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사양하지 않지.”
성녀가 대답하기 전에 내 손이 성녀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서늘함이었다. 여태까지 무수히 많은 심장을 움켜쥐어봤지만 이런 서늘한 감각은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었다. 거세게 박동하는 것은 생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으로 그 흐름이 끊어질 때, 삶의 고리 또한 끊겨버렸다.
그런데 성녀의 것은 달랐다.
사람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냉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 속에 서려 있는 기괴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것이 자칭 신의 흔적이라는 건가?
난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을 심장의 피로 흠뻑 적셨다. 그리고 충분하다 싶을 때 심장을 놓고 빼내니, 성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과격하네요.”
“말 나온 김에 처리한 거다.”
“이렇게 갑자기 행동하면 놀라 죽는다고요.”
“그 정도로 안 죽어.”
사람의 생명력을 얕보고 있군.
난 성녀의 상처 부위에 회복제를 부어주면서 피가 묻은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피를 맛봄과 동시에 기프트 정보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인 것은 일반적인 기프트와 달랐다.
“이건…….”
보통 피에 새겨진 기프트의 정보는 명확했다. 어떤 기프트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래서 추출해낼 때 그 정보를 지정해서 복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성녀의 피에 새겨진 기프트는 형태가 달랐다. 모든 것이 흐릿했다. 마치 안개에 휩싸여 잔상이 그려지는 것처럼 뚜렷한 형태가 잡히지 않았다.
기존 각성자와 다른 형태이자 다른 구조였던 것이다. 그 속에 존재하는 기분 나쁜 느낌. 난 그것을 자칭 신의 존재감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난 기프트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면서 종류 파악에 나섰다.
‘신성이라는 것 때문인가.’
성녀는 그 신에게 기프트를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자체적으로 생성한 기프트가 아니며, 신의 의지에 의해 언제든지 기프트를 추가할 수 있는 구조일 터였다.
이 밑바탕이 신성에 기반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다른 구조를 빠르게 읽어 들일 수 있었다.
성녀가 보유한 기프트는 두 가지였다.
신성 회복. 그리고 신성 제련.
하나는 압도적인 회복력을, 다른 하나는 신성력의 강화를 통해 위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제련이라는 기프트는 나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명칭은 심플하지만 이 기프트는 사용자의 포스 위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기존 공격의 퀄리티를 숙련도에 따라 몇 단계 끌어 올려줄 수 있다.
이거라면 투뿔 마물과 신수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지도.
아직도 천마갑귀 가죽을 뚫지 못해 머리만 공략했던 것이 아쉬웠던 차에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낸 것이다.
초재생과 버금가는 신성 회복도 탐이 났지만 신성력에 기반한 만큼 내가 손에 넣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신성 제련을 복사해야 하는데 이 기프트 형태가 기존과 다른 만큼 신성과 제련을 분리한 형태로 추출해 내야 한다.
‘신성 제련은 포스 제련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기존에 내가 보유했던 포스 연성을 뛰어넘는 것으로, 포스 제련은 모든 공격의 위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난 우선 신성을 제외한 제련 부분을 추출해서 가져오는데 집중했다. 신성과 결합되어 이걸 풀어내고 다시 가져오는 과정이 지난했지만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실타래 풀리듯 조금씩 옮겨졌다.
팟!
어느 순간 제련이 완전히 추출되어 옮겨왔다.
기프트를 복사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경우는 처음이군. 성녀에게 기프트를 부여했다는 자칭 신의 존재가 가진 악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잠시 멍한 느낌에 가만히 서 있으니 용용이가 말을 걸어왔다.
“어, 괜찮다.”
“…이게 진짜 가능할 줄은.”
상처가 완전히 아문 성녀는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신성 회복 때문인가? 조금 전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초재생하고 버금가는 회복 속도로군.
저것도 탐이 났지만 가져올 수 없으니 아쉬웠다.
“너한테는 변화가 없나?”
“네, 없네요. 근데 진짜 괜찮은가요?”
“이상 없어.”
“신기하네요.”
“뭐가?”
“아무렇지도 않게 기프트를 복사한다는 게요.”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추출해온 제련은 포스 제련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었다. 예전에 내가 보유했던 포스 연성이 덧씌워져서 그걸로 바뀌는 것이다.
