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진두지휘 아래 기프트 통폐합 작전이 진행되었다.
확신이 있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고민도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계획은 계획에 불과할 뿐 변수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얼마든지 다른 사건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프트 통폐합이 진행되자 변화가 실감났다.
“달라졌어.”
그러고 보니 언제인지 기억이 희미할 정도다.
내가 기프트를 10개 미만으로 보유했던 것이. 혈중섭식을 얻고 괜찮다 싶은 기프트를 모조리 손에 넣었던 시절이 있다. 기프트가 많으면 강해지는 거라고,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었던 거 같다. 기프트도 기프트지만 숙련이 중요한 법인데.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로 혈종에게 집어삼켜졌다.
그 숫자가 11개로 늘어났을 때 난 변화를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내 변화를 감지하고 조언을 해줬다. 만약 그 이야기를 무시하고 나섰다면 다시 한 번 혈종에게 집어삼켜졌겠지.
그래서 이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나는 기프트가 줄어들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 감각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생각의 폭이 자유로워졌다는 걸 눈치 챘다.
“여유인가.”
내 안에 뭔가를 좀 더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유.
11개일 땐 더부룩했다면 지금은 딱 컨디션 좋을 때 느낌이었다.
“내 그릇이 채워진 정도로 볼 수 있겠어.”
브레인워싱과 직감을 통폐합한 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다. 내가 빌런들을 무자비하게 처리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진세정에게 스타일링을 받고 부터 세간의 반응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동반되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던 것은 바로 기프트의 발동 속도였다.
각기 만독불침과 혜광심어의 일부가 된 브레인워싱과 직감은 사라졌지만 두 기프트 안에 그 기능이 남아 있었다. 브레인워싱과 직감은 여전히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발동되는 속도가 직접 보유하고 있을 때와 비교해서 느려졌다.
한 차례 딜레이가 되는 느낌. 특히 직감의 경우 상시발동이다 보니 확 와 닿았다.
그 전까지는 나에서 기프트였다면, 지금은 나에서 만독불침, 브레인워싱, 나에서 혜광심어, 직감 이런 형태로 바뀌었다.
“중간 단계가 늘어나서 그런 건데.”
이 부분을 극복하는 건 만독불침과 혜광심어가 발 빠르게 움직여서 발동하는 건데.
“두 녀석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건가.”
주기적으로 불러내서 갈궈야겠군.
그 외에 다른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약간의 딜레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기프트이기에 오히려 두 자리를 만들어냈다는데 의의가 있다.
“좋은데?”
아니, 만득이와 광심이를 좀 더 갈구면 기프트 숫자를 더 줄일 수 있을지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불러서 얘기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만독불침은 기프트를 휘하에 두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혜광심어는 마물언어에 이어 직감까지 휘하에 두면서 용량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내가 보유한 기프트 숫자에 제한이 있는 것처럼 녀석들도 그런가보다.
만독불침은 하나니까 익숙해지면 하나 더 끼워 넣어 봐야겠다.
전설의 기프트 아닌가. 그 정도는 가뿐하게 해낼 수 있을 거다.
“괜찮은 기프트를 찾으러 다녀볼까.”
*
* *
빌런들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괜찮은 기프트를 찾을 생각에 들떠 있었으나, 본격적인 탐색에 나서면서 성과는 저조하기 그지없었다.
척박한 대지에 꽃을 피우기 어려운 법인가. 대부분 레벨이 낮고 잔챙이에 불과한 녀석들에게 내가 기대한 유니크 기프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쯤은 걸려들 줄 알았는데 아쉬웠다.
“좀 더 저인망으로 훑어야 하나?”
지금 아쉬운 건 나니까. 겸사겸사 빌런 청소도 하면 좋고.
이런 날 찾아온 건 정주호였다. 날 보고 싶다던 정주호가 대뜸 물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지?”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청문회를 뒤집어놓고 다짜고짜 빌런 조직들을 박살 내고 다니니까 국회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뒤집혔어. 진짜 다 쓸어버리려고 하는 게 아닌지.”
“아, 그거요. 아니에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이걸 무력시위로 봤나보다.
청문회는 크게 신경 안 쓰려고 노력 중이다.
