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지금 이 순간, 이세희와 정다현의 표정이 똑같았다.
저건 내가 혈종일 때 가장 많이 본 눈이었다. 미친놈을 보는 눈빛이다.
“불체포특권이라니······.”
“준호 씨, 불체포특권이면 국회의원한테 있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불체포특권, 단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공무원 헌터를 하고 빌런을 체포할 때 불편한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여기 이 팀장이 도와준 것도 있지만··· 아, 그건 넘어가고. 제약이 너무 많고 행여나 실수가 되더라도 스스로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체포특권이 특별한 건 아니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레벨 8 초인에게 그걸 준다는 건 합법적인 살인면허를 발급하는 것과 같은 거라서.”
이세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차라리 사익을 추구했으면 편했을 거예요.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근데 불체포특권이라니.”
“어려우려나?”
“협상의 묘미는 밀고 당기기죠. 상황이 도와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준호 씨의 가치가 많이 높고 정부가 많이 급하다면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생각났지만 지웠다.
그 사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세희가 말했다.
“어쩌면 준호 씨가 공무원 헌터가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불체포특권도 핵심을 꿰뚫는 말일지도.”
“왜?”
“준호 씨가 평범하진 않잖아요? 사고방식이나 손속이나.”
“맞아.”
나는 반박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옆의 정다현이 격렬하게 호응한 탓에 나서지 못했다.
“오히려 공무원 조직에 속해 있어서 과잉 진압이라는 선에서 그칠 수 있었던 거예요. 만약 길드 소속이었다면 몇 번이고 마찰이 벌어졌겠죠. 어쩌면 구속됐을지도? 공무원이라는 조직이, 정주호 국장님이라는 유능한 인물이 준호 씨를 최대한 보호하고 있던 거예요.”
나로 인해 모발이 얇아진다던 정주호의 절규가 사실이었나 보다. 사실 원래 얇아서 차이를 모르고 있었지만 상처를 후벼 파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 공권력 안에 속하고 싶다면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조용히 있는 건 안 되겠죠.”
“레벨 8.”
“네. 강력한 권한과 말단 공무원은 양립할 수 없어요. 선택을 해야죠. 조용히 있는 대신 권력은 멀리 하던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원하는 걸 당당히 요구 하던가.”
슬슬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눈이 마주치자 이세희가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공무원 헌터 그만두게 만들고 최고 대우로 모셔 오고 싶어요. 근데 그랬다간 머리가 부서지겠죠?”
“아무 때나 부수진 않아.”
“기준을 알 수 없어서 그게 더 무섭거든요?”
입술을 삐죽이던 이세희가 말했다.
“이번 작전에 나선 붉은 뱀은 전성기가 지난 초인이죠. 아닌 척해도 정부 측에서는 레벨 8 초인 보유 문제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붉은 뱀이 노욕을 부릴 수 있는 것도 후임이 나타나지 않은 것과 정부의 이해가 일치해서죠. 하지만 여기서 젊은 20대 초인이 등장한다? 그럼 정부가 어디를 선택할지 뻔하죠.”
“먼저 치고 나가라는 의미로군.”
“네. 그러면서 공무원 헌터에 크게 미련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세요.”
“왜?”
“그래야 몸이 달아오를 테니까요. 정부 측에서는 준호 씨의 요구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협상을 하려 들 테죠. 불체포특권? 정부가 얼마나 몸이 달아오른 상태냐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을 걸요?”
그러면서 이세희는 실제로 내 등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 말했다.
“굳이 정부가 아니더라도 선택지는 여러 개에요. 대형 길드에 가입하는 방법이 있고, 홀로서기 하는 형태도 있죠. 마지막 수로 외국으로 가는 것도 있고요. 불체포특권에 얽매이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건 많아요.”
“조언 고맙다. 확실히 나였다면 할 수 없던 생각이다.”
정부와 길드의 이해관계, 세계 여러 국가 정세에 능통한 이세희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좀 더 도움을 드리자면 레벨 8 측정 때 참관 단체로 신성 길드를 불러 주세요. 윤희 씨도 길드 소속이니 저희가 배경이 되어 드릴게요.”
“그쪽은 내가 잠재적 우군이라는 배경도 얻고.”
“이 정도 호가호위는 봐주세요.”
이세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부정적인 생각은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미팅을 끝낸 뒤 밖으로 나왔다. 정다현의 추천이었지만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실력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어 내는 것. 저번 빌런 제압 후 치료하는 방법도 그렇고 이세희의 조언은 인상 깊다.
