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다음 날, 내 사무실로 프란츠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의 초인이자, 살아있는 전설, ‘그랜드 마이스터’ 프란츠의 등장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전대 십대초인이자 유럽의 수호신으로 불렸고, 멋진 외모로 탄탄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면서 진세정이 살짝 귀띔을 해왔다.
프란츠 영감이 나이답지 않게 팔팔하긴 하지.
내가 보기에는 그냥 엄청 팔팔한 노인네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상징성이 만만치 않았다.
내 개인 훈련실로 안내하니, 마치 복덕방 할아버지처럼 주변을 둘러보더니 대뜸 내게 말했다.
“적당히 하라고 말했는데 그동안 더 많은 애들 머리를 깨고 다녔더구나.”
“깰 놈들만 깨고 다녔는데요.”
“그걸 자랑하는 거냐?”
“덕분에 세상이 더 살기 좋아졌지요.”
“하긴. 그중에 깰 놈들도 있긴 하더군.”
특유의 틱틱대는 목소리로 말하던 프란츠는 특유의 깊은 눈으로 날 들여다보며 물었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한다고 했을 때 걱정했다. 그 녀석은 이제껏 우리가 상대한 것과 다른 종의 녀석이기 때문이지.”
“다르긴 했습니다.”
천마갑귀는 이제껏 내가 상대한 녀석 중 가장 강하긴 했다. 그러니 완전회복도 사용해버리게 되었지.
그보다 더 강한 존재는 신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신수는 어느 정도로 강할까. 요즘 들어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에효.]내 속내를 읽은 용용이가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프란츠가 말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재앙이다. 그걸 사냥하다니,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종잡기 힘들 정도야.”
“죽일 놈을 죽일 정도는 됩니다.”
“허허, 그렇겠지.”
왜 저러지?
“난 네가 빌런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영감, 나처럼 과거로 회귀라도 했나?
“그래서 네가 미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지.”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그 정도로 네가 위험했다는 이야기다.”
“전 제정신입니다.”
“네가 제정신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다.”
“사고 안 치고 다니면 된 거 아닙니까?”
[그게 사고를 안 치는 거였어?]용용이 외침과 프란츠의 시선에 담긴 의미가 같았다.
“뭐, 여전히 제정신은 아닌 거 같다만 이 정도면 세상이 감당할 정도는 되겠지. 너도 노력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웃는 프란츠의 모습은 어딘가 공허했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힘에 취해 미쳐버렸던 혈종 시절, 앞을 가로막았던 프란츠는 혈종을 가장 고전하게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전성기가 훌쩍 지나 만인의 존경을 받아 살아갈 수 있음에도 프란츠는 대한민국에서 미쳐 날뛰던 혈종을 처리하기 위해 날아왔다. 그리고 치열한 접전 끝에 숨을 거뒀다.
이건 좋게 표현한 거고.
프란츠에게서 기뢰를 얻은 혈종은 그 후로 날개를 얻은 사자처럼 날뛰게 되었다. 프란츠의 존재는 혈종의 완성을 앞당긴 것과 같다.
하지만.
프란츠가 남긴 영향력은 꽤 강렬했다. 그는 피에 미쳐있던 일개 빌런이던 혈종과 내게 초인이 지닌 강함을 보여줬고, 품격을 느끼게 해줬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면 강할 수 있는 빌런이 되고도 공허함을 느꼈던 것은 프란츠라는 거인을 봐서일지도 모른다.
그저 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혈종과 공존하면서 끝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프란츠는 죽었지만 혈종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 영향력을 남긴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흉의 빌런에게 혼란의 씨앗을 심은 걸지도.
속에 능구렁이 수십 마리를 숨기고 있는 양반인 만큼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그 힘을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해야지.”
“그러고 있는 중입니다.”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지?”
“그래도 친하다고 생각해서 잔소리라도 들어주는 겁니다.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 한 대 치겠다?”
“대련하고 싶습니까?”
“아주 못 쳐서 난리로구나, 난리. 이 나이에 두들겨 맞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아쉽네요.”
비록 전성기가 지났어도 프란츠와 대결은 영감을 자극하기 충분했는데.
[때리고 싶은 거 아니고?]그럴 리가. 내가 그렇게 막돼먹은 놈은 아니다.
[막돼먹은 거 같은데.]궁시렁거리는 용용이 말은 무시하고 난 프란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 없지.
“그냥 가지 마시고 여기 있는 초인 한 수 지도해주시죠.”
난 프란츠를 데리고 버서커의 경험치를 키워주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
* *
성녀와 프란츠는 며칠 동안 청와대를 방문하면서 투뿔 마물을 상대하는 방향에 대해 논의를 나눴다.
그러면서 각종 행사와 봉사활동을 병행하면서 대한민국 내 이미지를 높여나갔다.
자기 이미지 메이킹에 도가 텄군. 진세정도 성녀 프리미엄을 잘 활용하면서 감탄하는 걸 보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성녀가 원하는 게 구체적으로 뭐지?
이 의문을 풀어준 건 대통령이었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자네의 힘이겠지.”
“제 힘이요?”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의 대응책을 세운다고 해도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 큰 피해를 감수한다고 해도 사냥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고. 그러니 사냥에 성공한 전적이 있는 자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 거였나.
대화 내내 빙빙 돌려서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는데 대통령은 직관적으로 그걸 꿰뚫어 본 셈이다.
“어떻게 보십니까?”
“내 생각을 물어보는 건가?”
“예. 어떤 득실이 있을지 대통령님의 생각이 궁금해서요.”
