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
대통령과 대화를 마친 나는 청와대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 대화는 제법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역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면 비범해야 한다는 걸까. 대통령은 어떤 부분을 걱정하고 있는지, 자칫 내가 핀트 어긋날 수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이렇게 한 번 짚어주면 갑작스럽게 달려들 일이 없으니 김이 빠져서 과열되지 않는 법이다.
평소라면 이 대화를 공유해서 조언을 듣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저번 생에 가졌던 생각과 스스로 느낀 바뀐 점들을 굳이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대화 중 대통령이 유일하게 착각했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가진 애착을 생각보다 낮게 생각하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한민국 서울은 마물의 습격 이후 완벽하게 재건에 성공한 도시다. 대부분의 마물이 서울에 접근하기도 전에 사냥되며, 무수히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과거의 옛 영광을 되찾았다.
지금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도시가 된 이곳은 저번 생에 내가 간절하게 갈망하던 곳이다.
빌런으로 추격당하는 신세는 결코 문명의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아무리 암시장에서 필요한 걸 공수한다고 해도 집요한 추적은 그마저도 한시적으로 만드는 법이니까.
천명국이 그걸 참 잘했지. 그런 사람이 다음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고.
혈종일 때 천명국을 보기만 하면 목을 비틀어버리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은 그를 돕고 있으니 인간의 운명이란 게 참 재밌다.
그 과정을 겪어온 나는 누구보다 문명의 소중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 소중함을 내 손으로 놓을 리 없지.”
대통령이 걱정한 것처럼 충돌을 야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비록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지만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반영해줄 수 있다면 기꺼이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추격은 지긋지긋하고.”
하긴, 달리 생각하면 저번 생보다 월등히 강해진 내가 추격에 쫓길 거 같진 않다. 오히려 날 적대하는 녀석들을 다 제거하고 서울을 점령하는 게 더 쉬워 보인다.
…진짜 가능해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속병 나게 참을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이건 아닌가.”
대통령이 들었으면 기겁했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요즘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다 보니 억지로 불려갔다.
하지만 집안을 가득 채운 된장찌개 냄새는 모든 감정을 잊게 만들었다.
맛이라면 영부인의 된장찌개가 더 훌륭할지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쌓아온 어머니의 맛에는 그 무엇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아직도 내게는 혈종이던 시절,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던 간절함이 남아 있었다.
간절함이란 조미료는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조미료다.
“넌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겨 먹니? 왜 이리 말랐어. 많이 먹어.”
“요즘 일이 많아서요.”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아?”
“이래 보여도 세계 평화를 위해 큰 힘을 쓰고 있거든요.”
포스 제련 때문인가. 예전에는 오글거렸던 감정이 싹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겉모습은 멀쩡한데.”
“이상해 보여요?”
“그냥, 익숙하지가 않아.”
“어떤 게요?”
“주변 사람들은 다 자식 취직 걱정하던데 내 아들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초인이잖니.”
뭔가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태도가 미묘했다.
자식이 잘 나가는 초인인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안 믿겨요?”
“믿지. 적응이 안 돼서 그렇지.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난리인 줄 아니?”
어머니는 선 자리 제안부터 온갖 청탁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조만간 내가 교통정리를 한 번 해줘야겠군.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면서 아버지와 대화했다.
“정계 흐름이 굉장히 복잡하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실종되었다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정계와 재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고 한다. 특히 각성자 세뇌 사태에서 재계 인원이 대거 구속되면서 혼란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 될 게 있나? 어차피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한 놈들이 싹 잡혀가도 그 자리를 대신할 자들은 차고도 넘친다.
“여당이 큰 타격을 입어서 야당에 호재로 작용했지. 하지만 대통령이 이대로 정권교체가 되도록 두고 볼 것 같지 않은데.”
“여당이 힘든데도 그렇게 보세요?”
“여당이 힘든 거지 청와대가 힘든 건 아니지 않느냐.”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보는 눈이 상당히 좋았다.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여당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청와대와 분리해서 보는 게 있다고.
그 선을 의도적으로 그어놓은 것이 대통령의 포석이다. 아버지는 그걸 제대로 보셨고.