“다현 씨 덕분입니다.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다행이에요. 도움이 되어서. 저, 실례가 안 되면 저도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예.”
“다음에 보면 저도 편하게 불러 주세요.”
“······.”
“다, 다현아. 이렇게요.”
반말이 불편했던 게 아니었나?
무슨 의미인지 몰라 정다현의 얼굴을 봤는데 눈에 보인 건 자신이 말해 놓고 놀란 표정이었다.
“세희만 편하게 대하니 저만 딱딱해 보여서요.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내일 봬요.”
내가 잡을 틈도 없이 사라지는 정다현이었다.
* * *
“버서커와 인형술사를 잡은 뒤 레벨 측정을 하겠습니다.”
내 말에 정주호는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붉은 뱀 때문이냐?”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고, 실력에 따른 정당한 대우도 받고 싶습니다.”
“대우라면 최대한 맞춰 봐야지.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불체포특권을 말할까 하다가 이세희 반응을 볼 때 정주호는 거품을 물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레벨 측정 후 밝히겠습니다.”
“더 궁금하게 만드네? 하긴, 넌 진짜 별종이긴 해. 그 나이면 돈이나 여자에 환장할 땐데 그렇지도 않고. 뭘 줘야 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고 있어. 하긴,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내가 아니라 협상하는 사람들일 테니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겠어.”
불체포특권을 밝힐 때 과연 웃을까?
음, 솔직히 아직도 이세희나 정다현이 놀라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한테 딱 맞는 권한인 거 같은데.
아무튼 정주호의 반응이 심각할지도 몰라서 밝히지 않기로 했다.
버서커와 인형술사를 잡기 위한 예비대의 역할은 간단했다.
기존 빌런대응팀과 연계하여 교대로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주 전력이 큰 타격을 입거나 이상이 생겼을 때 대체하는 역할이다.
둘의 활동 영역은 경기 남부와 인천 지역.
처음에는 두 지역을 드나들다가 포위망 구축 이후 천천히 몰이되어 인천으로 축소되고 일주일 후, 둘을 남동구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정확히 저 둘이 그쪽으로 이동했다는 말이 옳겠지.
“버서커와 인형술사가 나타났습니다.”
“주력 부대 인형술사와 조우!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인형술사는 레벨 7 빌런이지만 전투력보다 불사신으로 유명한 존재.
이번 전투의 메인 무대는 김영환과 버서커의 대결이었다. 근데 나한테 팔이 부서져 놓고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있으려나? 쉽게 나을 상처가 아닌데.
잠시 후, 둘의 충돌 소식도 올라왔다.
“김영환 장관님은 버서커와 조우!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위치를 지켜라. 결과를 기다렸다가 움직인다. 그리고 최준호.”
지시를 내리던 정주호가 날 따로 불렀다.
“예.”
“넌 블랙요원이니 개별로 움직일 권한을 주겠다.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왜 그렇게 보냐?”
“의외라서 그렇습니다.”
“너 아끼다가 희생이 커질게 뻔해서 그런 거야. 얼마든지 날뛰어도 좋으니 저놈들 목 좀 갖고 와라.”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자리를 지키는 걸 선택했다.
“안 가냐?”
“지금은 방해만 될 것 같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움직이겠습니다.”
“···놓칠 줄 알고 먼저 움직일 줄 알았는데 의외야.”
난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정주호는 내 목표가 버서커인 걸 안다. 김영환이 붙었으니 버서커가 당할 거라 보나 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버서커라면 이번 대결의 결과는 예상과 다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마침내 버서커와 조우하게 된 김영환은 조금도 자신의 패배를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레벨 7 수준에 미치광이 아니던가. 손의 부상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사소한 변수였다.
‘개자식, 임무가 끝나면 죽여 버리겠다.’
태연히 자신에게 개소리를 지껄이던 최준호에게 적의를 불태웠다.
이미 상상 속에서 수천 번 갈가리 찢어 죽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버서커와 처음 검을 맞대는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거력이 검을 타고 팔로 파고든 것이다.
그것은 간신히 봉합해 둔 상처를 터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크으으!”
그게 아니더라도 버서커의 실력은 차원이 달랐다.
세상이 버서커에 대해 잘못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재, 재정비를······.’
“늙은 뱀이 잔머리를 굴리는군.”
