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대충 용용이를 호구 잡는데 성공한 뒤, 오키나와를 떠날 날이 되었다. 그날 조스케와 타마키가 날 찾아왔는데, 또 힘을 빌려달라는 헛소리를 하려나 싶다가 내게 고개를 깊이 숙이는 걸 보고 아닌 걸 알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초인님의 조언이 옳습니다! 저희가 급한 나머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뭐 잘못 먹었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던데.
그래도 반성은 하고 있으니 받아주기로 했다.
“이해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예. 저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면 본질이 흐려지는 건데, 어리석었습니다.”
“음, 그런가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글쎄다, 솔직히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게 더 낫다고 보는 쪽인데.
명분을 챙기기보다 생각하는 방식이 한심해서 그런 거였지만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내부에서 투쟁할 겁니다.”
조스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오키나와가 더 대우받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 정치권에 목소리를 높일 거라 말했다.
“다행히 절 좋게 봐주는 분들이 계시니 최대한 설득을 하려고 합니다.”
조스케와 타마키 조합이라. 딱 봐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데, 둘이서 알아서 하겠지.
난 오키나와에 온 목적을 다 이뤘다.
“내부 투쟁도 좋지만 실력을 갈고 닦는 걸 게을리하지 마시길.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실력입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그렇게 나는 오키나와에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뒤 요트를 탔다.
멍!
그러고 보니 멍멍이 녀석은 이번 원정에서 아무 일도 안했군.
며칠 요트를 지키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으니.
멍!
내 눈빛에 멍멍이 녀석이 자기 공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녀석이다.
다음에는 쓸모가 생기겠지.
[나도 다녀올게.]용용이도 현아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래, 올 때 선물 갖고 오고.”
[그 선물이란 게 친구비야?]“아니.”
[그거 맞는 거 같은데.]“마음에 걸리면 갖고 오던가.”
[싫어.]“그럼 갖고 오지 마.”
나야 갖고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생각이었지만 용용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아씨, 뭔가 말리는 느낌인데.]역시 먹여놓고 부담을 팍팍 주는 전략이 잘 먹혔다. 뚱하게 대답한 용용이가 현아를 만나러 사라졌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청와대로 불려간 나는 천명국이 보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천 실장은 휴가 갔네.”
“갑자기 휴가요?”
“곧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예정이지. 그러니 마지막 휴가라도 편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그건 그러네요.”
대통령이 되면 5년 동안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처지가 될 테니.
그 다음 정주호가 되면 초인이 되어 있을 테니 168시간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대통령이나 나나 천명국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 게 포인트가 되긴 하는군.
천명국의 휴가로 난 오랜만에 대통령과 단독으로 대화를 나눴다. 주된 이야기는 역시 주변 정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작정이라도 한 듯 영부인이 직접 끓인 된장찌개를 대접해줬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처럼 영부인의 된장찌개 맛은 일품이었다.
이것 덕분에 대통령과 만남이 산듯했었지.
대통령도 솔직하게 된장찌개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내 임기가 끝나면 종종 놀러 오게. 내가 만드는 건 아니지만 부인이 대접하고 싶다고 하니까.”
“종종 신세 지겠습니다.”
내 대답에 대통령이 놀랐다.
“권력 유통기한 끝난 뒷방 늙은이가 되어도 찾아 준다고?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데.”
“누가 대통령님을 무시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제가 다른 사람하고 같을 거라 생각하시면 안 되죠.”
“그것도 그렇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난 그냥 뒷방 늙은이가 되는 거로 생각했지.”
뒷방 늙은이는 무슨.
딱 봐도 속에 구렁이 수백 마리 품고 있는 요괴 느낌인데.
임기가 끝나서 물러나더라도 절대 퇴물이 되지 않을 거다. 이건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
난 오키나와에서 얻은 정보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나저나 일본에서 또 헛된 꿈을 꾸는군. 자꾸 무리수를 남발하다가 큰 코 다칠 수도 있겠는데.”
대통령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술력이 뛰어나니 재밌는 걸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일본 연구진의 피와 땀이 담긴 정수는 멍멍이 한 끼 특식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잦은 개발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 이번 아오이 와자와이도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이었지.”
“그럼 한 방 먹이는 게 어떻습니까?”
“생각해놓은 방법이 있나?”
“이 정보를 리그에 흘리는 것입니다.”