“아마 대통령의 복안은 청와대에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보세요?”
“안 그러면 여당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도록 두지 않을 테니까. 청와대 내에 자신이 정해둔 후계자가 있을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너와 잘 아는 사이일 테고.”
날 떠보듯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불쑥 이름을 꺼내 들었다.
“천명국 실장, 맞나?”
“맞아요. 대단하신데요?”
“…가능성이 낮으면서도 가능성 높은 계획이라고 했는데 진짜 진행할 줄은.”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대통령의 과감함에 혀를 내둘렀다.
난 옆에서 보고만 있어서 그냥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과감한 결단이었나보다.
“천 실장이 대통령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세요?”
“보통 경우라면 없다고 하겠지만 너와 관련되었다면 가능성이 있지.”
나와 관련되었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내 의아한 표정을 봤는지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넌 네 존재가 가져다주는 프리미엄을 잘 모르는구나. 그건 정계에 존재감이 없는 사람을 단숨에 대선후보로 만들어줄 힘이 있다.”
하지만 나와 친한 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란다.
“때로는 그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지.”
야당에서도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라고.
“그럼 잘 지내보려고 할까요?”
“그게 가능하고?”
“당연히 안 되죠.”
“그럼 하던 대로 하자.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예.”
“그나저나.”
날 응시하던 아버지가 짧게 혀를 찼다.
“천명국 실장이 불쌍하군.”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끝끝내 대답해주지 않았다.
*
* *
내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유럽에 먼저 나타날 투뿔 마물을 사냥한 뒤 천둥새를 잡는 것이다.
천마갑귀를 상대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만큼 새로 등장할 투뿔 마물로 경험을 완숙한 경지로 끌어올린 뒤 천둥새와 맞서는 것.
스스로도 신수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지만 내 머릿속에 아직도 용용이가 보여줬던 압도적인 힘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천둥새도 그에 비견되는 존재일 것이기에 내 스스로도 완성된 상태에서 맞붙어보고 싶었다.
과연 신수가 궁지에 몰리면 다른 마물처럼 생존본능을 발휘할까?
그리고 같은 신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유별난 용용이는 대결 결과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해진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다만 내가 유럽에서 투뿔 마물이 등장하길 천년만년 기다릴 수 없다는 것.
최대 1년까지 기다리면서 내 자신을 다듬은 뒤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사실 1년 내 투뿔 마물이 등장할 확률은 1% 미만이다.
저번 생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 시기 유럽에서 투뿔 마물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내가 등장하면서 세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난 만큼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걸 기다리면서 그동안 얻은 기프트를 소화할 생각이다.
“애매하군.”
다만 내 개인 만족을 위해 투뿔 마물의 등장을 바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이 되었다는 증거겠지.
난 길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중국처럼 천마갑귀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등장할 마물을 처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등장하지 않으면 그거대로 좋은 일이겠지.
“못 미덥지만 버서커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거고…….”
그래도 방심할 수 없으니 잡아서 마물 사냥 능력을 늘릴 수 있도록 굴려야겠다.
만약 유럽에 가게 되면 멍멍이도 두고 갈 생각이었다.
버서커가 마물에 대비하고 멍멍이가 지근거리에서 가족을 지킨다는 구상이었다.
남은 건 만득이와 광심이가 제련이 교육을 끝낸 뒤, 제련이를 동원해서 기프트 통폐합을 진행하는 것.
포스 제련인 만큼 기뢰나 컨트롤을 통폐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그리되면 자리가 하나 남게 되고, 선택의 폭이 늘어나게 된다.
만득이랑 광심이가 좀 더 빠릿하게 움직이면 좋겠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리는 느낌이다.
음, 이걸 제외하면 모든 일은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갑자기 헤드라인을 뒤덮는 소식이 터지기 전까지.
일찌감치 단일대오로 대선후보를 선출한 야당이 충격적인 발표를 한 것이다.
야당이 겨누는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이거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한번 해보자는 건가?
*
* *
야당이 발표한 소식은 삽시간에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저들이 노린 대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였다.
