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내가 달려가는 시점에서 천마갑귀도 날 인식하고 있었다. 안 그러면 녀석과 눈이 마주칠 리가 없지.
[살기를 그렇게 뿌려대는데 눈치 못채는 게 이상한 일 아니야?]아, 그러냐.
나야 오랜만에 몸이 근질거리게 만든 상대를 만나서 그렇지.
나와 천마갑귀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지만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응시하던 녀석이 별안간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짙어지는 보랏빛 운무.
────!
[위험해!]용용이가 소리쳤지만 난 무시하고 곧장 달려들었다. 보라색 독이 천마갑귀 입에서 쏟아졌다. 보는 것만으로 사이하고 진득한 느낌의 독이 날 뒤덮었다.
치이익!
이전까지 적응했다고 생각한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독성이다. 강력한 독성은 내 옷을 가루로 만들어버리고 피부로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속에서 숙성시킨 거라 더 독한 느낌이다.
만득아, 네 능력을 보여라.
내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만득이가 일하기 시작했다. 피부를 파고들려는 순간부터 독성은 약화되기 시작했고, 뒤이어 덮쳐오던 독도 얇은 포스막을 형성하더니 독으로부터 내 전신을 보호했다.
대신 포스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왠지 법카 받고 해맑게 웃던 진세정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였다.
[와! 물 만난 것처럼 막 쓰네.]내가 주문하긴 했지만 뭉텅이로 포스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대신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만득이가 열일한 덕택에 천마갑귀의 독 브레스는 더 이상 내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녀석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30m가 넘는 거대한 동체. 이런 거대한 몸을 가진 마물은 동작 전환이 굼뜨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게가 나가다 보니 다리를 공략하여 기동력을 상실시키면 전투력의 절반 이상을 앗아갈 수 있다.
파지직!
나는 천마갑귀의 다리에 아끼지 않고 기뢰를 퍼부었다. 엄청난 양의 포스가 빠져나가며 천마갑귀의 다리를 두드렸다.
이 정도면 마물의 다리가 곤죽이 되었을 테지만…….
천마갑귀의 다리에 생긴 건 약간의 흠집이 전부였다.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지독한데?”
쿠웅!
날 밟아버리려는 발길질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 공격은 투뿔 마물이어서 그에 대한 예우로 포스를 퍼부어줬는데 이 정도 강도일 줄이야.
천마갑귀에 대한 평가가 상향되었다.
“일단 정상적인 공략은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건데.”
하긴, 이 정도로 다리가 부러져서 빌빌거렸다면 투뿔 마물이라는 이름값이 아깝지.
[그래도 따갑긴 했나본데?]용용이 녀석, 지금 약 올리는 건가.
재차 내가 손을 뻗자 천마갑귀는 거칠게 몸부림을 치더니 꼬리를 휘둘러 지면을 휩쓸어왔다.
속도가 빠르긴 해도 피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라서 여유롭게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반격을 하려고 했는데, 돌연 내 앞으로 불쑥 꼬리가 나타났다.
[공간을 비틀었어!]이건 못 피한다.
나는 양팔을 교차하고 포스를 끌어올렸다.
쾅!
둔중한 타격과 함께 팔이 부러졌다. 그리고 충격에 휩쓸려 30m 넘게 밀려났다.
덜렁거리는 팔에서 아릿한 통증이 퍼져 나갔다. 이 정도 부상은 정말 오랜만이다. 혈종일 때 보름가량 거의 굶다시피 쫓기다가 미사일 포격을 받고 각성자들과 사흘 동안 혈투를 벌였을 때보다 더 심한 부상이다.
“마물이 잔머리까지 굴리니까 장난 아니군.”
난 자리에서 일어나 부러진 팔뼈를 맞춘 뒤 알약 형태로 된 회복제를 섭취했다.
포스가 활성화되면서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치료를 했지만 치료 직후라 팔뼈의 강도가 전보다 약할 것이다. 같은 공격을 허용하면 그땐 뼈가 산산조각 나겠지.
난 천마갑귀를 올려보다 녀석의 입매가 비틀린 걸 보고 물었다.
“저거 비웃네.”
마물 언어가 아니더라도 어떤 기색인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여태까지 자기한테 덤빈 인간들을 벌레 취급하며 짓밟았을 테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겠지.
“접근하기 힘든 독으로 무장하고 공간을 비틀어 공격할 수 있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기프트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육체는 마물급인데 기프트 운용은 영악한 각성자 수준으로 생각해야겠는데.”
