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연이은 면담이 끝났다. 슬슬 자리를 마무리하면 되겠다 싶을 때 대통령이 내게 물었다.
“합중국 대사가 증거를 가지고 오면 중국으로 갈 생각인가?”
“갈 생각입니다.”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가야죠.”
“흐음.”
대통령은 의외라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천명국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느낌인데.
난 내 손맛을 보기 위해 내린 결정이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굳이 그걸 바로잡을 필요는 없겠지.
“불필요한 희생이 일어나도록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정부에서 만들어낸 산물이니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수하더라도 타국의 숭고한 뜻을 가진 각성자들이 가서 희생될 필요는 없지.
그것은 말 그대로 개죽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물에게 일방적으로 희생될 것이다.
무모하게 돌격해서 죽어봤자 나랑 크게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
내 말에 대통령과 천명국이 동의를 표했다.
“그래도 주변국의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네.”
“그들의 말이 왜 필요합니까?”
“필요하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은 우리만 겪는 위협이 아니기 때문이지. 물론 그들에게 끌려갈 필요는 없고, 주도권은 우리 손에 있지.”
대통령의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확고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아마 미국에서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그 미국의 의견을 대변해줄 사람이 지금 한국에 있지.”
졸라맨을 말하는 거로군.
“만나보면 되는 겁니까?”
“그쪽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만난 뒤 우리에게 정보를 공유해주게.”
“알겠습니다.”
나는 그 길로 졸라맨을 만나러 갔다.
*
* *
제임스 리드와 만남을 갖는 건 쉬웠다. 녀석도 아예 날 만나기 위해 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마갑귀에 대한 얘기를 꺼내니 안색이 바뀌면서 열변을 토했다.
“이 사안은 졸라 무서워. 준호, 잘못하면 죽을 수 있어.”
“어, 쉽진 않을 거다.”
“진짜 위험하다고.”
“나도 알아.”
내 말에 제임스 리드의 표정이 더더욱 굳었다.
“그런데 그 마물을 사냥하러 갈 생각이라고? 졸라 위험해.”
“가만 있어봤자 마물이 사라지냐? 여기 오기 전에 처리하는 게 낫지.”
“그건 아니지만 데이터를 쌓을 시간이 필요하잖아. 아무것도 모른 채 가면 위험해.”
이건 상당히 의외의 말이었다. 제법 정의로운 척 하던 녀석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자국의 피해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처럼 자업자득이라 생각하는 걸까.
내가 빤히 바라보자 제임스 리드가 헛기침을 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는데?”
“그 정도로 위험하단 뜻이야. 당장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만큼.”
국익 앞에서 얼마든지 비정해질 수 있다는 걸 제임스 리드도 보여주고 있군.
하긴, 내전으로 중국이 반으로 갈리고 투뿔 마물이 등장하면서 미국을 쫓을 동력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국은 자료 없냐?”
“무슨 자료?”
뻔뻔하게 아무것도 모른 척 하기는.
“네가 그런다고 미국이 가만 있을 걸 믿겠냐? 여기까지 온 건 나한테 바라는 게 있는 거잖아. 필요한 거 꺼내서 교환하고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준호는 거래의 재미를 모르네. 서로 밀고 당기는 게 졸라 재밌는 건데.”
“졸라 재밌게 해줘?”
“진짜 뭘 모른다니까.”
말로는 툴툴거리면서 준비해놓은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안의 내용을 살펴보니 십여 년 전부터 마물을 연구하면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실험한 데이터가 나와 있었다.
“중국은 마물을 길들이고 동시에 강화할 계획이었어. 하지만 그건 절반의 성공이었고.”
성공한 것은 마물의 강화 방법이었고 실패한 것은 길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멍멍이를 길들였을 때 보통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게 아니란다.
마물을 길들이는 방법만 손에 넣으면 무한하게 강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멀리서도 정보 수집은 잘도 했군.
“미국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냐?”
“그건, 비밀이야.”
“아무튼 이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 거지?”
“응, 졸라 믿어도 돼.”
