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남해와 황해의 빌런들을 쓸어버리고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물 반 사람 반이던 바다에서 밀무역을 많이 치워버렸으니 성과라면 성과라고 해야 하나.
정작 돌아오는 내 뒷모습은 쓸쓸했다.
빌런 대청소는 이뤄냈지만 정작 내가 바라던 걸 이뤄내지 못했으니 반쪽짜리 성공인 셈이다.
“세상 일 쉽지 않네.”
[그래도 하나는 건질 줄 알았는데. 안 될 줄 몰랐어.]“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대로 돌아가게?]“어.”
마물들을 족치는 방법도 있지만 인외의 존재인 마물의 기프트는 빌런의 것보다 내게 적합할 가능성이 한없이 낮았다.
“아니, 내 욕심이 큰 걸지도.”
과거에서 돌아와 여러 기프트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질적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
빌런들을 사냥하면서 그런 기프트가 하나 걸리길 바랐던 거 같다.
당장 만득이나 광심이 같은 기프트가 있으면 휘하에 기프트를 놓아둘 수 있을 테니까.
말이 통하는 기프트는 그 자체만으로 쓸모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런 기프트가 아무 곳에나 굴러다니지 않겠지. 내 생각 자체가 안이했던 것이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 레벨 9 테스트를 만들어서 초인 여럿을 상대하기도 했던 건데, 저우콴 사태 이후 테스트를 보겠다는 초인이 사라져버렸다.
죽일 놈을 죽인 여파가 이렇게 돌아오는군. 지속적인 기프트 탐색이 가능한 모델이었는데 없애버리게 되어 참 아쉬웠다.
요즘 들어 왜 재벌이 문어발로 사업을 확장했는지 알 거 같았다.
저렇게 확장해나가면 기프트는 더 많이 보유하면서 내게 가해지는 부담은 줄일 수 있을 텐데.
“생각해보면 이름 없는 빌런들이 그런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지.”
당장 만독불침은 버서커에게, 혜광심어는 장우위안에게 얻었다.
모두 초인의 경지에 오른 각성자들이다. 뛰어난 기프트는 그에 어울리는 주인에게 있는 셈이다.
“잠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내가 여태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프트의 질은 주인의 이름값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저인망으로 빌런들을 샅샅이 훑어서 기프트를 탐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차라리 수준 높은 각성자들을 상대로 탐색하는 게 더 쉬운 방법일 수 있었다.
자잘한 기프트 백 개보다 전설급 기프트 하나가 더 나은 법이니까.
“무뎌졌군.”
이 간단한 문제를 이제야 떠올리다니.
이게 다 간절함이 사라져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만약 내가 혈종이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 다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방법을 찾아냈을 거다.
평화에 찌든 부작용이 이런 식으로 발동하는군.
뭐, 그 시절이 그립다는 건 아니다.
단지 평화에 익숙해져서 나태해진 걸 반성하는 거지.
[그게 그렇게 반성할 일인가.]내막을 모르는 용용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넌 모르면 가만히 있어.”
[뭐야, 친구잖아! 친구면 고민도 공유하고 그런 거 아냐?]“친구 사이가 오래 가려면 적당한 비밀도 필요한 법이다. 너도 나한테 전부 말하지 않잖아?”
[그렇기는 한데…….]용용이는 한 가지 사실을 착각하고 있다.
친구 사이라고 해도 전부 평등한 건 아니다.
아직 그걸 잘 모르는 눈치로군.
꿍얼거리는 용용이를 물리친 나는 서울로 복귀했다. 사무실 안으로 돌아온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각성자 세뇌 사태에 연루된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광경이었다.
기업인, 각성자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까지 체포되는 광경은 의외였다.
좀 더 개기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다 피를 봐야 행동으로 옮기는 게 범죄자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다 네가 무력시위를 해서 그런 거지.”
어느새 내 옆에 앉은 정주호가 그렇게 말했다.
무력시위? 그건 무슨 말이지?
“네가 남해, 황해 가리지 않고 들쑤셔 놨잖냐. 그거 무력시위 아니었어?”
“아, 그거요.”
“그래, 그거.”