말만으로도 까다로운 게 느껴질 정도로군.
내가 천마갑귀에 다가가는 동안 뼈가 완전히 붙었다.
“일단 그 껍데기가 얼마나 단단한 건지 시험해봐야겠어.”
*
* *
천마갑귀는 왜 존재 자체가 투뿔 마물인지 알게 해줬다.
우선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적절하게 포스를 안배하여 압박해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기프트와 비슷한 독과 공간 비틀기를 버무려 공격에 다양함을 장착했다.
단순히 신체 능력만으로도 대단한데 그걸 응용하는 잔머리까지 뛰어났다.
그래서 한 방 허용했고.
역시 맞아보니까 정신이 번쩍 든다.
[그게 맞은 거야? 막았잖아.]뼈가 부러졌는데 허용한 거지.
녀석이 뭐를 더 숨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일단 탐색에 들어갔다.
그런 내 기색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녀석의 공격도 단순해졌다.
마물다운 직선적이면서 단순하고 무식하게 날 밀어붙였다.
녀석이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다. 흐름을 읽고 자신에게 유리한 걸 선택한 것이다.
쾅! 콰광!
그 사이 도시가 있던 곳은 폐허에서 완전 잔해만 남은 황무지로 바뀌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녀석이 가진 검은 속내가 느껴졌다.
천마갑귀는 자신이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내게 공격을 적중시키려고 했다.
서로 한 방씩 주고받을 때 받는 타격은 다르니까. 난 으깨지고 녀석은 흠집도 나지 않을 테지.
그 자신감이 가능한 이유는 저 갑옷처럼 둘러싼 가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 가죽은 기뢰를 퍼부어도 견뎌낼 정도로 질겼고, 칼날폭풍도 견뎌내는 강도를 지녔다.
설사 타격을 주더라도 보랏빛 독 분말이 사방으로 튀었다. 만득이가 부지런히 제거해서 독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각성자였으면 공격하다가 중독되어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효율이 안 나오는데.”
난 입맛을 다셨다. 녀석의 공격에 입은 자상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 정도는 생활 상처다.
놈의 다리에 타격을 줘서 기동력을 앗아가겠다는 계획은 무리로 판명되었다.
이 정도면 핵무기를 써도 간지러운 수준이겠지.
녀석은 내 의도를 눈치 챘는지 조금 전부터는 아예 파고들 수 있도록 빈틈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 가차 없이 으깨버릴 테지.
[이대로 물러날 거야?]“그럴 리가.”
내가 물러나서 준비를 한다고 한들 뭐 새로운 방법이 나오겠나. 짧지만 녀석을 겪으면서 정보를 파악했으니 이 자리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차라리 신수들의 도움을 청해보는 건?]그렇게 말하기 전에 네가 돕던가.
[난 현아한테 금지 당했어. 허락받아야 돼.]허락받으면 도와줄 수는 있고?
[당연하지.]됐다.
[왜?]제멋대로 날뛰다가 제지당한 녀석이 도와봤자 얼마나 큰 도움이 된다고.
[말이 좀 심하네.]“그리고. 말하는 거 보면 내가 지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아니었어?]“대충 파악하는 중이었다. 이제부터 잡아봐야지.”
[어려워 보이는데.]“약점 파악은 못했지. 하지만 방법이 다 있어.”
모든 마물은 전부 약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천마갑귀는 저 단단한 가죽으로 인해 약점마저 지워버리고 오히려 상대를 끌어들이는 함정으로 승화시켰다.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마물의 간교함이 잘 드러났다.
이렇게 된 이상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공략해줘야겠지.
[그게 뭔데?]“그 어떤 생명체도 여기가 부서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어.”
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결국 헤드 브레이커잖아!]그게 뭐 어때서?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머리 가죽은 단단할지 몰라도 뇌까지 돌덩어리는 아니겠지.
“네 머리통이 얼마나 단단한지 어디 한 번 보자.”
*
* *
내가 천마갑귀의 머리를 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자기 다리쯤은 미끼로 내놓던 녀석이 자기 머리는 내놓지 못했다. 아무리 머리통이 단단하다고 해도 그 안의 내용물까지 단단하지 못하거든.
콰지직!
강적이라고 인정한 만큼 머리를 타격할 때 포스를 아끼지 않고 퍼부어줬다. 그때마다 녀석이 독이 잔뜩 담긴 숨결을 내뱉었으나 만독불침이 풀가동을 하면서 모조리 무력화 시켰다.