일단 재판 결과가 나오고 그 다음에 결정해도 되니까.
내가 사법부를 신뢰하는 건 아니고, 순전히 내 참을성이 늘어나서 가능한 결과다.
“그럼 왜 들쑤시고 다니는데?”
“찾을 게 있어서요. 겸사겸사 합법의 탈을 쓴 녀석들도 쓸어버리고.”
내가 저번에 쓸어버린 지존처럼 빌런 주제에 양지에 나와 버젓이 번듯한 기업인 척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빌런 주제에 양지에 나오다니. 그렇게 세상에 나오고 싶으면 나처럼 과거로 돌아와 제정신을 되찾던가.
악은 부지런하다는 말은 녀석들에게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정주호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그러냐. 다른 의도가 없다면 다행이고.”
“천 실장님이 부탁했어요?”
“어, 너랑 관련된 일만 맡으면 죽으려고 한다.”
“이제 대선 출마하실 분이 사소한 일에 놀라면 안 되는데.”
“네가 관련된 일이 언제부터 사소한 거였냐.”
“지금 보면 별일 아니잖아요? 그냥 개인 볼일을 본 겁니다.”
“하! 그 입담은 나날이 발전하네. 네가 공무원 헌터 됐을 때 지금 입담이었으면 나도 바로 튀었을 거다.”
“전부 이사님이 잘 지도해주셔서입니다.”
“천 실장 앞에서 그 얘기하지 마라.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제법 재밌겠는데?
“하지 마라.”
내 생각을 눈치 챈 것처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완전 사고뭉치 취급하는군.
[신수인 내가 봐도 넌 사고뭉치가 맞아.]옆에서 거드는 용용이는 여전히 얄미움 그 자체였다.
“이사님이 보기에 천 실장님 어때 보여요?”
“뭐가?”
“대선이요.”
“아, 대선?”
“공직에 오래 계셨으니 판세를 보는 눈이 있을 거 아니에요.”
내가 청문회에 등장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각성자 세뇌 사태’는 정계와 재계, 길드가 얽힌 거대 게이트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 중 여당 소속 정치인들이 대거 얽혀 있기에 여당 지지율이 심상치 않게 폭락 중이다.
이것은 정권 지지율에 영향이 미치고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정권 지지도가 낮아지면 현 정권을 계승하는 천명국도 쉽지 않아진다.
“쉽게 당선될 거다.”
“그래요?”
“어, 그 양반 기프트가 뭔지 알잖냐. 잠깐 고전하고 있지만 내부 청소를 마치면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정권 지지율도 높은 축에 속하지. 수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은 리스크 관리에 최적화 되었어. 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쉽게 갈 거다.”
“야당에서는 자기들이 이긴 것처럼 생각하던데.”
“원래 다 자기 유리하게 생각하는 법이야. 너한테 죽은 녀석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잖냐.”
“그러니까 갑자기 이해가 잘 되네요.”
내가 악은 부지런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신봉하는 게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죽을 짓을 해놓고 내 앞에 나타나는 자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긴, 나한테는 잦은 경험이지만 그들에게는 첫 경험일 테니 그럴지도.
이 실수를 극복하면 더 성장할 테지만 나한테 걸린 이상 다음은 없으니까.
“하여간에 그 양반 운명도 참 재밌어. 대권과 전혀 관련없다가 대통령에 의해 진로가 바뀌게 되다니. 세상일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역동적이죠.”
“그러게 말이다. 하필이면 대통령 눈에 걸려서는, 쯧쯧. 응? 갑자기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천명국은 정주호를 다음 대선후보로 보고 있는 거 같던데.
굳이 말해줘 봤자 의미 없겠지.
나야 천명국 다음으로 정주호가 대통령이 되면 편하기도 하고.
빼도 박도 못하게 될 때 놀려줘야겠다.
“이번 대선도, 다음 대선도 재밌겠네요.”
“다음 대선은 왜?”
“그냥요.”
“그러니까 왜 대통령에게 덜미를 잡혀서는, 쯧쯧.”
*
* *
저인망으로 빌런 조직을 훑는다는 내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럭저럭 규모를 가진 빌런들도 없는 기프트를 잔챙이 빌런들이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던 것이다.
