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천명국은 한정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가장 많이 봤던 눈이다. 권력을 갈망하는 욕망이 서린 눈. 자기 실력이 안 되거나 입지가 안 되는 사람은 그걸 드러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 권력에 대한 탐욕이 가감 없이 전해졌다.
서울시장까지 된 그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리 없다. 그렇다면 이 감정의 표출은 목적을 가진 의도된 것이었다.
그리고 정치 9단인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해온 천명국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다.
‘견제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스스로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청와대에 있는 여러 실장 중 한 사람일 뿐인데, 대한민국의 선출직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장이 자신을 이렇게 신경 쓰는 걸 보니 말이다.
확실히 한정문은 감각이 있다. 그 감각이 옛것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나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나서야 하는 상황까지 된 것이 이 나라의 인식이 뒤떨어졌다는 증거다.
“어떤 대답을 바라십니까.”
“천 실장님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저도 제 생각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쉽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겁니까. 그게 당연할 겁니다. 나도 확신을 갖게 된 건 최근이고 아직 많은 사람도 헷갈려 하는 상황일 테니까.”
한정문이 몸을 뒤로 젖혀 소파에 묻었다. 그리고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천명국을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공석이 된 서울시장의 자리를 천명국 실장님, 당신에게 양보하겠습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어서 천명국의 눈이 커졌다.
허를 찌르는데 성공했다고 여겼는지 한정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며, 동시에 협력의 예술이기도 합니다. 서울시장의 권한이 옛날처럼 막강하진 않지만, 세력을 키우기 좋은 자리입니다. 시장의 권한으로 많은 사람을 자리에 꽂을 수 있고, 여러 세력의 지지를 끌어낼 이권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서 왜 자신에게 양보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천년만년 할 것이지.
물론, 한정문은 저번 대선 당시에도 서울시장이었고, 경선에서 패배한 후 줄곧 서울시장 자리를 지켰기에 더 이상 연임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아니, 사실 알고 있다. 자신더러 서울시장 자리를 받고 여기에 주저앉으라는 이야기다.
“천 실장님은 정치인으로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 대권은 천 실장님에게도, 이 나라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습니다.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죠.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정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한정문은 미소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고.
“…….”
천명국은 그걸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분명 매력적인 제안을 해왔지만, 그것이 천명국의 마음을 잡아끌지 못했다.
서울시장 한정문은 분명 손색없는 대선후보였지만 최준호라는 폭탄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후보는 아니었다.
정치인 중에서 누구도 그를 품을 수 없다.
그러니 현영미도 곤욕을 겪었겠지.
한정문도 마찬가지다.
“역시, 안되겠습니다.”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겁니까?”
“처음부터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고 말씀드리는 게 옳겠습니다.”
“…….”
한정문의 미소가 지워졌다.
“시장님은 최준호 초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입니다. 국가의 보물이며 아직 덜 길들여진 야성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이지요.”
저것이 한정문이 최준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일 것이다.
한정문은 일전에 최준호와 충돌을 빚었고, 그로 인해 만만치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중앙 정계와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시장님이 대통령님처럼 최준호 초인을 품을 수 있었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지지했을 것입니다.”
“제 역량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겁니까?”
“시장님은 최준호 초인의 행동을 용납할 수 있습니까?”
“…….”
눈살을 찌푸린 한정문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국가에 큰 이득을 안겨준다고 해도 최준호의 존재는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최대한 억제하고 있지만 얼마 전 인터뷰에서도 그 티를 냈고, 현영미만큼은 아니지만 각성자를 제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안 되는 것입니다.”
“고작 최준호를 다루는 것으로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그것이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명국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방금 전 대화로 확신을 얻었다. 최준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아니, 제어라는 말도 웃기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뜯어말린다고 하는 게 옳겠지. 그런 각오가 아니고서는 최준호를 막을 수가 없다.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는 최준호에 의해 멸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주호라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아직 권력 의지가 약하고 덜 여문 정주호는 자신의 주도 하에 중임제로 개헌된 뒤 맡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대통령의 정책을 잇고 최준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생각이 이어질수록 천명국의 표정 또한 단호해졌다.