“리그에? 허!”
대통령은 혀를 내둘렀다. 적의 적은 어차피 적 아닌가. 난 그 반응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독도 근처에서 얼쩡거렸던 걸 보면 녀석들도 신수의 정수를 원하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일본에서 개발 중이라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손을 쓰겠습니다. 나머지는 둘이서 지지고 볶겠지요.”
“그러다가 리그 손에 들어가면 더 심각해지는 거 아닌가?”
“피라미가 여의주를 물어봤자 피라미일 뿐입니다.”
게다가 말이 인공 신수의 정수였지, 그렇게 대단한 수준도 아니고.
내가 괜히 개밥으로 준 게 아니다.
무엇보다 내 근처에서 알짱거리면 목을 꺾어놓으면 그만이다. 대통령도 신중한 표정이 되어 고민해보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조용히 추진해보겠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놀랐어. 원래 이런 모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는데.”
“직접 싸우는 것도 좋지만 싸움 구경도 재밌는 거라는 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찾아가서 일일이 간섭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허허!”
대통령은 그저 웃기만 했다. 마치 성장한 손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조금 거북했다. 저번 생의 경험까지 합치면 그렇게 큰 차이도 아닌데.
“평소보다 식사를 많이 해서 부대끼는군. 잠깐 나가서 걷겠나?”
“그러시죠.”
나와 대통령은 밖으로 나와 산책로를 걸었다. 잘 꾸며진 정원은 빌런과 마물이 활개치는 세계와 전혀 다른 지상 낙원을 연상케 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는 거지? 난 산책을 하면서 대통령이 입을 열길 기다렸다.
인적이 드문 곳에 진입했을 때, 대통령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사람은 끝없이 바뀌는 사람이지. 자신이 가진 생각이, 사고관이, 사상이 변화하는 법이네.”
“그렇죠.”
“많이 바뀌었어.”
“저 말입니까?”
“그래. 스스로 바뀐 걸 느끼고 있나?”
“느끼는 중입니다.”
혈종이었을 때 나와 처음 과거로 돌아왔을 때 나, 그리고 초인이 된 나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 스스로도 변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 변화는 결코 나쁜 방향이 아니었음을 느끼는 중이다.
“사람의 생각은 그 무엇보다 빠르지. 하지만 국가는 그 사람의 생각을 쫓는 게 불가능해.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같지만 변화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네 생각이 바뀌는 속도를 국가는 쫓아가기 벅차다는 이야기일세. 자네의 생각에 따라 답답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어떤 걸 당부하고 싶으신 겁니까?”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조금 너그러이 지켜봐 줄 수 있겠나?”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천 실장은 유능하지. 하지만 정계의 물을 먹은 사람이 아니야. 그런 만큼 기존 정치인과 셈법이 다르고 처신도 다를 테지. 자네가 가장 먼저 겪은 나와 다를 테고. 그것이 자네 마음에 차지 않을 수 있어.”
“걱정되십니까?”
“당연히. 내가 왜 천 실장을 밀어주겠나? 이 나라에서 천 실장만큼 자네와 일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겠나.”
대통령이 농담이 많이 늘었다.
“천 실장의 업무 능력은 나보다 훨씬 낫지. 하지만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는 건 시간이 필요할 수 있어. 그것이 오해를 불러올 수 있지. 내가 당부하고 싶은 건 천 실장과 이 나라의 진심일세.”
“그건 의심하지 않습니다.”
“정말인가?”
“예. 그리고 생각하신 것보다 참을성도 좋습니다.”
“…그랬군. 전혀 모르고 있었네.”
대답하는 대통령은 1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참을성 좋은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 천 실장 잘 부탁하네.”
“잘해보겠습니다.”
“그래, 야당이 신경을 거슬리게 해도 바로 쳐들어가지 말고.”
“뭐가 있습니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대통령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뭔가가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대통령의 부탁하는 모양새가 윤희가 집에서 보던 드라마 전개와 흡사했다.
“이거 드라마에서 장인어른 허락받으러 오던 사위랑 비슷하네요.”
“나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었네.”
“그런 드라마에서 사위는 뺨 한 대씩 맞던데요.”
“…….”
“농담입니다.”
괜히 농담했다가 하얗게 질린 대통령을 달래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농담 한 마디 하기 힘든 사회로군.
