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그어어어어!
천마갑귀의 발악은 그야 말로 성가시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난리였다.
녀석은 절대 곱게 죽어주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면서 날 뿌리치려 들었다.
수세에 몰린 마물을 요리하는 건 내 전문 분야였다. 차근차근 압박해나가던 나는 궁지에 몰아 넣는데 성공했고 목을 부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어진 기뢰 폭풍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두들겼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이거 참.”
난 내 앞에 형태만 남은 천마갑귀의 머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투뿔 마물을 사냥하는데 성공했지만 남은 거라고는 이 머리와 심장이 전부였다.
녀석의 거대한 육체는 산산이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한 게 아니다. 녀석이 저지른 일이다.
“자폭이냐.”
마지막 순간, 천마갑귀의 선택은 자폭이었다. 나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겠다면서 전신의 폭발을 일으켰다. 녀석의 피와 육편을 뒤집어 쓸 때만 해도 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뿔 마물의 마지막 발악을 내가 얕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위력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녀석의 독성이 만독불침의 해독 속도를 초월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급속도로 중독이 진행,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때 발동한 것이 완전회복이었다.
“완전회복은 일회용 기프트인데 말이지.”
버서커 말고 다른 각성자가 이걸 갖고 있을지는 몰랐다.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격이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만독불침을 발동하여 폭발하던 천마갑귀의 머리와 심장을 건질 수 있었다.
덕분에 자잘한 부상도 말끔하게 나은 상태였다. 지금 컨디션이면 투뿔 마물 하나가 등장해도 잡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투뿔 마물이 자폭할 것도 염두에 둬야겠군.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이 나?]주의해둘 건 주의해야지.
난 천마갑귀의 심장을 잡고 묻은 피를 맛보았다. 녀석의 기프트가 나오기 시작한다. [꼬리 휘두르기], [포이즌 브레스], [급속 번식], [플레이그]가 보였다.
…전부 내가 취하기 애매한 기프트로군.
꼬리 휘두르기와 급속 번식은 탈락이고, 포이즌 브레스와 플레이그라니. 하나는 입에서 독을 뿜어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온몸의 세포를 전염병 균으로 분열시켜 전염병을 퍼뜨리는 거다.
유럽에서 이 빌런이 등장하자 붙잡혀서 산 채로 태워진 일이 있었다.
내가 가장 눈여겨보던 기프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 비틀기는 왜 없지?”
공격에 왜곡을 일으키는 이 공격은 상대 타이밍을 앗아갈 수 있는 비기 중 비기였다.
그런데 기프트 목록이 없다니.
“기프트가 아니었나.”
[아니면 온전한 형태의 피가 아니어서 그런 거 아냐?]그럴지도.
용용이 지적이 타당했다. 자폭하면서 뒤늦게 만독불침으로 해독하면서 살려낸 거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웠다.
온전한 형태로 손에 넣었다면 공간 비틀기를 손에 넣었을 텐데.
[어떻게 하려고?]“버려야지.”
난 입맛을 다시다가 포기하고는 천마갑귀의 머리와 심장을 챙기고 멍멍이를 불렀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녀석은 내가 든 머리와 심장을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맹렬하게 회전시켰다.
이 먹보 녀석, 무슨 기대를 하는 거냐.
“이건 내 거다.”
…멍!
멍멍이는 미련이 묻어나오는 눈으로 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특식을 자주 챙겨주다 보니 녀석이 배가 부른 느낌인데?
자세히 보니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거 같기도 하고.
[그동안 네가 준 게 푸짐하긴 했지.]하긴, 생각해보면 그렇긴 했다.
그래도 이번 건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기록될 투뿔 마물이라서, 멍멍이 뱃속으로 사라지게 하기에는 아쉽지.
포동포동해진 걸 보니 부지런히 굴려야겠다.
멍멍!
멍멍이가 오한을 느꼈는지 몸을 떨면서 날 바라봤다.
“가자.”
멍!
난 멍멍이와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왜 그 방향으로 가?]*
* *
그 시각, 선양에 본거지를 둔 북군 측은 천마갑귀의 에너지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했다.
“최준호와 교전 중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살펴보러 갔던 게 아닌가?”
“지금 그게 중요하지 않지! 그래서 정황은?”
“정확하진 않으나 치열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인과 초월적인 강함을 지닌 마물의 전투는 제대로 관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저 힘의 충돌 여파로 인간을 뛰어넘은 두 존재가 부딪치고 있다는 걸 파악했을 뿐.
