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이른 아침, 나는 만득이와 광심이의 신호를 받고 일어났다. 녀석들이 알려온 정보는 의외의 것이었다.
“전설급이었나?”
자칭 신이 부여한 것이라 해서 보통이 아닐 거라 생각하긴 했다. 게다가 복사하는 과정에서 형태를 바꾸고 내게 맞춰 새롭게 탄생한 기프트였다.
당연히 성녀가 보유한 것에 비해 하자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스 연성이 더해진 만큼 나아진 부분도 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기에 기프트에 자아가 생겨난 걸까.
두 기프트 요청에 나는 심상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늘 둘이던 것이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이미 드잡이질을 한 건지 만득이와 광심이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온 녀석치고 처음에 고분고분했던 적이 없는 거 같군.
왜 다들 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 순순히 자기 운명에 순응할 것이지.
“예상하지 못한 신입이군, 환영한다.”
내 인사에 녀석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적개심마저 드러내고 있는데 이건 만득이나 광심이 때와 경우가 달라 보였다.
내 안에 들어와 놓고 나를 적대하는 기프트라.
적어도 만득이나 광심이는 날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신 녀석의 사주인가.”
붙잡힌 녀석이 움찔 떤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들어맞은 거 같다.
신 녀석의 수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나쁜 놈들을 숱하게 만나고 다녔는데 그 녀석들의 검은 속내를 모를 리가.
기프트를 제 형태로 보내지 않는 것까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어를 보내줄 줄 몰랐던 거지.
그리고 녀석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내 안에 자신과 같은 기프트의 자아가 더 있을 줄 몰랐던 거지.
그것도 길들여져 내게 충실한 녀석일 거라고는 더더욱 몰랐던 거 같고.
이러니 평소에 잘해줘야 한다.
우웅! 우웅!
두 녀석은 왜 움찔거리는 거지? 내 말에 동의한다는 표현인가?
아무 반응도 없는 걸 보면 묘하군.
인정하기 부끄러워서 그런가보다.
그나저나 새로 합류한 이 녀석을 어떻게 한다?
“내 안에서 뭔 수작을 부리려 한 거 같은데.”
오히려 내게 있어서 녀석의 등장은 좋은 기회였다.
안 그래도 두 개의 기프트를 흡수한 광심이나 익숙하지 않은 만득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시점에서 기운 넘치는 팔팔한 새로운 기프트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와 같다.
그러니 둘이 저렇게 기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걸 테고.
지금은 반항하지만 내 손에 붙들린 이상 적개심을 철저하게 말살하고 충성심을 배양하면 된다.
이럴 때 기프트 자아에 브레인워싱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군.
아, 브레인워싱을 하면 말끔해지니 사고를 못하게 되나?
궁금하긴 한데 할 수 없으니 아쉽군.
하지만 브레인워싱이 없어도 이 분야는 내 전문이다.
이미 만득이와 광심이가 변절하면서 이 방면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지.
“네가 포스 제련이니 앞으로 제련이로 부르겠다.”
우웅!
격렬한 저항.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발악이다. 그래봤자 이름을 지어주는 건 나다.
어차피 제련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렇게 울부짖을 거면 발악하지 말고 네가 모시는 신에게 도움을 청해보던가.”
하지만 신이 내 심상 세계에 진입할 수 있을 리 없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내가 기프트를 복사해갈 때 천벌을 내리지 이런 소심한 수작을 부리고 있을 리 없지.
내 빈정거림에 녀석이 갸르륵거리다가 주인님이 없으니 기세가 약해졌다.
“제련이 네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자아를 갖고 부지런히 일할 기프트가 귀하더라.
그렇게 찾고 찾던 게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게 될 줄 몰랐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되는 것처럼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내 심상세계 안에 들어온 자아가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주 168시간 쉬지 않고 근면하게 일할 수 있는 게 기프트 자아의 가장 큰 장점이지.
뭐부터 시킨다? 이걸 고민하는 것만 해도 참 즐거운 일이다.
“일단 먼저 할 건…….”
난 만득이와 광심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파릇한 신입(?)의 존재로 인해 둘은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하긴, 녀석들도 그동안 고생했는데 재미 좀 봐야겠지.
저 상태로 근면성실하게 일할 거라 보기 힘들고.
“신기부터 쫙 빼 와.”
우웅! 우웅!
둘은 맡겨달라면서 제련이를 질질 끌고 갔다.
*
* *
며칠 동안 충실히 스케줄을 마친 성녀와 프란츠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프란츠 영감은 성녀를 보좌하러 온 것인지 충실하게 성녀를 보좌하는 역할에 국한되었다. 은퇴한 영감이 말년에 고생하고 있다.
