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틀만에 정주호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중후함과 샤프함이 공존하는 잘 관리된 미중년이었다면 지금은 사흘밤낮 동안 일에 시달린 직장인과 같았다.
방금 전까지 버서커에 시달렸다면서 내게 달려온 정주호가 하소연을 했다.
“죽겠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초인이 되는 게 쉬울 리가 없죠.”
“어려운 건 알고 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냐. 완전 날 잡아먹으려고 하던데?”
“그럴 거 모르고 있었어요? 원래 다 그 정도 해요.”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정주호를 보면서 난 이해해주기로 했다. 원래 사람이 힘들다 보면 이곳저곳 하소연을 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런데 버서커는 순한맛인데? 나중에 나하고 훈련할 때 어떻게 할지 의아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생각하길 포기했다. 어차피 죽어라 굴리면 되는 건데 굳이 고민할 이유가 없지.
[그냥 처음부터 죽이겠다고 말하시지?]아무리 수 틀린다고 죽일 리가. 난 정주호가 무사히 초인이 되길 바라는 거지, 정주호가 망가지길 바라는 게 아니다.
[아닌 거 같은데.]용용이 말을 흘려버리며 정주호에게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무의미하게 괴롭히는 건 아닙니다.”
“안다. 버서커가 말하길, 최대한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고 하더군. 깨달음이 있으면서도 초인이 되지 못한 건 몸이 편해서 그런 거라고 말이야.”
“제대로 가르쳤는데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힘든 걸 피하기 마련이다. 특히 레벨이 좀 높아진 각성자들 사이에서 이 현상은 더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니 초인의 경지를 눈앞에 뒀을 때 자신의 몸이 부서지도록 혹사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그때쯤이면 전부 체면 차리는 높은 자리에 오른 것도 한 몫 했다.
체면, 자존심을 버려야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찬택은 더 강해지기 위해 내 앞에서 자존심을 버린 거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까 가만히 있는 거지. 버서커와 마초맨이 대련하는 걸 보니 저게 인간인지 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더라.”
그 사이에 대련까지 구경 시켜줬나 보다.
버서커와 졸라맨의 대결이라면 나름 눈요기가 되긴 했겠지.
“오늘은 버서커와 대련하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 그걸 보여주려고 왔던 거였다.
*
* *
최준호에게 앓는 소리를 했지만 정주호는 이틀 동안 자신이 살아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 또한 실력으로 국가수호국의 위치까지 올라갔던 만큼 각성자로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오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초인의 벽.
다시 도전하기로 하면서 본 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특히 자신을 가르치던 버서커의 강함을 실감하면서 그 생각은 더더욱 공고해졌다.
“인간의 강함이 아니던데.”
초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버서커의 강함은 리그의 12궁에 비견되고, 미국의 견실한 초인 마초맨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인간 자체가 강했다.
패하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최준호는 이런 버서커보다 강하다.
그것도 월등히.
자신의 부하로 있을 때 최준호의 강함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본 걸로 착각을 하지.”
그래서 최준호에 대한 소문을 믿지 못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패가망신한 것이다.
과연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
그 자체만으로 흥분되는 걸 느끼면서 둘의 대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푼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오늘은 다를 거다.”
“그거 매일 하던 소리 아니냐?”
“크크크, 진짜 보여주도록 하지.”
늘 아득할 정도의 강함을 보여주던 버서커가 오늘만큼은 달랐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광기와 여유가 묻어나오던 웃음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묻어나왔고, 동작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에 반해 최준호는 여유가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 허점투성이였음에도 버서커는 망부석처럼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주호는 자신이었다면 저 빈틈을 보고 바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안 오냐?”
파앗!
최준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버서커가 움직였다. 두 눈으로 식별하기 힘든 속도로 쏘아져서 대검에서 수십 개의 포스 블레이드가 휘몰아쳤다.
사각을 점유하고 퇴로마저 차단하는 현란한 검놀림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최준호가 손을 뻗자 수십 개의 포스 알갱이가 생겨나더니 포스 블레이드를 모조리 파훼했다.