버서커는 물러나려는 김영환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팽팽하게 맞섰으나 백여 합 이후 부상이 극도로 악화된 김영환은 결국 손에 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시시하군, 이게 대한민국이 좁다 활개 치던 붉은 뱀인가.”
“버서커 네놈, 실력을 숨겼구나······!”
“누구나 한 수는 숨겨 두는 법이지. 붉은 뱀은 자기 실력을 몇 수 높게 상향했군.”
김영환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버서커가 예상 이상의 실력이었지만 며칠 전 있었던 충돌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허망하게 패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준호,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가뜩이나 노쇠화로 말이 많은 걸 알았기에 김영환은 부상 사실을 숨기고 회복제를 사용했지만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녀석의 포스는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다.
듣고 있던 버서커가 눈을 빛냈다.
“최준호? 헤드 브레이커를 말하는 건가.”
“죽어!”
김영환이 상대적으로 멀쩡한 왼손으로 검을 쥐며 달려들었지만 버서커는 가볍게 튕겨 냈다. 오래 전, 레벨 8이 되어 그 강함을 온전히 활용하고자 끝없이 구도하던 그에게 있어 다 늙은 초인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곧이어 조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강맹한 검격이 김영환에게 퍼부어졌다.
“자, 잠깐!”
완전히 압도된 김영환이 다급히 입을 열었지만 버서커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촤악!
옆구리에 구멍이 뚫렸지만 승리의 훈장이다. 대신 김영환의 목이 잘렸다.
머리를 잃은 시체가 쓰러지는 걸 보며 버서커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위명에 걸맞지 않은 시시함이로군.”
늙고 노쇠한 그에게 빛나는 재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레벨 8 초인이라면 좀 더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입맛만 버렸다.
별의 순간을 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김영환이 죽자 포위망이 빠르게 풀렸다.
잠시 후, 인형술사가 버서커가 있는 곳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군. 늙었다고 해도 붉은 뱀을 잡을 줄은.”
“별거 아니었다. 과대평가 됐더군.”
“킥킥,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이제 헤드 브레이커도 잡으러 가나?”
버서커는 고개를 저었다.
“진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나도 준비가 되어야겠지. 부상을 치료하고 찾아갈 생각이다.”
레벨 7이라고 알려져 있는 헤드 브레이커.
버서커는 오히려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떻게 레벨 7이 김영환에게 부상을 입힌 걸까.
그로 인해 시시한 대결이 되었지만 오히려 헤드 브레이커에 대한 기대감이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그럼 나는 볼 일을 보러 가지.”
“저 시체는 쓸모없나?”
“전성기가 한참 지나서 강화시켜 봤자 금방 부서져 버려. 젊고 싱싱한 거나 잘 단련된 몸이 좋지. 너 같은.”
인형술사의 번뜩이는 시선에 버서커가 담담히 대답했다.
“죽고 싶으면 덤벼라.”
“킥킥, 그럴 순 없지. 난 아직 죽고 싶지 않거든. 곧 있으면 합류 날짜가 다가오니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인형을 수집해야겠어. 넌 너대로 일을 마치고 와라.”
“어디로 갈 거지?”
“경기도 남부로 간다. 대형 길드 멍청한 녀석들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더군. 돈에 눈이 뒤집힌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겠지. 킥킥!”
인형술사는 꼭두각시들이 수집해 온 사냥팀 리스트를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버서커는 상처를 지혈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 * *
내가 도착했을 때 김영환은 죽어 있었다.
“도망도 못 가고 죽었네. 내 손으로 끝내려 했더니.”
김영환을 구원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목이 날아가 있었다. 내 손에 죽을 때보다 고통은 덜할 것이다. 김영환에게 복 받은 죽음이겠지.
시체를 일별한 나는 버서커를 추적하려다 멈칫했다.
윤희에게 건넨 위치추적기가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
난 윤희가 갖고 있는 위치추적기에 담긴 포스에 집중했다.
일반 위치추적기로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내가 준 건 특별했다.
눈가에 따끔한 통증이 생기더니 전신이 울렁이는 감각과 함께 포스가 눈을 뒤덮었다. 내 포스가 담긴 곳을 쫓아 시야에 둘 수 있는 기프트.
천리안(千里眼).
위치추적기를 가지고 있는 윤희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몰려드는 인형들. 윤희가 위험했다.
난 곧장 윤희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