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용용이에게 발톱을 아프지 않게 뽑아주겠다는 말로 꼬드기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니 이내 혹한 모습을 보였다.
신수가 되어가지고 고통에 민감하기는.
[이 고통이 친구비를 주기 위해 감수해야 해서 그런 거야.]“친구를 위해 감수하기 싫다는 거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해줘야지. 친구끼리는 원래 이런 거야.”
[너 친구 없었다며.]“그러는 넌 있었냐?”
[난 현아 있거든!]“걔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 단호한 말에 용용이가 입을 닫았다. 음, 내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거 같은데.
사실 이번 일에 있어 용용이 발톱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석유를 향한 내 꿈을 위한 거라고 해야 할까.
[알았어, 해줄게.]내 말에 용용이가 결국 수락한다.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긴 했다. 하지만 허락받았으니 바로 실행에 옮겨야겠지.
“어디서 할까.”
[…내 둥지로 가.]용용이는 날 데리고 자기 둥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체로 현신해서 발을 내밀었다.
주어진 기회를 버리지 않는 법이지. 나는 용용이 발톱을 뽑기 시작했다.
[익! 엑! 옥!]덩치에 비해 참 귀여운 비명이로군.
다 뽑고 나니 아팠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근데 잘라도 되는 거잖아!]“그럼 활성화 방법을 다시 찾아야 되잖아.”
[그러면 되는 걸 알면서 뽑은 거야?]“이게 편하잖아?”
[…….]용용이 녀석이 말을 잇지 못했다.
*
* *
간 김에 스무 개를 확보한 내가 다음으로 착수한 작업은 멍멍이가 용용이 발톱의 기운을 활성화 시키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용용이는 신수다. 발톱에 담긴 파장도 신수의 것인데, 이 거대한 존재감이 발휘되도록 만드는 방법을 이용하면 마물들로 하여금 바다 위로 신수가 지나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것이다.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용용이의 고유 파장이 존재하는 걸 그대로 재현하면 되는 거니. 녀석의 발톱에 그 파장이 존재하니 익숙한 그걸 활성화 시키면 오랫동안 기운이 유지된다.
“네가 잘하면 된다.”
멍!
멍멍이는 잘할 수 있다면서 의지를 드러냈다. 마물이 포스를 다루는 경우인데 얼마나 잘할지 시켜본 뒤에 지켜봐야겠다.
“활성화 시켜.”
멍!
멍멍이는 앞에 전시된 용용이 발톱 앞에 발을 내밀었다. 둘이 맞닿는 순간, 공명이 일어나더니 빛과 함께 파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거 아닌데?]파스스.
용용이 말대로 얼마못가 파장이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말았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미간을 모았다.
“왜지?”
[자기 속성이 너무 강하게 주장하네. 그게 내 본연의 기운을 활성화 시키는데 방해가 되고 있어.]한 마디로 멍멍이가 자기 기운을 제대로 억누르지 못한다는 거로군.
고유의 색이 강하다는 거로 볼 수 있겠군.
“이걸 왜 못하는데?”
[마물 특유의 존재감 때문이야.]멍멍이는 그나마 존재감이 강하지 않지만 마물에게나 신수에게나 쉽지 않은 작업일 거라고 한다.
인간들은 그보다 더 희미해서 맞춰갈 수 있지만 마물은 그게 쉽지 않을 거라고.
용용이 녀석 말을 함부로 하는군.
불가능? 그건 자기합리화를 위해 꺼내 드는 말에 불과하다.
“쉽지 않기는. 하다 보면 다 돼.”
[어떻게 하려고?]“맞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서 해내겠지.”
[그걸로도 안 되면?]“죽기 싫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지.”
난 매우 간단하면서 효율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
* *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하다 보면 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결국 멍멍이는 해냈으니까.
물론 중간에 생략된 험난한 과정이 존재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와, 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폭력은 불가능한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지.”
[진짜, 이게 될 줄 몰랐어.]“신수랑 다르게 마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녀석들이니까. 자기 고집이 세서 바뀌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해줘야지.”
그 결과가 이것이다. 멍멍이는 더 맞지 않기 위해 변신했고 마침내 파장을 일치시키는데 성공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거야 반복 작업을 하면 익숙해질 부분이고.”
멍멍이 정도면 어디서 얻어맞을 정도는 아니니 잘 해내겠지.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도 제 몫을 하던 녀석이니 이제 파견 형태로 임무를 부여해봐야겠다.
새삼 과거로 돌아와서 단순하게 살던 내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사람들의 적당한 착각을 유도하여 나를 포장하고 대중의 호감도를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 호감이 영원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 사회에서 나를 내칠 수 없도록 영향력을 확보했고.
예전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그저 혈종만 내가 아닐 뿐.
“이제 좀 편해지겠어.”
