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나와 양주혁 주위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그들은 양주혁의 가슴을 꿰뚫은 날 보면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양주혁의 피를 맛보고 기프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양주혁의 이너클로운 시절, 녀석의 기프트는 포스를 잘게 나눠 그걸 비산, 상대를 잘게 다져버리는 기프트였다.
당시 중2병이던 녀석은 그것을 만천화우라고 하면서 떠들고 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식명칭은 포스를 잘게 쪼개는 스플릿(Split)이라는 기프트였다.
효용은 살짝 애매한 감이 있는데 나라면 저격에 사용해서 탄환을 쪼갤 수 있겠다. 근데 그러면 위력이 약해지고, 차라리 포스를 퍼부어서 더 많은 탄환을 만들어내는 게 낫겠지.
쓸모가 애매해서 아쉽지만 포기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스플릿보다 내 눈을 잡아끈 기프트가 있었다. 바로 급속 성장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건 전설급은 아니지만 유니크급이라 할 수 있는 기프트로, 보유자가 체계적인 체제를 통해 수련을 하면 반복하는 과정에서 효율을 극도로 끌어올려 성장을 도와준다. 남들보다 월등한 속도로 포스를 쌓을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양주혁이 이너클로운일 때 스플릿을 사용했었는데 이 급속 성장은 개방하지 못했나보다.
스플릿이나 급속 성장 모두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기프트였다.
난 성과가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창백하게 질린 녀석에게 기프트 종류를 알려줬다.
“스플릿, 그리고 급속 성장이요?”
“그래.”
스플릿은 응용에 따라 괜찮은 기프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급속 성장은 이야기가 다르지.
“이 기프트가 갖는 약점은 알고 있지?”
“어떤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성장이 빠른 만큼 보유자의 부단한 노력을 전제로 한다. 급속 성장은 육체보다 포스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여기에서 육체 단련이 받쳐주지 않으면 균형이 무너진다. 그리고 힘에 먹혀버리게 되지.”
“힘에 먹혀버리면…….”
“미치는 거지.”
머리를 두들겨 보이자 양주혁이 마른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의외로 잘 이해하는데? 얘도 나처럼 미쳐본 적이 있나? 아니면 과거로 돌아왔나?
…그건 아니겠지. 과거로 돌아온 것치고 터무니없이 약하니까.
“머리 부수겠다는 거 아니니 안심하고.”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쳐버리면 내가 머리 부수러 갈 거니 그렇게 알고.”
“…예.”
“아무튼 급속 성장은 좋은 기프트니 잘 다뤄봐. 잘 이용하면 네가 원하는 곳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 시켜 줄 수 있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양주혁이 허리를 90로 굽혀 인사를 했다. 나도 나 좋다고 한 건데 결국 양주혁만 좋은 일이 되었군. 그냥 스플릿을 얻을 걸 그랬나? 아니다, 괜찮은 기프트긴 하지만 내게 큰 도움이 안 되는 거다. 자잘한 거에 욕심을 부리고 다 가지려다가 파국을 맞이하는 거니까.
“아니.”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지.
한 번 뚫은 가슴 한 번 더 뚫는다고 바뀌는 거 없잖아?
“예?”
“다음에 보자.”
응, 너 킵.
그리고.
양주혁을 보낸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기프트가 사람의 심장에 내재되어 있다면 각성자가 아닌 무언가를 이룬 사람의 심장에도 있지 않을까?
내가 혈종일 때도 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주변에 넘쳐나는 각성자들로 인해 행동에 옮길 필요를 못 느꼈다.
“한 번 해봐야겠다.”
*
* *
양주혁과 볼일을 마치고 대통령과 면담 자리에서 나는 천명국에게 붙들려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초인님, 아무 말도 없이 그러시면 저 같은 소시민은 심장마비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실장님이 소시민이라고요?”
“예. 여태까지 모르셨습니까?”
“이제 알았네요. 많이 놀라셨나요?”
“청와대 한복판에서 벌어지면 누구나 놀랍니다. 아니, 알고 있어도 놀랍니다.”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긴 하군.
“주의하겠습니다.”
“초인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믿고 맡기겠습니다.”
“믿어주시죠.”
내 믿음직한 대답에 천명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양 사무관의 기프트는 어떻습니까?”
“괜찮더군요.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겁니다.”
“다행입니다. 원래 재능도 출중하니 기대해봐도 되겠습니까.”
“까불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죠. 버릇을 고쳐놓겠습니다.”