정주호의 말은 내가 각성자 세뇌 사태 주범들을 구속시키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말이었다. 저번에 빌런들을 처리하고 다닐 때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무력시위 아닌데요.”
“넌 아니라고 해도 보는 사람들은 달라. 바다고 육지고 빌런들의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하는데 겁 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그냥 놔둔 결과가 이거다.”
기프트를 찾으려고 돌아다닌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 몰랐다.
마냥 허탕친 건 아니란 건가.
세상일이라는 게 참 재밌게 흘러 간다.
[다른 사람들은 다 겁 먹고 너만 재밌는 거 같아.]상관없다.
내가 재밌으면 된 거지.
“결과가 좋으니 된 거죠. 제대로 대가만 치르면 저도 신경 쓸 일은 없습니다.”
“네가 만족할 수준이라는 게 제일 무서운 말인 거 같다만.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닌 성과는 있었냐?”
“아뇨, 없습니다.”
“그래? 아쉽게 됐네.”
난 입맛을 다시는 정주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괜찮은 소재가 눈앞에 있었다.
“이사님.”
“응?”
“이사님은 초인이 될 생각 없습니까?”
정주호가 행정과 조직 관리에 있어 스페셜리스트로 보이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초인이 될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각성자였다.
함께 작전을 나갔을 때 보여준 실력도 꽤 쓸 만했고.
그림이 괜찮게 그려지겠다 싶었다.
“생각 없다.”
“그래요?”
“어, 몇 년 전이면 죽어라 했을 텐데 아등바등한다고 안 되는 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 초인이 되는 사람들은 결국 재능이 있어야 하더라. 난 그게 없고.”
정주호는 초인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거 같다. 그냥 힘의 운용 방법을 깨닫도록 이론을 숙지시킨 뒤 육체가 그걸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굴리면 오를 수 있다.
그 전에 대부분 죽어버려서 문제지만 정주호 정도의 재능이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
의지가 약해서 그렇지,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길을 단축 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기프트 각성이 있고.
정주호 정도의 재능이면 분명 훌륭한 기프트가 잠재되어 있을 거 같았다.
한 번 해보면 될 듯 싶다.
“이사님이면 가능할 거 같은데요. 해보시죠.”
“너, 무슨 꿍꿍이 있지?”
“없는데요.”
“아니야, 있어. 내가 머리 빠져가면서 숱한 위기를 헤쳐 왔는데 그걸 모를 거 같냐?”
[와! 저 인간 머리가 빠질수록 눈치가 느는 거 같아.]천명국은 속여도 정주호는 힘든 건가.
이러니 대통령의 마수에 걸려들기 전에 도망친 거겠지.
쉽게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 어렵게 간다.
그렇다면 떡밥 하나를 더 투척해야겠지.
“과정에서 나오는 소소한 부산물을 얻는 거고요. 초인이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모발이 굵어집니다.”
“……!”
“초인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이야기거든요. 생명력이 활성화되어서 얇아졌던 머리가 다시 굵어집니다.”
“진짜냐?”
“네. 한 번 확인해보세요.”
“…….”
단호하던 정주호의 얼굴에 갈등이 드리웠다. 난 알고 있다. 정주호는 다 포기한 척 하지만 아직 모발에 대한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다.
“한 번 고민해보마.”
“네. 급한 건 아니니 편하게 생각해보세요.”
주도권이 넘어온 거 같으니 굳이 매달리는 인상을 줄 필요가 없겠지.
결정은 어디까지나 정주호가 하는 모양새로 가야 한다.
[진짜 모발이 굵어져?]고민에 휩싸인 정주호가 밖으로 나가자 용용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신수도 극복할 수 없던 게 탈모였지.
“어. 대신 오래 가지 않지만.”
[무슨 소리야?]“모발이 굵어지지만 약한 모근은 버티지 못하더라. 그래도 그 기간 동안 잘 관리하면 풍성해보일 수 있으니까, 명예로운 죽음은 되겠지.”
[와! 너 진짜 나빴다.]“초인이 되고 잠깐이라도 꿈을 이루게 해주니 오히려 잘한 거 아니냐?”