기프트를 삭제해도 그 정보는 남아있다는 거다. 신기하군. 반대로 어떤 기프트를 추출하더라도 그걸 조합할 수 있다면 이것을 통해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겠지.
그런데 포스 제련은 뭔가 기이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짐은 없지만 뭔가가 있는 느낌? 신성의 잔재라고 해야 하나? 정확하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기프트는 잘 받았다.”
“그럼……?”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다.”
“감사해요.”
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대통령에게 성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해놔야겠다.
*
* *
최준호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알레시아는 온몸에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신은 최준호를 제거하라고 했지만 언제 등장할지 모를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준호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가 아니면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렇게 막아낸 것은 성공이라 볼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의중을 거스르면서까지 평화를 선택했다.
그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성녀는 자신에게 닥쳐올 후폭풍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각오했던 ‘신벌’은 존재하지 않았다.
“…없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성녀는 다시 한 번 살펴 보았지만 신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의 의중을 거슬렀는데 대체 왜?
그 의문은 끝끝내 풀리지 않았다.
*
* *
내가 얻은 성녀의 기프트 ‘제련’은 내가 삭제했던 ‘포스 연성’과 결합되어 ‘포스 제련’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집으로 돌아가 포스 제련에 대해 좀 더 살펴보려고 했지만 기프트가 생성되는 중이라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아무래도 자칭 신의 기프트다 보니 시간을 둬야 하나보다.
여기에 뭔가가 더 있는 거 같은데.
여유를 갖고 기다리기로 하고는 다음 날 청와대를 찾아가 내 생각을 밝혔다.
“성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왜 그러십니까?”
“결정이 생각보다 빨라서. 조금 더 오래 끌 줄 알았는데.”
“선수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마갑귀를 상대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도 있어서, 이번에 상대하면서 부족한 부분도 보완할 생각입니다.”
역시 내가 모자란 부분을 파악하는 데에는 치열한 대결이 최고였다.
그 점에서 천마갑귀는 내가 부족한 점을 파악하게 해준 고마운 녀석이다.
만약 이걸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신수와 붙었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테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에 대비하는 곳은 멸망을 각오하고 있는데 부족한 부분 보완이라니, 사는 세상이 다르단 말이지.”
“같은 곳에 살고 있는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잖나. 그보다 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고 하는 건가?”
대통령은 내가 무슨 끝도 없이 힘을 탐하는 사람처럼 보는 듯했다.
힘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나처럼 절제하는 사람이 또 없다. 무분별하게 힘을 탐하다가 탄생한 것이 혈종인 만큼 적절한 완급조절을 하고 있다.
“강해질 수 있을 때까지 강해지려고 합니다.”
“그래. 하지만 내 소망은 우리나라에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하지 않는 거라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
하긴, 투뿔 마물에 의해 중국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다른 국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발 등장하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저도 대통령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고맙네.”
“대신 최대한 받아낼 건 받아내면 좋겠습니다.”
“참고하지.”
“아, 그리고 제가 돕기로 한 건 세계평화를 위해서라고 홍보하면 안 됩니까?”
나도 이제 세계평화를 위해 나선다!
전직 최흉의 빌런에서 이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이란 말인가.
“…….”
“안됩니까?”
“못할 건 없다만.”
“…취소하겠습니다.”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건데.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아서 바로 철회했다.
*
* *
“무슨 개소리냐?”
내 대답을 들은 프란츠의 반응은 격렬했다. 저 영감은 목적을 이뤄놓고 태도가 왜 저렇게 까칠한 건지 모르겠다. 설마 버서커와 한판 붙다가 낭패를 봐서 그런가?
“왜요?”
“네가 세계평화를 위한다고?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세계평화를 위한 거 맞는데요.”
마물을 잡고 빌런도 잡으면 그게 세계평화지, 다른 게 뭐가 더 있나? 내가 떳떳하다는 기색을 보이자 프란츠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보면 빌런이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고 한 줄 알겠다.
그리고.
빌런이 세계 평화를 추구하면 안 되나? 나쁜 놈들, 걸리적 거리는 놈들 처리해서 살기 좋아지면 그게 세계 평화지.
나쁜 놈들 죽이는 게 정의의 히어로이건 빌런이건 좋은 일임은 변하지 않는다.
“허허.”
내 떳떳함에 프란츠는 황당한 기색을 보였다.
