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제임스 리드가 말하는 건 미국의 사례였다. 말 그대로 마물의 격변기 당시 미국에서 얻었던 값비싼 교훈.
마물의 등장 이후, 거대한 영토를 보유한 국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면으로 보유했던 영토를 점으로 사수해야 했고, 강과 호수, 산과 숲, 늪지와 사막 같은 마물이 서식하기 좋은 곳은 사실상 손을 놓아야 했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토의 90%가 넘는 곳을 손에서 놓게 되었다. 선택과 집중의 면에서 당연하지만 거대한 영토에서 흩어져 있는 도시에 대한 장악력은 약해지고 이는 각성자들의 영향력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특히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미국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초창기 마물의 심장이 본격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전, 석유는 인류에게 있어 생존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인 미국은 이 모든 걸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부는 알면서도 범죄를 졸라 많이 저지른 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 지금 생각하면 졸라 최악의 판단이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것은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진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닐 거라 말했다.
확실히, 어떤 말인지 알 것 같다.
“그걸 짚어주는 이유는?”
“준호가 빌런을 졸라 싫어하니까!”
“그게 끝?”
“준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 나중에 빌런이 연관된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서웠고. 내가 알려주면 어떤 방법을 찾아낼 거잖아?”
솔직한 말이로군. 나도 제임스 리드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말이 아닌 호의에서 해주는 말임을 알았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머리는 있지.
“어떻게 할 거야?”
“지켜봐야지.”
“진짜? 그게 끝?”
“그럼 다짜고짜 달려가서 다 죽일 줄 알았냐.”
내가 예전의 헤드 브레이커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젠 죽일 놈과 아닌 놈을 구분할 줄 안다.
물론, 빌런이면 전부 가야지.
“개과천선하면 빌런이 아니기도 하고.”
“…….”
“왜?”
“주, 준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어서.”
당장 나만 해도 개과천선 한 전직 빌런인데 뭘 그러시나. 난 빌런도 빌런이지만 과거를 반성하고 착하게 살겠다는 빌런에게까지 야박하게 굴지 않는다.
단지 그 착하다는 기준이 좀 높지만.
[지금 넌 착하다는 이야기야?]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전혀 아니거든!]일단 용용이는 기준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 사람들은 날 인정하고 있으니까.
[대체 누가 인정하고 있는 건데?]너 말고 대부분의 인간이.
[아니거든!]난 용용이의 공허한 외침을 못 들은 척 흘려내고는 졸라맨을 바라봤다.
“무고한 사람은 안 죽일 거니 걱정 마.”
“뭐야, 괜히 졸라 긴장했잖아!”
“왜 긴장해?”
“난 준호가 당장 다 죽이겠다고 할 줄 알았어. 나 때문에 졸라 학살이 벌어지면 마음 아프잖아.”
“…그 전에 네놈이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게 돼서 유익하긴 한데.”
“힉!”
내 눈과 마주친 녀석이 기겁한다. 날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데 인식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녀석인데 뭘.
대신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좀 굴려줘야겠다.
“훈련실로 와. 실력 점검 좀 하자.”
“아, 아니. 난 미국 소속 초인인데?”
“그래서 강해질 기회를 거절한다고?”
“지금 행동하는 거 보면 졸라 화풀이 당할 거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졸라맨을 데리고 훈련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비명소리가 감미롭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졸라맨이 건넨 정보에 대해 물어볼 사람은 가까이 있었다. 한때 각성자 조직의 핵심이던 국가수호국장이 내 옆에 있는데 말이지.
난 졸라맨이 당할 때 즐거운 표정을 짓던 정주호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비슷한 법이다. 지방은 특히 그 빈도가 심하지.”
정주호는 순순히 수긍했다. 마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지방자치가 실현되면서 지방은 공무원과 빌런의 경계가 모호한 각성자들 천국이 되었다고 한다.
애매한 녀석들이라면 사실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건데.
다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가만히 두고 보고 있던 거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정주호가 반대부터 하고 나섰다.
“그 녀석들을 전부 처리하겠다고 생각하는 거면 말리고 싶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왜 불가능하죠?”
“그럼 지방 치안이 붕괴하니까.”