[…….]용용이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 의외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세희나 정다현은 촉망받는 유망주를 뛰어넘어 초인이 될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고, 천명국 또한 시뮬레이션을 보유한 실력자였다.
[시뮬레이션도 굉장한 기프트 아냐?]“좋지. 근데 내 취향은 아니라서.”
여러 정보를 통해 결과를 예지에 가깝게 추측하는 이 기프트는 재미가 없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상대가 다 죽는 결과가 만들어졌을 텐데.
결과를 미리 보고 손맛을 본다면 재미가 떨어지고.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지만 내 뜻대로 손맛을 자유자재로 보는 게 더 낫다.
아, 천마갑귀를 상대할 때 있었다면 완전회복이 사용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으려나.
그건 직감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을 거다.
천마갑귀가 워낙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많이 해서 막지 못한 거고.
그리고 이미 기프트를 보유한 사람은 꼬드기는데 상당한 난관이 존재했다.
이미 기프트를 개방한 상대에게 기프트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말하기 난감한 일이거든.
그래서 정주호 같이 기프트 개방을 하지 않은 실력자를 꼬드기기가 좋다.
또 다른 재능러가 누가 있나 이리저리 둘러볼 때였다.
그때 내가 의식 밖으로 밀어두었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인님 안녕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있었다.
난 인사하는 양주혁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생에서 빌런이던 녀석은 이너클로운이라는 이명을 가졌다.
빌런이 기본적으로 이명을 갖는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실력이 뛰어나거나 저지른 악행이 유별나거나.
양주혁은 그 둘 모두에 속하는 훌륭한 빌런이었다. 재능도 상당히 뛰어나서 일찍 죽지 않았으면 더 강해졌을 것이다.
이 녀석으로 하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예, 뭐든 말씀하십쇼.”
“기프트는 개방했나?”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내가 알기로 이너클로운은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말은 언제고 기프트 각성을 한다는 건데.
이거, 좋은 기회다.
“저번에 보고 생각이 좀 바뀌었나?”
“예,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
“지금 제 실력으로 품어서 안 되는 사상이며 힘을 갖출 때까지 몸을 낮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위축돼서는 안 돼. 강해지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된다.”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생에 내가 버르장머리를 잡아놓고자 했던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양주혁은 야심만만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또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착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가.
난 양주혁에게 말했다.
“내가 기프트 개방을 도와줄 수 있다면 어때?”
“저도 해주시는 겁니까?”
“알고 있어?”
“예. 초인님에 대한 정보는 숙지하도록 하고 있어서 머릿속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초인님의 은혜를 입으면 내재된 기프트도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각국의 초인들도 그 수혜를 입었고요. 저도 목표가 초인님의 은혜를 입는 거였습니다.”
그 정도였나?
하여간에 소문 하나 빠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포장되어 있어서 듣기도 좋고.
이러면 얘기가 쉬워지겠다.
“그래서 네 생각은?”
“당연히 은혜를 입고 싶습니다! 설령 기프트가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기프트가 없으면 누군가한테는 잔인한 결과가 될 수도 있긴 하겠군.
하지만 양주혁은 이너클로운이라는 이명과 함께 기프트를 활용했던 빌런이다. 기프트가 없을 리 없다.
그걸 모르니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게 귀여워 보일 정도로군. 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으니.
이건 양주혁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다.
“그럼 언제 확인할까?”
“저는 당장도 좋습니다!”
“지금?”
“예! 초인님 시간이 안 되신다면 한참 후여도 좋습니다.”
“아니, 난 괜찮아.”
역시 어려서인가, 빨리빨리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나랑 잘 맞아서 좋다.
“바로 하자.”
“예……?”
난 양주혁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손을 뻗어 녀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손에 찢어져라 커진 눈.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의아함을 느꼈다.
당장도 좋다고 하면서 왜 저렇게 놀라는 거지?
[쟤는 퇴근 후를 말한 거 같은데?]그래?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있었나보다.
뭐 어때. 이미 저질렀는데.
난 눈을 부릅 뜬 채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있는 양주혁에게 말했다.
“가만 있어. 심장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