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항복하라고 하면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 게 빌런이다. 그동안 나를 보고 전의를 잃거나 포기하던 것이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내 경고에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달려드는 빌런들을 보며 예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침입자다!”
“죽여 버려!”
“네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래, 저게 바로 정상적인 반응이다.
자기 힘에 취해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죽자 살자 달려드는 것. 그리고 나는 녀석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죽음을 내려주었다.
우드득!
기뢰로 목을 비틀거나 팔, 쇄골, 어깨 등 잡히는 곳을 부숴버리면서 차근차근 무력화 시켜나갔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하던 녀석들은 동료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가자 멈칫하더니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동시에 날 뜯어보는 시선이 집요해졌다.
곧바로 내 얼굴을 알아본 빌런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헤, 헤드 브레이커!”
“최준호다!”
변장 때문인가? 생각보다 늦게 정체가 드러난 느낌이다.
“히익!”
“사, 살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에 보이는 족족 빌런들을 처리해나갔다.
다시 비명에 휩싸이는 건물.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눈치 챈 빌런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몇몇은 항복 의사를 드러내면서 양팔을 들길래 나는 다리를 걷어차고 팔목을 밟아 으스러뜨렸다.
“끄아아악! 왜, 왜!”
“내가 양팔 부러뜨리고 얼굴을 처박으라고 했잖아.”
순식간에 세 명이 다리와 팔목이 부러지자, 눈치 빠른 녀석들은 자기 팔목을 부러뜨리고 바닥에 엎어졌다.
“끄으으윽!”
“아, 아파.”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나는 도망치려는 녀석들의 뒤통수에 저격을 시전하여 구멍을 내줬다.
마침내 모든 비명소리가 가라앉았을 때, 신음을 흘리는 이십여 명의 빌런들과 오십여 명의 시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군산이 제법 큰 도시긴 해도 빌런으로 볼 녀석들이 이렇게 많단 말이지?
“녀석들이 음지에만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나이브했군.”
반성했다. 빌런은 독버섯 같은 존재라서 음지 말고도 양지에도 있는 법인데, 이걸 이제야 찾아내다니 말이다.
[왜 네가 반성하는 거야?]빨리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새삼 법의 울타리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런들도 신분 세탁을 하고 평범한 시민을 가장할 수 있으니.
나는 항복한 녀석들의 발목을 부숴버렸다.
“끄으으으!”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외협력관리국에 연락을 넣어 내가 있는 장소로 인원을 보내라고 한 뒤, 도박장 밖으로 나왔다.
두두두두두!
돌연 저 앞에서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포스막에 모조리 가로막힌 채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고, 난 저격으로 총을 쏘던 녀석의 머리에 구멍을 내줬다.
저항하던 녀석들도 모조리 정리하니 조립식 건물 사이로 적막이 맴돌았다. 나는 몸을 숨기기 가장 좋은 건물로 향했다.
“장부 정리한 곳이 있을 텐데.”
이렇게 도박과 마약이 있는 곳에는 뭐든 얽혀있는 법이니까.
난 능숙하게 비밀공간을 발견하곤 거기에서도 숨겨져 있는 금고를 발견했다.
[너무 능숙한 거 아냐?]“내가 하루이틀 빌런 애들 물건 털어봤냐.”
콰직!
금고를 뜯어내니 안에는 장부와 금괴, 현금다발이 있었다. 금괴와 현금은 두고 장부만 확보했다. 그리고 안의 내용을 보다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여러 사람 중에 연관된 사람을 어떻게 골라내나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부 다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시장부터 시작해서 정치에 발 담고 있는 사람 전부가 관련자였다.
그리고…….
“이건 뭐냐.”
마지막 줄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석유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중국과 밀무역을 할 계획이 적혀 있던 것이다.
이게 떡 줄 사람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건가?
황당하군.
*
* *
“죄송합니다, 제 책임입니다.”
대외협력관리국 공무원 헌터들이 와서 현장을 수습하고 있을 무렵, 서울에서 내려온 김윤기가 내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김윤기가 보여준 업무 능력은 만족스러웠다. 과연 그는 어느 정도까지 알고 일을 진행시킨 걸지 궁금해졌다.
“빌런들과 연관 있는 거 알고 계셨습니까?”