그동안 거래를 해오면서 신뢰가 쌓였으니 이건 차차 둘러보면서 믿어주기로 하고.
“나한테 바라는 건?”
“준호가 마물 사냥에 성공하면 부산물 일부를 우리가 구매하고 싶어.”
새로 등장한 마물이라 그런 건가. 하긴, 플러스 단계를 확고하게 우위에 놓기 힘들었지만 투뿔 마물은 유해 9단계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압도적인 강함으로 세계 최대 도시를 날려버렸으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인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고.
“일단 내 개인 의중을 묻는 거라면 협력하지.”
“진짜?”
“어, 근데 우리 정부를 설득하는 건 너희 몫이다.”
“알았어! 맡겨줘!”
“다른 정보는 없냐?”
기분이 좋았는지 제임스 리드는 세계 정세에 대해 술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신중론을 펼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개입할 시기를 엿보고 있어. 전 십대초인인 프란츠 경과 성녀가 주도하면서 유럽에서도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나타날 것을 대비해서 제대로 된 전력을 구성해 실전 경험을 쌓자고 하고 있고…….”
그 외에 몇몇 국가에서는 나날이 강해지는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 전체주의적인 형태로 바뀌는 중이라고 했다.
마물의 위협을 국가의 위기로 치환하여 자기 권력 강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역시 악은 부지런하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군.
“잔머리들 굴리기는.”
“다들 그렇잖아?”
천마갑귀를 잡은 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아무 상관없는 곳들 말고, 내 손을 거친 초인들이 있는 국가를 말하는 거다.
“더 알아낸 게 있으면 바로바로 공유해줘.”
“알았어.”
*
* *
제임스 리드와 미팅을 끝낸 뒤, 진세정을 찾아가니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많이 했나보다.
“초인님.”
“생각은 해봤습니까?”
“네.”
가까이 다가온 진세정이 결연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는 초인님이 더 큰 미래를 그리기 위해 마물 사냥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고민하신 겁니까?”
“네! 지금 상황에서 이걸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초인님밖에 안 계세요. 중국이 잿더미밖에 남지 않으면 대가를 주기도 어려워져요. 차라리 초인님의 무위를 세계에 각인시키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상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마물에 대한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요.”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네.]용용이 녀석, 얘기를 듣다보니 묘하게 진세정의 편을 들어주는 게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 대답에 진세정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니에요! 오히려 반성하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그동안 초인님이 하는 일을 너무 가볍게 여겼던 거 같아요. 앞으로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이 인간도 적응력이 대단하네. 나였으면 질색해서 도망쳤을 텐데.]이 정도 되면 부추기는 거 아닌가.
진세정이 있는 자리에서 따지고 들기 뭐해서 나중에 손 봐주기로 하고 계속 구석에 서 있던 녀석을 호출했다.
“그건 그렇고. 넌 왜 숨어있냐?”
내 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버서커였다.
“숨어있다니.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왜?”
“네가 진 팀장을 괴롭히고 있다고 해서 지켜보고 있었지.”
“역시 버서커 님!”
언제부터 둘이 저렇게 친해진 거지? 같이 모여서 내 뒷담이라도 했나?
괜히 심사가 꼬이는 느낌에 말도 불퉁해졌다.
“내가 괴롭히는 거면 본때라도 보여주려고?”
“그럴 리가. 조용히 조언을 해주려고 했다.”
녀석, 아무렇지 않은 척 미꾸라지같이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
내가 집요하게 바라보자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나저나 중국에 재밌는 마물이 등장했다고 하던데.”
“어, 투뿔 마물이다.”
“그런 괴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그만한 힘을 가진 건 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덜 상한 인간이 제법 판단력이 좋은데?]용용이 말마따나 버서커의 판단력은 제법 좋았다. 그러니 나한테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과거로 돌아와 모든 사람을 통틀어 버서커만큼 생존 능력을 가진 녀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알아볼 문젠데, 내가 처리하러 갈 거다.”
“결정이 났나?”