당장 리그 본진을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나한테 캄차카 반도가 털린 뒤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있어서 찾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대한민국 육지에 더 찾아볼 수 없다면 바다로 나가면 된다.
빌런은 육지만이 아니라 바다에도 있다. 특히 중국과 밀무역, 일본과 밀무역을 하는 빌런들은 많았다.
걔들을 때려잡으면 된다. 빌런도 소탕하고 난 기프트 탐색도 할 수 있고. 일석이조다.
나는 요트를 몰고 바다로 나왔다. 여기에는 한 가지 실험할 것도 있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방금 전 습격해온 마물을 사냥한 나는 입맛을 다셨다. 좀 적다 싶었는데 역시 먹히지 않았다.
밀무역 단속을 하면서 내가 실험한 것은 천마갑귀의 작은 파편이 마물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가였다.
모든 마물은 자기보다 상위 마물에 접근하지 않는 성질을 지녔는데, 내가 천마갑귀 머리를 들고 바다를 건널 때 놀랐던 것은 육지 마물의 존재감이 해양 마물에게도 먹혀들어서다.
환경이 다르면 서열 정리가 안될 줄 알았다. 실제로 바다가 마물에 의해 막힌 이유가 육지에서 사냥 당한 마물이 해양 마물을 물리쳐주지 않기 때문이었고.
그렇다고 해양 마물로 퇴치 기구를 만들자니 사냥하기도 어렵고 잡더라도 덩치가 커도 너무 컸다. 금방 부패하기도 하고. 방부 처리를 하면 효과가 사라져서 여전히 바다를 수복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바다를 좀 더 편하게 다닐 수 있나 싶었는데 그건 안 되는군.
다음에는 더 큰 조각을 갖고 와야겠다.
“그건 그렇고.”
밀무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산시장 한기열은 일본과의 밀무역으로 인해 빌런들이 활개 친다며 골머리를 앓고 있을 정도라더니, 막상 보니 엄살이 아니었다.
단순히 일본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국가가 얽힌 대규모 밀무역이었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라서 보이는 족족 처리하고 다녔지만.
그러면서 기프트 탐색에 나섰는데 역시나, 수확이 좋지 못했다.
아니, 딱 하나 ‘수중호흡’은 손에 넣을까 제법 길게 고민을 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이 기프트를 손에 넣으면 해양 마물을 상대하기 수월해지거든.
결국 복사하지 않은 것은 내가 주로 상대할 적을 바다 속에서 맞이할 가능성이 없어서다. 현아와 상대한다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용용이한테 친구비를 이야기할 정도로 협조적이어서 굳이 적대할 필요가 없다.
사흘 동안 남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결과, 밀무역선 43척을 나포했고, 빌런 천여 명을 죽이거나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반항하면 가차 없이 죽였고, 순순히 항복하면 심장만 만져준 뒤 체포했다.
요즘은 기술이 늘어서 가슴을 살짝 열어 심장 부근 피를 취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이런 세심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명으로 하트 브레이커가 생겼다.
헤드 브레이커는 머리를 부수고 다녔으니 이해할 수 있지만, 심장은 부수지 않았는데 하트 브레이커라니, 억울하군.
“어쩔 수 없나.”
애초에 이해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야겠다.
사흘만에 남해를 깨끗하게 치워버린 나는 황해로 이동했다. 남해에 씨가 말랐던 밀무역선은 황해에 넘쳐났다.
물 반 사람 반이라는 말이 이걸 의미하는 거였군.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배들이었는데, 날 보고 무기부터 꺼내길래 복잡하게 대화할 것 없이 바로 처리했다.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한국 출신도 있었다.
그런데 날 보더니 이상한 걸 내세우더라.
“우,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퍽!
난 총을 꺼내 들려는 녀석의 머리를 깔끔하게 부숴줬다.
빌런에 출신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지.
난 이런 걸로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 근데 내 앞에서 그걸 내세우는 녀석들이 왜 많은지 모르겠다.
“아니구나.”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말이 통하니까 가끔 대화를 했었다.
이런 허점을 이제야 깨닫다니.
다음에는 입을 열기 전에 처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