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대통령과 대화는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세력마다 각자의 입장이 존재하고 각자의 이익 추구 방향이 존재한다. 유럽에서의 일은 조급함을 갖지 않고 기다리는 게 더 중요했다.
모든 일이 한 방향으로 빨리 달려간다고 해서 일찍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참을성이 발휘되어야 하지.
…사실 방법이 없는 게 크다.
이럴 거면 친구비로 보완된 전이 같은 기프트보다 유럽까지 바로 날아갈 수 있는 공간 계열 기프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신수도 불가능할 테니 포기해야겠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나는 뒤따라 나온 천명국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초인님, 잠시.”
“하실 말씀이라도?”
“예. 얘기 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시죠.”
우리는 청와대 내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일은 감사 인사드립니다.”
난 처음에 어떤 걸로 감사 인사를 하는 건가 싶다가 야당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당 얘긴가요?”
“예, 그렇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그쪽에서 먼저 귀찮게 군 걸 치워버린 거라서. 실장님이 아니더라도 제 선에서 처리하려 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오랫동안 정치 한 사람의 정치 감각이 실장님보다 한참 떨어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치를 직업으로 한다면 당연히 정치 감각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정치인인데 정치 감각이 좋지 않은 걸 보면 여러모로 아리송했다.
내가 본 정치인들 대부분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기이한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다.
“저도 정치 감각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뇨, 제가 볼 때 대통령님을 제외한 정치인들 중 실장님이 가장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헷갈리는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넨 천명국은 날 부른 용건을 꺼내들었다.
“저번에 사우디가 언급된 걸 기억하십니까?”
“100조,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바탕 벌어진 해프닝이었음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제안을 철회하지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 다시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를 자극한 야당 책임론부터 시작해서 세계에서 유일한 투뿔 마물의 심장을 판매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화제가 계속될수록 야당의 책임론이 커져가니 나로서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국왕의 특사입니다.”
“특사가 왜 여기까지 온 거죠?”
“천마갑귀 심장 구매를 떠나 초인님을 향한 마음은 진심인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친분을 쌓기 위해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단순히 친분을 쌓는 친목질 같은 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천명국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왕의 특사가 초인님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도움이 됩니까?”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럽 정보에 해박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럽이 멀지 않긴 하다. 이러면 내가 원하는 유럽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겠군.
게다가.
천명국은 기프트 시뮬레이션의 소유자. 아마 현재 상황에 대한 계산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실장님이 추천해서 만나보려고 했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유럽 돌아가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만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날 찾아온 것은 사우디 국왕을 30년째 모시고 있는 수행원이었다.
특별한 직책은 없지만 국왕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사우디 내에서 국왕의 수족이자 입으로 불리는 인물이라고 한다. 나이는 60대 초반이지만 잘 관리해서인지 50대 정도로 보였다.
레벨은 7 정도 되는 수준으로 쓸모 있는 수준의 각성자이기도 했다.
경호원 겸 수행원인가보다.
“나시르라고 합니다.”
“최준호입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마주 앉았다. 그런데 나시르가 날 보는 눈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앞에서 대놓고 탐색하듯 바라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최강의 각성자를 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한 말이네요. 그런데, 한국어가 꽤 능숙합니다?”
난 내 앞에 있는 나시르가 한국에서 태어난 사우디 사람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유창한 솜씨였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예.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익혔고, 원활한 대화를 위해 발음교정까지 받았습니다. 여기에 한국 드라마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나시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그걸 듣는 나는 아니었다. 내가 초인이 된 것이 아직 2년을 채우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말은 내가 초인이 되기 전부터 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국어를 익혀왔다는 것이다.
얼추 기간을 채웠다고 생각하기에는 헐렁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본국에서는 당신이 두각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여 주시해왔습니다.”
사우디에서는 내가 헤드 브레이커라는 이명을 얻을 즈음부터 하여 내가 근시일 내에 초인이 될 거라 확신을 가졌단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이목을 집중시킨 게 맞으니까.