“논의가 오가고 있지. 마침 진 팀장님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니 그 부분에 부탁할 생각이고.”
“맡겨주세요! 초인님을 구국의 영웅으로 메이킹해볼게요.”
[저건 기만의 절정 아니야?]용용이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구국의 영웅이란 거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흉의 빌런이던 내가 과거로 돌아와 구국의 영웅이 되다? 이것이 내가 정상이 되었다는 증거겠지.
버서커는 옆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괴롭힌다고 해서 왔는데 불필요한 일이었군.”
“내가 괴롭히는 거 같으면 본때를 보여줘도 된다니까?”
“사양하지.”
미꾸라지 같은 녀석.
*
* *
난 주변 사람의 말을 잘 수용한다. 모르는 사람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 주변 존재들은 날 위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니 굳이 흘려들을 필요도, 자존심이 상해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판단은 내가 하는 거고 결과도 내가 책임지면 되는 일이다.
개별 훈련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용용이한테 물었다.
“용용아.”
“기프트 추가한 이후로 내가 많이 바뀐 거 같냐.”
[솔직하게 말해?]“어.”
[위화감이 들어. 예전의 너와 다른 느낌? 유통기한이 더 지난 거 같아.]“그렇다면 사실이겠지.”
[어? 원래 이렇게 쉽게 받아들였나?]용용이는 의외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 부분에 이상함이 있다면 사실이겠지.
다만 그게 내 문제가 아닌 혈중섭식, 혈종과 관련이 있다는 거다.
“마음에 안 드네.”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에 갈 길이 멀다고 느꼈다.
내가 모르던 혈종의 잔재가 남아있는 걸 발견한 느낌이다. 그럼 다시 치워야지.
오히려 이번이 기회라 생각했다.
“해봐야겠어.”
[뭘?]“기프트 제거.”
기프트가 11개로 늘어남으로써 변화가 일어났다면 기프트를 줄여서 10개가 된다면 다시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다시 한 번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때는 명확해진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기프트 중 ‘직감’을 제거했다.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기프트의 삭제는 몸속에서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머릿속에서 뇌세포가 밀려나가는 느낌이다.
내 안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상실감이 제법 크게 다가왔다. 두 번 경험하기 싫은 느낌이다.
가볍게 숨을 몰아쉰 나는 용용이에게 물었다.
“다시 살펴봐라. 뭐가 변한 거 같냐?”
[응?]“변한 거 같냐고.”
[잠깐만.]용용이는 작은 몸으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탐색을 마쳤는지 멈춰 서고는 내 앞에서 말했다.
[보니까 기도가 좀 더 안정된 느낌인데? 제거하기 전에 느껴지던 위화감이 사라졌어.]용용이가 괜한 말을 할 리가 없을 테니 사실이겠지. 결국 기프트 보유 숫자가 혈중섭식의 영향력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작 나는 그 변화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고.
좋은 현상은 아니다. 주변에서 말해주지 못했다면 기프트를 더 늘리려 했을 수 있고, 혈종이 다시 한 번 내 몸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입맛이 쓰군.
“새로운 과제인가.”
이 변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중요해졌다.
그나저나 상시 활성화 되어 있던 직감이 사라지니 굉장히 공허한 느낌이었다.
[근데 왜 하필 직감이야?]“뭐가?”
[그 기프트 자주 사용했잖아. 삭제하면 불편할 텐데. 그리고 오래된 걸 삭제해서 후유증이 큰 것도 있어.]“아, 그거?”
직감은 내가 보유한 기프트 중에서 활용도가 상당히 높다. 기프트를 제거하면 그동안 직감으로 판단해온 것들을 더 사용할 수 없게 되겠지.
내 스스로 판단력으로 기프트를 대체할 수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걸 뛰어넘는 것이 기프트이기에 모든 각성자들이 기프트를 보유하고 싶어 하고 추가로 더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내가 직감을 제거한 이유는 간단했다.
버서커가 직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할 때 다시 추가하기 쉽잖아?”
[…….]“왜?”
[나, 그 덜 상한 인간이 불쌍해지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