“현지 건설사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거칠더라도 범죄까지 저지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윤기의 보고는 내가 들은 것과 일치했다. 지방에서 공사를 하려면 어디든 그 지방에 있는 건설사에게 일감을 줘야 한다. 그것이 빌런들과 엮이게 된 이유일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현장이 발각되지 않으면 저들이 빌런으로 취급받지 않는 점입니다.”
“하지만 빌런이라는 건 변함이 없죠.”
“제 불찰입니다.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다면 공사를 빨리 진행시키는 걸로 족하다 생각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결국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윤기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분명 방조했지만 그걸 전부 책임지라 말하는 건 가혹한 일이겠지.
결정적으로 내가 자세한 주문을 하지 않는 영향도 있다고 생각했다.
“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으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은 신경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대외협력국에서 정보를 요청해줄 수 있습니다.”
“예.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김윤기를 탓할 생각이 없었기에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다만 다음은 없다.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예.”
“제가 확보한 장부에서 보면 석유를 갖고 중국과 밀무역을 하려고 했다는데요.”
여기에서 중국은 남군을 의미한다. 현재 사분오열되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중국은 연일 두들겨 맞고 있는 중이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한국으로 들여오면 꼼꼼하게 체크될 예정이었습니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만전을 기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럼 별 문제가 없었겠네요.”
그냥 자기들이 한탕 할 생각에 단꿈에 젖어 있었던 거였군.
누구나 상상하는 건 자유인 법이니까.
“그럼 이 정도로 하죠. 나머지는 대외협력관리국이 알아서 할 테니.”
“예.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난 김윤기의 사과를 받아들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오니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살펴보니 건설사로 위장하고 있던 빌런 조직이 나로 인해 소탕된 기사였다.
평소랑 기사 적는 워딩이 다른 느낌인데?
분명 내 편을 들어주는 곳도 있지만 내 말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던 언론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고예진을 비롯한 내 스탠스를 지지하는 곳이 호의적인 기사를 쓰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어떻게든 내 꼬투리를 잡기 위해 눈에 혈안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생각을 이해해주는 곳이 늘어났다.
의아해서 진세정에게 물어보니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답이 나왔다.
“초인님이 언론사에 요구한 대답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그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들에게는 있죠. 그것도 목숨이 걸린 아주 큰 문제요.”
나는 그냥 언론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대답을 듣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 대답에 따라 목숨이 오갈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죠. 초인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진짜 손을 쓸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셨어요?”
“적당히 들어줄 말만 하면 용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걸요?”
그런가? 생각해보면 난 여태까지 기자를 한 번도 죽인 적 없는 거 같은데.
“직접 손을 쓸 거라 봤나 보군요.”
“네. 그런 초인님의 성향 때문에 살려달라고 그러는 걸 거예요.”
지금 내 편을 드는 언론의 현 주소란다. 그래도 자기 생각이 확고하게 있어서 나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알았는데 아쉽군.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고 하는데 초인님이 용서해줄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각자 잘하는 걸 하는 겁니다.”
언론사는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는 걸 잘하니 그걸로 행동하는 거고 나는 누군가의 머리를 부숴버리는 걸 잘하니 그걸로 하는 거고.
각자 잘하는 걸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꼭 머리를 부숴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 대답에 진세정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거품 물고 기절했을 거예요.”
그런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자기들끼리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선에서 제지를 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이 부분은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
* *
내가 군산에서 벌인 일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견실한 건설 업체로 세탁한 빌런들이 지역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이 드러나서다.
이것이 비단 군산만의 문제일 리가 없다.
“실제로 고질적인 문제였지. 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고, 지역 유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대통령과 만남에서 그는 내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법대로 하려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란다.
또한 양지로 나온 그들로 인해 지방도시의 치안이 유지되는 것도 있었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나는 그 성역을 무너뜨린 거고.
빌런들이 치안 유지는 무슨.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곪게 만드는 쓰레기들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합법적인 곳을 막무가내로 무너뜨린 셈이었지만 대통령의 표정은 밝았다.
[속이 후련한 표정인데?]좀 전에 말했잖아. 법으로는 합법이라 건드리기 까다로웠다고. 나야 그런 걸 가리지 않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알면서도 건드리기 까다로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고 쓸어 버려야 할 잔재였지. 자네가 아니면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걸세.”