이것도 사명감 때문이란 건가.
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말년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좀 더 편하게 지내도 될 텐데.
영감은 저게 더 즐겁다고 하니 내가 시비를 걸 수는 없지.
돌아가기 전, 성녀의 얼굴은 초췌해져 있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유익했으면 좀 더 있지?”
“그건 좀…….”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변했다.
성녀는 듀얼 기프트를 보유한 초인이라고 해서 몇 차례 대련을 해봤다. 그 결과 실력은 굉장히 뛰어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성녀를 불렀고, 온전히 제 몫을 할 수 있는 초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굴렸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미진했다.
붙잡아놓고 좀 더 굴리고 싶은데 말이지.
이곳에 더 있을 수 없다고 하니 아쉬움을 집어삼켜야 했다.
“약속한 건 지킬 거다. 그러니 복잡하게 계산하지 말고 언제든지 도움 요청해.”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덕분에 마음 편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럼 다행이고.”
그것과 별개로 좀 더 굴리고 싶은데. 20대에 초인이 된 재능답게 받아들이는 게 빨라서 빠릿하게 굴리면 쓸모가 있어 질 거 같고.
나와 눈이 마주친 성녀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왜 저래?
[너 지금 입맛 다셨어.]아 그랬나?
요즘 굴려서 발전할 거 같은 녀석을 보면 탐이 나서 그랬나보다.
“그만 놀려라.”
내 진심이 프란츠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나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아쉬움의 표시로 받아들이시죠.”
“네가 훈련시키는 걸 추종자들이 봤다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을 거다.”
“최소한 병신 될 각오는 하고 덤비라고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마.”
잠깐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이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내게 말했다.
“고맙다. 유럽에 오게 되면 거하게 대접 하마.”
“제가 유럽에 가는 일이 없는 게 좋을 텐데요.”
“그럼 평생 오지 말던가.”
“안 좋은 일로 가게 되는 일이 없길 바라겠습니다.”
“진심이냐? 거짓말 같은데.”
[저 인간 예리하네.]유럽에 투뿔 마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내가 유럽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투뿔 마물을 다시 한 번쯤 상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
뭐, 투뿔 마물이 유럽에서만 등장하는 건 아니니까 이렇다 말할 이유는 없다.
“시간 날 때 한 번 놀러 오시죠.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네놈의 극진하다는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거 같아서 싫다.”
“더 강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이 나이에 그러고 싶겠냐?”
“그럼 말고요.”
“그리고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언제 등장할지 알고 방심하겠느냐. 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 도움 요청하면 망설이지 않고 오기나 해라.”
자기 몸을 불살라서 그 시간을 벌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결국 그게 그거 아닌가?
“무리하지 마시죠. 아등바등해도 투뿔 마물 붙들어놓지 못할 테니.”
“걱정하는 건지 얕보는 건지 모르겠군.”
코웃음을 친 프란츠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성녀와 프란츠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대한민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것은 3박에 걸친 지루한 비행을 감수해야 한다.
마물의 등장 이후 조각조각 쪼개진 세계는 그만큼 먼 곳이 되어 있었다.
“저 때문에 신경 많이 쓰셨죠? 죄송해요.”
“죄송할 거 없다. 이번 방문에 맞춰 행동했을 뿐이니.”
프란츠는 성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뒤 물었다.
“최준호는 어때 보였냐?”
“자유로워 보였어요. 진정한 강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녀는 세계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한 사람이며, 무수히 많은 강자들을 만나봤지만 최준호와 만남 이후 그의 강함이야 말로 진짜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신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신에게마저 당당한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강함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정작 신에게는 그것이 불경으로 비치겠지만.
“난 여전히 그 녀석에게 의존한다는 전략이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현재 우리 실력이 부족한 걸 인정해야겠지.”
“현재 인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에요. 시간이 좀 더 주어지면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할 힘이 생길 거예요.”
단지 그 과정에서 무의미한 희생을 막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프란츠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수긍했다.
“열심히 훈련해야겠어. 녀석이 오기 전에 내 터전이 초토화되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저도요.”
“하지만 최준호와 훈련은 사양이다.”
“그건 저도요.”
질색하던 둘은 시선이 마주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
* *
난 어딘가 샐쭉한 이세희와 만났다. 근데 왜 저런 반응인 건지 모르겠다.
“성녀와 시간은 좋았어요?”
“어, 좋더라.”
“어느 부분이요?”
“손맛이 좋았어. 회복력도 좋아서 뒤탈도 없고.”
