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5
25화
“······.”
김영환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정주호는 재빠르게 포위망을 구축하던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장 포위망을 풀고 후퇴하라는 내용이었다.
“책임을 뒤집어쓰겠지만······.”
레벨 8 초인의 죽음. 그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정부는 대형 길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도에 처했고. 최준호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김영환의 죽음은 본인이 자처한 면이 컸다. 그가 공을 홀로 독식하려 들지 않았다면 죽기 전 다른 헌터들이 도와 도망칠 시간을 벌어 줬을 것이다.
여기에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내내 버서커를 노렸던 최준호는 왜 버서커와 김영환의 대결을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그 녀석이 남의 말을 잘 들었다고?
“설마? 아니, 아니겠지.”
누가 개입하기도 전에 김영환이 버서커에게 빨리 죽긴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최준호가 전투 장소로 출동했고. 손쓸 도리가 없었겠지.
머릿속을 채워 나가는 만약의 가정을 지우며 통솔에 집중했다.
김영환의 죽음이 알려지자 주변 분위기가 술렁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버서커가 난입이라도 하다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두 빌런을 잡으려던 건 리그에 합류하면 더 큰 재앙이 될 우려가 있어서다. 하지만 김영환이 죽은 이상, 둘을 잡으려면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정주호는 거기까지 피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자 후퇴를 명령했다.
“우린 마지막까지 남아 동료들이 후퇴할 시간을 번다.”
“예!”
정주호의 선언에 특수팀 공무원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본진으로 버서커의 도주를 전달한 나는 인형술사가 대형길드 사냥팀을 습격한다는 소식을 알린 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형술사는 버서커와 질적으로 다른 빌런이다.
녀석은 여태까지 본 모습을 단 한 번도 드러낸 적 없이 무수히 많은 헌터들을 납치, 인형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 이유는 없었다. 어떨 땐 재미로, 어떨 땐 그냥, 어떨 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인형술사가 가장 즐기는 것이 납치한 인형과 가족을 만나게 해서 눈앞에서 망가뜨리는 거였으니 그 악랄함은 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라는 것이 국가수호국 헌터들의 평가지만 내가 볼 때 약자만 골라서 노리는 찌질한 놈이다.
“열심히 황금고블린을 잡아라.”
실전 레벨업 찬스가 왔으니.
천리안에 윤희가 있는 장소가 보인다.
격전에 지친 사냥팀. 그리고 습격해 온 인형들.
다수에 둘러싸인 채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잠재능력이 개화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나는 전투 장면을 지켜보면서 오토바이 엑셀을 당겼다.
* * *
버서커와 인형술사의 위협에 대비하여 예비대를 꾸린 이세희가 김영환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술사가 경기 남부의 사냥팀을 습격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곧장 구조대를 꾸렸다.
현재 사냥에 나가 있는 팀은 총 세 개. 이세희는 세 팀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나눠 이동했다.
인형술사의 목적은 재능 있는 헌터들의 육체일 것이다. 어쩌면 습격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동원된 인형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세희는 전략을 수정, 인형술사의 격퇴가 아닌 사냥팀의 구출로 전술을 수정했다. 문제는 3팀으로 몰려드는 숫자였다.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본사로부터 지원을 추가로 요청했다.
고민이 깊어 가는 이세희의 귀로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 길드인가요?”
“아닙니다. 근데 달려오는 속도가 200km는 넘는 것 같아서 조심······ 미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오토바이를 보며 운전기사가 욕설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세희는 그 말에 동조할 수 없었다. 찰나지만 오토바이 운전자의 얼굴을 본 것이다.
“저건······.”
틀림없는 최준호다. 그리고 그가 향하는 곳은 3팀이 습격당하고 있는 곳. 최윤희를 구하러 가는 것이다.
갑자기 근심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상황판단을 마친 이세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 오토바이 뒤를 따라가세요!”
“예? 아, 예!”
그리고 이세희는 3팀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전력을 1팀과 2팀 있는 곳으로 나눴다.
구원하러 가는 전력의 총합이 10이라면 5씩 1팀과 2팀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 자신만 3팀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보조석에 타고 있던 총괄 운영 부팀장 이영탄이 걱정을 드러냈다.