대신 과거로 돌아와 처음으로 포스가 텅텅 비어버린 경험을 했다.
투뿔 마물을 상대해서 그렇다지만 포스 고갈을 경험하게 되다니.
나도 아직 멀었군.
만약 여분이 없었다면 사냥을 멈추고 후퇴했을 것이다.
아무리 많아도 과소비를 하면 바닥을 드러내는군.
난 용용이한테 받은 마물의 심장을 이용하여 포스를 채워 넣었다.
이것만 있으면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 무한에 가깝게 포스를 사용할 수 있다.
“처음 쓰는데 괜찮네.”
이질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이 포스로도 충분히 마물을 쳐 죽이는 건 가능했다.
나는 허공을 밟고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녀석의 공간 비틀기에 대응했다. 이럴 때는 한상민의 블링크가 유용하겠다 싶었다. 한상민을 한 번 찾아가야 하나. 이거, 마물을 쳐 죽이려니 필요한 게 꽤 많은 거 같다.
아무리 잘 피해도 결국 공격을 맞닥뜨리게 되면 기껏 좁혀놓은 거리가 멀어지곤 했다.
다시 좁혀놓으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에서 온몸이 걸레짝이 되었다.
경구 회복제를 사용했지만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보다 부상을 입는 게 더 빨랐다. 게다가 격한 움직임 때문에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리면 위험한 거 아냐?]괜찮아. 피가 모자라면 저 녀석을 잡아서 피를 섭취하면 되니까.
[마물의 피를?]마물의 피가 얼마나 훌륭한 영양분인지 모르는군. 다른 각성자가 먹으면 중독돼서 죽을지 몰라도 내가 혈종일 땐 마물의 피로 부족한 피를 보충하면서 독에 대한 내성까지 같이 길렀다.
만독불침으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지만.
내가 재차 머리를 노리니 녀석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보호하려고 한다. 이번 목표는 사실 머리가 아니라 목이었다.
콰직!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역시 예상대로 목은 다른 곳보다 단단하지 않았다.
그어어어어!
기뢰에 제대로 적중했는지 녀석이 몸부림을 쳤다. 30m가 넘는 몸으로 난리를 쳐대니 순식간에 주변 공간이 난장판으로 바뀌었다.
반응이 워낙 격렬하게 엄살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헤드 브레이커라고 머리만 노리란 법 없지.”
[…진짜 넌.]마음껏 감탄하도록.
용용이의 감탄사를 들으면서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이려고 할 때였다.
[…간!]응? 잘못 들었나?
[쟤 지금 말하는 거 같은데?]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용용이도 들었다. 마물 주제에 사념까지 사용할 수 있던 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친 천마갑귀가 다시 한 번 사념을 보내왔다.
[인간.]“뭐냐? 말도 할 줄 알았어?”
하긴, 머리가 좋은 녀석인데 의사소통이 되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로군.
[협상하자.]마물의 입에서 협상이라는 말도 나오다니. 세상 참 잘 돌아가는군.
[일단 들어봐.]용용이는 천마갑귀가 뭐라 말할 건지 궁금한가보다.
“무슨 협상을 하자는 거지?”
[난 더 이상 인간을 죽일 생각이 없다.]내가 들은 개소리 중 손에 꼽힐 정도의 개소리로군.
“이렇게 많이 죽여 놓고?”
[내게 가해진 금제 때문이다. 난 이 금제 때문에 인간 도시 몇 개를 더 소멸시키면 돌아갈 것이다.]천마갑귀에 의문을 갖던 부분이 해소되고 있었다. 왜 녀석이 베이징 코앞에서 등장한 건지, 북군 측 주요 도시들만 공격했는지 말이다.
“널 이렇게 만든 인간들 주문 때문이냐?”
[그렇다.]“그래서 금제가 풀리면?”
[날 이렇게 만든 자들을 모조리 죽인 뒤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평화주의자 마물납셨군. 자기는 하기 싫은데 억지로 살육을 일삼는 것처럼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그걸 믿겠냐?”
[너처럼 강한 인간과 같이 죽고 싶지 않다. 네가 물러난다면 나도 널 더 이상 적대하지 않겠다.]“그렇군.”
[그럼 이만 하도록…….]“뭔 소리냐?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뭐?]천마갑귀의 몸이 움찔 떨렸다.
“협상할 생각 없다고.”
날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땐 온갖 센 척 다하더니 이제 와서 타협하자는 꼴이라니.
생각하는 방식이 딱 봐도 비열한 빌런과 다를 바 없었다.
흥미가 식었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