기분이 나쁘긴 한데 그만큼 궁금함도 생겼다.
나에 대한 반감은 여당이 더 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왜 야당이 날뛰는 거지?
이런 행동에 대해 이세희는 이렇게 평가했다.
“야당에서도 모든 것을 걸고 배팅을 한 거예요.”
“배팅?”
“네. 반 최준호 인원을 최대한 끌어 모으기 위한 전략인 거죠. 적아를 확고하게 나누는 방법이지만 그들에게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선택이었을 거예요.”
이세희가 말하길, 야당이 이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나와 여당 이상으로 친해질 수 없다는 것.
그동안 내가 정치권에 보여준 태도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발생한 행동이란다.
“여기에 준호 씨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승산이 있다고 본 거예요.”
“…….”
“준호 씨 홀로 대한민국을 수호할 수 있지만 투표에서는 같은 1표거든요.”
“대단한데.”
“준호 씨만 노린 게 아니에요. 이런 방법으로 저희도 많은 손해를 봤었죠.”
정치라는 것이 참 머리를 부지런히 굴리는 작업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다만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한 방 맞았으니 반격을 해야겠지.”
“네? 이걸 반격해요?”
“그럼 가만히 두고 보라고?”
“그야 정치권 일이니까 가만히 두면 반대 측에서 알아서…….”
“여당에서 날 위해 나설 거라 생각해?”
“…….”
이번에는 이세희의 말문이 막혔다. 그래, 여당에서도 날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야당의 이런 행동에 반격할 리 없다.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 하는 문제였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기분 나쁘다고 모조리 쓸어버리는 건 안 될 것 같고.”
“그건 당연하죠!”
“민주 시민답게 평화로운 방법을 동원해야겠지.”
“생각하고 계신 게 있나요?”
왜 내가 생각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거 같지?
내가 빤히 바라보자 이세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준호 씨가 어떤 복안을 가졌나 궁금해서요.”
“가장 좋은 건 사람들에게 여당이 정권을 잡는 게 더 좋다는 걸 알려주는 거 아닐까.”
“네, 그렇죠.”
“야당이 정권 잡으면 깽판 친다고 말할까?”
“그건 좀…….”
이세희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건 안 되는구나.
“그럼 정치자금을 후원하면 어떨까 싶은데.”
“우리나라는 개인이 후원할 금액이 정해져 있어요.”
“현물이면 상관없잖아.”
현재 내가 유해 8단계 마물의 심장을 50여 개 갖고 있다고 하자 이세희가 경악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보관할 때 이걸 본 윤희도 기겁한 적 있지.
“유해 8단계 마물의 심장도 안 돼요. 그것도 규제 대상이거든요.”
“그래?”
“네. 재벌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를 고안하는데요. 당연히 현금을 코어로 바꿔서 자금 세탁도 시도해봤어요. 이것도 제도권 눈에 들어갔어요. 그나저나 축하드려요. 그 숫자면 준호 씨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에요.”
별로 자랑스러운 타이틀은 아닌 거 같다.
그나저나 마물의 심장을 규제하다니.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플러스 단계도 마찬가지란다.
“그럼 투뿔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요? 그건 아직 한 번밖에 등장한 적 없고… 아! 설마?”
“규제 대상이 아니란 이야기로군.”
천마갑귀가 자폭해서 많이 건지지 못했지만 일부는 내 손에 있다.
이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규제 대상도 아니니 내 의지를 보여주기 딱 좋아 보이는군.
“네, 당연히 조사가 들어오긴 하겠지만 국세청도 청와대 통제를 받을 테니.”
“그럼 이걸로 해야겠지.”
아직 1년 반이나 남은 대선에 벌써 부터 불을 붙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내가 마음에 안 드나보다.
야당이 당선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협박은 너무 진부한 거 같고, 그저 내가 가진 것들을 동원해서 야당에 훼방을 놓을 생각이다.
어차피 불법이라고 해도 천명국이 당선되면 그만이다.
이럴 때 쓰라고 불체포특권 받은 게 아닌가.
“…준호 씨, 제가 기분 나쁘게 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이세희가 애원하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