성녀의 신성 회복의 위력을 엿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데미지를 생각하지 않고 두들겨줄 수 있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압축해서 경험을 전수해줬다. 아마 성녀가 이른 나이에 초인이 된 것도 신성 회복이 있어서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대답한 건데 나를 향한 이세희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왜?”
“저, 전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그럼?”
“성녀가 준호 씨를 친근하게 대해서요. 스킨십도 자연스럽던데요.”
“아, 그거?”
난 몰랐는데 성녀와 만남 자리에서 기자들이 쫙 깔려 있어서 그날 볼뽀뽀 장면에 대문짝만하게 났단다.
고작 인사 가지고 왜들 그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정다현도 내게 조심하라는 연락이 왔었다.
미인계는 나한테 통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들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못 미더워 보이나?
“독 공격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독 공격이요?”
“어. 결과적으로 내게 바라는 게 있어서 친한 척 한 거였고.”
어차피 만독불침이 있어서 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의 없이 접근하는 게 가능했다면 그 기프트를 빼냈을 테지.
내 대답을 들은 이세희는 어딘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갑자기 접근하는 여자는 조심하셔야 돼요. 세상에 위험한 여자가 많거든요.”
그러면서 이세희는 벨루스라는 전설의 미인계 각성자에 대해 설명했다.
벨루스? 들어본 이름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 앞에서 껄떡대면 머리를 부숴버리지, 뭐.
잡담을 끝낸 뒤, 난 이세희가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중국 무기 지원 건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해봐.”
이세희의 요청은 간략하게 요약하면 남부 연합에 저렴한 가격으로 빅뱅 시리즈를 공급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게 내게 지급되는 로열티가 있어서 허락을 구하는 거고.
가격 조정을 할 때 나와 상의하기로 한 조항이 있다고 한다.
난 고민할 것 없이 수락했다.
“상관없어. 진행하자.”
“그래도 다른 사람하고 상의하는 게 낫지 않아요?”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냐.”
“뭔가 입장이 바뀐 느낌이 드네요.”
이세희가 내 사정을 걱정하고 오히려 내가 쿨하게 거래를 하고 있고.
“그럼 바로 진행할게요.”
“그래.”
해맑게 변한 이세희 표정을 보면서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신성그룹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경계하고 있다. 그걸 이세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나는 중간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게 나을까.
차라리 누군가를 찾고 제거하는 게 더 쉽게 느껴졌다.
“의외로 어렵네.”
*
* *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컨트롤’과 ‘포스 제련’을 습득하면서 기프트 숫자가 전부 채워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정주호를 굴려서 기프트를 획득하려는 처음 목표가 살짝 흔들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제련이가 신기를 빼고 나면 기프트 통폐합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정주호를 키워 든든한 보험으로 삼기로 했다.
정주호의 훈련이 늘어질 이유가 조금도 없던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로 인해 곡소리를 내고 있다.
“난 죽겠다고, 죽겠어.”
날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지만.
난 그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원래 초인이 되는 게 쉽지 않은 법입니다.”
“누가 그걸 모르냐. 매일 죽일 듯이 달려들어서 그런 거지.”
버서커가 제대로 굴리고 있군.
정주호가 여기에서 포기하면 곤란하다. 천명국의 뒤를 이어 날 지지해주는 주 168시간 일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초인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저 인간 완전 풀어진 거 같은데?]내가 봐도 그래 보였다.
한 번 꺾인 의지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 단련된 육체와 풍부한 포스가 있어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하는 건 정신을 놓는 경우가 발생해서 그렇다.
그래도 초인이 되면 어디 가서 얻어맞진 않아야지. 모발을 위해 초인이 되려고 하지만 결국 초인은 마물을 효율적으로 사냥하는 각성자다.
이쯤에서 극약처방을 해야겠다.
[방법이 있어?]용용이는 놀라지만 내게 방법이 있다.
“시간이 금입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고 있냐.”
“이사님한테는 특히 시간이 중요합니다.”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냐?”
게슴츠레 눈을 뜬 정주호의 기세가 으스스했지만 난 개의치 않고 말했다.
“모발이요.”
“……!”
“한시라도 빨리 초인이 되어야 모발을 하나라도 더 유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그건…….”
설마 이걸 모르고 어깃장을 놓고 있던 것인가?
허를 찔렸다는 표정으로 정주호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기를 놓치면 초인이 되더라도 보기 흉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현재 정주호의 머리는 정성껏 포장하면 휑한 걸 커버할 수 있는 단계. 하지만 여기에서 좀 더 빠지면 커버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
“어떻게 하겠습니까?”
“알았어, 한다고!”
의욕을 잃은 정주호는 사라졌다.
아직 그의 희망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