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만독불침, 만득이는 의기양양했다.
자신은 최준호 기프트 자아들의 최고참으로, 한때 그 프라이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치솟았던 때가 있었다.
주인도 그걸 알아주고 대우해주길 바랐으나, 첫 대면에서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걸 깨달았다.
말 그대로 된통 깨졌다. 주인은 기프트의 격 같은 건 대우해주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만득이는 우울했다. 이대로 주인에게 찬밥 대우나 받으면서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하나 싶었다.
그때 등장한 게 광심이었다. 초창기 자신을 보는 것처럼 의기양양하다가 주인에게 된통 당하던 녀석.
비슷한 신세의 녀석과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서 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다 등장한 제련이는 만득이로 하여금 눈을 뜨게 만들었다.
주인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그토록 증오하는 대상(혈종)의 능력을 이용해서 기프트를 갈취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비롯하여 광심이와 제련이가 들어왔다.
이 숫자는 앞으로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평등한 관계일까.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철저한 실력주의자로 위아래가 없는 모습을 보여왔다.
자신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고 선배 대우를 받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력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주인에게 도움이 될 방안을 모색했다. 그동안은 꿈도 희망도 없었다면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성과를 거둔 대상에게 의외로 관대했다. 주 168시간 일을 시키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고 구박하지도 않았다.
만득이는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고, 주인에게 까부는 녀석(해리 칼슨)에게 기뢰 독을 투여했다.
그렇게 얻어낸 짧은 휴식.
말 그대로 짧은 휴식이지만 만득이는 광심이와 제련이의 부러운 눈을 마주하면서 세상을 가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남들이 일할 때 자신은 쉴 수 있다는 것.
그 달콤함을 느껴본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만득이는 다시 한 번 준비해둔 수로 주인이 까다로운 적(드라쿨레아)을 상대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주인의 감탄에 이어질 포상을 기대했다.
그런데 포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사우디에서도, 서울에서도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만득이는 성과에 대한 보답을 요구했다. 자신이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돌아온 목소리는 섬뜩했다.
“제정신이냐?”
잠시 가출했던 정신이 되돌아 온 만득이는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나댔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였다.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 텐데 나한테 보답을 요구해?”
우웅!
만득이는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한 건 그동안 해온 고생을 주인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일 뿐, 타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이러다 좀 더 하면 내 위에 올라서서 명령까지 하겠다?”
절대 그런 의도는 없다.
만득이는 놀라 외쳤지만 주인의 서슬 퍼런 기세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만득이의 선택은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더 나은 성과로 주인에게 인정을 받겠다고, 성과는 오직 주인이 챙겨주는 거라 말했다.
자신은 그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기가 완전히 꺾인 만득이는 주인의 처분만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인이 말했다.
“요즘 네가 잘하고 있는 게 맞아.”
우웅!
갑자기 훅 들어온 목소리에 만득이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주인은 자신의 고생을 잊지 않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선을 유지해야지. 네가 처음이니 이번은 이해해주겠어.”
주인의 그 말이 만득이는 미치도록 고마웠다. 자신이 실수했지만 열심히 한 건 잊지 않고 있었다.
“광심이, 제련이 나와.”
돌연 주인은 광심이와 제련이를 불렀다. 설마 둘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짚고 혼내려고 그러는 건가?
잔뜩 긴장했던 만득이는 주인의 입에서 나올 말을 주목했다.
“너희도 앞으로 만득이를 본받도록 해.”
우웅?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만득이가 의문 부호를 그렸다. 주인은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잘했던 것을 열거했다. 기프트 본연의 능력에 만족하지 않고 발전을 꾀하여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 그리고 꼼꼼하게 기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 등등.
주인은 광심이와 제련이 앞에서 자신의 면을 세워주었다. 그것이 의기소침했던 만득이의 어깨를 펼 수 있게 만들었다.
만득이는 결심했다. 앞으로 주인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제1의 기프트 자아로서 주인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말이다.
*
* *
성과를 요구하는 만득이 버릇을 어떻게 고칠까 하다가 녀석이 잘했던 것을 생각하고는 좋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혼낸 뒤에 기를 살려주는 걸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이 방식이 맞는 듯했다. 만득이는 감격해서 의욕을 활활 불태웠고, 광심이나 제련이는 앞서 나가는 선배의 뒤를 쫓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시기가 큰 차이 안 나는 광심이의 집념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주면 나도 더 확장된 형태의 기프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쁘지 않군. 내가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남이 노력한 성과물을 낼름하는 것도 좋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건 날로 먹는 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노력이 깃든 것은 뿌듯함을 동반하지만 가장 효율이 좋은 건 남이 노력한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이다.