“…죽이지만 말아주시길.”
어째 천명국은 내가 걸리기만 하면 다 보내버리는 줄 안다.
양주혁은 쓸모가 있으니 두들기더라도 회복이 가능할 정도만 할 건데.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천명국은 각성자 세뇌 사태에 관련하여 특검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며, 하나씩 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점에서 초인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행여나 형량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넘어가 주실 수 없습니까?”
“형량이 별로 안 나옵니까?”
“최대한 중형에 처하겠지만 초인님이 바라는 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이 나라의 법 체계 때문이 아니라 어느 나라나 기득권은 그만한 자기 방어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천명국은 내 개입 없이 특검 자체로 충분한 물갈이를 바란다고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는 게 모양이 안 사나 보군.
근데 과연 천명국 뜻대로 될까? 지켜보면 알 일이겠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 못했다는 얼굴이시네요.”
“받아주실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흔쾌히 받아줄 줄은 몰랐습니다.”
대통령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은근히 사람 섭섭하게 만드는군. 설마 내가 다짜고짜 손을 써서 머리부터 부숴버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혈종이나 할 짓인데.
[내가 보기에는 너나 걔나 뭐…….]용용이의 시비를 사뿐하게 무시해줬다. 틈만 나면 날 혈종이랑 비슷한 급으로 만들려고 하는군.
신수니까 정상인과 미친놈의 구분이 어렵다고 생각해주지.
그리고 내가 생각해놓은 방법도 있다.
“조용히 지켜보다가 자연사 한 것처럼 만들어도 되니까요.”
“…….”
뭔가 허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인데, 내가 무슨 말 실수라도 했나 싶었다.
“…하긴 초인님이 그렇게까지 하는 걸 막을 수 없기는 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실장님은 출마 선언을 언제 하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그 말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초인님에게는 공유 드리는 게 옳은 거 같아서.”
천명국은 이번에 부탁한 게 출마 부분과 연관이 있다면서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특검에 대한 실무 조정을 천명국이 맡은 상황에서 언론 노출도를 조금씩 높여나갈 생각이고, 성공적으로 업무를 마침으로써 유능한 모습을 보인 뒤 분위기를 달굴 계획이란다.
유능한 실무자 느낌과 노련한 정치가 느낌을 동시에 잡으려고 하는군.
“응원하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찬조 연설 할게요.”
“아, 그건 괜찮습니다.”
“…….”
단호한 거절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
* *
찬조 연설은 좀 오바였나.
차라리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걸 얘기해볼 걸 그랬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천명국은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확실하게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인가.
그렇게 볼 때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는 섣부르다 싶었다.
내가 의욕이 많이 앞서기는 했나보군.
“그나저나.”
과연 특검이 끝까지 순조롭게 진행될까? 각성자 세뇌 사태에 관련된 자들은 사회에 기득권이라 불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걸 두고 순순히 잡혀 들어갈 거라 생각하면 순진한 생각이다.
청와대에서 계획은 있겠지만 그 계획대로 100% 진행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변수가 생길 때 내가 작게나마 힘을 보탤 기회가 생기겠군.
생각을 정리하며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였다.
“이게 뭐야?”
사무실이 있는 빌딩에 내 얼굴로 제작된 초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다름 아닌 내가 청문회 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다.
하마터면 교통사고를 낼 뻔했다.
음, 참고로 나 정도면 교통사고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초인님! 기다렸어요!”
사무실에 도착하니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는 것처럼 진세정이 날 회의실로 데려왔다.
난 조금 전 봤던 걸 떠올리고는 진세정에게 따지듯 물어보았다.
“저건 뭡니까?”
“이번 청문회가 화제가 된 건 알고 계시죠? 그중 최고의 순간이라 꼽힌 걸 프린팅 해봤어요!”
“…최고의 순간하고 프린팅하고 무슨 관계인지부터 알려주시죠.”
“그야 굿즈 사업 확장을 위해서죠. 초인님, 이번 청문회가 초인님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박이 났어요! 진짜 재밌는 게 뭔지 아시나요?”
진세정은 내가 청문회에서 했던 발언은 여태까지 해왔던 것과 비교할 때 가장 노골적이면서 동시에 잔인함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그런 느낌이 아니었죠.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에요.”
“보이는 이미지입니까?”
“맞아요! 이건 앞으로 초인님이 거리낌 없이 손을 써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허용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난 내가 빌런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빌런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걸로 곧 빌런이 될 거라고 여론 공격도 받았고. 그런데 그 공격은커녕 허용까지 받을 수 있는 단계로 간다고?
