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오.”
아메드 국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잘 싸웠다.
상대가 투뿔이 되기 직전의 마물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적당히 눈 감고 누릴 걸 누리면 부귀영화를 만끽할 텐데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런 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던가? 난 위선을 떠는 것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자기 신념을 내세우는 걸 좋아한다.
저번 생에 내 손에 죽었던 정다현을 키워준 것도 그런 의미가 있고.
아무튼.
내 친우를 자처하는 아메드 국왕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거 같다.
[얘가 전력을 다 안 한 거 같은데?]근데 용용이는 아메드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은 걸로 치부했다.
마물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긴 했다. 근데 그건 이곳 사막에서 왕처럼 군림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걸 감안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 농담하는 거야?]뭔 소리 하는 거냐.
난 영문을 알 수 없는 용용이의 말에 의아함을 드러내자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이잖아, 너!]나? 갑자기 왜?
[저 녀석이 널 보더니 너한테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고!]마물이 그렇게 주변을 신경 쓴다고? 미처 그건 모르고 있었다.
플러스 단계로 생각했던 녀석이 투뿔 직전이라서 꽤 놀랐거든.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농락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식일 줄은 몰랐다.
[너답지 않아.]나답지는 않기는. 날 신경 쓰느라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의식 과잉이지.
나다우니까 이렇게 처리하려고 온 거 아니겠냐.
그나저나 이거 꽤 불편한데.
나는 사막의 악몽이라 불리는 녀석을 따라 땅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전신을 얇게 퍼뜨린 포스를 둘러 모래로부터 보호하고 있는데 녀석이 이동하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속도 때문이 아니다.
날 보고도 멀어지려하는 행동 때문이다.
보통 마물은 날 보면 어떻게든 상대하려고 하던데 녀석은 다르다.
왜 그런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한 가지 가정이 머릿속을 그치고 지나갔다.
그때 용용이가 내게 말했다.
[공간 이동 쓸까?]아니, 이대로 위치만 파악해두고 놔둬보자.
[왜?]저 녀석이 도망치듯 이동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막에 놓아둔 가족들 때문일 수도 있고, 숨겨둔 보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투뿔이 되기 직전이니 투뿔이 되어 날 상대하려는 이유일 수도 있고.
날 의식했다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 그럼……?]어떤 이유든 상관없다. 녀석이 날 떨쳐냈다고 생각하게끔 두고 본 뒤 현장을 덮치면 좋을 것 같은데.
[와, 그 사이에 그걸 생각했다고?]원래 상대의 약점을 유추하고 간파하는 건 내 주특기다. 상대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수고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점점 네가 무서워지는 거 알아?]무섭기는. 친구일 때 나처럼 상냥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침묵하는 용용이, 나도 내 실수를 깨달았다.
음, 내가 말했지만 상냥한 건 아닌 거 같다. 아무래도 실언을 한 거 같군.
[제발 선은 넘지 말자고!]됐고, 녀석이나 쫓자.
*
* *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광활한 사막에서 태어나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였던 샌드웜은 혹독한 사막 환경에서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여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무수히 많던 경쟁자는 모조리 먹이로 뱃속에 들어갔고, 경쟁이 될 수 있던 생명체도, 위협을 가할 수 있던 생명체도 모조리 말살했다.
이 사막에서 샌드웜은 거칠 것이 없는 제왕이었다. 사막 전체를 장악한 샌드웜에게 인간이라는 마르지 않는 먹이가 존재했고, 가끔씩 등장하는 마물들을 잡아먹으면서 힘을 키워나갔다.
외부에서 오는 마물은 경쟁이 되지 못했다. 전부 패배자였고, 그 녀석들은 훌륭한 먹이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샌드웜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벽을 넘으려면 오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단계를 지나면 완전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샌드웜은 차근차근 준비를 진행해나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현실과, 완전해질 수 있는 이상향을 놓고 갈팡질팡했다.
사막은 자신의 보금자리이자 영지이며 사냥터이자 음식 창고였다.
그 인간만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르르르!
갑작스러운 한 인간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재난이었다.
그 인간은 자신을 죽일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소멸할 수 있다.