인형술사는 불사신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휘하에 부리는 인형들을 총동원하면 그 숫자가 중형 길드에 육박한다.
“팀장님, 전력을 이렇게 분산하면 1팀과 2팀은 탈출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3팀은 어렵습니다. 지금 그곳에 인형이 제일 많은데······.”
“괜찮아요.”
조금 전 최준호를 보지 못했다면 이세희도 이영탄의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지금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곳이 바로 3팀이에요.”
그 순간, 이세희는 봤다. 오토바이 위에 있던 최준호의 모습이 유령처럼 사라지는 걸.
* * *
“······.”
최윤희는 이를 꽉 물었다. 사냥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빌런에게 습격당할 수도 있는 것이 헌터의 숙명인 건 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인형술사라니 갑자기 난이도가 높아도 너무 높아졌다.
“드럽게 많네.”
인형 군단이 몰려오는 걸 보자마자 최윤희는 오빠에게 받은 위치추적기 전원을 눌렀고, 길드 예비대에 지원 요청을 넣어 놓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도착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할 일은 우선 버텨 내는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지만 인형술사는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마저도 이용할 요소로 판단한 최윤희는 동료들과 함께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웅크리고 버티기로 일관했다.
인형술사가 동원할 수 있는 숫자는 어디까지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이백이 넘는 걸 보는 순간 세는 걸 포기했다.
극한의 위기에 처하자 오빠가 죽어라 굴렸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고 몸은 지쳤는데 저절로 움직였다.
설마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할 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위치추적기도 줬고?
그럼 이런 상황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본 건가. 그 양반이라면 왠지 지금 자신이 죽어라 발악하는 것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굴렀던 것들이 생각나자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얼마나 빡세게 굴렀는지 니들이 알아?”
오빠한테 굴렀던 경험이 생각나서일까. 절망스럽게 느껴졌던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 웬수가 인형술사였다면 더 악랄했을 것이다. 아마 소모품 인형들을 냅다 집어던지면서 진영부터 무너뜨렸겠지. 그리고 무너진 대열 사이로 인형들을 투입, 팀원들을 한 명씩 갈라놓아 각개격파 했을 것이다.
완전 좀비 무리에 괴멸되는 파티 꼴이지.
어쩌면 그 인간은 인형으로 침을 뱉거나 흙도 던지지 않을까.
오빠의 탈을 쓴 웬수는 빌런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라며 온갖 치사한 짓을 자신에게 해 댔다.
마물에 대비하라면서 개 포즈도 취하던 양반인데.
그에 비하면 인형술사의 방식은 시시했다.
-가는 중이야. 조금만 버텨. 그리고 준호 씨도 가고 있어.
이세희의 무전에 없던 힘도 생겨났다. 오빠가 온다고? 그럼 인형술사도 한 방이다.
오히려 인형술사가 불쌍해졌다. 그 인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윽!”
동정은 개뿔, 인형에게 위협을 당하자 측은함 따위 바로 사라졌다.
최윤희는 인형들의 움직임에 집중하다가 다른 인형보다 월등한 하드웨어를 지닌 인형이 달려드는 걸 봤다.
“철민 아저씨 조심!”
퍽!
“크헉!”
사냥팀 탱커 기철민의 가슴 갑옷이 움푹 찌그러지며 입에서 피를 뿜었다. 노련한 탱커이자 사냥팀 리더인 그는 레벨 5의 실력자였지만 인형의 맹공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난 괜찮··· 그보다 정해솔이다. 정면으로 맞서지 마.”
“정해솔이면······.”
한때 아방가르드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이자 레벨 7로 평가받던 무투가였다. 이명은 붕권, 솔선수범하는 카리스마로 사냥팀을 이끌던 인물이었다. 길드원 모두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사람이다. 최윤희도 이름을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헌터였다.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던 인물이 지금은 인형술사의 종이 되다니.
자신 또한 저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번졌다.
“컥!”
잠깐 틈을 드러냈을 뿐이지만 절묘하게 파고든 인형의 주먹이 기철민의 방패를 강타했다. 마물의 맹공에도 버텨 내던 방패가 산산조각 났고 저 멀리 튕겨 나간 기철민은 의식을 잃었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정해솔의 안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비웃음이다.