“시장님, 당신은 최준호 초인을 다룰 수 없습니다.”
“난 다룰 수 있다.”
“대체 그를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한정문의 기세가 사나워졌지만 천명국에게 코웃음이 나오는 행동이었다. 지금은 청와대 일개 실장이지만 천명국은 레벨 7에 오른 각성자였다.
“오늘 있었던 일을 최준호 초인에게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
한껏 사나웠던 한정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이 대화가 최준호 귀에 들어간다면? 가뜩이나 증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인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다.
지금도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빌런 토벌이라는 명목 아래 정치인들을 죽이고 다니지 않는가. 정치를 하다 보면 때가 묻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최준호 귀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정문에게 천명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이런 수작이 아니라 당당하게 출마 선언을 하고 경선에 절 꺾으면 됩니다.”
*
* *
확실히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모든 게 늦다는 점이다.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이미 여러 곳이 소탕되었음에도 다른 지방에서는 증거를 완전히 감추지도, 치밀하게 감추는 것도 하지 못했다.
합법이라는 틀에서 한껏 배부르고 나태해졌다. 내 눈에는 자기들 배를 갈라 달라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껏 풀어진 녀석들 덕분에 소탕 작업은 빠르고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 살려줘!”
콰득!
이미 죽을 죄를 지어놓고 살려달라고 왜 애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칠 것이지. 나야 쉽게 처리할 수 있어서 상관없지만.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녀석들의 창의성도 나날이 향상되는 거 같았다.
“저, 저를 살려주시면 영약을 드리겠습니다.”
“영약?”
“예, 예! 이것만 먹으면 레벨 하나가 상승하는 것으로…….”
내가 지금 레벨 9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걸 먹으면 레벨 10이 된다고?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에 난 피식 웃었다.
“그거 참 대단하네. 네가 먹어봐.”
“예?”
“사기가 아니면 그거 먹고 덤벼보던가.”
“이, 이익!”
나한테 사기를 치려던 녀석은 영약이라는 걸 먹고 내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입에 넣는 순간, 목을 베어버렸다. 약 먹고 덤벼도 상관 없지만 굳이 효과가 어떤지 궁금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진짜 먹는 걸 보면 효과가 있었을지도? 그래봤자 약쟁이지만.
그렇게 총 열두 곳의 빌런들을 소탕했을 때, 나는 전국에 대대적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여태껏 잠잠하던 지방 시군구에서 각성자들을 동원, 양지로 기어 올라온 빌런 조직을 소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로 완벽하게 소탕이 된다고 볼 수 없었지만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큰 변화인 것은 분명했다.
“흠.”
이렇게 되니 내가 끼어들 명분이 약해졌다. 내가 손을 쓰는 것이 더 확실한 처리방법이 되겠지만 자기들이 움직여서 처리하려는 일에 내가 손을 보태는 모양새도 우스웠다.
이걸 의도했다면 그것도 성공이긴 하겠군.
과연 자정작용이 될지 지켜보면서 다음 개입여부를 결정해야겠다.
“마지막은 여기로 할까.”
일단 돌아가는 추이를 지켜보기로 한 뒤 나는 마지막 목적지인 부산으로 향했다.
*
* *
마물의 등장 이후, 쇠락했지만 부산은 여전히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례로 동남권을 확실하게 묶어 맹주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내 손에 실시간으로 브레인워싱이 된 유성수가 감옥에 들어간 뒤 여당 소속 한기열이 취임하여 훌륭한 지방자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부산에 방문했을 때 협력 과정도 매끄러웠고,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예전에는 이걸 자각하지 못했지만 요즘 보면 이마저도 대단한 재능이다.
“극찬에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부산시청에서 한기열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빌런이 별로 없네요.”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서 죽일 놈들이 한가득인 줄 알았는데.
내 말에 한기열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왜 그러지?