멍멍이 개조에 성공한 나는 곧장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날 계획을 수립해도 좋다고 말했다. 녀석을 교정하는데 하루가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기한 보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에 김윤기는 곧장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고, 대통령은 뛸 듯이 기뻐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다고 생각했나보다.
“이렇게 일찍 성공했단 말인가?”
“운이 좋았습니다.”
“허,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자네를 믿고 있으면 모든 게 수월하게 잘 풀리는군.”
멍멍이가 더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변신한 거라 난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장 급한 일을 했으니 이제 다음으로 해결할 일에 착수할 생각이다.
“내일부터 합법으로 위장한 빌런들을 잡으러 다니려고 합니다.”
“할 게 꽤 많을 텐데 괜찮겠나?”
“일이 있어도 집안에 바퀴벌레가 숨어있는데 찾아서 박멸해야죠.”
“그렇지. 바퀴벌레지. 해충이면서 아닌 척 숨어있는 그런 바퀴벌레.”
“다만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말은 이랬지만 딱히 걸리는 부분은 아니고, 대통령이 이렇게 태연할 수 없는 이유가 남아 있었다.
“왜 그러나?”
“관련된 정치인들에게도 손을 쓸 겁니다. 괜찮습니까?”
당연하지만 지방에도 정치인들이 존재하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여당 소속이다.
“나야 상관없지.”
“그렇습니까?”
이건 예상과 다른 대답이었다. 그래도 돌려서 살살 하라거나 죽이지는 말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씩 웃었다.
“어차피 여당과 정권의 지지율은 괴리되어 있지. 차라리 이 기회에 썩어빠진 지방 정치를 뒤엎는 게 더 나아.”
“…….”
“왜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말이어서요.”
“어차피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했을 거면서. 사정을 봐주지 말고 손을 쓰게.”
음, 이렇게까지 말을 하려고 하진 않았는데 대통령 성향이 대단히 난폭해진 거 같다.
천명국 때문인가?
[네가 그런 말을 한다고?]그냥 느낀 점을 말한 것뿐이다.
*
* *
내가 빌런 소탕에 나서려는 이유는 하나의 큰 목적을 위해서다.
바로 본격적인 천둥새와 전투를 위해서다.
천마갑귀, 드라쿨레아에 이어 사막의 악몽이라 불리는 녀석을 차례대로 상대했다. 그중 둘은 투뿔 마물로, 세계를 멸망시킬 것 같은 어마어마한 포스를 발휘하던 녀석이다.
천마갑귀를 상대할 때 위기가 있었지만 드라쿨레아를 잡을 때는 수월했다.
그 과정에서 기프트를 보충하고, 실전 경험을 늘리면서 더 나아질 수 있었다.
다만 천마갑귀를 상대할 때 날려먹은 완전회복이 아쉬웠다.
그래서 버서커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지만.
“왜 이리 기프트가 안 생겨나냐?”
내가 기대하던 기프트 생성은 없었다.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심장을 움켜쥐고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전부냐?”
“서로 좋자고 하는 거지. 너도 기프트 늘면 좋잖아?”
“여기에서 기프트가 더 늘어나다가는 몸이 터져버리겠지.”
“안 그럴 걸? 네 몸은 꽤 튼튼하니까.”
“그게 칭찬처럼 들리지 않는 게 더 문제로군.”
삐딱선을 타기는.
그보다 나는 지방으로 떠나기 전, 버서커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빌런인 이 녀석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많지. 정상으로 위장하고 있고.”
“얘기 좀 자세히 풀어봐.”
“기본적으로 지방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마물의 위협으로 인해 그런 녀석들과 손을 잡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버서커는 그 원인을 기존 각성자 전력의 수도권 집중과 느슨해진 감시로 꼽았다.
“인간은 본래 악하지. 그러니 지금의 전개는 당연한 것이다.”
“완전히 제거할 방법은 없을까?”
“없다. 계속 돋아날 거다.”
사실 나도 별 기대를 하고 물어본 건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악하고, 감시가 없다면 부패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너무 나이브한 거 아냐?]나이브한 게 아니다. 그러니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얘기 고맙다. 좀 더 열심히 해서 새로운 기프트 좀 생성해놔.”
“…다시 탈출하고 싶어지는 소리로군.”
아니면서 툴툴대기는.
버서커와 일별한 나는 곧장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빌런 토벌에 나섰다.
내가 빌런을 찾는 방법은 간단했다. 지역에서 얼마나 공헌을 했는가.
단지 기업 활동만 했다고 해서 과거가 세탁되는 게 아니다. 자기들 잘 먹고 잘 살려고 돈을 버는 걸 뭐가 예쁘다고 봐줘야 하나.
오히려 범죄 자금으로 쓰이는 게 아닌지 유심히 살펴야지.
그 다음은 지역의 오락 시설을 살피는 것이다. 도박에 관련된 것들, 탈세하기 좋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면 역시 빌런일 확률이 높다.