곧이어 잔뜩 갈라진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끝인가? 그럼 섭섭할 거 같은데. 킥킥! 정말 끝이야? 응?”
“뭐래, 덤벼!”
그래 봤자 인형 주제에.
최윤희는 눈을 부릅뜨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인형술사는 소모품 인형으로 인해전술을 펼치면서 정해솔로 팀의 진영을 헤집었다.
휘두르고, 찌르고 그러다 구르고 몸을 던지고.
필사적으로 맞섰지만 하나둘씩 쓰러졌다.
최윤희는 마지막까지 남아 20여 합을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체력은 진즉에 고갈되어 입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더럽게 세네.”
손아귀에 힘이 풀려 검마저 놓쳤다. 검이 아니면 주먹으로라도 발악해야지.
근데 보통 이런 상황이면 절망하지 않나.
암울한 상황 속에서 멀쩡한 자신을 보며 최윤희는 스스로도 정상이 아니라 생각했다.
정해솔이 환희에 찬 끔찍한 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잡았군, 킥킥킥!”
“죽어!”
마지막 힘을 쥐어짠 최윤희가 급소를 걷어찼다. 발끝에 터지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인형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잡히는 건가. 좀 더 발악할걸.
정해솔의 손이 어깨에 닿으려고 할 때, 최윤희는 자신이 찬 팔찌에 빛이 뿜어지는 걸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쾅!
눈을 뜬 최윤희가 본 것은 든든하기 그지없는 오빠의 등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무위를 발휘하던 정해솔은 저만치 튕겨 나가 있었다.
평소에는 얄밉기 그지없던 얼굴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졌다.
“오빠!”
“꽤 잘 버티더라. 경험치 좀 쌓았냐?”
눈물을 글썽이는 최윤희를 향해 최준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윤희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싸웠다.
정식 헌터가 된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신입이다. 마물을 사냥하고 격전을 치렀으니 이렇게 버티고 서 있는 게 용할 정도다.
아마 인형을 상대한 30분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이겠지. 하지만 각성자 인생에서 가장 값진 30분이 되었을 것이다. 목숨에 큰 위협 없이 이만한 경험치를 쌓을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역시 윤희는 재능이 있다. 앞으로 더 굴려야지.
이젠 내 차례다.
방금 발동한 기프트는 전이(轉移)로, 내 포스가 담긴 물건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이동 거리는 3km 이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건으로 가능한 기프트라 유용한 도주 수단으로 쓸 수 있지만 믿을 사람 없던 나는 잘 활용할 수 없던 기프트다.
일전에 본 블링크처럼 사용에 제약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전이의 가장 큰 단점은 포스 소모가 극심했다. 본래 이 기프트를 가진 녀석은 전이를 한 번 발동하면 포스 고갈로 꼬박 이틀을 앓아눕곤 했다. 공간 이동류 기프트는 이런식으로 제약이 심한 편이었다.
물론 포스 소모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한숨 자.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거야.”
“응. 나 좀 지쳤어. 근데 오빠, 설마 아니지?”
“뭐가?”
“다 지켜보고 있다가 나타난 거. 아니지?”
난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고생했으니 쉬어.”
“···나중에 꼭 대답해 줘. 근데 나 잘했어?”
“잘하더라.”
“다행이다.”
작게 미소 지은 윤희가 쓰러지며 잠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렸던 미소를 지웠다.
“······.”
윤희를 눕혀 두고 일어나 바닥을 뒹구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손잡이 감촉이 느껴졌다. 인형술사의 습격을 경험치 레벨업으로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열이 받았다.
전투 내내 동생이 위협당하는 걸 봤어야 했으니까. 윤희가 경험을 쌓아야 해서 지켜봤지만 그 광경을 웃으며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건드린 녀석을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이다.
검을 들어 슬래쉬 기프트를 발동했다. 검 끝에 무지막지한 양의 핏빛 포스가 뿜어지며 해일처럼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그 순간,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
후둑! 후두둑!
포스 해일에 휩쓸린 이백이 넘는 인형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쓰러졌다.
버티고 서 있는 인형은 고작 정해솔 하나뿐.
난 그 인형의 눈을 들여다봤다.
저 너머 인형술사의 존재가 느껴졌다.
“네가 불사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