게 된다.
시민들은 그 앞에서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무방비로 노출된다.
진세정은 마물에 의해 도시가 짓밟히는 것을 본 적 있다. 뒤늦게 각성자들이 와서 마물을 사냥했지만 짧은 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힘이 없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잠깐 망설이는 순간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마 베이징도 자신이 봤던 것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준호는 비싼 값을 이야기했다.
몸값을 높이는 건 간단하다. 상대가 더 애가 닳게 만들면 된다.
여기에서 애가 닳는 건 중국의 도시가 더 파괴되고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걸 의미한다.
이걸 자신의 결정으로 만들어낸다?
그 사이 죽어나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이것은 최준호의 시험이었다. 포기한다면 편해지겠지만 앞으로 있을 최준호와 일들에 더 이상 깊게 개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진세정은 스마트폰 화면이 떨리는 걸 보았다. 아니, 떨리고 있는 건 자신의 손이었다.
“난…….”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진세정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