근데 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그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일찍 세계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줄 몰랐지만 말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말씀하신 걸 좀 더 귀 담아 들었어야 하는데 이번 일로 크게 혼났습니다.”
“그쪽 국왕이 나한테 관심을 갖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사우디 쪽 경호 인력이 발끈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시르가 먼저 손을 들어 경호원들을 제지했다. 조금 전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과 차원이 다른 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을 때 예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돌아왔다.
“국왕 전하께서는 인재에 대해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그 인재들과 교분을 나누는 걸 즐기십니다. 그들이 베푸는 작은 호의 하나가 본국을 구하기도 해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형적인 인구에 비해 영토가 넓은 국가에 해당한다.
이러한 국가는 마물의 등장 이후, 다른 곳보다 엄청난 타격을 받았는데, 지켜야 할 국토는 한도 끝도 없이 넓지만 정작 인재 풀이라 할 수 있는 인구에서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동의 패자를 자처하던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수시로 마물의 침공에 시달리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말 하나로 넘어갈 리 없다.
고작 친분을 다지려고 나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그래서 당신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습니다. 미국만큼 당신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정도로. 가령 지금 날 죽일까 고민하는 것도 말입니다.”
“…….”
나에 대해 잘 아는 게 맞긴 하군. 음, 근데 저렇게 말한다고 내가 못 죽일 거라 생각하는 거면 착각이 맞는데.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유형은 처음이긴 했다. 난 일단 뭐라 떠드는지 끝까지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부터 듣고 싶은데.”
“이번에 등장한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 사냥을 위해 유럽으로 갈 준비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있습니다.”
“바라는 건?”
“사냥이 성공적으로 끝내고 몸 상태가 괜찮으시다면 본국에 방문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이라.
마물의 등장 이후, 마물의 심장이 친환경 에너지원임이 밝혀지면서 석유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던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의 위상은 급전직하 했다.
그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큰 손해를 봤고. 각성자 전력 보유나 마물 사냥에 중동 국가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그 여파가 한 몫 했다.
자기 살기 바쁜 미국과 유럽에서는 각성자 비기를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에 비기를 풀었지만 중동 국가 특성상 많은 인재가 조국을 떠난 후였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가는 법이다. 지역 강국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 그대로 요청일 뿐입니다. 대신.”
나시르는 내게 유럽에 관한 정보가 담긴 문서를 건네줬다.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물건부터 건네 준다? 작정하고 내 호의를 사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어설프게 간을 보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개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나에 대해 조사를 한 게 사실이군.
“국왕 전하께서 세계최강 초인을 보길 고대하고 계십니다. 진심만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 진심 잘 알겠습니다.”
역시 진심은 확실한 대가가 따라야 전해지는 것 같다.
난 긍정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
* *
“허허.”
“…….”
프란츠는 허탈하게 웃고, 성녀는 미간을 모았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건지 둘은 속이 쓰라려 오는 걸 느꼈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한 뒤, 둘은 예정대로 최준호를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할 때, 유럽 내 분위기가 자신들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초인을 부를 것 없이 스스로 힘을 모아 상대해볼 것을 천명했던 것이다.
초기 각자 대응하면서 사분오열되어 있던 유럽은 프란츠의 헌신과 희생으로 다시 한번 단일대응체제를 구축하여 효율적인 체계를 정비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 각국은 최소한의 피해로 마물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고, 체계적인 육성 방식을 통해 뛰어난 각성자들을 연이어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이 독이 되었다.
철저한 유망주 보호와 마물 사냥 보상 독식 방식이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과도 해볼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시킨 것이다.
특히 유럽 내 젊은 초인 모임에서 이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렇게 된 이상 최준호를 불러올 수도 없다. 왔다가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더 큰 재앙이 벌어질 거다.”
“동감해요.”