그때서야 잊고 있던 생존 본능과 힘에 대한 갈망이 깨어났다.
샌드웜은 고민하지 않고 도망쳤다. 인간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자신을 쫓을 수 없다는 확신이 존재했다.
그리고 터전에 준비해둔 것들을 흡수하여 완전한 존재로 진화할 생각이었다.
완전체가 된 자신이라면 그 인간을 죽이고 그 누가 오더라도 제거할 수 있으리라.
마침내 샌드웜이 도착한 곳은 사막 정중앙에 위치한 은신처였다. 샌드웜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하에 존재하던 이 공간은 은신처이자 창고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전리품이 존재했다.
한때 자신보다 월등히 강했던 이전 사막의 주인부터 시작해서 정점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가장 큰 영역을 지배하던 지역 강자 등등, 무수히 많은 마물들이 샌드웜의 먹이로 사라졌지만 완전체가 되기 위한 재료로 남아있기도 했다.
그르르르!
은신처에 도착한 샌드웜은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것들을 취하면 자신은 비로소 완전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로막는 모든 걸 잡아먹을 것이다.
샌드웜이 앞으로 나설 때였다.
“오! 꽤 많이 모았네?”
밝은 감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한 인간이었다.
*
* *
역시, 예상대로였다.
가설 중 하나였지만 내심 무게를 두던 예상이 적중했다.
그리고 나한테도 가장 이익인 방향이었고.
마물은 기본적으로 공격본능과 생존본능이 발달했다. 그중 대부분 공격본능이 더 발달했는데, 밑바닥에서 올라온 녀석들은 그에 못지않게 생존본능도 발달해 있다.
멍멍이도 그런 케이스다.
그동안 사막의 악몽이니 뭐니 하면서 제 집처럼 활보했다고 하던데 뒷구멍으로 어지간히 긁어 모은 걸 보면 잘 나가기 전에 여기저기 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각종 마물의 부산물부터 시작해서 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래 된 유물들까지.
여기에서 왕 노릇하면서 이것저것 많이도 주워왔군.
[근데 왜 네가 좋아하는 거야?]용용이는 눈치도 없이 그걸 물어본다.
그야 이제 주인이 사라질 테니 여기 모아놓은 것들은 다 내게 될 예정이잖아?
[아, 그런 거였어? 주인이 사라지면 네 거가 되는 거구나!]주인이 사라진 상태에서 습득한다면 그건 내 것이 되니까. 특히 굴러다니는 것 중 몇몇 마물의 심장은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식 한 번 호화롭게 남겨두는군.
그르르르르!
녀석은 날 보면서 살기를 폭발시켰다. 그동안 사막을 지배한 녀석답게 몸 길이는 20m를 훌쩍 넘겼고 발산하는 기세도 여느 플러스 단계 마물보다 강력했다.
멍멍이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군. 멍멍이가 아직 갈 길이 멀다 싶었다.
돌아가면 더 혹독하게 훈련시켜서 투뿔을 제외한 마물들은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응? 무슨 소리냐, 용용아?
[이대로 잡으려고?]아직 용용이가 무슨 의미로 말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내 의아한 표정에 용용이는 자신이 생각한 걸 얘기했다.
[아, 난 너라면 투뿔 단계로 진화시켜서 한 번 붙어볼 줄 알았거든.]“아아.”
그제야 용용이 말을 이해했다.
확실히, 내 실전 경험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투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성장하도록 두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물론 생각만 그렇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법이지.
“근데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거 아니냐? 친구라며?”
[모르다니? 나 너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잖아!]“잘 모르는 게 맞네.”
날 잘 알고 있으면 이 상황에서 마물이 성장하도록 둘 거라 생각하나?
당연히 아니지.
“뭐든 상대할 때 가장 좋은 타이밍이 있어.”
그중 첫 번째는 방심했을 때고, 두 번째는 혼란에 빠졌을 때, 마지막은 흥분했을 때다.
지금 저 마물은 투뿔이 될 생각에 들떴다가 나로 인해 시궁창에 처박혔다. 희망이 짓밟힌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혼란하니 완벽하게 마무리할 타이밍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장할 여지를 준다고?