“저야 눈에 밟혀서 행동에 옮긴 것뿐이니까요. 제 사업 잘되자고 한 거라서 감사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나라가 살기 더 좋아지는데 감사를 표해야지.”
내가 워낙 마물들을 사냥해놔서 유해 8단계 이상 마물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그 외 마물은 대한민국 소속 각성자들로 충분히 사냥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계속 곪다가 언제고 한 번 터질 문제였는데 내가 미리 터뜨린 셈이 되는군.
기왕 물꼬를 텄으니 끝을 봐야 할 텐데, 아무래도 합법 테두리 안에 있어서 소탕이 쉽지 않을 거다.
이번 경우처럼 불법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할 텐데 자체적으로 없애려 들 테고.
내가 나서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석유를 운반하러 가야겠군.”
“그렇죠.”
“운반 방법은 천마갑귀 때처럼 하는 건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오랫동안 해로가 막힌 것은 마물퇴치기구를 사용할 때처럼 상위 마물로 다른 해양 마물의 접근을 막을 수 없어서다.
우선 높은 단계 해양 마물 사냥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고, 사냥하더라도 그걸 오랫동안 보전하여 다른 해양 마물을 물리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배를 해양 마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도 사용해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 해양 마물이 없는 해로만 골라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새로운 해양 마물이 등장할 때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어 해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내가 거대한 정유 운반선 여러 대를 사우디아라비아로 안전하게 보낼 방법이 있다고 하니 대통령이 주목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방법을 공유해야겠지.
“제게 좋은 친구가 생겼습니다.”
“친구?”
“이걸 보시죠.”
내가 내민 것은 20cm 정도 되는 뾰족한 것이다.
대통령과 천명국은 그게 뭔지 알지 못했다. 대신 그걸 본 용용이가 소리쳤다.
[내 발톱!]이건 무려 용용이가 ‘자발적으로’ 건네준 발톱이다.
[내가 언제!]…난 자의로 줬다고 생각한다.
“바로 신수의 발톱입니다.”
“이게 신수란 말입니까?”
“그게 사실인가?”
천명국에 이어 대통령이 경악해서 되물었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지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신수의 발톱을 활성화 시키면 마물들이 접근하지 않습니다. 비행 때 효과를 봤고, 배에도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문제점은 활성화일 테군.”
“현재까지 저만 가능한 일입니다.”
“석유를 운반할 때마다 갈 순 없지 않나?”
“그래서 다른 활성화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멍멍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멍멍이는 나한테 귀속된 존재라서 가능하지만 석유를 운반할 때마다 떠나야 하는 건 효율 면에서 좋지 못했다. 이걸 극복하려면 다른 사람이 활성화를 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좀 멀리 보고 개발해야 될 부분이다.
“근데 발톱 하나로 여러 척을 움직일 수 있나?”
“당연히 배 한 척당 하나입니다.”
“그럼…….”
“신수는 제 친구니 기쁜 마음으로 줄 겁니다.”
[야.]용용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고.
“절 도와주는데 보람을 느끼더군요.”
[내가 언제 그랬어.]용용이는 필사적으로 부인했으며.
“장기적으로 최대 20척에 적용할 생각입니다.”
“20척이나? 모두가 쓰고도 남겠어!”
[너 미쳤어? 내 말 안 들려?]용용이는 기겁해서 다시 한 번 날 불렀다.
난 듣지 못한 척 대통령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미 어느 정도 합의된 상황입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급기야 길길이 날뛰기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용용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통령과 천명국은 날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참 좋은 친구로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주기로 한 거 쿨하게 줘라.
설마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무서운 게 아니라 엄청 아프거든? 저거 준 것도 진짜 널 생각해서 고통을 감수한 건데.]그 말은 고통이 적으면 감수할 수 있다는 걸로 들렸다.
이건 또 내 전문이지.
내가 고통은 최소화해서 뽑아줄 수 있다.
[아주 많이 뽑아본 것처럼 얘기하네?]신수는 아니지만 사람하고 마물 건 많이 뽑아봤지.
[걔들은 전부 고통을 극대화시키는 거 아냐?]고통을 극대화시킬 줄 안다는 건 반대로 고통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마음대로 해.]그럼 조만간 날을 잡는 걸로.
용용이가 빠져나올 곳을 모두 차단한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