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드라쿨레아 뒤를 쫓으면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작정하고 도망치는 마물의 뒤를 쫓는 건 무리다.
본래 이 부분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마물은 망신창이가 될 때까지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들이받기 일쑤였고, 뒤늦게 겁에 질려서 도망치려 해도 부상이 큰 상대여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투뿔 정도 되면 사고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하는데, 녀석들은 자기가 불리하면 도망칠 지능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쫓아가서 제거해야 하는데 내 속도로 쫓을 수 없다.
[가자!]그나마 용용이가 있어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천년만년 의지할 수 없는 노릇이다.
포스 제련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걸 해결했지만 이 부분이 문제가 될 줄이야.
전이로도 쫓기 힘든데 이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하나가 해결되면 극복해야 할 게 하나씩 등장하는 기분이군.
원거리 공격의 부재에 저격을 구해 일일이 쫓지 않고 적을 죽일 수 있게 되었고, 포스 제련으로 투뿔 마물에 타격을 줄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도망가는 속도를 따라잡아야 할 필요성을 생기니까.
드레쿨레아를 쫓는 방식은 내가 뒤를 따르다가 거리가 벌어지면 용용이가 공간이동으로 좁히는 걸 반복했다.
공간이동이 자유자재인 용용이가 있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육지가 아닌 바다, 흑해였다.
[어?]“왜 그래?”
용용이의 이상 반응에 나도 의아함을 느꼈다.
[뭔가 시도하고 있어!]“시도?”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나도 기이한 힘의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동시에 빠르게 날아가던 드라쿨레아의 비행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곳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흑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 녀석이 사용하려는 게 대체 뭐란 말인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간 계열 능력이야!]“녀석 앞으로 이동 시켜줘.”
[알았어.]용용이가 나를 드라쿨레아 앞에 데려다 놓는 순간, 녀석 앞에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발생했다.
키에엑!
나를 본 녀석이 기겁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공간의 균열이 녀석을 집어 삼켜왔다. 나는 황급히 손을 뻗었으나 가죽 일부를 찢어내는데 그쳤을 뿐, 녀석은 공간 균열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걸 보고 놓쳤다고 단정 짓기 일렀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녀석의 존재감은 내가 취한 가죽 조각과 연결되어 있었다.
“간다.”
[응.]난 녀석의 흔적을 쫓아 곧장 전이를 시전했다. 공간 균열 너머로 이동한 나는 사방이 새까만 어둠에 깔린 공동에 도착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 아래에 위치한 공간인가? 여긴 어디지?
[나도 몰라. 파악해볼게. 처음 이동한 곳에서 멀지는 않아.]그렇다면 흑해 어딘가로군.
주위를 둘러본 나는 드라쿨레아의 기운을 감지했다. 저 너머에 있었다.
그런데.
“뭐 하는 거지?”
드라쿨레아의 생명 반응이 처음보다 미약했다. 부상이 심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건가? 그렇다기에는 충분히 잘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가 있다.
우선 이 공간도 이상했다.
전이가 정상적으로 발동하지 않았다. 만약 제대로 발동했다면 난 녀석 앞에 도착했을 것이다.
[익숙한 느낌이야. 근데 너무 희미해서 자세히 파악하기 힘들어.]용용이는 그 익숙한 무언가가 내 전이 결과를 뒤틀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로군.
난 공동 사이를 걸어갔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공간은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지만 앞으로 갈수록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저 앞에 드라쿨레아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감각에 걸려들지 않던 것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앞에 있는 존재감이 감지되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둘인데?
[둘이라고?]용용이 반문에 난 수긍했다. 하나는 드라쿨레아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뭔지 잘 모르겠다. 마물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좀 차분한 느낌인데. 뭔가 용용이랑 비슷한 거 같지만 너무 약했다.
마침내 통로 끝에 도달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또 다른 공동이었다.
그곳에는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드라쿨레아가 있었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날개로 몸을 감싼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응?”
드라쿨레아와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것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바위인 줄 알았다. 하지만 희미하게 발산되는 생기를 보면서 그것이 생명체임을 알아차렸다.
그 존재를 발견한 용용이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 이게 뭐야! 너, 너 누구야!]용용이의 외침에 드라쿨레아는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거대한 존재는 반응했다. 감겨있던 눈꺼풀을 연 존재의 눈동자는 금색을 띤 파충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동체를 살펴보니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드래곤?”
[인간이 이곳에 올 줄 몰랐군. 그것도 내 동족을 달고.]동족?
[얘 신수야!]용용이의 말에 확신을 얻게 되었다. 최소 200m는 넘어 보이는 동체는 신수라 보기에 적합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미약했다.
한 대 치면 죽을 거 같은데?
“신수가 왜 그렇게 골골대고 있지?”
[흐!]내 말에 드래곤의 입매가 말려 올라가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섬뜩한 살기로 바뀌어 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네놈이구나. 배신자를 처단하려던 내 계획을 망친 녀석이!]죽기 직전이지만 존재 자체가 주는 압박감은 강렬했다.
녀석은 종의 존재감으로 짓누르려했지만.
내게는 어설픈 압박일 뿐이다. 머리가 부서지면 다 죽는 법인데 신수라고 겁 먹을 이유가 없지.
난 녀석의 기세를 가볍게 튕겨냈다.
“귀찮게 앵앵거리고 있어.”
당장 머리를 부숴버릴 수 있지만 손을 쓰지 않는 건 골골대는 녀석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작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드라쿨레아도 가만히 있었고.
“근데 네가 말하는 배신자라는 건 뭐냐?”
[그 녀석만 아니었다면…….]내 말에 다시 분노를 표출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용용이가 황급히 말렸다.