유럽 내에 젊은 영건으로 통하는 초인들은 마흔 이하의 나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 숫자는 열두 명이며,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왔기에 각국에 끼치는 영향력이 강력했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할 수 있다며 여론을 주도한 게 그들이다.
하지만 이 일을 꾸민 주범이 그들이 아니란 것을 프란츠는 알아차렸다.
“뒤에서 부추기다니…….”
최준호가 오는 걸 막은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초인으로, 프란츠가 은퇴한 이후 유럽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구 십대초인들이다.
그들의 존재로 인해 유럽 내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었고, 프란츠와 성녀가 포함된 독일과 이탈리아가 이를 견제하는 구도가 조성되었다.
특히 십대초인 출신이자 영국의 초인인 해리 칼슨은 프란츠와 앙숙으로 유명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희생 발생과 마물 사냥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 생각 했지만 그 마저도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불이 붙어버린 이상 우리가 그걸 억지로 꺼버릴 수 없다. 이대로 두는 수밖에.”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아요.”
한숨을 푹 내쉰 성녀는 조금 전, 이탈리아 초인 마테오 콜라치가 방문했던 사실을 알렸다.
올해 서른일곱인 그는 패기 넘치는 초인이자 알아주는 바람둥이로,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하여 명성을 떨치겠다는 야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10년 전부터 성녀에게 열렬한 구애를 보내오고 있었다.
“사냥에 성공하면 데이트를 하자고 하네요.”
“데이트 한 번 하려고 목숨을 버리는 건가. 멍청한 녀석!”
평소에는 천재에 가까운 두뇌가 여자만 얽히면 짐승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프란츠가 혀를 찼다.
마테오 콜라치는 천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실력자였지만 아직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하기에는 한참 일렀다.
아니, 그 전에 플러스 단계 마물에게 고전했던 것도 까먹은 게 분명했다.
가까스로 성공한 것으로 플러스 플러스 단계를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불과 한 단계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준호에게 받은 자료만 봐도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성녀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저는 사냥을 멈춰달라고 했어요.”
“멈추면 데이트라고 해주지 그랬냐?”
“그렇게도 말했지만 멋이 없다네요.”
“허허. 그놈의 멋은 무슨.”
“죄송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됐다, 이미 공명심이 머리에 가득한데 네가 말린다고 해도 멈춰질 리 없지. 미래 세대를 철저하게 보호한다고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되돌아올 줄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프란츠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들에게 닥친 어려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테오 콜라치와 만남 후, 성녀에게 최준호가 이탈리아로 출발하겠다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말 그대로 약속한 걸 이행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면 유럽에서는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할 기회가 사라지는 셈이었다.
유럽의 갈등을 이용한 이면의 노림수를 간파한 프란츠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 무식한 녀석이 이런 간교한 수를.”
“진심은 아닐 거예요. 우리가 이 기회를 뿌리치면 다음에 요청할 때는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겠죠.”
“그걸 노린 걸 테다. 네 기프트를 얻으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을 테니.”
“그럴까요? 신께서 내려주신 거라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을 텐데.”
“그 녀석은 평범한 관점에서 생각하면 안 돼.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얻어낸 게 있을 거다.”
요청한 것도 그들이고 거절한 것도 자신들이니 아주 고약한 상황이다.
무기한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말을 듣고 아니고는 최준호의 몫이다.
“녀석의 노림수대로 어울려줄 수밖에 없군.”
“네. 하지만 만약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확신을 담아 말한 프란츠는 성녀를 보며 웃었다.
프란츠는 알고 있다.
최준호는 플러스 플러스 마물을 사냥하고 싶어 하는 걸.
그러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최준호 측이다. 이 제안을 물리치면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단지 더 많은 걸 내줘야 할 뿐이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 등장한 녀석을 상대하길 가장 고대하는 건 저기 날뛰는 녀석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이 녀석이란 걸.”
“네.”
애초에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과연 최준호는 어떤 요구를 해올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