북군 수뇌부는 이때만큼은 최준호가 승리하길 간절히 바랐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들의 영역을 박살낸 천마귀갑의 존재는 막을 수 없는 재난 그 자체였다.
“기왕이면 둘 다 사라져버렸으면.”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마음이었다. 선양에 온 최준호의 거칠 것 없는 행동은 그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자신들의 지위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폭력 그 자체.
자기 영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더 큰 권력을 거머쥐려는 정치인들에게 최준호의 존재는 천마귀갑 못지않은 재앙이었다. 둘이 양패구상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났을 무렵.
사방에서 속보가 쏟아졌다.
“9A 마물의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마물의 반응이 없습니다! 소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준호는? 최준호는 어떻게 되었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상황입니다!”
“빨리 사람을 보내 상황을 파악해!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야 된다!”
“예!”
9A 마물 천마갑귀 반응 소멸에 장내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북군을 멸망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마물이 사라졌다면 다시 주도권을 쥘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미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른 북군은 남군의 피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최준호도 죽었으면 좋겠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지도. 차라리 이 기회에 확보해서 고독을 넣어두면…….”
“처리하는 게 더 낫지 않나?”
“후환을 생각하면 없애는 게 더 나을지도.”
“그래도 지닌 힘은 아쉬운데. 꼭두각시로 만들어놓으면 처리하기도 쉬우니…….”
모두가 희망 섞인 말을 내놓았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조사단은 마물도, 최준호도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해왔다.
위하오는 조용히 위성전화로 통화 연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연결음만 들릴 뿐, 최준호와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전투 전에 다른 곳에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위하오는 최준호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통화가 연결되면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니까.
그 또한 최준호와 전략적 동반자였지만 빈틈을 드러낸다면 언제든 칼을 꽂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특히 최준호가 생체 내단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더더욱.
“최준호가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주변을 수색한다. 큰 부상을 입었을지 모르니 반드시 찾아낸다.”
신병을 확보하면 그 다음은 북군 측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
수뇌부도 이 사실을 알기에 자발적으로 전력을 내놓았다.
그렇게 역대급 규모 수색대가 조직되어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하지만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최준호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하오의 위성전화로 최준호의 연락이 왔다.
-너희 소원대로 마물은 처리했다. 보답하는 거 잊지 마라.
“무사한 건가?”
-당연히 무사하지. 내가 죽지 않아서 아쉽냐?
“그럴 리가.”
-서로 다 아는 처지에 내빼지 말자고.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냐.
“…….”
위하오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알았다. 최준호는 자신에게 감정을 발산한 상대를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보답할 기회를 주면 좋겠군.”
-그건 나중에 받으러 가지. 그동안 수습 잘 하고 있어라. 끊는다.
“잠까…….”
위하오는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최준호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통화를 받는 도중, 이미 최준호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던 위하오가 부하를 재촉했다.
“최준호 위치는?”
“그, 그게…….”
“빨리 말해!”
“한국의 인천입니다.”
“뭐? 언제 거기까지…….”
“이동하는 속도로 보아 배를 탄 걸로 보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당했다. 최준호는 처음부터 복귀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최준호를 확보하기 위해 수색을 하고 있었으니 녀석의 손안에서 놀아난 셈이다.
“…완전히 당했군.”
앞으로 최준호의 등쌀에 시달릴 것을 생각한 위하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
* *
마물 사냥 이후, 나는 중국 칭다오로 가서 배를 하나 빌려 인천으로 향했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마음이 다른 게 사람이란 동물이다. 선양으로 돌아가면 성가시게 굴 게 분명해서 나는 전리품만 챙기고 돌아가는 걸 선택했다.
중간에 마물 몇 마리가 귀찮게 굴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방해 없이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왜 그런 거지?
[저거 때문 아닐까?]용용이가 가리킨 것은 천마갑귀의 머리였다. 이미 죽은 마물인데 체취 때문에 접근하지 않는 건가? 저 머리가 일종의 마물 퇴치 기구 역할을 한 셈이로군.
이렇게 보니 앞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특별한 용도가 없으면 마물 퇴치 기구로 써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하니 한국이 발칵 뒤집혀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뉴스를 보니 나와 천마갑귀가 양패구상했을 가능성을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앵커 목소리가 왜 신이 난 거 같지?
[나라도 신날 거 같은데? 폭탄이 사라졌잖아.]“내가 폭탄이냐?”
[몰랐어? 인간들이 너 완전 폭탄 취급이던데.]“그럴 리가.”