*
* *
초인이 되고자 확고한 목표를 세운 정주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다.
버서커의 훈련은 무지막지한 폭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지만 두들겨 맞을수록 늘어나는 실력에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중해야 했다.
자신은 최준호에게 배운 그대로 가르쳐준다는데 대체 어떤 환경 속에서 배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휴가를 받았다면서 찾아온 천명국은 뜬금없이 폭탄을 터뜨렸다.
“나 대선 출마할 생각이다.”
“…축하합니다?”
대통령이 천명국을 대선 후보로 밀어주려고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이렇게 담담하게, 각오가 선 얼굴로 말을 할 줄 몰랐다.
“생각보다 담담하다?”
“주변에서 다 짐작하고 있었을 거 아닙니까.”
“난 말한 적 없는데 알고 있더군.”
“티가 나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결심은 섰습니까?”
“현재 상황에서 적임자가 나밖에 없다고 하니까. 나도 그동안 이뤄놓은 성과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맡기고 떠나고 싶지 않고.”
그걸 정치적 용어로 ‘권력 의지’라고 부른다. 정주호는 명예에 큰 욕심이 없던 천명국이 이렇게 바뀐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권력이 사람을 바꾸는 걸까 아니면 천명국이 큰 뜻을 세운 걸까.
아무래도 좋다.
그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무수히 많은 정치인들을 봐온 정주호는 천명국에 비할 인물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전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한정문만 해도 권력을 탐하던 쓰레기였고.
“후보로 나오면 전폭적으로 지지할 테니 잘만 하십쇼.”
“잘해야지. 힘들게 만들어놓은 판을 깰 생각이 없으니까.”
“하긴, 잘난 우리 천 실장님이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지. 게다가 과외 선생이 현직 대통령이면 더더욱 그렇고.”
“별로 놀라지 않는 걸 보면 넌 짐작하고 있던 거 같고.”
“…하하!”
은근한 원망이 담긴 눈길에 정주호는 웃었다. 자기라도 살아야 하는데 천명국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거, 대통령이 될 형님을 두고 부끄러운 동생이 안 되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초인이 되려고?”
“결심한 이상 허투루 할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녹도 다 벗겨냈고, 실력도 빠르게 느는 중이고.”
“너라면 잘하겠지.”
“믿어줘서 고맙수다.”
빈말이어도 힘이 되는 응원이었다. 요즘 이곳에 있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실력을 가졌는지 실감하고 있었다.
“초인이 되면 신체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던데. 젊었던 시절로 회춘하는 거 같다고.”
“버서커가 말하길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폭발력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지만 지구력은 완급 조절이 더 중요하다고 하니.”
“그래도 웬만한 젊은이보다 더 좋을 거 아니냐.”
“그건 그렇지. 갑자기 왜 궁금해해요? 형님도 초인하고 싶어서?”
“난 너처럼 재능이 없어서 못하지.”
“재능은 무슨. 여기에서 매일 뼈저리게 느끼는 게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인가에 대해서인데.”
재능의 세계는 반드시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어린 시절 스스로를 천재라 생각했던 정주호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잘났다고 생각했던 게 최준호 팀에 들어와서 벌레보다 조금 낫다는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 난 대통령에, 넌 초인에 도전하고 있고.”
분야는 다르지만 도전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힘이 되고 있단다. 이건 정주호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초인이 되어도 최준호 팀에 있을 거지?”
“그거야 어떤 대우를 해주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매력적인 제안을 준비해야겠어.”
“형님은 대통령이 되고 나는 나라를 수호하는 초인이 되고. 얼마나 멋진 구도입니까? 우리 열심히 해서 각자 목표에 도달합시다.”
“내가 대통령 되면 많이 도와주고.”
“그건 지켜보고?”
“너 아니면 내가 믿을 사람이 누가 있냐.”
“하긴, 그것도 그러네.”
천명국도 참 외롭겠다 싶었다. 자신이라도 힘이 되어줘야겠지.
“초인이니 일주일 내내 부려먹어도 일을 잘할 거 같고.”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술이나 마시자.”
둘은 마주 보고 웃으면서 술잔을 부딪쳤다. 정주호는 소주를 단번에 들이켰다가 뭔가 꿍꿍이가 느껴지는 천명국의 웃음에 고개를 기울였다.
과민반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