정주호가 말하길, 그들은 필요악이라고 한다. 마물의 등장 이후, 도시국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도시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가장 먼저 도시로 모여드는 것이 젊은 층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외된 지방은 공무원 헌터인지 빌런인지 경계가 모호한 이들이 없으면 치안이 유지가 되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
“그래도 처리하고 싶냐?”
“많이 과장된 거 같은데요.”
“뭐, 그렇긴 하지.”
정주호도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적절한 균형이 이루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했다.
“제거할 생각이냐?”
“빌런이 아니면 놔둘 겁니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는 법이니까.”
세상에 무수히 많은 개과천선 중 내 개과천선이 가장 크다는 걸 나도 안다.
그 과거를 말끔하게 떨쳐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고.
“석유 사업에 그런 녀석들이 참여한다고 해서요.”
“아아, 그게 또 그렇게 얽히는군. 근데 사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거 골치가 아픈데.”
제임스 리드도 그렇고 정주호도 그렇고. 일종의 필요악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냐고?
당연히 생각이야 가능하다.
하지만 빌런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있냐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내 눈에 들어온 걸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
“국가수호국에 있을 때 봤던 정보가 생각나네요.”
“뭐가?”
“빌런을 체포하면 교화 비율이 지방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거요.”
그게 진짜 정신을 차려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봐주고 용인해줘서 가능한 일이었던 거다.
당시에 내가 그 통계에 신경 쓰지 않았던 건 빌런 교화보다 체포에 더 집중했던 것도 있고, 나한테 체포된 녀석은 두 번 다시 빌런 짓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난 나 때문에 수도권 빌런 교화 비율이 낮은 건 줄 알았다.
얼핏 보고 지나간 정보들이 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는군.
“걱정하지 마세요. 다 처리하려는 건 아니니까. 보고 나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할 겁니다.”
“그게 더 무섭거든?”
정주호는 질색하면서 내게 멀어지려고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이 부분에 대한 것으로 가득했다.
역시 직접 봐야겠지.
*
* *
내가 가보려고 하는 곳은 군산이었다. 각성자 세뇌 사태 당시 강우태가 군산을 통해 중국으로 도망치려고 했는데, 앞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가 들어오면 요충지가 될 예정이었다.
부산도 그중 하나지만 여긴 대도시에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라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한 곳이 군산이었다. 여기도 꽤 큰 도시인데 빌런 교화 비율이 높고, 애매모호한 경계의 각성자들 숫자가 꽤 많이 존재했다.
다만 군산으로 향하기 전 나는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예전에는 내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몰라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얼굴도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
옆에서 관찰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날 알아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진세정하고 상담을 해야 하나?
맡기기만 하면 제대로 이미지 변신을 시켜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가벼운 산책 개념이라 이런 걸로 귀찮게 하고 싶진 않은데.
평소에 나는 진세정의 성화로 인해 머리를 빗어 넘기고 최대한 깔끔하게 다니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움직임이 편하고 격식도 갖출 수 있는 기능성 슈트를 애용했고. 그런데 이게 나를 상징하는 모습이 되어서 정체를 들킬 확률이 높았다.
고민하던 내게 용용이가 말했다.
[앞머리를 내리고 안경을 써봐.]손해 볼 건 없는지라 용용이 말에 머리를 내리고 안경을 스니 이미지가 바뀌긴 했다.
음, 내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사람 하나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순한 인상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옷도 흰 티에 청바지 입으면 사람들이 몰라 볼 걸?]용용이 말을 따라서 해보니 평소의 나와 사뭇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시내에 나가면 10분 동안 10명 이상 만날 수 있는 스타일인데?
용용이 네가 언제부터 이런 패션 센스가 있던 거냐?
내 감탄에 녀석의 콧대가 하늘로 승천했다.
[신수의 눈썰미를 무시하지 말라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런 것도 가능해!]으스대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칭찬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용이 말대로 스타일링을 바꾼 것만으로 처음 본 사람은 모르겠다 싶었다.
각성자라기보다 평범한 취업 준비생처럼 보인다.
이 정도면 괜찮군.
“그럼 가볼까.”
나는 즉시 군산으로 향했다. 멍멍이를 데리고 갈까 싶었지만, 이번에는 내 정체를 완전히 감추는 게 좋겠다 싶어서 나 혼자만 갔다.
