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대대적으로 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단서들은 확보한 상태였다.
여기에서 도주자들이 어디로 도망칠지 결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한 번의 허탕은 놓치는 걸 의미했으니까.
난 청와대를 벗어나 도주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아마 천명국이 흔적을 놓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도주로를 가로막고 있는 마물의 서식지 때문일 것이다.
빌런, 마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한민국이라 해도 여전히 국토 전역에 마물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특히 깊은 산속의 경우 마물을 토벌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곳곳의 터널이 무너지니 길이 복잡해지고 이를 이용하는 빌런들이 많았다.
어떻게 잘 아냐고?
“내가 다 가본 곳이니까.”
도주한 용의자의 숫자는 십여 명. 아마 그들을 호위할 각성자들도 있을 테니 실제 숫자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천명국은 이들이 도망칠 곳을 몇 가지 추론했고, 나는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바로 군산이다.
군산은 추적을 피하기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중앙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또한 이곳에서 중국과 거리가 가깝고 동남아시아와 일본으로 향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물론 용의자들이 중국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라서.
어차피 잡으면 그만이거든.
군산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마물의 서식지를 지나야 한다. 특히 서해안 고속도로를 끊어먹어 대한민국의 허리가 잘렸다는 평가가 나오기에 육지로 돌아가야 한다.
하필 지나가야 하는 아산 일대는 마물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고.
그래서 추적을 뿌리치려면 군산이 좋다는 것이다.
아산 부근에 도착했을 때 여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용용이가 불쑥 물었다.
[도와줄까?]“아니.”
[아, 왜! 친구가 도와주겠다는데!]“이 정도 사소한 일로 친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어.”
[그런가? 친구는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다던데.]“지금 내가 곤경에 처한 거 같냐?”
[아, 그렇구나.]순순히 수긍하는 걸 보면 순진한 거 같기도 하고.
[이게 네가 말했던 빌런의 길이란 거야?]“어.”
빌런의 길이라는 것이 옛 기억을 자극했다. 혈종일 때 이 방법으로 여러 번 도주에 재미를 봤었지.
오글거리는 이름은 내가 아니라 언론에서 지은 것이다. 빌런의 길이라는 것은 추격대를 뿌리치기 위해 마물의 서식지에 뛰어드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단순해보이지만 이걸 돌파하기 위해서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마물이 날뛰게 만드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기 때문이다. 빌런의 길 노하우는 마물의 서식지에 뛰어들어 그곳의 포식자만 해치우는 것이다.
마물의 서식지 대부분 포식자들의 영역이 나뉘어 있는데, 그 포식자가 제거되면 처음에는 잠잠하다가 생태계에 혼란이 찾아온다.
그 시간 동안 추격대는 잠잠한 마물의 서식지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좋은 게, 닥치는 대로 마물을 제거하면 서식지가 엉망이 되지만 포식자만 제거되면 자기들끼리 교통정리를 해서 나중에 멀쩡하게 복구해낸다.
난 그걸 다시 이용할 수 있고.
저번 생의 천명국은 이판사판이라면서 미사일을 날려댔지만. 당시를 회상하면 미친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언제고 반드시 죽여 놓겠다고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난 서식지 안으로 잠입하여 곧장 포식자로 보이는 마물에게 접근했다.
아산을 장악한 광활한 서식지의 주인이라고 해봤자 유해 7단계에 불과한 녀석이다.
콰드득!
날 보고 반응하려는 녀석에게 달려가 발로 차버리자 머리가 360도 돌아가며 숨을 거뒀다.
마물의 머리를 떼어내자 자욱한 혈향이 퍼져 나갔다. 일부러 의도한 것이다.
난 마물의 머리를 들고 일직선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이대로 지나가면 된다.”
[진짜 이게 끝이야?]“어, 마물의 체취를 맡고 접근하지 않을 거다.”
[말도 안 돼. 엄청 쉽잖아!]내가 해서 쉬운 거지, 다른 녀석들이 하면 어려운 일일 거다.