“그야 초인님이 일전에 부산의 빌런들을 쓸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 강력한 정책을 통해 빌런이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아,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부산은 나로 인해 여러 번 빌런이 소탕되었다. 처음은 부산을 자기 세력화 하려던 유성수 소탕 때였고, 그 다음은 태평문을 처리하려 부산에 왔을 때였다.
주기적으로 땅을 다져놓으니 잡초가 자리 잡을 틈이 없다는 건가?
이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인 거 같다. 귀찮은 것만 빼고. 하지만 그걸 유지할 수 있던 것은 이곳의 행정을 맡은 사람의 역량도 중요한 거겠지.
“시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알아주셔서 기쁩니다. 초인님에게 이렇게 인정을 받을 줄 몰랐습니다.”
“잘하신 걸 잘했다고 했을 뿐인데요.”
“요즘 사람들은 솔직한 칭찬도 잘 하지 않더군요.”
그것 참 이상한 기조로군.
그것과 별개로 부산시장 한기열은 모난 곳 없이 빈틈을 보이지 않고 일 처리를 잘하는 인물이었다.
대통령처럼 능구렁이 같지는 않은데 딱 봐도 만만해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초인님 덕분에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미쳤다고 난리던데요?”
“그야 얽힌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누구나 자기 이익을 침범당하면 난리가 나는 법입니다.”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그게 초인님의 매력이긴 합니다. 대통령님도 그 생각이시니 곧 있을 대선에 안배를 해두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떠보는 건가, 아니면 들어서 아는 건가.
애매모호해서 대놓고 물어보았다.
“대통령님이 말씀했습니까?”
“아닙니다. 중앙에 조금 떨어져 있으니 잘 보일 뿐입니다. 그분다운 판단이고 결정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신선함을 느낄 정도이니.”
대통령이 말한 게 아니라면 대단한 눈치의 소유자이긴 했다.
하긴, 그만한 처세와 능력이 있으니 부산에 왔을 것이다. 유성수가 영주처럼 있던 곳의 분위기를 바꾼 걸 보면 능력은 확실했다.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정에는 초인님의 승낙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역시.”
고개를 끄덕이던 한기열은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초인님께서도 대한민국에 상당한 애착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영향력을 더 강화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부산에도 좋고 초인님에게도 좋은 방법이.”
“듣고 싶은데요.”
“이곳 부산을 초인님의 열렬한 지지 도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난 잘 모르겠다.
이런 내 생각을 눈치 챈 듯 한기열이 말을 이어나갔다.
“서울은 지방색이 옅어 초인님의 행보에 무던한 반응을 보이지만 지방은 다릅니다. 서울에 비해 모든 인프라가 열악하기에 자신들을 잘 살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초인님은 그 무기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석유.”
“예.”
한기열이 원하는 것도 결국 석유였다. 하지만 원하는 이유가 내게 꽤 매력적으로 들렸다.
“이곳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은 대한민국 최대 중화학 공업단지였습니다. 초인님이 조금만 밀어주신다면 옛 영광을 찾는 것은 금방일 것입니다.”
여기에 일본과 교역까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은 지금보다 몇 배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차이가 있다고?
난 의아함을 드러냈지만 한기열은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럼 가능한 거겠지.
안 되면 지켜보다가 이유를 들으면 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 이유가 없다면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것은 고스란히 초인님을 향한 지지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 번 검토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에 대한 투자라.
부산의 잠재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내전에 휩싸인 중국에 비해 안정적인 일본과 교역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내가 의도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중하게 요청해오는 한기열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큰 대가를 얻어내는 걸 외면할 이유가 없지.
역시 손에 쥔 게 늘어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나보다.
[며칠 전까지 너한테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몇이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용용이 녀석, 발톱 뽑은 걸로 원한을 드러내기는.
[난 사실을 말한 거야!]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난 한기열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버니 어머니한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마침.”
“……?”
“제 이모할머니가 부산이 고향이십니다.”
“그게 무슨…….”
“그래서 부산이 친숙하더군요.”
“그 말씀은?”
“시장님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모할머니의 고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