내 건 내 거고, 기프트들이 노력한 것도 내 거다.
[그거 착취 아냐?]착취라니, 난 그 대가로 포상을 주는데.
[고작 몇 시간 쉬게 해주는 걸?]만득이는 만족하던데? 포상 받는 녀석이 만족하면 그만 아니냐.
[…넌 진짜 악마야.]처음부터 퍼주면 버르장머리만 나빠진다. 작은 것도 감사할 수 있게 혹독하게 굴리면서 하나씩 줘야지.
만득이도 결국 행복해졌고, 난 성과를 얻어냈고.
모두에게 좋은 해피엔딩이 이런 거다.
[와…….]난 용용이가 감탄하는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사무실 내 훈련실로 향했다.
석유 관련 회사는 김윤기가 전담하여 정부와 조율하면서 빠른 속도로 추진하는 중이었다.
대한민국이 석유를 제대로 수입하지 못하면서 관련 인프라를 모두 놓아버린 상태지만 남아있는 게 있어서 복구에 있었다.
특히 정유 운반선 같은 경우는 벌써 때 빼고 광을 내고 있어서 겉 보기에는 멀쩡했다.
내가 신경 쓸 것 없이 알아서 잘 돌아가는군.
나는 훈련실에서 잔뜩 지친 정주호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버서커를 볼 수 있었다.
정주호 초인 만들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출장을 다녀온 사이 정주호의 수준은 몇 단계 높아져 있었다.
“열심히 하셨네요?”
“그럼 너 없다고 내가 놀고 있을 줄 알았던 거냐?”
“생각보다 성과가 좋아 보여서요.”
“좋기는, 매일매일 죽을 위기를 넘기고 있다.”
“무사한 게 훌륭한 결과인 겁니다.”
물론 이게 정주호도 열심히 한 것도 있겠지만 버서커가 잘 지도한 것도 있겠지.
“네가 내게 가르친 대로 했다.”
씩 웃으면서 말하니, 정주호가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며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버서커 저 양반 가르칠 때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가르쳤냐?”
“그랬죠.”
“어?”
“그랬는데요.”
“진짜?”
“예.”
“…….”
내 대답에 정주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몇 번 말해도 믿지 않더군.”
버서커는 그걸 의기양양하게 대답하고.
뭐 잘났다고 그러는 건지.
굳이 꼽자면 버서커는 실제로 몇 번 죽기도 했다. 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았지.
어떻게 보면 내가 과거로 돌아와 운명이 가장 많이 바뀐 사람 중 하나가 버서커기도 하다.
아무래도 녀석이 내가 가르쳐준 걸 잘 기억해뒀다가 정주호에게 잘 접목시켰나보다. 하긴, 모든 가르침은 머릿속에 먼저 넣어두고 그다음 몸에 강제로 새겨두는 게 최고긴 하다.
“나보다 잘 가르치는 거 같네?”
“스승이 훌륭한 덕분이지.”
“믿고 맡겨도 되겠어.”
“이번 교육 과정이 내게 확신을 심어줬다.
“…지금 죽을 뻔한 사람 앞에 두고 칭찬 주고받는 거?”
정주호가 불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학생이 힘들었다고 해도 결과만 좋으면 그만 아닌가. 이렇게 말하니 무슨 대학입시학원 같군.
이렇게 하니 괜찮은 레벨 7 각성자들을 모아서 초인 육성 시스템을 구축해볼까?
“참고로 저 녀석이 맡으면 내가 했던 것보다 세 배 이상은 과격하지.”
“…실화냐. 그건 죽으라고 떠미는 거잖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을 건 무궁무진하지. 별의 순간을 잡을 수도 있고.”
“그냥 죽여라, 죽여.”
“안심해도 좋다. 초인에 근접한 각성자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아닌가, 저 녀석은 섬세하지 못하니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겠어. 신성그룹에 특급 회복제를 받아둬야겠군.”
어째 버서커와 정주호의 말이 따로 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먼저 지쳐버린 건 정주호였다.