용용이가 경악을 하건 말건 서식지를 지났다. 그 다음부터는 평탄했다. 최단거리를 돌파한 뒤 아산 거점에서 차를 타고 곧장 군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고 나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래?]“걔들보다 빨리 도착했어.”
모처럼 속도를 내다보니 앞질러버렸군.
이젠 기다릴 때다.
*
* *
“빨리 움직여!”
십여 대의 차가 도로를 질주했다. 뒷자리 좁은 좌석에 앉은 강우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쩌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당의 3선 의원이자, 잠재적인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자신이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반 대통령 계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을 하며 정치적 입지를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각성자 세뇌 사태라는 사건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듯했지만 극복해낸다면 이 또한 정치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터였다. 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청문회장에 등장한 최준호가 모든 일을 망쳐버렸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최준호의 선언으로 인해 특검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자신과 동료의원들을 향한 칼날이 사방에서 조여왔다.
그 과정에서 혐의가 일찌감치 드러난 몇몇은 구속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던 입장에서 한순간 감옥에 갇혀 평생 썩어야 할 위치로 전락한 것이다.
강우태는 이대로 잡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숙고에 들어갔고 그 결과가 도주였다.
이젠 남군으로 불리는 중국으로 피신하여 힘을 기른 뒤 복귀한다는 발상이다.
아니, 이건 최악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되돌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이 진행된 후였다.
‘그게 가능할까?’
중국으로 향하는 이들은 성공을 자신했지만 강우태는 회의적이었다. 최준호가 거침이 없고 무례하기가 빌런보다 더한 녀석이지만 실력만큼은 세계 최강이라 불린다.
그를 물리쳐야 다시 돌아와 떵떵거릴 수 있을 텐데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타국에서 눈칫밥을 먹게 될 확률이 더 높지.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최준호를 싫어하는 세력이 무수히 많고, 그 과정에서 접하게 된 리그의 사자도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세계와 대적하는 리그의 힘이라면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했다.
“도착했습니다.”
망명을 하려던 그들의 목적지는 군산이었다. 도주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각성자 세뇌 사태 당시 구매했던 사유지와 안가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그들이 군산에 도착할 때까지 추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남군에서 제공할 배를 타고 이 나라를 탈출하기만 하면 된다.
밀접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착착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텅 빈 배 두 척이었다.
그 아래 바다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이건…….”
그리고.
부두가에 편하게 앉아있던 잘생긴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얼굴이다.
“기다리느라 지쳤다.”
최준호가 그들을 보며 하얗게 웃고 있었다.
*
* *
군산에 도착해서 기다리던 도중, 도주자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인지 배 몇 척이 오는 걸 발견했다. 일부러 그들이 정박하길 기다렸다가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하선할 때 습격했다.
그들이 떠들던 언어는 중국어.
알아듣는 건 아니고 기프트 탐색하러 황해를 돌아다니다가 가장 많이 들은 언어라서 그렇다.
뭐라 얘기하는 건지 전혀 궁금하지 않아서 모조리 죽여 버렸다. 배는 겉에 쓰인 중국어만 지우고 한국어로 쓰면 운용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놔뒀다.
난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하게 된 도주자들의 숫자는 오십여 명.
도주자를 포함한 호위 병력이다.
이미 익숙한 얼굴들에 안부를 물어볼 것 없이 곧장 체포에 나섰다.
“까다롭단 말이지.”
천명국은 가급적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해달라고 내게 부탁을 해왔다.
불가피한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전부 살려달라는 얘기 아닌가.
반항하는 자들을 죽이지 않고 체포하라니.
내게 있어 가장 어려운 주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천명국의 실적을 위해 멀쩡하게 포장해갈 필요가 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좀 괴롭혀줘야겠다. 그때를 위해 참는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죽이지 않게 팔다리를 부숴가며 제압에 나섰다.
“히, 힉! 괴물!”
콰드득!
“끄아악!”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십 명에 달하는 숫자였지만 수준은 높다고 할 수 없어 제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예전이라면 도망치는 녀석들로 인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는데 저격을 습득함으로써 멀리서도 순조롭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머리를 겨냥하는 걸 다리로 옮겨야 하는 게 더 힘들었다.