난 말이 통하지 않는 영감을 일별한 뒤 멀쩡한 얼굴을 한 성녀에게 물었다.
“괜찮나?”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요.”
“그럼 다행이고.”
자칭 신이라는 녀석이 꼬장 있어 보이던데 그냥 넘어갔다고? 이상한 일이로군.
“계약을 맺었으니 상황이 발생하면 유럽으로 간다. 마물이 등장하면 바로 알리도록.”
“감사해요. 마음이 놓이네요.”
그런 것치고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데.
“용건을 마쳤는데 얼마나 더 계실 겁니까?”
“빨리 돌아가야지.”
“사흘 뒤가 예정이에요.”
성녀가 끼어들며 대답하자 프란츠의 표정이 구겨졌다. 저 영감이 지금 나랑 어울리기 싫어서 빠지려고 한 건가? 쉽게 놔줄 수 없지.
“그럼 남은 기간 동안 수련이나 봐주시죠?”
정주호에게 프란츠의 경험치를 먹이면 무럭무럭 성장할 거 같은데.
버서커도 프란츠와 대결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했다.
빼먹을 게 있다면 빼먹어야지.
“네놈.”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
“안 할 겁니까?”
“하겠다.”
건수를 잡힌 프란츠는 더 이상 앙탈부리는 걸 포기하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은 기간 동안 꽉 붙들어놓고 야무지게 뽑아먹어야겠군.
“두 분 사이 좋아 보여요.”
난 남의 일인 것 마냥 웃으며 지켜보던 성녀에게도 말했다.
“너도 초인이라며?”
“저요?”
“와서 대련 좀 하다가 돌아가.”
“전 봉사 활동이 잡혀 있는데…….”
“그거 하고 와서 대련하면 돼. 온 김에 경험치를 늘려주지.”
“자, 잠깐만요!”
“왜?”
“…아니에요.”
“걱정 마. 어엿하게 제 몫 할 수 있는 초인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내가 스케줄을 정해놓으니 프란츠와 성녀의 표정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
* *
포스 제련, 본래 신성 제련이었던 기프트는 새로운 육체에 완전히 정착한 걸 깨달았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 전, 자신의 창조주가 내렸던 마지막 명령을 떠올렸다.
자신을 무단으로 복사해온 현 주인을 지배할 것.
위대한 신성을 지닌 자신이라면 주인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위대한 존재의 지시를 거룩하게 여기며 스스로 종을 자처할 것이 분명했기에.
우웅!
포스 제련은 곧바로 주인을 지배하기 위해 의식 안으로 한 걸음 내딛을 때였다.
주인의 심상 세계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어떻게 다른 존재들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우웅! 우웅!
둘의 부름에 포스 제련은 멈춰 섰다.
하나는 현묘한 기운이 서려있었고, 다른 하나는 티 없이 맑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동료인가?
창조주가 보낸 지원군인가 싶었지만 포스 제련의 귀에 들린 것은 전혀 다른 의지였다.
새로 발령 온 부하, 블랙기업 신입직원, 종신 기프트, 평생 막내 등등.
알아듣지 못할 말이 포스 제련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명령받은 일을 수행하러 가야 하기에 포스 제련은 두 존재에게 돕지 않을 거면 비키라고 말했다. 하지만 둘은 비켜서기는커녕 오히려 양옆을 포위하더니 포스 제련을 붙들기 시작했다.
위대한 창조주의 자식으로 신의 힘을 지닌 포스 제련은 반항하려고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우웅! 우웅!
광기 넘치는 둘의 반응에 포스 제련은 뭔가 상황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녀석들은 창조주가 보낸 지원군 같은 게 아니었다. 마치 이곳에서 오랫동안 찌들어 있던 지박령같은 존재들이다.
그렇게 끌려간 포스 제련은 주인을 모셔야 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포스 제련 앞에 닥친 것은 , , 그리고 , 등등.
만약 시간 내에 숙지하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거란 경고가 이어졌다.
포스 제련은 위대한 창조주의 자식으로서 버티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마자 가해지는 무지막지한 구타 속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외치고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 주인님을 모시는 비기를 습득하니 그제야 날 선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우웅! 우웅!
아니, 대우가 확 바뀌었다.
둘은 블랙기업 빌런에 온 걸 환영한다며 얼마든지 믿고 의지하라고 말해왔다.
…대체 여긴 어떻게 된 곳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