“이젠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냐.”
“걱정마라. 죽기 전에 초인의 맛을 볼 수 있을 테니.”
“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할 거 같으니.”
포기한 정주호의 태도는 훌륭했다. 원래 복잡한 생각을 비워두고 지도하는 대로 따라오면 실력은 자연스럽게 쌓인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이미 머릿속에 새겨진 상태기 때문이지. 그걸 몸에 새길 때 유도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경지에 오른다.
난 실의에 빠진 정주호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말했다.
“올해 내로 초인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못되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내가 되게 만들 거니까.
내 확언에 정주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만족스러운 정주호 상태 체크를 마친 뒤 나는 졸라맨을 맞이했다.
“준호! 졸라 고마워!”
날 보자마자 대뜸 고맙다고 하는 이유는 드라쿨레아 사체를 놓고 미국에 판매 승인이 떨어져서다.
천마갑귀 때 건져온 부위가 워낙 적어 판매하지 못했지만 드라쿨레아는 온전히 가져오면서 일정 부분 판매가 가능했던 것.
이를 놓고 정부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섰기에 협상은 수월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거니까. 약속한 걸 지켰을 뿐인데 왜 저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약속한 거 이행하는 거야.”
“그래도 졸라 고마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난 딱히 어려운지 모르겠던데?
대수롭지 않았지만 졸라맨이 굉장히 많이 고마워하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졸라맨은 나에 대한 고마움을 정보 보따리 푸는 거로 갚기 시작했다.
세계 패권을 놓았다고 해도 미국의 정보력은 여전히 최고였다.
“리그는 헬 마스터가 일본 실험체를 손에 넣으면서 졸라 강해졌다고 해! 준호도 조심해! 헬 마스터의 기프트는 졸라 위험해!”
“그래서 만나면 도망치라고?”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니 만났을 때가 궁금한데.”
“노! 그럼 내가 졸라 부추긴 것처럼 보이잖아!”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난 녀석의 속내를 가늠하기 위해 바라봤지만 순진무구한 빛을 띠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교묘한 녀석 같으니라고.
근데 그런 것치고 리그 소식이 뜸한 느낌인 거 같은데.
“아마 준호한테 눈에 안 띄려고 졸라 필사적이라 그럴 걸?”
“그건 왜?”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보니 녀석이 오히려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잡는 졸라 괴물하고 척 졌잖아! 당연히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그것도 그렇군. 졸라맨 말로는 리그가 그래서 동아시아 쪽은 얼씬도 하지 않고 미국과 남미를 공략하다가 내가 한국으로 오고 나서야 유럽에 암약한단다.
내가 없는 곳에서만 날뛰고 있군.
“리그는 원래 그런 녀석들이니 무시해도 돼. 대신 내가 준호를 위해 졸라 좋은 선물을 준비해왔어.”
“그렇게 자신하는 거면 기대해도 되는 거냐?”
“졸라 기대해도 돼!”
이렇게 말하니 괜히 기대가 되었다. 졸라맨이 어설픈 걸 가지고 선물이라고 할 리 없을 텐데 말이지.
“뭔데?”
“이번에 석유를 들여온다고 했잖아.”
“그랬지.”
“미국은 석유를 자급하고 있는 국가야. 노하우가 상당하고.”
그래서 뭐 줄 수 있는 거라도 있나? 졸라맨은 내게 줄 게 물건이 아니라 정보라고 말했다.
“인프라 확보를 위해 졸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으로 알고 있어. 근데 그걸 알아야 해!”
“뭘?”
“준호가 전부 다 하려고 해도 일부분은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거. 특히 지방은 그럴 수밖에 없잖아.”
그거야 국가가 통제력을 강화한다고 해도 행정력을 전체에 완벽하게 끼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미국처럼 주 정부가 독자적으로 행동하거나 자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면 쉽지 않긴 하다.
실제로 같은 국가지만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해서 다른 국가처럼 따로 노는 곳도 허다하다.
그걸 잘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대단하긴 하지.
“그래서?”
“그 지방 인프라에 관여하는 이들 중 빌런들이 졸라 많아! 그것도 완전히 세탁된 빌런들!”
졸라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저번에 양지에 나온 빌런들을 본 적 있어서인지 말이 와닿았다.
그 빌런 녀석들이 내 사업에 관여할 거라고? 무슨 수로?
“자세히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