[진짜라니까?]말 한 번 섭섭하게 하는군. 내가 사라진 걸 그렇게 기뻐할 리가.
[몰라서 묻는 거야, 답을 정해놓고 묻는 거야?]용용이는 사람 열 받게 하는 능력이 참 뛰어나단 말이지.
아무튼 나와 천마갑귀가 전투를 치르고 반응이 사라졌으니 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전투를 하면서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하지만 한 방 얻어맞은 덕분에 경계심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강해졌다고 방심했던 거지. 천둥새를 잡을 때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생존신고를 위해 청와대에 도착하니 천명국이 직접 나와서 날 은밀하게 맞아들였다. 날 보는 얼굴에는 짙은 안도감이 깔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천 실장님은 절 걱정하셨네요.”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인정하는 것치고 표정이 바로 안 좋아지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려던 차에 대통령이 나타나서 다음에 묻기로 했다.
달려오듯 다가온 대통령이 내 팔을 쳤다.
“이 사람! 무사했으면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위성전화를 쓰면 위치가 특정될까 싶어서 주의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은 했지만 믿고 있었지. 자네가 어디 가서 쉽게 죽을 사람인가.”
“뉴스에서는 제가 좀 죽었으면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던데요.”
“허허.”
솔직히 말하면 별 감흥은 없었다. 단지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얼굴은 좀 보고 싶었다.
내 앞에 서서도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속마음이 나왔는지 대통령이 기겁하며 말했다.
“솔직히 자네가 적을 많이 만들었잖나.”
“그랬나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이 아주 많네.”
“나쁜 놈들하고 마물만 잡았는데 제가 죽길 바라네요.”
“세상이 그런 거 아니겠나. 선악이 아닌 자기 이익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아무튼 무사히 돌아온 걸 보니 한시름 놨어.”
“그러네요.”
내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걱정 받겠다고 일했나, 그냥 내 만족을 위해 일한 거지.
난 아주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빌런을 보면 손이 저절로 나가는 병, 개소리 들으면 손이 저절로 나가는 병을 말이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으니 슬슬 소식을 전달해야지.”
“며칠 두고 보면 안 될까요?”
“자네가 돌아온 걸?”
“예.”
“왜 그러나?”
“제가 죽으면 누가 좋아할지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대통령과 천명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 이익이 걸려 있어서 그런 거라네. 누구나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것만으로 처리하면 살아남을 사람 몇 없어.”
“누가 죽인다나요. 그냥 누구인지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진짜로요.”
“…….”
하지만 나를 보는 대통령과 천명국의 눈에 전혀 믿음이 실려 있지 않았다.
[나도 전혀 믿음이 안 가는데 저 인간들이 믿겠어?]이거 참 답답하군.
*
* *
청와대를 나온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4시였다.
난 목적지를 집이 아닌 사무실로 설정했다.
“시간은 아직 넉넉하네.”
[갑자기 시간은 왜?]“사무실로 가려고.”
[집에 가서 안 쉬고?]“어, 그 전에 할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번에 마물 사냥하면서 숨겨놓은 한 수가 사라졌잖아.”
여벌의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회복이 천마갑귀의 자폭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로 인해 현재 내가 보유한 기프트는 9개.
하나를 추가해도 이상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 삭제했던 직감을 다시 추가할 생각이었다.
마음 먹었으면 바로 처리하는 게 낫지.
마침 시간을 확인하니 버서커가 사무실에 나와 있을 시간대다.
[와…….]용용이가 내 부지런함에 감탄사를 터뜨리는 사이 난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가 버서커를 만났다.
“무사했군. 하긴, 플러스 플러스 마물이라고 해도 네 녀석이 죽을 리 없지.”
“어, 이번에 엄청 고생했다. 강하더라. 몇 번 죽을 뻔했어.”
“호오, 그 정도라고?”
흥미가 생기는지 버서커의 눈이 빛났다.
“이번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가?”
“그래서 말인데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내가 널 도울 게 있나?”
“있어. 너밖에 할 수 없는 게.”
정확히 말하면 직감은 정다현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다현은 내게 기프트를 뺏긴 적이 없다.
그에 반해 버서커는 다경험자였고.
기왕이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나서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버서커가 더 만만하기도 했고.
“내가?”
“어.”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금방 끝날 거야. 잠깐 훈련실로 갈까?”
“…그러지.”
[안 돼! 가지 마! 가면 가슴에 구멍 뚫린다고!]용용이가 안타깝게 외쳐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버서커를 데리고 훈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삭제했던 직감을 추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