그 사이 접근한 버서커의 대검과 최준호의 손이 충돌했다.
쾅!
두 초인의 신형이 교차하면서 무수히 많은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훈련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 사방에 휘몰아치는 포스 여파는 웬만한 수준의 각성자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지켜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정주호가 느낀 것은 각 공격에 지저분할 정도로 살의가 담겼다는 것이다. 최준호나 버서커 모두 포스를 교묘하게 비틀어서 톱니같은 형태를 만들어 상대의 방어에 스크래치를 내려하고 있었다.
특히 버서커는 거기에 회전까지 더해 적중시키지 못하더라도 여파로라도 영향을 미치려 애쓰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었다면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준호의 눈에는 차지 않았나보다.
“달라진 거 없는데, 강해진 거 맞냐?”
“큭!”
그때부터 흐름이 뒤집혔다. 버서커의 공격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던 흐름이 끊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사자인 버서커조차도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럼에도 유려하고 과감한 몸놀림으로 회피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조금씩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어, 어떻게…….”
“좋은 거 하나 얻었지.”
퍽!
최준호의 주먹에 턱을 얻어맞은 버서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걸 시작으로 일방적인 폭력 행사가 시작되었다.
*
* *
“미친…….”
두들겨 맞다가 버서커가 기절하는 것을 본 정주호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토록 강하던 버서커가 최준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렇다고 버서커거 못한 것도 아니다. 과감하면서 날카로운 공세, 동물적인 본능, 피해를 최소화하는 회피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최준호 앞에서 그것은 매를 버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훈련하면서 힘들다고 말한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버서커는 혹독하게 두들겨 맞다가 무너졌다.
더 무서운 건.
버서커를 때려눕힌 최준호는 땀 한 방울 안 흘렸다는 것이다.
딱 땀이 나기 전까지 아침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보고 얻은 게 있길 바랍니다.”
“…….”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그리고 자신은 초인이 되겠다며 호기롭게 뛰어들었지만 이곳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지옥임을 알게 되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고요.”
“그, 그래. 고맙다.”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다현에게 말하니 혼자 구경했냐면서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부러워요. 저도 그 자리에 있고 싶었는데.”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그럼요.”
“그런데 그 말이 나와?”
삼촌이 힘들어하는 걸 알아주길 바랐는데 이런 대답이라니.
정주호의 항의에 정다현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거기가 아니면 언제 그토록 강한 초인들이 겨루는 걸 보겠어요. 삼촌은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계신 거예요.”
“그건 그렇다만…….”
듣고 싶은 말과 많이 달랐다. 더 말해봤자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을 걸 느낀 정주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었냐?”
“마물 사냥이요. 해양 마물 사냥이 생각보다 관심이 많이 가서요.”
한 번 불이 붙은 정다현은 신이 나서 마물 사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사냥을 이어나가는 조카의 모습에 정주호는 혀를 내둘렀다.
자신은 편하고자 했던 것과 다르게 정다현은 사선을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겨뤄보더라도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원래 눈부신 재능에 견실한 성격이 더해지니 발전 속도가 눈부실 정도였다.
자신보다 정다현이 초인에 도전하는 게 더 순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아니지.’
약해져서는 안 된다.
나날이 얇아지는 모발 때문에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주호가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질 때였다.
“삼촌.”
“응?”
“많이 힘드시더라도 포기하면 안 돼요.”
“어, 어, 그래. 포기 안 하고 열심히 하마.”
그렇게 말해도 믿음이 안 가는 걸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다현이 말했다.
“세상은 삼촌이 받는 호의를 이렇게 표현한대요.”
“뭐로?”
“포상이라고.”
“…….”
정주호는 정다현이 최준호와 어울려 다니면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
* *
버서커와 대련은 정주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 얻은 기프트를 사용해보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몇 차례 응용해본 결과 확신을 얻었다.
“엄청 좋은데?”
컨트롤이라는 이름의 이 기프트는 상대 포스 흐름을 끊어먹는 것은 물론, 상대 기프트에도 간섭이 가능했다. 버서커와 대결 도중 포스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것은 물론, 버서커의 직감 활성화도 방해하는 역할을 해냈다.