김윤기에게 보고 받기로는 군산에서 주요 거점으로 군산과 부산을 생각하는 중이고, 수입량에 따라 거점을 늘려나가겠다고 들었다.
자신들의 터전이 선정되어서인지 군산 분위기는 활발했다. 전에 볼 수 없던 활기가 맴돌았다. 하지만 공사 현장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이 느껴졌다.
뭔가 있군.
[근데.]“응?”
[이렇게 살펴볼 거면 변장이 무의미하지 않아?]“아아, 이거?”
나는 군산의 중심에 들어가서 뒤섞인 게 아닌, 인적이 드문 먼 곳에서 공사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용용이는 이럴 거면 왜 변장을 했냐는 거고.
맞는 말이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이렇게 변장해봤자 도시 내에서 이방인이라 주목을 사게 될 것이다. 조용히 살펴보려고 하는데 당당하게 진입한다는 건 오히려 좋지 못한 선택이 된다.
[그럼 왜 변장했냐고.]여차할 때 도시에 진입해도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는 건데, 용용이는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드나보다.
여기에서 붙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지.
“그냥 기분 낸 걸로 하자.”
[와…….]용용이는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난 개의치 않고 조용히 현장을 살폈다.
내가 주목한 곳은 군산의 공사를 맡고있는 ‘구안 건설’이라는 곳이다.
정주호는 이곳이 빌런과 각성자 사이의 애매모호한 녀석들이 있을 곳이라고 꼽았는데, 대외협력관리국에도 문의해보니 과거 빌런 이력이 있던 이들 몇 명이 소속되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즉, 애매하단다.
여기에서 애매하다는 건 사실상 합법의 탈을 쓴 빌런과 다를 바 없다는 건데, 난 우선 살펴보는 걸 선택했다.
그걸 알아볼 기회는 금방 찾아봤다.
왁자지껄한 공사 현장에 검은 정장을 입은 녀석들이 등장하자 싸늘한 침묵에 휩싸였다. 자기 집처럼 주변을 활보하던 녀석들은 인부들을 줄 세우기 시작하더니 폭력을 행사했다.
원래 저런 건가? 나는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한바탕 인부들의 기강을 잡던 녀석들은 우르르 차에 타서 이동하더니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도착했다.
마침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라 주위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녀석들은 트렁크를 열고 포대자루를 꺼내더니 미리 준비해놓은 드럼통에 넣고 드럼통을 바다에 빠뜨렸다.
[생명 반응 없어.]처음부터 생명의 반응이 없던 걸 보면 시체를 처리한 것이다.
드럼통 다섯 개를 바다에 빠뜨린 녀석들은 다시 차에 타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둠에 몸을 숨긴 나는 녀석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딱 봐도 수상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 잠입하는 걸 선택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무슨 냄새?”
[너희 인간들이 마약이라고 하는 냄새가 나.]…가지가지 하는군.
안을 들여다보니 이곳이 도박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시체처리와 마약에 도박까지 하는데 합법의 탈을 썼다고 빌런이 아니다?
물론 합법이라고 주장하면 합법적인 곳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 인정한다고 저 녀석들이 빌런이 아닐 이유가 있나? 여기에 인신매매까지 껴 있으면 빌런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다 존재하는 셈이다.
난 녀석들을 빌런으로 확신했다.
[일부의 일탈이라고 해도?]그건 개인의 주장이고. 나도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빌런이라 생각하는 거다.
[문제 되지 않아?]문제는 무슨.
법 테두리 안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는 행동이 중요한 거지.
합법적인 녀석들이 빌런 시체를 저렇게 은밀히 처리할 리가 없다.
확신을 얻은 나는 더 이상 몸을 숨길 것 없이 도박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누구냐……!”
콰득!
나는 물어보는 빌런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언은 듣고 손을 쓴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그것도 사람을 가린다.
빌런에게는 유언도 사치다.
녀석들이 떠드는 몇 초를 손 쓰는데 사용하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빌런을 처리할 수 있다.
굳이 정체를 감출 필요도 없어 안경을 벗은 뒤 목을 조이던 흰티 목 부분을 늘어뜨린 뒤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살고 싶으면 양팔 부러뜨리고 얼굴을 바닥에 처박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