가장 마지막으로 실종 비율을 살피는 것이다. 이를 놓고 난민이 되어 도시를 떠났다는 프레임으로 의심을 피해왔지만 드럼통으로 처리하는 것을 본 만큼 여러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그냥 둔다고? 그 공권력이라는 게 있지 않아?]용용이의 지적은 타당했지만 인간의 속성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기도 했다.
버서커가 말한 걸 들어놓고 그러냐.
[진짜일 줄 몰랐지.]원래 사람 사는 곳이란 건 다 그런 거다.
저들을 견제해야 할 지방 공권력은 한통속이 많았다. 같이 편을 먹고 이익을 공유하고, 그렇게 같은 운명 공동체로 묶인 것이다.
여태까지 그걸로 잘 먹고 잘 살면서 합법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는 영락없는 빌런이고, 빌런 동조자에 불과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눈알을 굴리고 있는 여당 소속 군수도 말이다.
“자, 잠깐! 내가 아니라 밑에 직원이 실수한 걸세. 난 분명 합법적으로 정치 자금을 후원 받은 것이고…….”
퍽!
더 들어줄 것도 없이 머리를 부숴버렸다. 자기가 앞장서서 범죄 사실을 덮어준 주제에 변명 한 번 청산유수로 흘러나오고 있다.
당당하다면서 개소리 지껄이는 걸 들었더니 귀가 썩어버리는 기분이로군.
[이러다가 남아나는 사람이 없겠는데?]“어쩔 수 없지.”
[하긴, 살려둘 인간이 없었긴 해.]“사실상 거의 다 붙어먹고 있으니까.”
[맞아맞아.]용용이가 내 말에 동조했다. 내가 여섯 개의 시군구를 돌면서 무사한 쪽은 하나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군수는 허수아비였고 밑에 실무자들을 빌런으로 채워 넣은 구조여서 사실상 빌런이 공권력까지 진출한 격이었다.
그렇게 죽인 숫자가 오백을 넘겼다.
역시 세상은 좁고 죽일 놈은 많았다. 지방 곳곳에 독버섯처럼 자라난 녀석들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자기들끼리 이합집산을 반복하다가 리그 첩자였던 유중호처럼 세력을 키워 대통령에 도전했을지도 모른다.
녀석들이 지방에서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보면 결코 거짓이라 볼 수 없었다.
그러니 보일 때 최대한 많이 처리해야지.
[이러다 다 숨어버리는 거 아니야?]숨어도 상관없다. 강제로 끌어내서 처리하면 그만이지. 어차피 바퀴벌레 전부가 숨을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는 넓지 않다. 하나 잡아서 브레인워싱을 쓰면 줄줄이 딸려 나올 테고.
그게 또 새로운 재미 포인트기도 하지.
[진짜 넌 미쳤어.]용용이는 그렇게 말하지만 난 지극히 정상이다.
정상이니 악을 벌하는 거 아닌가.
내가 미친놈이면 지금쯤 정상인들을 죽이고 있겠지.
[미친놈이 나쁜 놈을 죽이는 것처럼 보이거든?]그건 아직 사회성이 덜 함양된 신수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아마 백이면 백 사람들은 날 다 정상이라고 볼 걸?
[와, 착각 개심해.]됐고. 한 곳의 일을 마무리 한 나는 곧장 이동했다.
“가자.”
아직 처리할 녀석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
* *
최준호가 일으킨 사단이 대한민국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번듯한 건설사로 위장한 빌런 조직이 석유 판매에 관여하려다가 걸린 이후, 잠잠하던 최준호는 지방 정치권력과 결탁한 빌런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최준호가 빌런만이 아니라 정치인들까지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치인까지 손을 대다니.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정치권은 최준호를 향한 공포심에 들썩이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이미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도 같았기에 속만 부여잡고 끙끙댔다.
그런 가운데 천명국은 예상치 못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정치권의 상징적인 2인자이자, 다음 여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인물이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바로 서울시장 한정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천명국 실장님.”
“반갑습니다, 시장님.”
다소 어색한 인사.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
그 속에서 천명국은 내려앉은 적막을 깨고자 입을 열었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시장님.”
“실장님과 한 번 허심탄회하게 속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저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둘은 마주보고 앉았다. 바로 앞에 놓은 탁자 위에는 따뜻한 김이 피어나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노련한 정치인인 한정문은 화두를 던져놓고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열면 지는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이래서 정치인들이란.
속으로 혀를 찬 천명국이 먼저 물어보았다.
“절 찾으신 용건이 무엇인지?”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던 한정문은 한 모금 마시더니 천명국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실장님은 바로 본론에 들어가길 바라는 거 같으니 묻겠습니다.”
천명국이 시선으로 대답하자 한정문이 물었다.
“천 실장님, 대권에 욕심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