아직 내가 활용하는 방법이 미숙하지만 익숙해진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용용이 협력이 필수다.
[갑자기 내가 왜 나와.]“천둥새 권능에 대적하려면 그에 버금가는 신수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그럼 나밖에 없긴 한데.]“친구 사이에 이것도 힘드냐?”
[그래도 신수를 상대하는 건데 내가 협력하기에는 좀…….]칭찬해주니까 오락가락하기는. 용용이가 지금은 열심히 튕기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들일 거란 게 내 생각이다. 신수라서 강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은 어린 아이에 가깝거든.
“싫으면 말하던가.”
[뭐, 뭘 꾸미는 거야?]“꾸미는 거 없다. 네가 어렵다니 현아한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 중이지.”
[잠깐! 그건 안 돼!]“그럼 네가 해줄 거냐?”
[으으, 으으으!]궁지에 몰린 용용이는 한참 동안 앓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꼬리를 축 늘어뜨리면서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할게.]“그래, 잊지 말고.”
이 정도면 용용이도 포기하겠지.
아주 좋은 샌드백을 얻게 되었군.
“그나저나.”
난 주변에 모여든 기자들과 구경꾼들을 보고는 혀를 찼다.
“사람 참 귀찮게 만드는군.”
현재 나는 청와대 앞에 나와 있었다. 곧 도착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 사람의 정체는 바로 성녀와 프란츠다.
이탈리아에서 출발하여 인천에 도착하는 비행기에는 프란츠 영감과 새로 등장한 성녀가 탑승하고 있었다.
손님의 격에 맞추고자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공항으로 향했고, 나는 청와대 입구에 나왔다.
이는 성녀 측 요청 때문이란다.
그걸 굳이 들어줄 필요가 있나 싶다가 프란츠의 연락을 받았고, 바티칸의 위상 때문에 대통령이 간곡하게 부탁해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마물의 등장 이후, 바티칸은 유럽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그 위상이 제2의 전성기라 불릴 만큼 상승해 있었다.
고대 시절 온갖 신비가 각성자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자산이 마물 사냥에 큰 역할을 해냈다.
먼 거리에 있는 한국마저도 추종하는 자들이 있을 만큼 입지가 크단다.
난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별 거 아니면 그냥 처리해버릴까.”
[너 그러다 진짜 빌런된다?]“그럼 안 하지, 뭐.”
그렇게 용용이와 노닥거리며 청와대에 대기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세단 여러 대가 매끄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왔다!”
기자들은 벌써부터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바티칸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성녀는 나와 함께 현재 가장 핫한 초인 중 하나란다.
나는 공식 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데 왜 핫한 건지 모르겠군.
[그렇게 죽이고 불구로 만들어놓고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지?]용용이가 그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가만히 서 있으니 검은 세단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문이 열리면서 프란츠가 먼저 내리더니 가까운 쪽 문을 열었다.
먼저 나온 것은 새하얀 구두였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갈색머리 여인이었다. 어찌나 큰지 프란츠 영감과 비슷했다. 프란츠 영감 키가 한 180cm 정도 하지 않나?
우아하게 차에서 내린 여자가 바로 새로 등장한 초인 성녀였다.
하나도 성스러운 느낌이 안 느껴진다. 그냥 TV에 나오는 유럽 모델 같은데?
고개를 든 성녀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헤드 브레이커!”
나를 본 성녀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양팔을 뻗었다. 적의가 없어 반응하지 않았더니 끌어안더니 볼뽀뽀를 해왔다.
그걸 본 기자들은 카메라가 부서져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인사를 마친 성녀는 포옹을 풀더니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가워요.”
“…….”
난 대답 대신 성녀가 뽀뽀한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그걸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적의가 느껴지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친한 척 해서 뭔가 있는 줄 알았다.
새로 개발된 무색무취 독이라던가.
“독은 아니군.”
“독이요?”
나는 웃음을 터뜨리는 성녀와 황당한 표정을 짓는 프란츠 영감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