“상대 실력 보겠다고 양보하는 건 멍청한 녀석들이나 하는 짓이지.”
[너도 가끔 그러잖아.]“그래서 내가 졌냐?”
[…….]반박하지 못할 거면서 궁시렁거리기는.
난 용용이를 일별한 뒤 사막의 악몽을 바라봤다. 이제 악몽을 끝낼 때다.
“악몽은 무슨, 그냥 벌레지.”
*
* *
최준호가 사막의 악몽과 함께 사라졌다. 잠깐이지만 그 전까지 치열하게 맞붙었던 것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드는 멍하니 사막을 바라봤다. 몇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이 자리한 사막은 낮의 뜨거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 걸 얼려버릴 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력해졌던가. 그걸 거슬러서도, 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과연 최준호는? 저 자연을 넘어서는 게 가능할까.
“나시르.”
“예, 국왕 전하.”
“내 친우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 생각하나?”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저 사막 한복판으로 들어간 걸 봤으면서도?”
“예. 달리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초인이 아닙니다. 헤드 브레이커는 그 어떤 순간에도 가장 확실하게 적의 머리를 부숴버립니다.”
확신 어린 나시르의 말에 아메드가 피식 웃었다. 그가 조사해온 보고서에 적은 의견과 동일한 말이었던 것이다.
최준호는 여태까지 불가능이라 여겼던 것들을 해결했다. 최연소 초인, 플러스 단계 마물 단독 사냥,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 사냥까지.
당장 세계를 집어삼킬 것처럼 폭주하던 리그의 기세를 한 풀 꺾이게 만든 것도 최준호 효과였다.
“나와 생각이 같군. 아무리 생각해도 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웃기지 않나? 이 사막에서 녀석은 신으로 불렸던 녀석이야. 그런 신에 버금가는 존재를 상대하면서 무사할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
“그 정도로 대단한 강자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국왕 전하의 친우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자가 국왕 전하의 친우일 리 없지 않습니까.”
“빈말이라도 듣기 좋군. 상대는 여전히 친우라는 말에 낯설어하지만. 앞으로 극복해나가야 할 일이겠지.”
아메드는 다시 사막에 시선을 옮겼다.
“일주일간 겪은 강함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지. 아무리 강한 상대라고 해도 그를 상대하게 될 자가 불쌍해지더군. 심지어 사막의 악몽마저도.”
“그건…….”
아무리 그래도 수십 년 동안 아라비아 반도를 두려움에 몰아넣은 상대였다. 헤드 브레이커를 상대하는 걸로 그 마물이 불쌍해질 정도라고? 나시르는 최준호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주군의 평가였다. 최준호의 비인간적인 강함은 사막의 악몽도 충분히 사냥할 거란 믿음이 존재했다.
그때였다.
“저건…….”
그들 앞에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산책을 다녀온 것처럼 나올 때와 똑같은 최준호의 옷차림과.
쿠웅!
20m가 넘는 거대한 마물의 사체였다. 그걸 보는 아메드의 나시르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악몽이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겉모습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지만 최준호가 뒤쫓아 간 것, 얼핏 봤던 모습을 잊을 리 없다.
저건 틀림없는 사막의 악몽이다. 수십 년 동안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두렵게 만든 마물.
“친우여, 이건…….”
“여기에서 신을 사칭하던 녀석입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사체를 두드린 최준호가 웃어 보였다.
아메드의 시선이 사막의 악몽 사체에 고정되었다. 죽어 있음에도 전신을 휘어감은 떨림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친우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선물……?”
“이걸 우리나라 말로 친구비라고 하더군요.”
“친구비.”
친우에게 이토록 통이 큰 선물이라니. 대한민국을 작지만 강한 지역강국 정도로 생각했던 아메드는 상상 이상으로 훌륭한 문화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맙네, 친우의 친구비를 감사히 받지.”
“만족했으면 됐습니다.”
“그럼 이제.”
아메드가 최준호를 보며 웃었다.
“내가 친구비를 줘야겠어. 기대해도 좋네, 친우여.”
수십 년 넘게 아라비아 반도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