“으음, 어려운 문제로군. 우선 객관적인 사실만 늘어놓자면 좋은 기회는 맞네. 하지만 실질적인 이득은 기대할 수가 없지.”
대통령은 그 이유로 유럽에서 여기까지 물질적인 보상을 받아내는 것이 힘들다는 걸 꼽았다.
해로가 막히면서 동아시아와 유럽은 사실상 단절이 된 것과 같았다. 수송을 하려면 지구를 횡단해야 하는데 그 거리면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그 이익이 없다면 얻어낼 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하지만 세계 속의 대한민국 입지를 생각하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고.”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면 결국 실질적으로 얻는 건 없고 명예가 주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큰 의미가 있나?
우선 명예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란 걸 안다.
“천 실장의 생각은 어떤가?”
“저는 받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예.”
천명국은 내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장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한 것은 초인님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각국에서 천마갑귀의 등장을 보고 득실을 따져본 결과 사냥에 성공하더라도 국가 각성자 전력의 전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초인 여럿이 동원된다고 해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한 다수보다 아주 강한 소수가 더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분석이었다.
아주 강한 소수가 나란 이야기겠군.
“반대로 말하면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초인님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 상징성은 초인님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건드릴 수 없는 확고한 입지를 보장하게 될 것입니다.”
“확고한 입지.”
“예, 초인님이 과격하게 나가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저, 저 인간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에서 더 과격하게 나가면 너네 다 죽어!]용용이는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건드릴 수 없는 입지라, 저번 생에는 빌런으로 취급받을 짓도 이곳에서는 구원자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데?
내가 혹하는 게 보였는지 천명국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룰 중재함으로써 포지션을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초인님이 외국으로 나간다는 것이 우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초인님은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때때로 영웅의 활약보다 추락을 바라기도 합니다.”
확실히, 먼 곳이고 대한민국의 영향력도 없으니 내가 상태가 이상할 경우 언제 어느 순간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기는 하다.
내가 부상 입고 골골대면 적으로 돌변해서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군.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법이니까.
[나는?]내 친구는 빼고.
[헤헤.]고작 이걸로 좋단다.
무거운 이야기를 마친 대통령은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편하게 결정하면 되네. 정부는 자네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지지할 테니.”
“감사합니다.”
*
* *
프란츠와 성녀가 함께 왔기에 둘을 보면 일행 중 리더는 자연히 프란츠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프란츠가 방문 일행을 이끄는 모습을 보였지만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걸 보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 일행의 책임자는 성녀였다.
그러니 프란츠 영감도 나와 이야기에서 이렇다 할 얘기를 꺼내지 않은 거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과 천명국의 예상대로 성녀가 날 찾았다.
“준호 씨, 대화 좀 가능할까요?”
“나랑?”
“네, 준호 씨와 저, 둘이서.”
도발적인 미소를 지어봤자 뭐 없는데. 안 그래도 이야기 흐름이 지지부진한 느낌이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 성녀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준호 씨는 저에 대해 궁금한 게 없나 봐요.”
얼마 전부터 헤드 브레이커가 아니라 내 이름을 부르는 성녀는 전형적인 세계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고의 소유자인가보다.
“있지.”
“뭔가요? 뭐든 알려드릴게요.”
“듀얼 기프트 소유자라며.”
“아, 그거요.”
왜 실망한 기색인지. 급격히 식어가는 표정과 별개로 난 성녀가 갑자기 등장했음에도 듀얼 기프트 보유 중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기프트가 상당히 좋은 거라 들었는데.”
“네, 무려 신께서 내려주신 기프트거든요.”
신이 준 기프트라? 그러니까 더더욱 흥미가 생겼다. 신이 준 거라면 용용이가 나한테 친구비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건가?
아니지, 용용이는 나한테 천마갑귀 눈알을 받아갔으니 선물을 주고받은 거고 성녀는 일방적으로 받은 거다.
[그래도 내가 준 게 훨씬 좋잖아!]그래그래, 그렇다고 치자.
성녀는 내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눈을 반짝였다.
“흥미가 있나요?”
“신이 준 기프트가 뭔지 궁금하긴 해.”
“준호 씨보다 옆에 계신 분이 더 궁금해 하시는 거 같은데요.”
“……!”
[어? 내가 보여?]이건 거짓말하지 않고 진짜 놀랐다. 성녀는 정확하게 내 옆에 있는 용용이를 직시하고 있었다.
“위대한 분을 뵈어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확실히 신기하단 말이지.]용용이는 신기한 눈으로 성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정신 사납군.
“그래서.”
“네.”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그건… 앗!”
성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돌연 두 눈이 붉게 물들더니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간섭하고 있어. 저건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는 처벌이야.]“역시 위대하신 분이네요. 바로 보셨어요. 제가 지금 신의 노여움을 사고 있어요.”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녀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날뛰고 입술과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중이다.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유럽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할 때 상대할 힘이 모자라요. 저는 마물이 등장할 때 준호 씨가 유럽으로 와서 도와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예상대로군. 성녀의 목적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성녀가 모시는 신이라는 작자는 그걸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정상적인 녀석은 아니군.
“내가 도와주면?”
“준호 씨가 원하는 걸 드릴게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기프트.”
유럽에까지 내 명성이 퍼져 있었단 말인가.
[그 정도면 안 퍼지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리고 명성이 아니라 악명인 거 같은데.]용용이가 옆에서 궁시렁거리는 모습을 성녀는 미소 지으면서 지켜보다가 내게 말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신이 내려준 기프트가 어떤 건지. 그걸 드릴게요.”
“친구비인가.”
이 녀석, 내가 바라는 걸 제대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