[그만, 그만해! 너 그러다 소멸한다고!] [흐, 고맙군. 네 녀석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파멸을 면할 수 있었거늘.]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나한테 말해줘.] [특별할 거 없는 이야기다. 친구를 배신한 녀석과 배신당한 머저리 이야기지.]드래곤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과거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 *
마물의 등장 이후, 동유럽에서는 두 신수가 가까운 거리에서 존재를 형성하기 시작했단다. 둘은 오래 전부터 서로를 의식했고, 때로는 협력자로, 때로는 경쟁자로 여기면서 긴 세월을 함께했다. 그리고 마물의 등장 이후 형체를 갖추면서 협력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녀석과 나는 각자 영역을 구축했다. 인간의 시선 따위는 관심이 없었지. 우리만의 영지에서 방해를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것은 드래곤만의 착각이었다.
돌아온 것은 처절한 배신. 그 결과 드래곤은 모든 정수를 잃고 이곳으로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신수가 정수를 잃는다는 건 신수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드래곤은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을 분노했다.
[녀석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걸 불태워버릴 생각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럴 힘이 없지. 그래서 나를 대신해서 모든 걸 불태워버릴 도구를 만들었다.]그렇게 탄생한 것이 드라쿨레아였다. 드래곤은 마물인 드라쿨레아가 나서면 당사자인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자신의 영지가 불타오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라 확신했다.
루마니아 중부, 북부, 동부가 불타오를 동안 모습을 드러낸 적 없으니 예상이 적중했다.
그러고 보니 신수는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
내 의문에 드래곤의 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흐, 궁금한가보군. 신수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것도 몰랐나? 신수는 원래 세계에…….] [잠깐!]드래곤이 말을 하려던 걸 용용이가 가로막았다. 상당히 다급해보이는데 뭔가 제약이 있는 건가?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드래곤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정보 같았는데 아쉽게 되었군.
녀석이 고집을 부려서 더 말하길 바랐지만 용용이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더 말도 안 했다.
아쉽게 되었군.
“그래서, 복수는 실패한 거 같은데.”
[인간, 너만 아니었으면 내 계획은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긴.”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니 이제 물러나라.]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는 드래곤.
난 녀석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신의 구질구질한 과거 이야기를 하면 내가 공감하면서 물러날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왜?”
내 생각을 밝혔을 뿐인데 살벌한 살기가 전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물러날 이유가 없다. 다 잡은 투뿔 마물을 놓아줄 이유가 없는데?
[그냥 물러나지 않겠다는 건가. 그럼 이건 어떤가. 네게 대가를 줄 수 있다.]“뭘 줄 건데?”
[뭘 원하지?]난 드라쿨레아를 가리켰다.
“쟤 사체 정도면 좋겠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저거 아니면 싫은데.”
[다른 걸 주겠다.]“그건 됐고. 저 녀석도 갖고 네 눈알도 탐이 나는데.”
[어? 잠깐!]어차피 신수라고 해봤자 껍데기만 남은 녀석이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 드래곤은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날 쫓는 눈동자에 감정만 담겼을 뿐.
뒤에서 용용이가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손을 썼다.
콰직!
드래곤의 머리가 썩은 나뭇가지처럼 부서졌다. 금색 눈동자에 빛이 사라지면서 그대로 눈꺼풀이 닫혔다.
곧 죽을 송장이 맞았군. 간신히 숨만 붙은 녀석이 잘난 척 떠들기는.
난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반응하려는 드라쿨레아에게 쇄도했다. 드래곤의 통제를 받고 있어서인지 찰나지간 렉이 걸린 것처럼 반응하지 못했고, 기뢰에 포스 제련을 발동한 내 공격이 연이어 머리를 내리치자 뇌가 수박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키에에엑…….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드라쿨레아 심장에 손을 꽂아 넣은 뒤 피를 맛봤다.
체력을 빠르게 회복하는 [흡혈]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초음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쓰레기였다. 흡혈은 의미가 없고, 초음파는 잠시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내가 들을 수 없는 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것 같지 않았다.
“멍청한 녀석 때문에 오히려 쉬워졌어.”
[…….]“왜?”
[꼭 죽여야 했어?]“안 죽이면? 복수에 눈에 뒤집힌 녀석이 설득돼서 착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냐?”
[그건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래도 좀 더 얘기해서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안 나왔을 거다.”
드래곤의 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녀석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드라쿨레아의 상태에 집중했다. 그리고 기이한 기류가 일어나면서 그것이 드라쿨레아를 회복시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서로 적으로 만난 사이에 이 정도면 대화도 실컷 나눈 셈이다. 드래곤은 말장난으로 틈을 노렸고, 난 그걸 간파하고 녀석에게 최후를 선사했을 뿐이다.
“이제 나가자.”
[…….]“삐졌냐?”
[아니. 그런 거 아냐.]말은 그래도 생각이 많아 보이는 눈치였다. 뭐,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건 아니지.
이곳은 비틀린 공간이니 드래곤이 죽은 이상 곧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럼 드라쿨레아 사체는 갖고 나가면 되긴 하는데.
“저것도 탐이 나는데.”
난 드래곤의 사체에 시선을 고정했다. 원래부터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들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을 대자, 드래곤의 사체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 부서지고 남은 곳에는 작은 촛불 크기의 빛 한 점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마저도 바람에 직격한 것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딱 제 형태를 갖출 힘만 남기고 있었군. 녀석이 얼마나 복수에 미쳐있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누군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애써서 찾지 않기로 했다. 천둥새처럼 야망에 불타는 녀석이면 언젠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자.”
[알았어.]난 드라쿨레아 사체를 챙겨 들고 용용이와 함께 비틀린 공간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