역시 이런 기프트야 말로 후환을 만들지 않는 깔끔한 기프트였다. 독도에서 이걸 얻은 건 큰 수확일지도.
“흠, 수확을 해볼까.”
난 팔다리가 뒤틀린 채 신음하는 자들의 가슴에 손을 꽂아 넣었다.
“격렬하게 움직이지 마. 심장 터질 수 있어.”
“끄, 끄으윽!”
내 조언을 들은 자들은 반항을 하면서도 최대한 얌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러 온 것치고 수확은 형편없었다. 역시 재능러들이 좋은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건가. 수준이 높지 않은 각성자들에게 잠재된 기프트도 별 거 없었다.
그중 제일 신박한 기프트는 사지 분리라는 거였다. 팔다리를 임의대로 분리시킬 수 있는 건데 이런 건 마술쇼에 적합한 거 아닌가.
로켓 펀치, 로켓 킥 이런 게 가능해 보이는데 보기 흉할 거 같고.
난 각성자뿐만 아니라 비각성자의 심장도 살펴봤는데 결과는 별로였다. 단련을 하지 않아서인가 기프트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건 한 명이다.
“오, 오지 마!”
“반항하지 말고. 그러다 죽는다니까.”
“차라리 죽여! 네놈의 실험쥐가 되느니… 끅!”
“몸은 살고 싶다고 발버둥 치면서 결연한 척 하기는.”
난 강우태의 몸을 강제로 고정하고 심장에 손을 꽂았다. 그리고 그 피를 맛보면서 기프트 탐색에 나섰다.
강우태도 비각성자다 보니 공격적인 기프트는 없었다. 그런데 기프트가 하나 잠재되어 있긴 했다.
“궤변?”
뭐지, 이건? 기프트를 습득하면 말발이라도 좋아지는 건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궤변을 통해 상대의 상태 이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프트였다. 얼마나 개소리를 해댔으면 이런 기프트가 생성될 수 있는 거지? 적어도 이 자리에서 살펴본 기프트 중 가장 쓸모가 있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내게 그렇게 유용해 보이지는 않았다. 말발이 좋아봤자 뭐하나. 그냥 머리부터 부숴버리면 그만인데. 펜보다 강한 것은 칼이고 주먹이다. 그 어떤 명필도 죽음 앞에서 고분고분해진다.
“응?”
기프트를 포기하고 강우태의 가슴에 회복제를 부어주려고 할 때였다.
그때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돌연 게거품을 물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축 늘어졌는데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나야 죽어도 상관없지만 천명국은 숨을 붙여두길 바라던데.
그럼 살려야지.
“어쩔 수 없나.”
난 강우태의 심장에 기뢰를 흘려 넣었다.
……!
감전 된 것처럼 퍼덕거리는 강우태의 몸. 난 아랑곳하지 않고 심장에 기뢰를 여러 차례 흘려 넣었다. 내가 기뢰를 손에 넣고 사람 죽이는데만 전력을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렇게 사람도 살릴 줄 안다.
기뢰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몇 차례 버텨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렇게 해서 몇 명이나 살려봤어?]“음, 한 명?”
[몇 번 시도해서?]“백 번은 넘게 했는데.”
[그럼 성공 확률이 1%라는 거잖아!]뭐, 어때. 그냥 죽는 것보다 1% 확률이라도 걸어보는 게 낫지.
이런 내 정성이 통해서일까. 죽은 듯 가만히 있던 강우태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뢰 때문인지 입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천명국의 임무를 완료했군.
“숨은 붙여놨으니까.”
오늘도 죽이는 게 더 쉽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려냈다는 사실에 흐뭇함을 느낄 때였다.
“리, 리그가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강우태의 입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뭐? 자세히 말해봐.”
“…….”
하지만 강우태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되지.
난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혜광심어를 이용해서 브레인워싱을 사용했다.
곧이어 녀석의 입에서 리그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