“초인님.”
“예.”
“제가 청문회를 보고 느낀 건 초인님은 말 그대로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거예요!”
“…….”
갑자기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다. 라는 제목 같은 게 갑자기 생각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어나 봅시다.”
“제가 처음 봤을 때 초인님은 자신의 이미지가 어떻든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어요. 아니, 그런 이미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뉘앙스였죠.”
“그랬던 거 같네요.”
“하지만 청문회에서 초인님이 보여주신 건 어땠나요? 제가 해석을 해볼게요.”
그러면서 진세정은 빔을 쏘아 회의 벽 전체에 내가 청문회에서 얘기하던 모습을 띄워놓았다.
…이거 대놓고 멕이는 거 아닌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언에서 초인님은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보고 각도를 조절하셨어요. 이건 카메라에서 어떻게 잘 나올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이 미소, 초인님이 저와 하드 트레이닝 했던 그 미소에요!”
결과적으로 내 발언은 반사회적인 내용이었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미소에 있었던 거란다.
보통 말의 내용에 더 신경 쓰지 않나?
진세정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이미지에요. 세상 사람들은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걸 더 신경 쓰거든요.”
고작 이거 하나로 그렇게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필요한 순간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능력은 아이돌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에요. 초인님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더 뛰어난 아이돌 능력을 가지고 계신 거죠!”
“…….”
진세정은 극찬하는 게 분명했다.
근데 왜 내 정신은 어질어질한 걸까.
혜광심어와 만독불침이 있는데 진세정의 정신공격에 속수무책인 느낌이로군.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초인님은 천부적인 아이돌이라는 거? 이번 기회에 굿즈 사업을 좀 더 확인해보려고 하는데 허락이 필요해서요!”
허락할 테니 제발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참아냈다.
이걸 허락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거 같은데.
“장점과 단점이 뭡니까.”
“장점은 초인님의 팬층을 더욱 공고하고 새로운 팬들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점이고, 단점은 으음, 초인님의 이미지가 좀 더 아이돌화가 되는 거 아닐까요?”
자꾸 머릿속으로 가 지나갔다.
이거 이대로 둬도 되는 건가 싶다.
“저만 믿으세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진세정.
그게 더 문제라는 걸 정작 당사자만 모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그 제안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진세정이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받아들여야겠지.
“알겠습니다.”
*
* *
권력을 가진 자들은 부지런하다. 내가 악은 부지런하다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자신이 가진 힘을 유지하기 위해, 더 키우기 위해 권력자들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 점을 알기에 특검에서 모두 체포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늘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자들이 모든 걸 놓고 순순히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어서다.
그랬기에 체포가 예정되었던 용의자들의 도주 소식에 담담할 수 있었다.
“…….”
그에 반해 청와대 분위기는 침통했다. 특히 이 일을 주도하던 천명국의 표정은 잔뜩 흐려져 있었다.
“가장 큰 실책은 법의 심판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는 모양새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종적이 묘연해진 이들을 쫓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일이 커진다.
천명국은 권력자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의 심판을 거부하는 모습을 우려했다. 사회 지도층이 법을 부인할 때 더 이상 사회가 온전한 형태로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나설 때로군.
“제가 나서면 되는 겁니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하지만 도주한 자들의 종적이 묘연합니다.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그래서 까다롭다고 얘기한 거로군.
물론 그건 천명국의 생각일 뿐, 나한테는 몇 가지 단서면 충분하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이용하면 된다.
“방법이 있습니다. 빌런의 길을 이용하면 됩니다.”
“빌런의 길?”
대통령과 천명국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설마 이걸 모르나? 내가 혈종일 때 쏠쏠하게 사용하던 방법인데.
아, 지금은 혈종이 없으니 제대로 활성화가 되지 않을 시기였다.
“마물의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방법입니다. 추적자들은 마물에 의해 제대로 쫓기 힘들고 빌런으로서는 가장 빠른 경로를 돌파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주로 강력한 힘을 지닌 빌런들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번거롭지만 추격을 털어내기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 하지만 저번 생의 천명국은 여기에 미사일을 날려버리더라.
나만의 길 개척 방법이 있었는데 미사일로 인해 마물들이 미쳐 날뛰어서 폭격은 폭격대로, 마물은 마물대로, 추격대는 추격대로 쫓아와서 고전했었지.
“응?”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때, 날 보는 주변의 시선이 이상한 게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